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벽제관에서 옛 일을 회상하며 만난 선풍도인

오토산 2022. 1. 29. 09:11

김삿갓 65 -
[벽제관에서 옛 일을 회상하며 만난 선풍도인仙風道人]

북쪽으로 북쪽으로만 길을 가던 김삿갓은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길을 가던 초립동이를 보고 물었다.

"날이 저물어 어디선가 자고 가야 하겠는데,

이 가까이에 절이나 서당 같은 것이 없느냐?"

"절이나 서당은 없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벽제관碧蹄館에 주막이 있어요."
김삿갓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래?

그럼 여기가 바로 벽제관이란 말이냐?"

이곳이 벽제관이라는 소리에

김삿갓은 불현듯 임진왜란 당시의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 선조는
질풍노도와 같이 진격해 오는 왜군을 피해

의주義州 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다.
​눈 앞에 압록강을 건너면 명 나라 땅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수도 있는 난관에 빠졌다.

이때는 이미, 

한음 이덕형이 명나라로 구원군을 요청하는 사신으로 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명 조정의 분위기를 알아챈 한음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 황제가 선뜻 원군을 내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

정녕 우리 조선을 구원해 주실 수 없단 말씀입니까 ? "
​한음은 담판을 시작했다.

"그렇소.

조선에 원군을 보낼 수 없소."
​명 나라 황제는 손 조차 내 저으며 거절을 했다.

"우리 조선과 명나라는 오랜 형제지국 입니다.

형제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 모른 척하시다니요."

"조선국 사신은

더는 나를 설득하려하지 마시오."
​황제가 냉정하게 잘라서 말을 했다.

 

"음 ...."
​그러자 한음은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은

스스로 살아남을 길을 찾는 수밖에 없겠사옵니다."

"잘 생각했소.

스스로 싸워 이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오."
​황제는 빙그레 웃기까지 하였다.

 

"폐하,

그 길이 어떤 길인 줄 아시옵니까 ? "
​협박하는 어조로 한음이 말했다.

"내가 알 리 있겠소?

그래, 어떤 방법이오? "
​명 나라 황제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말씀 드리기 황송하오나,
우리 조선이 목숨을 보존하는 길은
왜적 앞에 나아가 항복하는 길 뿐이옵니다."
​한음은 황제를 은근히 협박했다.

"으흠,

그런 방법도 있겠구료."
​황제는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였다.

"우리 조선이 왜군에게 항복을 하게되면
그들의 길잡이가 될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야,

뻔한 일이 아니겠소? "

"그리고 왜군은 우리를 길잡이 삼아,
이 명나라로 진군할 것이 틀림 없습니다,

폐하 ! ..."

[보탬 : 임진왜란이 일어나가 10년 전 쯤에 명나라는 이미

왜의 침공을 받아 국토의 한 부분이 유린되고

백성들은 물론 적잖은 군사들이 상한 일이 있었다.

물론 초기의 승승장구하던 기세와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보급로와 기세가 꺾이면서

왜군들도 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철군했지만

이번의 임진왜란도 경로를 바꿔

조선을 먼저 무너뜨린 뒤 조선반도를 보급기지로 삼아

명나라로 침공하려는 뜻임을 명나라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일임을 계산한

이덕형의 초강수였던 것이다. : 만당]

"뭐라구 ? "
명 나라 황제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호통을 쳤다.

"조선이  길잡이가 되어 우리 명 나라를 친다고?

감히 누구를 겁박하려 하느냐!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그러나 한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침착한 모습으로 황제를 설득했다.

"폐하,

소신을 처단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옵니다.

소신이 이곳에서 기한 내에 돌아가지 않으면
소신의 임금께서는 부득불 왜군 앞에 나아가 항복하시게 될 것 이옵니다."

"아니 저놈이

아직도 내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고 있구나!"

"폐하,

고정하시고 소신의 말을 더 들어 주소서.

소신의 임금이 왜군에게 항복을 하면

오래도록 형제국으로 지낸 두 나라는 의리를 저버리게 됩니다.

폐하,

이같은 크나큰 수치를 역사에 남기지 마소서."

"무엇이라....!"
명 나라 황제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폐하, 바라옵건데

그런 불행이 없도록 통촉해 주시옵소서!"

한음 이덕형은 이와 같이 고하고 황제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러자  배석해 있던 명나라 신하가 말하는데,

"폐하,

조선국 사신의 목숨을 내건 충절이 갸륵하옵니다.

그의 말 대로 조선의 군사를 길잡이로 왜군이 쳐들어 온다면

우리 명 나라도 시끄러울 것 입니다.
​하오니 통촉하시어 조선국에 원군을
보냄이 타당하다 사료되옵니다." 하였다.

그러자 ,

함께 있던 다른 신하들도 이구동성으로 아뢰는데

"원군을 보냄이 마땅하옵니다."하였다.

[보탬 : 이때 선조는 사신으로간 이덕형 으로부터의 명군의 파병 소식을

초조하게 가다리면서 한시바삐 압록강을 넘자고 신하들을 채근하면서

"나는 명나라에 귀부하겠다."

"조선의 왕으로 살기보다 명 황제의 제후로 살기를 소망한다"는

임금답지 못한 지지리도 못난 얼뜨기였다.

조선사신 이덕형의 목숨을 건 명황제와의 담판(?)은

풍전등화 조선에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게 된다.
지성감천이었던 것이다.[보탠이 : 만당]

이렇게 하여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이끄는

5만의 군사는 압록강을 건너와 평양성과 개성을 차례로 탈환했는데,
벽제관에서만은 왜군에게 크게 참패하였다.

승승 장구하던 이여송은

벽제관에서 왜군에게 한번 혼이 나자,

멀찍이 송도까지 퇴각하여 다시는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전국戰局은 조명연합군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왜군을 압박하여 무찔러야 할 판인데,
이여송은 이 핑게 저 핑게로 싸우려고 하지 않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때 이여송의 접대관은 지혜롭기로 유명한,

명 나라에서 돌아온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었다.

이덕형은 이여송에게 속히 싸워 주기를 여러 차례 간청하였다.

그러나 이여송은 갖은 핑게를 대며 좀처럼 왜군과 싸우려 하지 않았고

[보탬 : 한 수 더 떠서 이덕형을 따라 이여송의 진영으로 함께

왜군과의 전투에 나설 것을 간청하던 수행관리를
두들겨 패기 까지 했다.(징비록)

이여송은 누구인가?

그는 원래 조선과 여진의 접경지역에 살던 조선인의 후손으로

그의 윗대 어른들이 명나라에 귀화하여 명군의 장수가 되었고

그런 점이 감안되어 왜군을 진압하는 명군의 수장으로 왔다는 설이 있다.

[보탠이 : 만당]

이덕형은 간청을 하다하다 이여송이 끝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나중에는 화가 치밀어 이여송의 방에 있는 적벽도(赤壁圖) 병풍에

아래와 같은 시 한수를 써 갈겼다.
 
[승부란 한판의 바둑과도 같은 것

전쟁은 꾸물거림을 가장 꺼리오 알쾌라

적벽 싸움 전에 없던 공적은 손 장군이 책상을 찍던 그때부터요.]

 그 옛날  중국 삼국시대에 오왕吳王 손권孫權이

위왕魏王 조조曺操에게 크게 패한 뒤

부하 장졸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모두가 조조에게 항복 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모사 주유周瑜와 노숙魯肅만은 끝까지 싸울 것을 고집 하였다.

이에 손권은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칼로 책상을 찍으며 최후의 선언을 했다.

"우리는

옥쇄玉碎할 것을 각오로 끝까지 싸우자."

그리하여 결전의 방침이 정해졌고

군신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조조군에 맞서게 되는데

이게 곧 적벽대전이다.

손권은 그 유명한 적벽 대전에서
조조에게 커다란 패배를 안겨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적벽도가 그려진 병풍에 한음이 휘갈겨 쓴 시의 뜻을

이여송이 모를리가 없었다.

이여송은 이덕형의 시를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왜군을 상대로 진격을 하게 되었고,
​전황은 조명 연합군의 우위로 왜군을 점점 쇠퇴시켜

결국은 퇴각시키기에 이르게 된다.

[보탬 : 물론 거기에는 이덕형의 지혜도 컸지만

병조판서였던 서애 유성룡(뒤에 좌의정)의 지혜가 더욱 빛난다.

서애 유성룡은 논리와 인품과 언변으로
임진왜란의 성격을 "조왜전쟁"이 아니라 "명왜전쟁"이며.
​조선은 왜군의 명나라 정벌을 위한 전초전으로

병참기지 확보 전쟁의 희생자일 뿐임을

명군 지휘부에 명확히 인식시켰던 것이다.[보탠이 : 만당]
   
세부 내력이야 어찌됐건
​김삿갓은 한음의 이 훌륭한 시 한 편이
임진왜란으로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살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벽제관으로 와서 어느 주막에 숙소를 잡았다.

그 주막에는 70을 넘었다는 노인이 한 분 있었다.

하얀  구렛나루 수염이 배꼽에 닿을 만큼 탐스러워,

얼른 보기에도 선풍 도인仙風道人이었다.
​김삿갓은 저녁을 먹고 그 노인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마침 그때 젊은이 하나가 방으로 들어와
노인에게 인사를 올리며,

"저는 지금 한양에 다녀오는 길이옵니다.
한양에는 오늘 아침에 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한양에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리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그러나 노인은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이
태연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한양이 워낙 복잡한 곳이라

괴상한 일이 생길 만도 하지."

노인은 괴상한 일이라는 게 어떤 일인 지도 묻지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김삿갓은 궁금하기 짝이 없어
자기가 앞질러 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한양에

어떤 괴상한 일이 생겼다는 말이오 ? "
​젊은이는 김삿갓에게 말하기를

"한양의 진산인 남산이

오늘 아침에 무너져 버렸다오."

"뭐요?

남산이 무너지다뇨.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김삿갓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주인 노인은 놀라기는 커녕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꺼야.

남산은 수 천년이나 오래된 산이니까,

무너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지."

김삿갓은그 말을 듣고 ,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서,

"노인장 !

남산이 무너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아무리 오래 되었기로 산이 무너지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노인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허기는 자네 말도 옳아.

산은 머리가 뾰족하고 밑은 넓적한데 다가,
바위와 바위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좀처럼 무너지는 일이 없을 것이야."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화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노인장께서는 이 말도 옳다, 저 말도 옳다 ...
​도무지 줏대라고는 찾아 볼 수 없으니
도데체 그런 애매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허허허 ...

자네 말도 역시 옳으이!"

 

주인 노인이 너털 웃음을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바로 그때

젊은이 하나가 또 들어와 노인에게 인사를 올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별 일도 다 있습니다."
​노인은 인사를 받으며 묻는다.

"무엇을 보았기에 별 일이라 하는가?"

"저는 오늘,

소가 쥐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별 일이라 하는것 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소가 쥐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구?

음 , 그럴 수도 있겠지.

소란 놈이 워낙 우직해서,

비록 작은 쥐 구멍이라 하여도 우격 다짐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거야."

도무지 말이 안되는 소리다.

김삿갓은 처음에는 주인 노인이 나이가 많아서 노망하는구나 했는데,
​대꾸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노망은 아닌 것 같았다.

"어르신!

아무리 소가 우직하기로 서니,
어떻게 쥐 구멍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상식으로 생각해도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 아니옵니까?"하고

정면으로 따지고 들었다.
​노인은 여전히 웃으면서 말한다.

"허기는 자네 말도 옳아.

소란 놈은 좌우에 뿔이 있어 쥐 구멍으로 파고 들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야."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농락을 당하는 것만 같아

화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여보시오,

영감님!영감님은 왜 이다지도 언사가 분명치가 못하시오?
​된 소리 안 된소리 모조리 옳다고 하시니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 "
​그러자 노인은 여전히 태연 자약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 이었다.

"허기는 자네 말이 옳아!

된 소리 안 된 소리 모조리 옳다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지."

그러자 옆에 있던 두 젊은이가

별안간 소리를 크게 내어 웃으며 김삿갓을 이렇게 나무란다.

"하하하 ...

노형은 왜 이렇게도 화를 잘 내시오?

우리 두 사람은 지난날 화를 잘 내는 바람에 손해를 본 일이 하도 많았기에,

지금은 저녁마다 선생님을 찾아와서 정신수양을 받는 중이라오.

노형도 화를 잘 내는 것을 보니,
우리들과 함께 선생님한테 정신 수양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앗차!

내가 너무도 경망스러웠구나." 싶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황희黃喜 정승의 옛이야기가 불현듯 떠 올랐다.

조선 초기 정종定宗, 태종太宗, 세종世宗대왕의  3대 임금 시대 때
​정승 벼슬을 40여 년간 지낸 만고의 명신, 황희 정승은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화를 내 본 일이 한번도 없었던 인물이다.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가 있었다.

하루는 두 명의 종년들이 서로 다투다가 한 아이가 황희 정승에게 달려와

"대감마님!

저년이 이러 저러 하니 저런 나쁜년이 어디 있사옵니까?"하고

고자질을 하자
​황희 정승은

 

"그래 네 말이 옳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저쪽 종년이 달려와서,

"대감마님!

저년이 이러 저러하니, 저년이 나쁘옵니다."
황희 정승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누라가 그 광경을 보고,

"대감은 이 아이 말도 옳다,

저 아이 말도 옳다 하시니,

세상에 그런 말씀이 어디 있사옵니까?"하고

나무라자 황희 정승은 마누라에 대해서도 역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마누라의 말씀도 옳소이다."

김삿갓은 오래전 어느 야사野史책에서
황희 정승의 일화를 읽어 보고 크게 감동했던 일이 있었다.

 

​종년들의  다툼이 옳으면 얼마나 옳으며
그릇되면 얼마나 그를 것인가?

별 것도 아닌 다툼이기에

황희 정승은 저마다 옳다고 말해 버렸으리라.
​그 한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황희 정승의 도량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앉아 있는 주막집 노인은

황희 정승과 똑같은 도량을 보여주고 있으니,
​김삿갓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노인 앞에 무릅을 꿇고 머리를 정중히 수그려 보이며,

솔직하게 사과하였다.

"제가 불민한 탓으로 어른을 미처 알아 뵙지 못하고

경망되이 행한 것을 너그러이 용서하소서."
​노인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을한다.

"무슨 소리! 

나는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어떤 일에나 시비를 가리지 않기로 했네. 

주책없는  늙은이라고  비웃을지는 모르지만,

그게 바로 마음을 편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비결이거든."
​김삿갓은 노인의 말에 또 한번 감탄해 마지  않았다.

"노인장 같은 어른을

만나 뵙게 된 것이 다시없는 기쁨이옵니다."
​노인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저으며,

"보잘것 없는 늙은이한테

무슨 그런 소리를 하시는가"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하기에

나는 한평생  둥글둥글 살아오고 있을 뿐인걸!"

김삿갓은 노인의 겸허한 인사에 또 한번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다른, 노인의 생각을 물었다.

"그러면 매사를 그렇듯 지내시다 보면,

남들에게는 줏대 없는 사람으로 비쳐지는 것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 "
그러자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만사개유정 (萬事皆有定 : 세상 만사는 모두가 정해진 이치대로 흘러 가는 것) 인걸..

그런데도 가엾은 인생은 부질없이 바쁘게 돌아 간다네. (浮生空自忙 :부생공자망)

따라서 사람들은 생년불만백 (生年不滿百 : 백년도 다 못 사는 주제에),
상회천세우(常懷 千歲憂 :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 것) 하는 것이 아니겠나 ! "
김삿갓은 노인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말을 하였다.

"어른의 말씀이 정녕 명답 올씨다 ! "

 

주막집 노인과 밤 늦도록 세상사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김삿갓은
다음날 아침, 노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임진나루를 향해 발길을 부지런히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