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갖바치

오토산 2022. 2. 6. 13:27

사랑방이야기(320)

갖바치


영월장이 파장할 적에 동강 나루터에 늘어선 황포돛배들도

고래고래 외치던 호객을 멈추고 닻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 열서너 살 먹은 소년이

어머니 손을 잡아당기고 한손은 흔들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막 떠나가는 배에 어머니를 먼저 태우고 뛰어오른 소년이

배 난간을 잡고 울상이 돼 발을 동동 굴렀다.

 

배는 바람을 안고 강을 오르는데

신발 한 짝은 벗겨져 둥둥 거꾸로 떠내려가는 것이다.
바로 그때 나루터에서 짚신장수 소년이 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쳐 신발 한 짝을 건져내 배를 따라 달려갔지만 역부족.
배는 더 멀어져갔다.

 

짚신장수 소년이

배를 향해 신발을 던졌지만 뱃전에 못 미쳐 다시 강에 떨어졌다.
배 난간에 매달려 탄식을 하던 어머니와 아들.
그때 아들이 갑자기 신고 있던 신발 한짝을 벗어 강변으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황포돛배가 멀어져가고 어머니와 아들은 뱃전에서 손을 흔들었다.
열세 살 짚신장수 소년 천석의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다.

 

강물에 떠내려가던 신발 한 짝을 다시 건져내고

뱃전에서 그 소년이 던진 나머지 한 짝을 가지런히 놓으니
한 켤레가 되었는데 그것은 가죽신이었다.

 

천석이는 가죽신을 깨끗하게 닦아 선반 위에 얹어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내려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어루만졌다.
가끔씩 신발을 신고 뚜벅뚜벅 방과 마루를 돌아다녔다.

장날이 되면 아버지가 삼아놓은 짚신 꾸러미를 메고

영월로 나가 동강 나루터에 좌판을 벌이는 것은 천석이다.
그날은 가죽신을 들고 나가 짚신 팔 생각은 않고 배에서 내리는 손님들만 쳐다봤지만

그 소년은 두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가

영산잿날 노불사에 갈 때 천석이가 부축해서 동행했다.
천석이는 처음으로 가죽신을 신고 갔다.
세상사람 모두가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법당에서 어머니 옆에 앉아

두어 식경 재를 지내고 나왔더니 가죽신이 없어졌다.
천석이 악을 쓰며 쥐어짜내는 울음소리가 산골을 찢었다.

 

집으로 돌아온 천석이 실성한 것처럼 멍하니

그날 밤을 새우고 이튿날 영월로 나갔다가 저녁나절 돌아와

 

“아부지, 나 짚신일 하지 않을래요.

갖바치를 할래요”라고 말

했다.

 

긴 한숨을 쉰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석은 갖바치 집에서 먹고 자며 새경도 한 푼 받지 않고

잡일을 하다 일 년이 지나자 가죽 무두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부지런하고 손재주 있고 성실한 천석이는

삼년이 지나자 가죽을 헝겊 다루듯 했다.
천석이가 처음으로 손수 만든 신발은 잃어버린 그 신발이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잃어버린 그 가죽신은

태어나 처음으로 천석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 감동이자

마음속의 반려자이며 열정을 뜨겁게 달구는 불꽃이다.
천석이 열여덟 살 때 갖바치 맏딸과 혼례를 올리고

세간나는 김에 한양으로 올라갔다.

왕십리에 둥지를 튼 천석이네 가죽신은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생가죽을 기름에 튀겨 여러 겹을 붙이고 바닥에는 황동 징을 박은 유혜(油鞋)에

비싼 값을 매겨도 항상 주문이 서너 달이나 밀렸다.
짚신 삼던 부모님도 불러올려 아담한 기와집에 모셨다.
아들도 얻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천석의 가슴 한구석이 비는 것은

그 옛적 그 가죽신을 던지고 손을 흔들던 그 소년이었다.

천석이는 단봇짐 달랑 메고 십여 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동강 나루터에 발을 디디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동강을 거슬러 오르는 황포돛배를 타고 나루터마다 내려서

십여 년 전 가죽신 신었던 소년을 수소문했지만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였다.

세밑의 칼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동강 나루터에서 하선해 씁쓸한 발걸음으로 주막에 들어갔다.
세밑의 주막은 휑뎅그렁했다.

 

세밑에 오가는 객들이 없어

객방을 데워놓지도 않았는지 이제야 사동이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손님 하나가 객방이 데워지기를 기다려

안방에서 주모와 단출한 개다리 술상을 놓고 대작하고 있는 중에
천석이도 합석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 있던 그 손님은 인두 환쟁이였다.

새하얀 오동나무 판자에다 불에 달궈진 인두로

판자를 태워서 그림을 그리고 휘호를 새겼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자 주모가

 

“세밑에 주막에 드는 사람은 사연이 많은 법이오.
살아온 곡절이나 풀어보시오.”

인두 환쟁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친께서 삼년이나 병석에 계시다 이승을 하직하신 후에도

살림이 탄탄해 가죽신을 신고 다녔는데
장사하는 외삼촌 보증을 서줬다가”
그때 천석이 갑자기 환쟁이 말을 끊고 말했다.

 

“동강 나루터에서 떠나는 황포돛배에 급히 오르다가

가죽신 한 짝을 강에 빠뜨렸지요?
제가 강물에 뛰어 들어가….”

 

환쟁이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환쟁이와 갖바치 천석이는 서로 부둥켜안았다.

두 사람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한살 많은 환쟁이에게 갖바치가 ‘형님’이라 불렀다.
이튿날 첫배를 타고 환쟁이 부모 산소를 찾고 나서

형님동생은 한양으로 올라갔다.

 

환쟁이는 가죽신에 인두로 매화를 그리고 난초를 그려

유혜 값을 훨씬 더 올려놓았다.
꽃피고 새 우는 춘삼월에 환쟁이는

천석이 처제와 혼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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