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이야기(344)
쩐의 흐름
연평도에 조기 파시(波市)가 열릴 때면
구월봉 아래 구월포는 발 디딜 틈이 없고 어깨가 부딪쳐 걸을 수도 없다.
팔도강산 조기잡이 어선 1000여척이 모여들어 연평도·백령도·어청도 근해에서
안강망으로 잡아 올린 오동통 살이 오른 조기에 소금을 뿌려 배에 싣고
황포 돛대를 활짝 펴고 남쪽으로 내려가 영광에 쏟아낸다.
소금을 뿌려 꾸덕꾸덕 해풍에 말리면 굴비가 되는 것이다.
조기와 굴비는 어느 지방에서도 가장 맛있고 가장 비싼 해산물이다.
선주는 잡아온 조기를 어판장에 위탁해 경매에 붙인다.
출어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돈을 선주와 어부들이 반반으로 나눈다.
선주의 전대가 무거운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어부들 전대도 가볍지 않다.
돈이 넘쳐난다.
돈이 들끓는 곳엔 주색잡기가 빠질 수 없다.
팔도강산의 내로라하는 노름꾼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모여들고
치마 벗기를 주저하지 않는 화류계 여인들도
돈 냄새를 맡고 부나비처럼 달려든다.
밤이 되면 조기 떼가 펄펄 뛰던 바다는 조용하지만 노름판은 열기가 끓어오른다.
노름판에서 딴 사람은 신바람이 나서, 잃은 사람은 화를 가라앉히려고 술집을 찾는다.
술은 색을 달고 다닌다.
까르르 헤픈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연평도를 들썩이면
조기 판돈이 흘러흘러 여인들의 치마 속주머니로 들어간다.
‘꼬끼요∼’
새벽닭이 울고 동녘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면
지난밤의 역사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조기잡이 어선은
또다시 ‘쩐(錢)’의 원천인 조기 떼를 쫓아 바다로 진군한다.
낮에는 바다에서 목놓아 ‘어영차’를 부르고
밤이면 술집에서 권주가를 부르던 연평도가 잔치 끝난 대갓집처럼
조용해지는 때는 더 이상 조기 떼가 오지 않는 오월 중순이다.
파시가 파(罷)하는 것이다.
돈다발을 짊어진 선주도, 묵직한 전대를 찬 어부들도,
조끼 주머니가 두툼한 노름꾼들도,
몸을 뒹굴어 고쟁이 주머니가 두툼해진 화류계 여인들도 단봇짐을 챙긴다.
바다 안개가 자욱한 서해에 큰 배가 미끄러진다.
연평도를 떠나 제물포로 가는 여객선이다.
왁자지껄하던 달포 동안 저마다 쩐을 챙겨 연평도를 떠나
고향으로, 제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연평도에서 제물포까지는 머나먼 거리다.
승객들은 저마다 뱃전에 기대앉아
얘기를 주고받거나 갑판에 퍼질러 앉아 술판을 벌였다.
배 떠난 지 한식경이나 지났는데도 멀리 연평도가 콩알만 하게 가물거렸다.
승객들이 지루해졌다.
제물포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그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년 잘 만났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를 찢는 여자의 날카로운 음성이 갑판 위 모든 승객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이년 저년 하지 마 이년아∼”
폭소가 터졌다.
“뭐라구 이년아.
어디 할 짓 없어 남의 서방 꼬드겨 아랫도리를 팔아먹고서도 큰소리냐,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이년아.”
둘이서 서로 멱살을 잡고 당기느라
베적삼이 찢어져 유방이 다 드러났다.
보아하니,
남편이라는 작자가 첩을 데리고 연평도에 왔다가
제물포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이곳까지
연놈을 찾으러왔던 본처에게 잡힌 것이다.
한바탕 소동이 나자 이 어쭙잖은 남편은 어디론가 도망을 가버리고
본처와 첩이 선상 결투를 벌이는 것이다.
본처는 악에 받쳐 그렇다 쳐도 첩도 보통 악다구니가 아니다.
“야 이년아.
신랑 단속 잘했으면 네 신세도 망하지 않았을 거 아니냐!”
기어코 둘이서 머리채를 잡고 뒹굴기 시작했다.
서로 올라타려고 몸부림치니 희멀건 허벅지가 다 드러났다.
본처가 첩년의 고쟁이를 당기니 광목이 부욱 찢어지며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됐다.
머나먼 뱃길에 지루하던 승객들은
빙 둘러서서 침을 흘리며 목을 빼고 구경하느라 혼이 빠졌다.
어둠살이 내릴 때 배가 제물포항에 접안했다.
모두 단봇짐을 챙기랴, 소금을 친 조기 한두축을 챙기랴,
솥단지 지게를 지랴 부산한 틈을 타 싸우던
본처와 첩도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포구에서 한식경이나 떨어진 주막,
남정네 셋과 여자 둘이서 너비아니를 구워놓고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얼마 훔쳤어요?”
여자 하나가 물었다.
“오늘은 짭짤할 거야.”
남정네 하나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둘이서 워낙 실감나게 싸워
작업하기 편했네.”
여자 둘은 본처와 첩이고 남정네 셋은 소매치기들이다.
갑판 위에서 싸움박질하며 유방도 보여주고 허벅지와 엉덩이도 보여주며
승객들의 혼을 뺀 사이 남정네 소매치기들은 구경꾼들의 전대를 챙겼던 것이다.
“다음은 안면도 보령뱃길로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