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36)
말년의 유비 (하)
잠시후,
유비를 안정시킨 공명이 영안궁 앞에서 서성이던 제갈근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입을 여는데,
"폐하께서 시름이 크신데 강화를 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못할 겁니다."하고,
손유 동맹의 부활을 거론한 뒤
노여움이 극도로 치밀어 피를 토하고
혼절한 천자 유비의 대응과는 전혀 다른
현실적인 내용을 담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제갈근은
아우 공명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유비의 상태까지 걱정해준다.
"그런 말씀 마시게나,
폐하는 좀 어떠신가 ?"
"많이 노하셨지만
안정을 찾으셨습니다. "
"아,
그거 다행이군.
이보게, 폐하께서 다시 동오와 동맹을 맺으시려고 하시겠나 ?"
제갈근은 주군 손권의 명을 받고
백제성을 찾아온 목적의 달성이 중요했다.
그러나 유비의 노 하는 태도로 보아서는
동맹 재결성이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음 !...
원치 않으시겠지만 결국은 동의하실 겁니다."
공명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하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형편에서는 달리 선택할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음 !..."
제갈근은 자신의 아우인 공명의 말을 듣고
촉의 형편은 동맹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음을 직감하였다.
그리하여 그 길로 백제성을 떠나기 위해 공명과 함께 어복포로 나갔다.
공명은 포구로 나가면서 형님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형님,
동오로 돌아가시면 오왕께 꼭 전해주십시오.
오왕의 현명한 지혜 덕에 아군이 패한 상황임에도
결맹이 지속되어 감사드린다고요."
"아, 꼭 전해 주겠네.
이보게 아우,
오촉간 동맹 관계는 양국의 주공께서 오랫동안 지속해온 국책일세,
그동안 풍파도 많았지만 이제 어둠을 뚫고 맑게 개었으니
오촉 동맹은 의미가 더 굳건해 지고, 돈독해 질 걸세."
"허나,
형님께서는 진심이겠지만
강동의 문무 백관들은 같은 마음이 아닐 수도 있지요."
"그게 무슨 말인가 ?"
"결맹이라 함은 힘든 시기에는 쉽게 이뤄지고,
시비가 개입하면 쉽게 깨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예를 들어 조비가 촉을 정벌한 뒤에 촉을 나눠 갖자고 하면
동오의 입장에서는 득이 되는데
오왕 입장에서는 동맹을 지킬 수가 있을까요 ?"
"음 !...
아우 말도 인리가 있네만,
만약 위가 오를 공격하며 강동땅을 나눠주겠다고 하면,
촉의 입장에서 득이 될 텐데,
그런 때가 와도 유황숙께서 맹약을 지킬 수가 있겠나 ?"
제갈근은 아우인 제갈 공명의 말을 그대로 재현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공명이 정색을 하며 말한다.
"우리 촉은 신의를 중요시 하기에
약속을 한 일은 반드시 지킵니다."
"우리 오왕께서는 지혜롭고 현명한 군주이신 지라,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네."
이렇게 형제가 자신이 섬기는 주군은
허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주장하기에 이르자,
공명이 먼저 웃음을 웃어 보인다.
"허허허허 ! ..
좋습니다."
"허허허 !..
염려 말게, 우린 친형제 아닌가 ?
주인은 다르지만 국사가 얽혀 있어도 형제애는 못 끊네,
바꿔 말해서 오촉 동맹은 그 무엇보다 단단할 것이야."
"옳은 말씀이십니다.
아, 그리고 육손에게 전해주십시오."
"말해 보게."
"육손이 화공을 사용해 칠십만 촉군을 패퇴시켰는데,
마속의 말에 따르면 그가 어복포에서
석문 팔괘진에서 요행히 살아 나왔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의 재기가 주유에 못지 않아
그를 볼 때 마다 마음이 가고 존경스럽다고 말입니다.
허나, 부디 자중해서 저를 적으로 보지말고
그 훌륭한 재능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조위(曺魏)를 제거하는데 쓰라고 하십시오.
주인보다 뛰어난 강동의 도독들은
하나같이 요절했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말입니다."
"아, 그리하겠네.
허나, 나도 아우에게 당부할 것이 있네."
"네 ?"
"아우,
주인보다 뛰어난 것은 바로 자네야."
공명은 육손을 향한 경고의 말을 남기려 하였지만,
형님인 제갈근의 걱정은 오히려 공명을 향했다.
"예 ?
허허허 !..."
공명이 어색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그러자 형이,
"천수를 두고 굳이 말하자면
지금 유황숙은 명이 다 되가는 것 같네.
나이도 이미 육순을 넘기셨고 ..."
제갈근의 눈은 정확하였다.
손권의 명으로 강화를 요청하러 백제성에 도착한 순간부터
유비의 위세가 이미 사양길에 접어 들었음을 느낀 터였다.
그리하여 아우 제갈공명에게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유비 사후에 대한 대비를 하라는 의미를 담은 말을 하였던 것이다.
"승상 !"
두 사람이 이런 말을 주고 받는 가운데
마속이 공명을 부르며 다가온다.
"응, 유상,
무슨 일인가 ?"
"폐하께서 승상을 찾으십니다."
그 말을 듣고,
공명이 형 제갈근을 향하여,
"형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원로에 다녀 가시느라고 애쓰셨습니다.
살펴 가십시오."하고,
말하며 예를 표해 보이자 형이 다가와 동생의 손을 잡는다.
"아우,
건강하게 !"하고,
애틋한 형의 당부를 전한다.
공명이 고개를 끄떡여 보이며 화답한다.
"예,
형님께서도요.."
동오의 사신 제갈근이 가져온 손권의 동맹 복원의 제의를 듣고,
노여움이 극에 달하여 피를 토하고 혼절을 했던 유비는
내실로 옮겨진 뒤에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였다.
그리하여 눈을 떠 보니
세자 유선이 침상 아래 단하에 꿇어 앉은 것이 보였다.
유비가 기력이 쇠잔한 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선 아 !..."
"아, 깨셨습니까 ?..."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더냐 ?"
"한참 동안이나 그러셨습니다."
유비는 평소에 아들 유선의 언행과 판단력에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후사를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염려가 매우 지대하였다.
그리하여 한 때는 엄하게 꾸짖고 회초리도 들어 아들을 훈도(薰陶) 하여 보았지만,
유선의 사람됨이 천성이 아둔하고 사내다운 배짱과 욕심이 부족하다는 점에
매우 실망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처한 절체 절명의 순간이 되자
혈육에 대한 정이 모든 것에 앞섰다.
그리하여,
"계속 그렇게 앉아서 아비 곁을 지킨 것이냐 ?"하고,
물었다.
"네..."
"그렇게 있지 말고 이리 올라와 앉거라.
바닥이 차지 않겠냐 ?"
유선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저린 발을 절뚝이며 침상으로 다가와 걸터 앉는다.
유비가 아들의 손을 잡으며 묻는다.
"제갈근은 ? ..."
"네, 승상이 역관으로 모셨습니다."
"음 !...
승상이 강화를 허락했느냐 ? ..."
"아,
강화요 ? ..."
"동오에서 위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와 동맹을 맺자 하지 않았느냐 ?'
"아,
그, 그랬지요...
부왕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선은 자신의 의지를 담은 말은 한 마디도 못 하고
그저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만 대답하였다.
그러자 일편 답답한 생각이 들었던 유비가 아들의 아명(兒名)을 부른다.
"아두야 ...
네 생각은 어떠냐 ?..."
"부왕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너는 어째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냐...
잊지 말거라, 너는 태자니라 ..."
"어찌 제 멋대로 하겠습니까 ?..."
"듣거라,
이 아비가 세상을 떠나면
네가 바로 한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부흥시켜야 하는 것이다."
"아, 안됩니다.
부왕께서는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회피하지 말거라,
묻겠다.
아비의 뒤를 능히 이어 나갈 수가 있겠느냐 ?"
"아,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소자는 평생 지금처럼 살고 싶습니다."
("아 !....")
유비는 속으로 크게 실망하였다.
(저 어리석은 위인을 후계자로 세워야 하다니 .. )
하늘이 이런 아들을 자신에게 보낸 것을 원망도 해보았다.
허나, 유비의 관점에서는
전통적인 장자세습(長子世襲)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유선에게,
"나가서 승상에게 동오와의 동맹 복원을 허락한다고 말해 주고,
이엄을 들라고 하여라."하고,
유선을 내보내었다.
잠시후 이엄이 병상으로 찾아와 아뢴다.
"이엄이 폐하를 뵈옵니다."
"일어나 가까이 오시오."
"망극하옵니다."
"봐서 알겠지만 이제 짐은 가망이 없소...
얼마 안 있으면 선제 곁으로 가게 될 것이오."
"폐하,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옛 말에 사람이 쉰을 넘기면 장수한 것이라 했는데,
짐은 벌써 육순을 넘겼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소.
하지만 끝내 대업을 이루지 못했구려."
"폐하께서는
분명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 나실 것이옵니다."
"이 대인 !..."
"예, 폐하."
"짐이 그대에게 긴히 일러 둘 말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짐은 사십 년간 천하를 종횡으로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소.
그대와 황건을 포함하여 몇몇은 정말 훌륭한 인재들이오.
그중에서도 그대는 이몸이 촉에온 후 만난 여러 인재중 가장 뛰어난 인재요.
문무를 겸비했고,
생각이 깊은데다 짐에게도 더 없이 충성스럽소.
촉의 대신들에게도 명망이 높고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어찌하여 승상하고 만은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같소."
"아... 폐하,
오해이십니다."
"이보시오,
이 대인 ...
승상의 재능은 짐보다 열 배는 뛰어나니
그대는 승상의 상대가 못 되오.
짐이 떠나면 그대가
촉 출신의 대신들을 잘 설득하여
승상을 도움으로써 작금의 난국을 극복해 나가도록 해 주시오.
그래야 촉이 번영을 이루며 발전해 나갈 수 있고,
그대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이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
짐이 그대를 태자 태부로 삼아 익후에 봉하니,
앞으로 아두를 잘 가르쳐 주기 바라오.
아무리 작은 악(惡)이라도 절대로 행하지 않고
선(善)을 솔선수범하여 실천할 줄 아는,
어질고 선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대신들의 마음을 단결시켜 온 몸을 다하여
승상을 보좌토록 하여 부디 대업을 이뤄주길 바라오."
"폐하 ! ..
이리도 신을 중하게 여겨 주시니
그 은혜가 백골난망이옵니다. 흐흐흐흑 !...
염려 마시옵소서...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맹세컨데,
승상과 한 형제처럼 마음을 모아서
세자 저하를 보좌해 대업을 이루겠나이다 !"
이엄은 유비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듣고
감격에 겨위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였다.
337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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