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풀을 뜯지 않아도 되는소와 말

오토산 2022. 4. 19. 08:51

삼국지(三國志) .. (391)
풀을 뜯지 않아도 되는 소와 말

사마의가 성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게 된 이유에는

자기가 놓은 덫에 스스로 걸린 것에 대한 민망함과 적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촉군의 식량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아는 것에도 있었다.

 

방어에만 치중해도 군량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촉군이

스스로 나가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결정에 한 몫을 한 것이다.
계속 위수의 성문을 두드려도 통 반응이 없자

공명은 적극적인 공격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책을 구상하기 위해 위수의 지세(地勢)를 살피러 나갔다.
그러다 골짜기 하나를 발견했다.
그 골짜기는 마치 호리병 같이 생겼으며 안쪽에 군사 일천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만큼 넓었고,

양쪽 산이 골짜기를 이루어 골짜기 안에 사, 오백 가량의 군사가 족히 들어갈 만해 보였다.

 

그리고 뒤쪽으로는 양쪽 산이 다시 붙어

겨우 한 사람, 말 한 마리 정도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공명은 그 지형을 보고 이거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길을 안내하는 자에게,

 

"이곳은 지명이 무엇인가?"하고

, 물었다.

 

"상방곡(上方谷)인데,
호로곡(葫蘆谷: 호리병 모양 골짜기)이라고도 부릅니다."
지형과 꼭 맞는 이름이었다.

공명은 군막으로 돌아와 비장(裨將), 두예(杜睿), 호충(胡忠)을 불러다

호로곡에서 수행해야 할 비밀스러운 명을 내렸다.
그리고 목공에 재주가 있는 군사들을 일천 명가량 모아

호로곡으로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이름도 모를 기계를 만들게 하였다.

마대에게는 군사 오백 명으로 호로곡 어귀를 지키게 하였다.
호로곡 수비를 담당하는 마대에게는 공명이 특별히 당부의 말을 더하였다.

 

"절대로 장인(匠人)들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내가 불시에 지켜보러 갈 것이니

단단히 막고 비밀을 절대 유지하라."

 

"네.

승상!"

호로곡에서 비장, 두예, 호충이 목공들을 재촉하여 기계를 만들고

마대가 그 곁을 감시하는 나날이 며칠 지나고,

장사 양의가 공명에게 염려가 섞인 말을 한다.

"군량을 검각에서부터 이곳까지 옮기는 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인부와 소달구지로 옮기는 것은 속도가 느릴 뿐더러

힘 또한 많이 들어서 걱정입니다.
군량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큰일인데......"

 

양의의 걱정에

공명은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며칠 후면 다 해결될 일이니 걱정 말게."하고,

대답한다.

 

군량 부족에 발목 잡히곤 하였던 공명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자 양의는 어리둥절하였다.
더 물어봤자 공명에게 구체적인 대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양의는 그냥 더이상 묻지 않고 때가 되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많은 군사가 호로곡으로 떠나고 한 달 가량이 지났을 때

공명은 양의를 비롯하여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호로곡을 찾았다.
그곳에는 살아있는 소나 말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어딘가 괴상해 보이는 기계가 가득하다.
공명은 그 기계들을 장수들에게 보여주며 묻는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소?"

 

"잘 모르겠습니다.
소와 말을 닮았는데,
무엇에 쓰는 기계입니까?"

 

"이것은 군수물자를 옮기기 위해 내가 고안한 장치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소를 닮아 목우(木牛)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는 말을 닮아 유마(流馬)라고 부르지.

 

산길은 물론이고 물도 건널 수 있소.
정말로 살아 있는 소와 말이 아니니 풀을 먹일 필요도 없지."

 

공명의 설명에 그곳에 모인 장수들은 모두 탄복한다.
양의는 비로소 며칠 전 군량 옮기는 일은 걱정말라던

공명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공명은 목우와 유마를 소개한 그 자리에서 수송부대를 편성하여
우장군 고상(右將軍 高翔)으로 하여금 부대장을 맡도록 하였다.

그날부터 검각에서 기산으로 군량과 마초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옮기는 일은

큰 힘을 들이지 않는 일이 되었다.
군량이 넉넉하니 촉군의 사기는 끝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로써 사마의가 노렸던 지구전(持久戰)도 그 빛을 잃어갔다.

목우와 유마에 대한 소식은 탐마를 통하여 사마의에게까지 흘러들어 갔다.
사마의는 그 소식에 적잖이 놀라며,

 

'목우? 유마?
그것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내가 방어만 하고 있었던 것은

제갈양이 군량 모으는 것에 지처서 포기하기만을 바라던 것인데

그것이 소용 없게 되었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어.'하고,

혼자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곧 장호와 악침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각자 군사 오백을 데리고 사곡 샛길에 숨어 있다가

촉군이 식량을 실어나르는 기계를 서너 대 탈취해 와라.
목우, 유마라고 부르는 기계다.
촉군을 뒤쫓을 생각은 말고

오직 그 기계를 가져 오는 것에만 신경 써라."

장호와 악침은 사마의의 명령에 따라 군량을 싣고 가는 촉병의 뒤를 쳐서

목우와 유마를 몇 마리 탈취해서 돌아왔다.

위군에게 불의(不意)의 습격을 당하여

목우와 유마를 잃은 촉병이 그 죄를 청하러 공명을 찾아갔다.

 

"승상,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목우와 유마 몇을 그만 위군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어떤 벌을 내리시더라도 기꺼이 받겠습니다."

부복하여 머리를 조아리는 병사에게

공명은 꾸짖기는 커녕 웃으며 말한다.

 

"잘했다.
나는 언제쯤 사마의가 목우와 유마를 빼앗아갈지 궁금해 하고 있던 터였다.
우리는 목우와 유마를 몇 마리 내준 대신에

수많은 물자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공명의 곁에 있는 장수들은

공명이 한 말의 뜻을 알 수 없어서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장호와 악침이 사마의에게 가지고 온 목우와 유마는

그 즉시 위군의 기술자들에게 보내져서 해체되었다.

 

사마의는 기술자들에게

촉군의 목우와 유마를 그대로 본떠 만들게 하였다.
보름이 지나니 그 수가 이천여 대였다. 

 

기계를 갖추게 되자
사마의는 진원장군(鎭遠將軍) 잠위(岑威)를 불러다가

농서에서부터 군량을 실어나르도록 하였다.
위군도 촉군과 마찬가지로 목우와 유마로

군량을 편리하게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위군이 목우와 유마를 착실히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명에게 알려졌다.
공명은 기뻐서 소리내어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
역시 사마의는 내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구나!"

 

그리고 장수들을 차례로 불러 명령을 내렸다.

왕평을 불러 명을 내리고,

이어서 장의와 강유, 위연, 마대, 마충, 요화, 장익도 불러서 비밀 지령을 내렸다.
잠위가 천 대가 넘는 목우와 유마를 이끌고 농서에서 북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군사 하나가 잠위에게 달려와,

 

"군량 옮기는 것을 도와줄 수송부대가

앞에 와 있습니다."하고,

아뢴다.

 

잠위가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니

과연 아군이 돕기 위해 와 있었다.
그리하여 별다른 의심 없이 가던 길을 재촉하는 그때,

갑자기 함성소리가 나더니 자기 편이라고 믿었던 군사들 사이에서

촉병들이 속속 쏟아져 나왔다.

 

지원을 왔다는 수송부대가

사실은 위군의 갑옷을 입고 위군으로 위장한 촉군이었던 것이다.

 

"촉장 왕평이 이곳에 왔다!
목숨을 건지고 싶거든 항복하라!"하고,

외치는 소리에 위군은 깜짝 놀라 우왕좌왕했다.

 

잠위는 왕평의 칼날에 생을 다했다.
장군이 그렇게 되자 위병들은 더욱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왕평은 위군이 버린 목우와 유마를 끌고 촉진으로 향했다. 

왕평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군사가

곽회에게로 달려가 상황을 보고하였다.
곽회는 얼른 군사들을 이끌고 왕평의 뒤를 쫓았다.
왕평은 곽회가 부리나케 쫓아오는 것을 보고

아군에게 명령하기를,

 

"목우와 유마의 혓바닥을 돌려라!
그리고 그것을 버리고 도망쳐라!"하는

것이었다.

곽회는 더 이상 추격하여 촉진에 발을 들이는 것은 불리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촉군이 다시 버리고 간 목우와 유마만을 챙겨서 돌아가기로 하였다.
병사들이 목우와 유마의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미는데,

분명 왕평의 군사들이 끌고 가던 목우와 유마가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않는 것이 아닌가?

 

"장군,

이것들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병사들이 당황하여 곽회에게 보고하는 사이,

산 뒤에서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위연과 강유의 군사들이 짓쳐나왔다.
그것도 모자라 달아나던 왕평의 군사까지 합세하여 곽회의 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위연과 강유가 곽회를 상대하는 사이, 왕평은 목우와 유마의 혓바닥을 다시 돌려서

유유히 목우와 유마를 몰아 나갔다.

목우와 유마가 눈 앞에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곽회는

목우와 유마에 담긴 군량을 빼앗길 수는 없어서 다시 한 번 왕평의 뒤를 쫓았다.
그때 갑자기 한 무리가 곽회의 군사 앞으로 우르르 떼지어 나왔다.
떼지어 나온 그들의 몰골을 보자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머리는 귀신의 형상,

몸뚱이는 짐승과 같은 형상에다가 한손에는 깃발을,

다른 한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기괴하였다.

"귀신부대다!

귀신이 촉군을 돕고 있다!"

 

곽회는 너무 놀라서 멍청히 서서 중얼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위군들도 너무 놀라서 더이상 뒤쫓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북원에서 적에게 밀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의는

몸소 군사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섰다.
그러나 미처 아군에게 다다르기도 전에 두 갈래로 군마가 뛰쳐나왔다.

 

그들은 요화(廖化)와 장익(張翼)의 군사였다.

요화와 장익의 군사는 사마의의 군사를 무차별 공격하였다.
이 싸움에서 사마의는 부장급 장수 여럿을 잃었다.

요화와 장익의 기세가 대단하여

사마의는 가까스로 말을 달려 도망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마의는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잃고 큰 나무를 자꾸 맴돌았다.

 

요화는 나무 사이에서 맴돌고 있는 사마의를 발견하고는

칼을 휘두르며 뒤를 쫓았다.

 

사마의의 등을 노렸던 요화의 칼날은 나무에 깊숙이 꽂히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요화가 나무에 꽂힌 검을 빼내려 애쓰는 사이,

사마의는 말을 타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검을 어렵사리 빼들고 요화는

다시 사마의의 뒤를 쫓아보지만 시야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있다.
사마의가 달아났을 법한 길을 따라 가던 요화는 두 갈래 길을 만났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망설이던 요화는 동쪽 길에

사마의의 황금 투구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군사들을 동쪽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마의의 모습은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사마의는 서쪽으로 도망치면서

일부러 투구를 동쪽에 떨어뜨려 요화를 동쪽으로 유인한 것이었다.
요화는 사마의의 황금투구를, 장익은 곽회가 버리고 간 

천여 대의 목우, 유마를 가지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위군의 목우와 유마에는 일만 석이 넘는 곡식이 실려 있었다. 

요화는 사마의의 황금투구를 챙겨와
이번 전투의 으뜸가는 공으로 기록되었다.
당분간의 식량 걱정이 없진데다가, 시원한 승리를 거두어

진영 전체가 축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위연만은

자신이 요화에게 뒤진 것이 분하여 혼자 험한 말을 중얼거렸다.

공명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 나섰던 모든 장수들에게 상을 후하게 내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마의를 놓친 것이 아쉬워서 속으로,

 

'다 잡은 사마의를 놓치고 말다니......

관운장이나 장비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인재가 아쉽구나. 인재가 아쉬워.'하고,

개탄하는 것이었다.

 392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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