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하늘에 달린 일

오토산 2022. 4. 21. 08:25

삼국지(三國志) .. (393)
하늘에 달린 일

사마의를 전쟁터로 불러내기 위한 계책을 생각하던 공명은

목소리를 낮추고 비밀스럽게 마대에게 명을 내린다.

"호로곡의 지형을 십분(十分) 이용할 것이다.

호로곡에 잠임하여 목책을 치고 곳곳에 영채를 세워라.
그 영채 안에는 구덩이를 파서 마른 풀이랑 짚을 잔뜩 넣어 두어라.
그리고 골짜기 부근에도 불에 잘 타는 마른 풀과 나무로 움집을 잔뜩 만들어놓아라.

중요한 것은 지뢰다.
골짜기 안팎에 지뢰를 잔뜩 묻어라.
한 곳만 불을 놓아도 온통 불바다가 될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작업을 해놓아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말한 작업들이 끝나면

호로곡 뒷길을 막고 골짜기 입구에 매복해 있어라.

그러면 그때부터 사마의를 호로곡으로 몰아 넣을테니

사마의가 산 속으로 들어오면 불을 질러서 모든 지뢰가 다 터지도록 하여라."

 

마대는 공명의 분부가 끝나자

즉시 군사들을 이끌고 호로곡으로 출발했다.
공명은 마대에 이어 위연을 부른다.
그리고 위연에게도 분부를 내린다.

 

"군사 오백을 줄테니 위병의 진채로 가서

사마의를 싸움에 나오도록 끌어내는데 주력해라.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사마의를 호로곡으로 유인하는 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도망치는 척하면서 사마의가 뒤쫓게 만들어야 한다."

 

위연도 군사들을 몰아 위병의 영채로 달려갔다.
공명은 이번에는 고상(高翔)을 불러서 명한다.

 

"목우와 유마 수십마리에 군량을 가득 싣고 산길을 왔다갔다해라.
그 모습을 위병이 잘 볼 수 있도록 자꾸 왔다갔다 하다가

위병이 빼앗으려고 덤비면 그대로 빼앗겨라."

 

"승상께서 지금 하신 말씀이

목우, 유마, 군량을 그냥 빼앗기라는 말씀이 맞습니까?"

고상은 위병에게 목우와 유마, 군량을 모두 넘겨주는 것이

작전이라는 공명의 말이 맞는지 재차 확인한다.
공명은 웃으며,

 

"그 말이 맞다.
위병의 눈에 띄게 행동하다가 그대로 빼앗기면

그게 바로 그대의 공(功)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상은 어리둥절했지만 공명의 말대로 작전에 착수했다.
공명은 그 밖의 모든 군사들에게도 명을 내린다.

 

"위군이 싸우려고 달려들면 패한 척하고 도망쳐라.
절대 이기려고 하지 말아라.
대신, 사마의가 나타나면 즉시 온 힘을 다해

위수 남쪽을 공격해서 사마의가 돌아갈 곳이 없게 만들어라!"

 

군사들이 듣기에 공명의 계책은 희안한 것이었다.
계속 이겨서 사마의를 나가 떨어지게해도 모자란 마당에

위군에게 자꾸만 져주라는 명이라니 군사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명에 대한 신뢰가 워낙 두터운 터라 모든 군사들이 공명의 명에 따랐다.

모든 명령을 마치자 공명은 군사들을 이끌고 호로곡 근처에 영채를 차렸다.
성을 굳게 지키고 있는 사마의에게 하후혜, 하후화 두 형제가 아뢴다.

 

"지금 기산의 상황을 보면 군사들이 농사를 지으며 영채를 자꾸 세우는 꼴이,

그곳에서 오래 버틸 계획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완전히 터를 잡아버리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뿌리를 내리도록 가만히 두었다가는 점점 뿌리가 깊숙이 박혀서

영영 뽑아내기 어렵게 될 겁니다."
두 형제의 말에도 사마의는 표정의 변화가 없이,

 

"그것은 공명의 또 다른 계책임이 분명하다."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의심만 해서는 언제 적을 깨치겠습니까?
저희 형제가 목숨을 걸고 나서서 결판을 내고 오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하후혜, 하후화 형제가 계속 사마의를 채근한다.
사마의는 두 형제가 그렇게까지 나서는데

마냥 퇴자(退字)를 놓을 수는 없었다.

 

"좋다.
그러면 두 사람이 길을 두 갈래로 나누어 출전하도록 하라."

 

하후혜와 하후화가 각 오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고,

사마의는 계속 성 안에 머물머 두 형제의 전과(戰果)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후혜와 하후화는 군사를 몰고 진군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촉의 목우와 유마 그리고 병사들까지 얻어냈다.
두 형제는 획득한 촉군의 인마(人馬)와 노획물(鹵獲物)을 즉시 모두 사마의에게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도 어렵지 않게 위군의 목우, 유마, 병사를 사로잡아 사마의에게 보냈다.
하후혜와 하후화는 연이은 승리로 기세가 한껏 올랐다.

하지만 사마의는

여전히 공명의 계교에 걸려든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온 촉병을 문초하기로 한다.

 

"어쩌다 잡혀 왔느냐?"
사마의의 물음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포로가 대답한다.

 

"제갈 승상께서는 도독께서 나와 싸우시지 않자

저희들에게 흩어져서 농사를 지으라 하셨습니다.
군량을 마련해서 장기전으로 가보자 하는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명에 따라 농사나 짓고 있다보니 전쟁을 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위군이 들이닥쳤을 때 뭐 해볼 새도 없이 잡혀온 것입니다."

 

사마의는 여러 포로들을 문초했지만 모두 비슷한 답들이었다.
그리고 포로들을 감시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명을 내린다.

 

"붙잡혀 온 촉병들을 모두 풀어 주어
제 갈 길을 가게 하라."

 

사마의의 결정에 곁에 있던 하후화는 은근히 화가 났다.
본인이 힘써 사로잡아 온 포로들을 그토록 쉽게 놓아주어 버리니

그럴 만도 했다.

 

"대도독,

왜 저들을 죽이지 않고 돌려 보내시는 겁니까?"

 

"저런 졸개들을 죽여서 무슨 이득을 보겠느냐?
차라리 놓아주어서 위나라 장수들이 너그럽고 어질다는 것을

알려주어 싸울 마음이 없게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
이런 계책으로 여몽이 형주를 빼앗지 않았더냐?"

 

사마의가 한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후화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하후혜와 하후화는 그 이후로도

계속 크고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
촉병이 계속 패하는 것을 보며

사마의의 마음 속 의심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이것이 공명의 계교일 수가 있을까?
패배하는 것을 작전으로 쓰는 것은 큰 희생이 따른다.
그런 작전을 함부로 쓸 수는 없다. 어쩌면.....

나에게 진짜 기회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하는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하루는 하후 형제에게 수십 명의 촉군이 포로로 잡혀 왔다.
사마의는 그들을 군막으로 불러 묻는다.

 

"공명이 어디에 있나?"

포로들은 사마의 앞에 무릎이 꿇린 채로,

 

"제갈 승상은 지금 기산에 안 계십니다.

호로곡에 영채를 짓고 거기서 머물고 계셔서

저희 병사들은 매일같이 그곳에 군량을 실어다 나르고 있습니다."하고,

순순히 대답한다.

 

공명이 기산을 비웠다는 촉군의 대답에 사마의의 안색이 밝아졌다.
사마의는 포로들을 물리고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기산을 공격한다!"
사마의의 말에 사마의의 맏아들 사마사가,

 

"아버님, 공명은 호로곡에 있다고 하는데
왜 기산을 공격하자 하십니까?"하고,

묻는다.

 

"기산은 촉군의 본거지다.
본거지를 공격하면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적들이

모두 기산으로 달려들 것 아니냐?
그 틈에 내가 호로곡으로 가서 공명을 치면 될 것이다."

 

사마의가 작전 계획을 보다 상세히 설명하자

모인 장수들이 모두 감탄한다.

 

"과연 대도독이십니다!"

 

사마의는 군사를 거느리고 몸소 출진하며

장호와 악침에게는 각기 군사 오천을 주어 후방을 담당하게 하였다.
공명은 호로곡 앞 산에서 위군의 양상을 매일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러 패전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위군의 상황 변화를

시시각각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를 이십여 일이 지났을 때,

드디어 위군의 위세가 이전과 달리 거대해진 것이 공명의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사마의가 오는군.'

 

공명은 혼자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각지에 파견간 여러 장수들에게 전투 태세를 갖추라는 급보를 보냈다.

위군은 기세를 올리며 기산으로 짓쳐들어갔다.
촉군은 위군으로부터 기산을 지키기 위해 기산으로 몰려갔다.
사마의는 공명의 전군(全郡)이 기산으로 모여들었다고 판단하여

기산은 장수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두 아들과 함께 중군(中軍)을 몰아

공명이 있다는 호로곡으로 향했다.

"사마의,

성만 지키던 겁쟁이가 드디어 왔구나!"

 

사마의가 호로곡으로 향하고 있는데

앞에서 말을 탄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친다.
사마의가 창을 비껴 잡고 앞으로 나아가니
큰 소리를 낸 자는 촉의 장수 위연이었다.
위연은 칼을 휘두르며 사마의에게 달려든다.

사마의도 그에 응해 창을 휘두른다.

몇 합 싸우지도 않았는데

위연이 돌연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다.
사마의는 장수가 위연 하나 뿐이고 주위에 군사도 많은 것 같지 않아

부지런히 위연의 뒤를 쫓는다.

 

사마의의 두 아들도 아버지를 보필하며 함께 달려나간다.
위연은 군사들을 이끌고 골짜기 안으로 달아난다.
위연을 쫓던 사마의는 우선 멈춰서서 부하들을 시켜

골짜기 안에 복병이 있는지 살펴보게 하였다.
골짜기를 살펴보고 온 병사는,

 

"복병은 없었습니다.
풀과 나무로 지은 움집만 가득합니다."하고,

사마의에게 보고하였다.
사마의는 그 말을 듣고,

 

'군량을 쌓아두는 창고인가보군.
모조리 없애야겠어.'하고,

생각하고는 군사들을 이끌고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막상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군량 창고라고 생각했던 움집은 건초더미와 장작만이 가득하고

골짜기의 형세(形勢)는 자신에게 불리해보였다.
그리고 뒤쫓던 위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덜컥 의심이 생긴다.

이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생각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난데없이 함성이 크게 울리며 산 위에서는 횃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횃불은 순식간에 건초에 옮겨 붙으며 유일한 퇴로인

골짜기 입구를 화염으로 막아 버린다.

산에서는 횃불에 이어 불화살이 쏟아지고,

땅에서는 지뢰가 터져댄다.
산골짜기는 마치 불을 지핀 아궁이처럼 변했다.

 

동서남북상하가 모두 막혀 있어서

도망나갈 길을 찾는 것은 요원(遙遠)한 일이었다.
사마의는 두 아들을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을 한다.

 

"우리 삼부자가 여기서 모두 죽게 되었구나!"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그치고

허리에 찬 칼을 빼서 자신의 목에 겨눈다.

 

"공명이 놓은 덫에 걸려 죽는 굴욕을 겪느니

차라리 자결을 하자!"
공명은 산 위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드디어 걸림돌이었던 사마의가 죽게 되는군.

적이었지만 그가 훌륭한 지략가(智略家)였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마의의 죽음을 목전(目前)에 두고
공명이 상념에 빠지려 하는데 별안간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더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마치 동이에 물을 길어다 하늘에서 쏟아 붓고 있는 것만 같다.

갑작스러운 비로 골짜기의 불길이
차츰 사그라들더니 이내 완전 꺼지고 말았다.

촘촘히 심어둔 지뢰도 물에 젖어 모두 불발탄(不發彈)이 돼버렸다.

"앗!

천우신조(天佑神助)로구나!

얼른 여길 빠져 나가라!"

 

행운의 비에 화마(火魔)가 잠잠해지자

사마의는 군사들로 하여금 골짜기를 빠져나가게 했다.
사마의에게 이 상황은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마침 후방 지원을 맡았던 장호와 악침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사마의의 도망길을 도왔다.

 

호로곡을 지키던 마대는 함께 있는 군사의 수가 많지 않아

사마의의 뒤를 쫓는 것은 단념하였다.

사마의가 군사들을 이끌고 위수 남쪽의 대채로 돌아왔다. 
하지만 위수 남쪽은 이미 촉병이 점령한 후였다.
곽회와 손례가 얼마 되지 않는 군사로
부교(浮橋) 위에서 촉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사마의는 기운이 쭉 빠졌다.

 

'간신히 살아돌아왔는데 여기도 또 촉병이 난리구나.'하고,

생각하며 데리고 있던 군사에게 곽회와 손례를 돕도록 명하였다.

 

지원을 받은 곽회와 손례가 촉병을 물리쳤다.
사마의는 싸움이 벌어졌던 부교를 당장 끊어버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다시 군사들을 이끌고 위수 북쪽 언덕으로 가서

그곳에 영채를 세우게 하였다.

영채를 새로이 세우고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사마의는

각 진채에 명을 내렸다.

 

"위수 남쪽의 대채를 싸그리 잃었다.
이것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가서 싸우다 일어난 일이다.
장수들 중 다시 나가서 싸우자고 하는 자가 있으면

그게 누구라도 내가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이번 일로 혼이 쏙 빠진 장수들은 사마의의 명을 굳게 지킬 뿐,

함부로 나가서 싸우려드는 자가 없게 되었다.

공명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다 잡은 적(敵)을 소나기로 놓치게 될 줄은
그 누구라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명이 깊이 탄식하고 있는데,
파발꾼이 달려와서 보고한다.

 

"승상,

사마의 부자가 군사를 이끌고 달아났습니다."

 

"알고 있느니라....."

 

공명은 하늘을 바라보며

또 한 번 장탄식을 내뱉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결국 하늘의 뜻이로구나!
[謨事在人 成事在天]"

394회에서~~~

'삼국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바람 속에 지는 별  (0) 2022.04.23
굳게 지키는 사마의  (0) 2022.04.22
동오(東吳)의 움직임, 공명의 비계(祕計)  (0) 2022.04.20
풀을 뜯지 않아도 되는소와 말  (0) 2022.04.19
속이는 자와 속는 자  (0) 202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