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댐 망향의 동산을 다녀와서
광주 금호타이어 공장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하였던 5월 17일
횡성댐 물문화관을 답사하고 마옥원조막국수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첫 일정으로 횡성댐 망향의 동산을 찾았다.
횡성(橫城)은
대부분의 물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데 이 곳의 물은 동서로
빗겨 흘러서 하천을 횡천(橫川)이라 하고 지명을 횡성이라 하였으며
고려사나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별호로 화전(花田)이라 하기도 하였고
갑천면(甲川面)은 진한(辰韓)의 마지막왕인 태기왕(泰岐王)이
신라시조 박혁거세에게 쫓기어 태기산에서 다시 일어나기를 꾀하며
군사훈련을 하다가 갑옷을 벗어 씻었다고 하는 갑천(甲川)의 이름을 딴
지명으로 1760년(영조 36) 편찬한 여지도서(與地圖書)에 처음 나타나고
관동지(關東誌)와 관동읍지( 關東邑誌) 등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망향의 동산은
횡성댐 담수를 시작하며 갑천면 5개리(구방, 중금, 화전, 부동, 포동)가
물 속에 잠기게 되면서 253세대 938명이 고향을 떠나 이주를 하였고
수몰민들에게 고향에 대한 정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1993년 12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망향의 동산>을 조성하고
힘차게 비상하고 희망찬 내일을 뜻하는 새의 날개를 표현한 조형물을 세웠다.
9세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금리 옛 절터에 있었던 탑으로 상륜부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높이 5m의 3층석탑 두기를 1998년 8월 이건하였으며
화성정과 수몰지역의 흔적을 담은 <화성의 옛터 전시관>을 개관하고
1999년부터 <횡성댐 망향제>를 개최하여 오고 있다고 한다.
화성의 옛터 전시관에는
장녀부락인 찍바위, 숲밖에, 군량골, 아랫말, 대문안골 등 설명이 있었고
사찰터와 동서로 마주보며 마을을 지켰던 석탑이 있었던 중금리(中金里),
골말고개에서 윗말, 아랫말 사람들이 오가며 정을 나누었던 곳으로
봉우리 정상에 세개의 큰바위가 있어 꼭 가마솥 같았던 부동리(釜洞里),
오래전 커다란 관청이 있어 인근 고을을 다스렸던 곳
어답산에서 내려 본 마을이 배를 닮아 땅을 뚫지 않았던 화전리(化田里),
양지말, 응달말, 아랫말에서 옹기종기 살았고
1946년 중금에 문을 열었던 화성초등학교가 구방리로 옮겨와
횡성댐건설로 48회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물에 잠기게 되었던 구방리(舊坊里),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고 저고리만 남겼다는 저고리골에서
밤이면 부엉이가 울었다는 부엉이바위 아래 장터까지 이어진 개천을 끼고있어
10여명을 태울 수 있는 나루터가 있었던 포동리(浦洞里) 등 동네소개와
목화로 실을 만들어 옷과 이불을 만들었던 물레와 북,
갈고 뿌리고 베고, 거두고, 농사지으며 살았던 농기구,
콩 삶아 메주 쒀 장 담그고 쿵덕쿵덕 방아찧어 윤기나는 쌀밥하고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었던 대목들의 목공도구, 따따뚱땅 대장간,
가마니틀과 짚으로 못 만드는 것이 없다는 생활도구와 공예품,
옛날TV, 전화기, 등잔, 촛대, 다리미, 엿장수 가위 등 생활도구들을 구경하며
불편하였으나 즐겁게 살았던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리면서
전시관을 나와서 호수길을 산책하러 갔다.
하늘은 다 이겨 낼 만큼의 고난을 주고
자연은 고난으로 생명을 키워간다고 한다.
고난을 극복하며 지혜가 열리고 영혼이 철드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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