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태화동 유래

오토산 2012. 5. 16. 02:48

 

 

 

 

 

태화동사무소 전경

 

 

  연 혁

  • 삼국/통일신라시대 : 서기 757년 고창군에 속함.
  • 고려시대
  • - 1711년 : 안동도호부
  • - 1198년 : 안동대도호부
  • - 1278년 : 복주목
  • - 1361년 : 안동대도호부
  • 조선시대
  • - 1455년 : 진설치(병마절도사)
  • - 1895년 : 관찰부사 설치 당시 옥야동 292번지에 감옥을 설치 옥동(獄洞)으로 칭 하였음.
  • 근대
  • 1914년 :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옥리와 안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옥동의 중부지역이었음.
  • 1931년 :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옥동의 일부를 갈라 팔굉정 6정목으로 되었음.
  • 1947년 : 조국광복과 더불어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태화산의 이름을 따서 태화동으로 개칭하였음.
  • 1963년 : 안동시 승격으로 1개 법정동에 1개 행정동으로 현재에 이름

지역특성

  • 시가지 서남부의 신개발지로 부유층 및 영세민이 혼합하여 거주하며 안동시 인구의 10%가 거주하는 인구 밀집지역이며 KBS안동방송국, 안동MBC 양 방송국이 소재하는 경북북부지역의 언론 중심지이며, 4개의 초ㆍ중ㆍ고 교육기관이 있고 이육사 생가(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0호), 안동 관왕묘(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0호), 서악사 등이 소재하고 있다.

 

 

 안동MBC사옥 전경

 

화심골(花心谷)ㆍ월남골(越南谷)

이 마을에 월남골이라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는 안동김씨 화심(花心) 묘소(墓所) 보호석(保護石)이 마을 입구에 있어 화심골이라 불렀다. 그 후 월남 파병 전사자 및 울진무장공비소탕 전사자 유가족을 위한 시영(市營) 주택(住宅)을 건립한 데서 월남골이란 지명이 붙여진 것이다.



공원마ㆍ공원촌(公園村)

서악사(西岳寺) 아래에 있는 터로 전에 안동시민의 공원이 있었다고 하며 광복 후에 이곳에서 동채싸움도 하였다. 현재는 중앙고등학교와 경덕중학교가 있다.

 

경덕중학교, 중악고등학교 전경 

 



안동 서악사 전경

 

삼거리ㆍ삼걸

공원마 북쪽에 있는 마을로 세 갈래의 긴 길이 있어 삼거리라 불렀고 현재 안동중학교(安東中學校)의 윗쪽이며 옥동이 발전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세 갈래길은 오거리로 변하였다.

 

 

안동중학교 전경

새마ㆍ신촌(新村)

공원마 남쪽에 있는 마을로 광복 후에 새로 형성한 마을이라 하여 새마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주택이 많이 들어서고 주공아파트가 있어서 주민들의 수가 많으며 이로 인하여 조그만 장터가 형성되었다.

원골ㆍ원동(院洞)

태화봉(太華峰) 밑 삼거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자제원(慈濟院)이 있었다 하여 원골, 원동으로 불러진 마을이다.

불미골ㆍ총곡(銃谷)

원동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대장간을 설치하였던 곳이라 하여 불미골이라 불렀다가 일제강점기 때 사격장이 있어서 총골이라고 다시 불리게 되었다.

임방앗골

총골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큰 바위가 있고 임씨(林氏)가 방아를 놓았다고 하여 임방앗골이 되었다고 한다.

말구리

삼거리에서 예천방면으로 약 500m정도 떨어진 지점에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말구리재라 한다. 지금은 서쪽에 성창아파트와 안동공업고등학교가 있다.

 

안동공업고등학교 전경

어개골ㆍ어가동(魚哥洞)

공원마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어장자(魚長者)가 살았다 하여 어개골이라 불리어지고 있으며 남쪽 둑 너머로 낙동강이 흐르고 뒤쪽은 태화동 기슭으로 따뜻한 양지(陽地)마을이다.

 

어벽제골ㆍ어벅적골

이 마을에 어복사란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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