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비보압승~~~~

오토산 2013. 2. 8. 16:27

 

 

비보압승

 

강원도 양양에 조산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옛날부터 인심이 후 하고 농사도 잘되어 넉넉히 살았으나

큰 인물이 나지 않았다

하루는 노인들이 정자나무 아래서 장기를 두고 있는데

금강산에서 내려 왔다는 노승이 마을을 두루 살펴보면서 다니다가

정자나무 아래 다리도 아프고 쉴 겸 해서 앉았는데

노인들이 장기를 두다 말고 는

노승에게 이 마을에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산을 살펴보고 계십니까?

하자 노승은 지세가 하도 좋아 살펴보고는 왔는데.....

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노인들은 궁금하여 재차 이야기 하자

노승은 짚신을 털면서 먹고 살기는 걱정이 없겠으나

인물이 나오지가 않는 구려 하고 말하자

노인들은 이구 동성으로 우리들도 이 점이 걱정거리라 하면서

노승에게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노승은 나는 금강산 마하연에서 온 스님인데

절이 너무 쇠락하여 중창 불사를 하려고 돌아다니며

시주를 청하러 다닌다고 하자 노인을 비롯하여 무슨 일인가

하고 모여들은 동리사람들도 불사는 걱정 말라며

마을에 인재만 나면 불사가 문제냐고 한마디씩 하는 것이 였다

그러자 노승은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기 저 주맥은 설악산에서 내려오다

이 마을와서 끊겼으니 인재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인력으로 라도 산 하나를 만들어서 이어주면

그맥이 설악산 정기를 받아 이 마을에 생기가 돌아 인재가 날것이오

하고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부자인 마을이라

한집에 쌀 한가마니씩 스님에게 시주를 하고 모두 힘을 모아

인공산을 만들었다 그 뒤로 마을에서 인재가 하나둘씩 나오고

마을 이름도 조산 마을이 되었다

 

이 설화는 음택과 달리 양택 풍수로 집단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마을 무리가 한마음 으로 쇠퇴한 기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해 나간다고 하겠다

고려사 에 백제 때 무등산 아래 마을 지금의 광주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으로 이산에 성을 쌓았더니 백성들이 편안해 졌다 고 기록되어 있다

<신중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경기도 금천현(지금의 서울시 금천구)호암산은 호랑이 형상의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그곳의 절과 다리에 사자암을 만들어 호랑이가 나오는 것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처럼 일찍부터 비보압승이 행했음을 알수 있다

 

단맥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가산리의 도락산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에는 가산리를 가차읍이 라고 했는데

가차읍 남쪽으로 큰 산이 있어 그 이름이 독락산(獨樂山)이라고 하였다

독락산이 나중에 도라산(道羅山)이 되었다가

퇴계 이황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도락산 이라고 산 이름을 고쳤다

이 산은 소백 산맥 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단양과 풍기 사이의 도솔봉을 낳고 거기서

다시 내려와 신선봉 을 주봉으로 단양에 자리잡게 되었다

도락산은 산세가 훌륭하고 정기가 가득하여 단양의 명산으로 손꼽 힌다

조선시대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임진왜란때 원군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보니

조선의 산수가 뛰어나 인재가 많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맥을 끊었는데

도락산 신선봉에도 쇠말뚝을 박았다

그러자 산봉우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맥이 끊겼다

이여송이 돌아가 아버지에게 조선의 맥을 끊고 왔다고 하자

아버지는 네 조상이 조선인 인데 네가 맥을 끊었구나

하고 비통해 했다고 한다

 

단맥

 

경북 밀양에 여이테 고개가 있다

옛날 여이테 수산나루에 뱃사공이 사람을 실어 나르고

하루 하루를 살아 가고 있었는데 하루는 뱃사공이 꿈을 꾸었는데

내일 팔도 감사가 여기를 건널 텐데 잘 건너 주어라 하고 꿈을 깼다

이튿날 사공은 나루터에서 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기다렸으나

날이 저물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사공은 헛꿈을 꾸었나 보다 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왠 거지가 아들을 여덟이나 데리고 와 건너 달라고 하며

배를 태워서 가는중에 팔도 감사가 아니라 거지군

하고 중얼 거리며 건네주었다

 

때는 마침 한겨울이 였는데 배에서 내린 거지들은 날이 어둡고

갈 곳이 없어 마른땅을 골라 보릿집을 깔고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잠을 깨보니 아버지가 추위에 얼어 죽어 있었다

거지 형제는 사방에 눈이 쌓여 있어 눈이 없는 땅을 찾아

아버지를 묻어 주었다

그 후 거지 형제들은 성공을 하여 팔도 감사가 되었다

그러자 조정의 대소실료 들이 한 집안에 세력이 너무 커진다고 하자

왕은 묘자리를 조사하라고 하여 국풍이 묘자리를 보더니

왕기가 서린 곳이라하여 혈을 끊으니

그 곳에서 여우가 나오는 것이 였다

그래서 그곳이 여이테(여우터?)고개라고 한다

혈을 끊자 팔형제가 다시 거지가 됐다

 

명당을 잃은 이야기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아버지와 아들 부자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러 왔다

충청도 어느 고을에 정착도 채 하기 전에 몇 달을 살다가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다

 

머슴은 낯선 곳에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서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지게에 지고 혼자 장사를 지내려고

산으로 올라가다 힘이 들어 잠깐 쉬려고 지게를 내려놓고 쉬다

깜빡 잠이 들었다

그곳을 지나던 도사가 시체를 옆에 놓고 잠들어 있는 젊은이를 보고

흔들어 깨워서 사정을 물었다

머슴이 그 간 사정을 쭉 이야기하자

도사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걸음을 지체하여

빨리 형편이 풀리는 자리를 잡아 주겠다고 하자

머슴은 기뻤다 도사는 가마니를 풀어 시체를 보더니

얼굴이 개구리상이니 진땅에 묻어야 겠구나

하고는 밭 한가운데 물이 고여 있는 질펀한 땅에

잡아주었다

 

머슴은 그곳에다 아버지를 묻었다

몇 일 후 산으로 나무를 하러 올라가 한참을 하다보니

예쁜 여자가 지나가다 머슴을 보고 자기는 먼길을 가는데

지리를 몰라 헤메고 있으니 길을 가르켜 달라고 하였다

마침 나무도 한짐 하여 따라오라고 하더니

머슴은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서 여기까지 오시는데

힘도 들고 다리도 아프니 며칠 유하면서 가라고 하여

여자는 감격하여 그러자 하였다

 

저녁이 되어 밥을 차려서 먹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자는 부자집 딸로 정혼한 남자가 죽어 남자쪽 사람들이 와서

수절을 하라며 데리러 온다고 기별이 와서

친정 어머니가 금덩이와 패물을 싸주며 도망가서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라고 하여 도망을 나와서

헤메고 있는 중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머슴은 자기도 과거 이야기를 하자

 

동변상련을 느낀 여자는 머슴에게 금덩이와 패물을 주면서

자기와 같이 살자고 하였다

머슴은 금방 부자가 되었고 땅이 늘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제 아버지는 물 구덩이에 넣고

저 혼자 호의호식 하다니....하며 손가락질을 하였다

머슴은 견디다 못해 날을 잡아 마른 땅으로 아버지 묘를 옮겼다

그러자 꿈에 도사가 나타나

네 복이 여기까지 인가 보다 하는것이 였다

그 후로 는 머슴은 재산을 잃고 가난하게 살았다

 

명당을 잃은 이야기

 

명풍 도선 국사가 여기저기 산길을 다니다가

어느 고개 마루 에서 밤을 맞게 되었다

마침 저쪽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있어 다가가니

조그만 초가집이 였다

도선국사는 그 집 문을 두드려 하룻밤을 묵고 가자고 말을하니

들어오라고 하여 들어가 보니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데

 

가난하게 살고 있어 밥을 달라고

말도 못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부인이 하얀 쌀밥을 차려다 주는 것이 였다

도선 국사는 감복하여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밤이 깊어 지자 잠을 자야하는데

방이 한칸 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젊은 부부는 잠자리를 봐주고 자기들은 나가는 것이 였다

 

젊은 부부는 부엌에서 자면된다고 주무시라고 하는 것이 였다

도선 국사는 또 한번 감복하였다

한잠을 자고나자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였다

가만히 들어보니 부인이 장독에다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데

이 나라 제일가는 명풍 도선 국사님 같은분이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 아버님 산소자리를 잡아주게 하여 주세요

하고 비는것이 였다

 

도선 국사는 부인의 정성으로 내가 이 집에 오게 되었구나

생각 하고 아침이 되자

젊은 부부를 불러 자기가 도선이라고 밝히고 사정을 물어봤다

부부는 짬짝 놀라며 감동하여

기도한지 오늘이 꼭 백일이 되는 날이 라는 것이 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상을 당한지 삼년이 된다고 하자

도선 국사는 이 부부 에게 금방 부자가 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잡아 주겠다고 하고

주변 산을 돌아 다니다 마침 자식도 낳고

삼년안에 부자가 될 자리가 있어 그 자리를 잡아 주었다

장례를 마치고 도선 국사는 떠나려고 하자

부인은 도선 국사에게 줄 것이 없으니

신랑이 만들어 놓은 짚신 한 켤례를 내주었다

도선 국사는 마음이 가벼워지며 그 집을 떠났다

그 후 삼 년이 지나자 도선 국사는 그 부부가 얼마나 잘 살을까

하고 생각하고 그 집 다시 찾았다

 

그런데 집이 바뀌지도 않고 삼 년전 집 그대로 였다

도선 국사는 주인을 부르자 낯선 여자가 나와서 “누구세요?” 라고 묻자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

전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은 행방 불명이 되어 모른다 는 것이다

도선 국사는 그럴 리가 있나 하고 묘자리로 가 보았다

다시 둘러보고 내려 봐도 명당이 틀림이 없이 명당 이였다

도선 국사는 착한 부부 에게 몹쓸 짓을 한것 같아 자책을 하며

명당 흉당 구분도 못하는 눈을 없애야 한다며 눈을 찌르려고 하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그 자리는 틀림없이 명당이 틀림 없다

그런데 조상이 살인을 해서 아직 죄업이 씼겨 지지 않아

자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라고 하였다

도선 국사는 아무리 좋은 자리도 선업을 쌓아야만 받는구나

하며 길을 떠났다

 

명당을 잃은 이야기

 

강원도 홍천군 철종을 지나 인제를 채 못 미친 곳에

두천 장거리가 있는데 그 위쪽에 장자터가 있다

옛날에 장자가 살았던 곳인데

그곳의 지형이 내봉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과 장남에서 내려오는

물이 서로 만나는 곳으로 고양이 형국을 하고있다

 

그 고양이 목부분에 바위가 있고

그곳에 돌다리를 놓아 강을 건너 다녔다

건너편에는 쥐산이 있고 장자터에 장자가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곳은 곳간인 관계로 재산이 자꾸 일어나 큰 부자가 되었다

주인들도 부지런 하여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인상 한번 쓰지 않고 부지런히 하여 점점 재산이 일어나자

손님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집 맏 며느리는 매일 장작불을 때서

하루 세끼 손님들에게 밥을 지어 대접하자니

하루하루가 고달팠다

쉴 틈도 없이 몇 년을 그렇게 지내고 나니

신심이 고달프고 손은 갈라지고 형편이 없었다

하루는 도승이 바랑을 매고 와서 시주를 청하였다

며느리는 “저 스님에게 뭘 좀 여쭈어 봐야지”하고

곳간에 가서 쌀 한 말을 담아 시주자루에 부어주며 “스님 요”하자

쌀자루가 묵직하게 느껴지자

스님은 눈이 휘둥그레 지며 놀라 바라보며 예 하고 대답했다 “

뭘 좀 물어 봐도 되게습니까?”라고 말하자

예 무슨 일 인지요?

 

실은 손님이 너무와서 매일 식사 준비하기에 너무 지쳐으니

손님이 덜 오게 할 수는 없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스님은 나를 따라오시오

하면서 앞장서더니 고양이 바위까지왔다

거기서 멈추더니 스님은 며느리에게

이 고양이 바위를 깨뜨리고 돌다리를 없애서

강물이 넘나들면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이오

하며 말을 한뒤 떠났다

 

며칠이 지나 이른 아침 며느리는 동네 일꾼들을 불러서

바위를 깨뜨리라고 하였다

일꾼은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데로

바위를 정으로 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거의 끝나갈 무렵 바위에서 피가 철철 나기 시작했다

당황한 일꾼들은 일을 멈추자 며느리는 상관하지 말고 계속 하세요

그리고 돌다리도 다 깨뜨리세요 하자

일꾼들은 아무말 못하고 일을하여 바위를 다 깨뜨리자

양쪽에서 물줄기가 서로 만나 그곳이 물이 채워져 못이 생겼다

 

그 후 한달쯤 지나자

어느날 밤 부잣집에 도둑이 들어 돈과 물건을 싹 쓸어갔다

부자는 속이 상하지만 어쩔수 없이 열심히 일을 해서 재산을 모으자

또 도둑이 들어 털어 갔다

이렇게 재산만 모으기만 하면 털어가기를 수십차례를 하자

이번에는 우환이 생겨 식구들이 병을 앓기 시작했다

굿를 하고 의원을 불러 약을 짓고 하며

몇 년을 지내자 많던 재산이 줄어들고

아무도 그 집에 찿아 오지 않았다

하루는 나라 국풍이 산세를 보러 다니다

이곳을 들리게 되었다

 

부자집 터를 보더니

여기가 장자 터인데

이렇게 좋은 터에 있는 집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는 빙 둘러 보더니 깨진 바위를 보고“

아하 주위 사람들에게

이것이 고양이 형상을 한 바위가 아닌가? 하자

주위 사람들이 맞다고 하자

국풍은 이것을 깨뜨려 패망한 것이라고 말했다

 

건너편 쥐산이 쥐가 엎드려 기어들어 오려고 노리는 형상인데

고양이 때문에 겁이 나서 건너오지 못하다가

고양이가 없어지자 마음놓고 들어 온다고 하였다

그 쥐가 도둑놈이 라는 것이 였다

 

꾀를 써서 얻은 명당

 

안동 김씨가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져

서둘러 딸을 출가 시키고자 하였다

마침 안동 유씨네와 혼인말이 오고가

안동 유씨네로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다

딸이 출가하자

 

안동 김씨는 지관을 불러 자기가 죽으면

묻힐 자리를 잡아달라고 청하였다

그리고는 얼마 후 병이 심하여 임종이 다가오자

아들들과 시집 간 딸까지 모두 불러 모았다

자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안동 김씨는 유언을 하기 위해 한 바퀴 둘러보더니

시집간 딸은 나가 있으라고 하는 것이 였다

 

딸은 몹시 서운하였으나 할 수 없이 방을 나와 문밖에서 엿들었다

김씨는 아들들 에게 자기가 죽으면 묻힐 자리를 일러주며

삼대 정승에 부자가 될 자리니 반드시 그곳에 묻어달라 고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그 말을 엿들은 딸은 장사를 지내기 전날 밤

아무도 모르게 물을 아버지 묘을 쓰려고 하는 자리에 부었다

다음날 아침 관을 묻으려고 보니 광중에 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아들들은 지관에게 항의를 하였다

지관은 그럴 리가 없다며

그 자리 에 그대로 장사를 지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아버지 유언이라지만

물이 고인 자리에 묘를 쓸 수는 없다며

아들들은 다른 자리를 잡아 장사를 지냈다

얼마 후 안동 유씨네도 상을 당하게 되었다

 

안동 김씨 딸은 친정아버지 자리에 시아버지 를 묻었다

그 후 안동 유씨네는 부자가 되고

삼대에 걸쳐 정승이 나왔다

 

덕을 쌓아 얻은 명당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이 자기도 명당을 써서

부자가 되어 보겠다고 동네 지관을 찾아갔다

동네 사람들이 적덕을 해야 명당을 쓸수가 있으니

지관에게 적덕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얼마나 무식했으면

메밀가루로 적 을 부치고 떡을 해서

지관에게 매일 가져다 주는 것이 였다

사람들이 왜 매일같이 적과 떡을 해서 주냐고 물으니

적 떡을 하라면 서요 라고 돼 물었다

동네사람 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려”

하고 마는 것이 였다

삼년을 매일같이 하자 지관도 동리사람도 감동을 하였다

하루는 자관이 동네 부자집 어른이 자기가 죽게되면

묘를 써야하니 산에 올라가자고 하여 따라

오라고 하여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한참 산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예쁜각시가 베를 짜는 것이 보였다

지관에게 물으니 그 자리가 옥녀직금 이라며

묘를 쓰라고 하였다

묘를 쓰자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

 

덕을 쌓아 얻은 명당

 

어머니와 아들이 남의 집 일을 해주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 과객이 와서

하룻밤 묵고가기를 청하였다

방도 없고 대접할 양식도 없어 곤란 하였으나

그냥 보낼 수가 없어 모자가 부엌에서 자고

과객을 방에서 자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밥을 지어야 하는데 늘 먹던 조밖에 없었다

쌀이라고는 아버지 제사때 쓸려고 실광에 매달아 놓은 것 밖에 없었다

모자는 할 수 없이 그 쌀을 꺼내어 밥을 지어 정성껏 대접하였다

아침을 먹고 나자

아버지 묘를 봐주겠다며 과객은 산으로 올라가더니

자리를 하나 잡아주고 그리로 옮기라고 하였다

 

묘를 쓴 날 저녁 양식이 없어

아들은 주인집 과부 여인인데 양식을 꾸러 갔다

그때 과부는 잠을 자고 있는데

용이 들어오고 있는 꿈을 꾸고 있다가

문소리에 그만 잠이 깨었다

아들이 양식을청하자

과부는 알았다고 하고는

쌀을 가지러 광으로 가다가 아들을 보자

 

매일 보던얼굴 인데 잘생겨 보이고

등 근육이 넑적한 것이 남자다워 보이는 것이 였다

과부는 아들에게 쌀을 주면서

오늘밤에 들리라고 하였다

아들은 밤이되자 과부댁에 갔다

과부는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기와 같이 살자고 하였다

아들은 나이가 넘치도록 장가를 못간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뜨거운 밤을 보내고

날을잡아 결혼을하고

어머니와 함께 부자가 되었다

 

덕을 쌓아 얻은 명당

 

문화 류씨 시조에 얽힌 이야기다

문화 류씨는 원래 황해도에 살았고

제일 윗대 산소가 황해도 구월산에 있다

문화 류씨 시조님이 살림이 곤궁하여 나무를 팔아 근근히 살아가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상을 당했다

 

지관을 부를 처지도 못해

산으로 톱과 도끼를 들고 관에 쓸려고 올라갔다

한참을 산으로 들어가 후미진 산길을 지나가는데

커다란 호랑이가 눈에 불을 켜고

입은 딱 벌린 채로 앉아 있는 것이 였다

 

류씨는 꼼짝 못 하고 서있고

호랑이는 괴로운 듯 류씨를 보고 있었다

호랑이가 자기를 잡아먹는 줄 알고 오금이 붙었으나

속으로 류씨는 상주는 호랑이도 안물어 간다는데 정말인가보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랑이는 눈물까지 흘리며 괴로워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목에 무엇인가 걸려 있는듯하였다

 

류씨는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호랑이 입으로 손을 넣고는

목을 다치지 않게 살살 꺼내주었다

꺼내고 보니 왠 여인을 잡아먹었는지 비녀가 나왔다

류씨는 섬찟 하였으나

호랑이는 몹시 기뻐하며

류씨에게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했다

류씨가 등에 타자 호랑이는 바람같이 달려

황해도 구월산으로 오르더니

한자리에 딱 멈추는 것이였다

 

류씨는 아버지를 가져와 그곳 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이후 문화 류씨 들은 번창하게 되었고

지금도 도신산(都神山)이 황해도 구월산에 있다

 

가난한 사람이 명당을 얻은 이야기

 

경북 월성군 대본리 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한 과객이 지나가다 바다 쪽 고개에 엎어진 채로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엎어진 채로 그냥 묻어 주었다

 

그런데 과객의 아들이 갑자기 하는 일마다

잘 되어 만지는 대로 성공을 하여 부자가 되었다

아들은 집을 나간 뒤로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수소문 하여

찾아다닌 끝에 대본리에서 돌아가신 것을 알고

그 동네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 뵙고

사례를 하고 아버지 묘를 물으니 가르쳐 주었다

 

가서보니 말 이 무덤이지 형편이 없어

디시 무덤에 상석도 하고 치산을 번듯하게 하였다

그런데 치산을 한뒤 하는 일마다 번번히 실패를 하자

아들은 명지관을 모셔서 묘를 보게 하였다

 

지관이 보더니 이 자리는 게가 물로 들어가는

형상인 게혈 이라고 말하였다

상석을 하면 돌에 발이 눌려

못 움직인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묘의 상석을 거두고 원래대로 해놓았다

다 하고 난뒤 지관은 선대에 조상 분 들이

선덕을 많이 쌓으셔서 이런 명당을 얻을 수가 있었다며

아들도 선덕을 쌓아야만

부귀영화가 오래간다고 말하자

그렇게 한다고 약속 하였다

 

명지관의 실수담

 

충남 보령군에는 다음과 같이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다

풍수 공부를 마치고 스승께 산천을 돌아보고 오겠노라고

하직인사 를 한 지관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 들어가 하루밤을 묵기를 청하였다

그 집은 매우 가난해 보이는 집이였다

 

그런데 주인은 조금도 싫는 내색을 하지않고

반갑게 맞으며 먹을 것이 없자

제사 때 쓰려고 두었던 쌀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밥까지 지어 대접하는 것이였다

 

지관은 착한 마음씨에 감동하여

다음날 부자가 될 묘자리를 잡아주겠다고 자청 하였다

지관은 답산 을 한 뒤 황우도강(黃牛渡江)의 양각산(兩角山)에

즉 황소가 강을 건너기 위해 서있는

양 뿔 사이 산에 명당을 발견하고

묘를 쓰게 하였다

 

그 후 지관은 여러 산을 답산하고

스승에게 문안안사를 하고 그 이야기를 하니

스승은 상주들이 모두 종기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다시 가서 소의 등 부분에다 묘를 쓰라고 하였다

스승님 왜 그러냐고 물으니

스승은 소가 물을 건널 때

머리가 젖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쓴것이 아니냐 라고 물으니

지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스승은 이 경우 소에 잘 붙어다니는

파리 진드기 등도 머리 부분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종기 가려움 등 피부병이 되는 것이다

황우도강 형국일 경우 소의 등부분은

물에 잠기지도 않을뿐더러

파리 해충들도 모여들지 않는다 라고 말 하였다

 

지관이 그 집에 가서보니 정말 종기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은혜를 갚으려고 했던 것을

지관은 실수를 인정하고 소의 등 부분에다

묘를 옮겨 주었다 그랬더니 종기도 없어지고

상주는 부자가 되었다

 

가짜 지관 이야기

 

한 선비가 너무 청렴하여 가난하게 살았다

하루는 먹을 것이 없어

남의 논을 기웃거리다가 논바닥에 떨어진 나락을 주웠다

그러나 이것도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나락을 놓고 다시 돌아왔다

 

어느날 견디다 못해 부인이 배가너무 고픈 나머지

쥐를 잡아 아이들과 구워먹고 있었다

선비는 가슴이 아팠으나 어쩔도리 없이 글만 읽었다

며칠이 지나 부인이 어디서 헌 패철을 구해가지고 와서

지관 노릇이라도 하여 먹을 것을 구해오라고 하였다

 

선비는 풍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으나

할 수 없이 집을떠나 지관 행세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리저리 상갓집을 찾던 중에

한 정승집에서 상을 당해

지관을 구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선비는 무작정 그 집으로 들어갔다

 

정승집 에서는 벌써 많은 지관들이 모여들어

서로 자기들 자랑을하며 풍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선비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할말이 없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정승은 떠들썩하게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말없는 선비가 더 믿음직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선비만 남고 다른 지관들은 모두 돌아가게 하였다

 

백일 동안 후한 대접을 받은 선비는 드디어

구산할 날이 다가오자

걱정이 되어 전날밤 몰래 정승집을 빠져나와

도망을 치려고 하였다

그때 그 집의 어린 하인이 오더니 내일 구산할 때

그 집의 강아지와 함께 자기를 대리고 가면

명당을 알려주겠노라고 하는 것이였다

다음날 강아지와 어린 하인을 앞세우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오른

선비는 어떻게 할지를 몰라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뛰어가던 강아지가 한 곳에 멈추더니

오줌을 누기 시작하였다

어린 하인은 그 자리가 명당이라고 슬며시 알려주었다

선비는 하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명당을 잡아주고

부자가되어 돌아가는데 다시 하인이 나타나서

자기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온

심부름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는 섣부른 지관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선비의 눈 한 쪽을 찔러버려

선비는 애꾸가 되었다

 

명지관이야기

 

경남 의령군 자굴산 밑에 효자로 소문난

아들 삼형제를 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이름난 지관인 성지와 친분이 두터웠다

아버지가 늙어 임종할 때가 되자

아들들이 묘자리를 물었다

아버지는 꼭 성지에게 명당을 잡게 하라고 유언하였다

 

삼형제는 우선 가묘를 해놓고 성지를 찾아가서 묘자리 를 부탁하였다

성지는 묘자리를 잡으로 가기전에

노독을 풀겸 개고기를 먹어보라고 권하였다

큰아들은 상주의 몸이므로 사양하고 먹지 않았다

그러자 성지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자기에게

복종하라고 하였다

 

큰아들은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런데도 상지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묘자리를 잡아줄 생각을 안하는 것이었다

그럭저럭 1 년이 지나 눈치만 보던

큰아들이 집에 가겠다고 하자

상주만 혼자 가라고 하였다

 

큰아들은 한편 화가 났으나

상주의 몸으로 화도 내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 둘째를 보냈다

그러나 둘째 아들도 1 년만에 혼자 돌아왔다

그러자 셋째 아들이 찾아가 담판을 짓고

지관 성지를 데려왔다

그런데 성지는 통 답산을 하지 않고

방에서 두문불출하는 것이였다

 

삼형제는 초조했으나 재촉도 못하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여름이되자

드디어 말을 꺼냈다

 

성지는 그날로 묘자리를 잡자며

삼형제를 데리고 나서더니 자굴산을 가르키며

저산 밑에서 협천군 대의면 쪽으로 흐르는

냇가 언덕에 묻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리면서

잡은 묘자리가 겨우 비가조금만 와도

무너지는 냇가라고 하자

삼형제는 맥이 풀리고 어이가 없었으나

아버지 유언을 받들기 위해 그대로 하였다

 

성지는 관 위에다 먹물로 행봉임어사(行逢林御史)하야

갱장저산하 (更蔣猪山下)라,

즉 임어사가 가다가 이관을 만나거든

저산 아래에 다시 묻어달라 고 썼다

 

그해 여름 비가 몹시 오는데

삼형제가 묘지 걱정이 되어 가보니

묘는 무너지고 관은 떠내려가고 없었다

삼형제는 관을 찾아 나섰다

 

그때 암행어사가 이 고을을 지나가고 있다가

냇물을 건너던 중 큰 비로 넘쳐버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손에 단단한 것이 걸려

그것에 의지하여 겨우 헤엄쳐 나올 수가 있었다

나오서 보니 그것은 관이였다

 

그리고 관 위에는 임어사가 장사를 지내주라고 써 있는데

어사의 성이 임씨였다

어사는 지관을 불러 훌륭한 명당을 찾게 하였다

지관이 잡은 명당이 공교롭게도 절터였다

어사는 절터를 헐어 관을 묻게 하였다

 

이후 삼형제는 나란히 과거에 급제하여

아버지 관을 수소문하여 찾던중에 임어사를 만나

산소를 찾고 벼슬이 승승장구 하였다

 

'풍수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 풍수의 역사  (0) 2013.03.02
인간이 영원히 사는 시대가 온다  (0) 2013.02.21
윤달  (0) 2013.01.25
조선팔도의 지리적 특성  (0) 2013.01.22
癸巳년 뱀이야기  (0) 201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