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안동의명당 관두들마을

오토산 2013. 11. 14. 01:36

 

 

안동에 이런 명당 형국이 있다.(관두들 마을)


사람의 한 생각, 한 마음이 천하의 명당, 

사람의 정성이 모이고, 마음이 모이는 곳

관두평은 장풍득수(藏風得水)로 생기 충만하여 

맑은 눈과 밝은 지혜를 가진자에게 다양한 형상의 모습으로 보이고

그 형국에 앉아 바라보는 이는 

그 기운(만물에 상응하는 기운)을 얻는 행운을 갇는다.

寬斗坪淸眼明智者居觀穴形局者得氣運

관두평청안명지자거관혈형국자득기운


- 용과 봉황 닮은 형국

● 봉황이 둥지를 짓는 형국 봉작대소형(鳳作大巢形)

● 봉황이 앉아 둥지를 고치는 형국 봉좌쇄소형(鳳坐刷巢形)

● 봉황이 둥지에 내려 앉는 형국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 봉황과 용이 서로 사이 좋은 봉용화합형(鳳和合形)

● 봉황과 용이 회합하는 듯한 형국의 봉용취회형(鳳聚會形)

● 용이 산에 들어와 숨는 듯한 형국의 회룡은산(回龍隱山形)

● 용이 처음 떠났던 곳을 되돌아 오는 듯한 형국의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 글자 닮은 형국

● 心마음(심장)심자 모양의 심자형(形)

● 志뜻지자 모양의 지자형(形)

● 走달릴주자 모양의 주자형(形)

● 足발족자 모양의 족자형(形)

● 也어조사야자 모양의 야자형(形)


- 꽃 닮은 형국

● 모란꽃이 반쯤 핀 형국 모란반개형(牧丹半開形)

● 국화꽃이 피어나는 형국 황국반개형(黃菊半開形)


- 기타 닮은 형국

● 구름 속에 학이 날개를 펴는 형국의 운학서시형(雲鶴舒翅形) 

● 신선이 독서하는 형국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

● 소용돌이 은하수 형국의 와은하수(渦銀河水形) 

● 가재(게)가 엎드린 형국의 해복형(蟹伏形)


- 조산들의 형국

● 개구리를 쫓는 뱀 형국의  장사추와형(長蛇追蛙形) 생사축와형(生蛇逐蛙形)

● 코끼리 어금니 형국(농기구 따비 모양)의 상아형(象牙形)


- 1980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김윤규

(펜을 든 역도산 다찌하라 마사아키/일본의 4대 문장가)가 난 곳


귀여리(서후면 이개리) 관두들 뒷산 전망 풍경 (회원은 이미지 클릭 시 원본 크기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여명의 아침에 귀여리 관두들 서쪽 뒷동산에서(북동 - 남서) ~

 - 안산 너머 장산(長山) 줄기에 이름난 명산 봉우리 조산들이

    발아래 한눈에 펼쳐진다.


 귀여리 관두들 뒷동산에서


봉수산(567m), 용두산(661m), 투구봉(608m), 건지산(559m), 청량산(870m)조산봉(857m), 

왕모산(648m), 통고산(1,067m), 일월산(1,219m), 검마산(1,017m), 백암산(1,004m), 

와룡산(461m), 칠보산(810m), 포도산(748m), 아기산(589m), 갈라산(569m), 둔지산(402m), 

기룡산(507m), 임봉산(683m), 금학산(577m), 화부산(625m), 연점산(863m), 산지봉(890m), 

주왕산(721m)팔각산(633m), 내연산(710m), 비학산(762m), 황학산(781m), 면봉산(1,113m), 

보현산(1,124m), 오토산(470m) 향로봉(326m), 백자봉(368m), 삼표당(443m).....


관두들 서쪽 언덕 학운소 솔숲


관두들 서쪽 언덕 학운소 우측


관두들 서쪽 언덕, 소설가 김윤규의 본가 옛 모습이며, 현재 철거된 의성김씨 충순위공파 이개의 주손 집


- 김윤규 :  '맥추(麥秋)'로 문단 등단, 

1966년 하얀 앵속(白罌粟)'으로 나오키상, 

1961년 키스'와 5개의 단편으로 제2회 근대문학상, 

1980년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그해 사망

정체성의 혼란으로 6개의 이름으로 살다 갔다. 

김윤규(金胤奎/의성김씨 충순공파 34세)→노무리 신타로(野村震太朗)→

긴잉케이→창씨개명으로 가나이 세이슈(全井正秋)→

아내 호적에 입적으로 요네모토 세이슈(米本正秋)→

다찌하라 세이슈(立原正秋/다른독음/다찌하라 마사아키)

영어로 번역된 그의 글을 사랑했던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봉정사를 찾았다.

유일하게 한국출신 김윤규의 글은 일본 교과서에 올랐다. 

1980년 식도암으로 사망하자 일본인도 그의 죽음에 슬퍼했다.


 안동 지방의 가신(家神)을 모시는 신체(神體) 터주신 바깥용단지 

- 풍년과 집안의 평안을 비는 뜻으로 

  벼를 넣어 부엌이나 창고 또는 다락에 모시는 단지


관두들 서쪽 뒷산 언덕 무덤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건너편 동쪽 골짜기 농곡 다랭이 들의 전망


관두들 서쪽 언덕(의성김씨 충순공파 학운소)

- 7~80년대까지 묘소(학운소) 앞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많았는데 현재 작은 솔 만 남음


관두들 전체 (위성 사진), 마을 우측 긴 능선 길 따라 노송숲과 우측 농곡 들녘 다랭이 논이 아름답다.


- 용, 봉황, 여러가지 글자, 책읽는 신선, 음식이 가득한 접시, 

  피어나는 꽃(국화, 모란)모양, 가재모양, 은하수 형상으로 보이는 명당에 

  알모양, 봉황 꼬리, 뱀, 상아(코끼리 어금니), 

  꽃봉오리, 구름, 마(산약) 형상 등 다양한 모양의 조산들이 있다. 

  내명당에서 보면 북쪽 방향의 좌청룡이 약하나 여러겹으로 싸여 있고 

  능선 중턱 학운소 소나무가 비보를 하고 있다.


*앞산(안산, 주작) 앞 200m 글자 주변  알(봉황의 알) 닮은 조산들

 (좌측 하단 1개, 우측 하단 부분에 마의 뿌리 또는 구름 형상의 알 4개)

관두들 동쪽 언덕 상단 전체를 보면 

봉황의 고귀한 자태의 꼬리를 닮은 형상을 한 사격이 있다. 


*봉황의 꼬리를 아래 위 두개로 나눠보면 , 

아래에 해뜨는 동쪽의 개구리를 쫓는 뱀 형상 

장사추와형(長蛇追蛙形) 생사축와형(生蛇逐蛙形)의 지형으로 

풍수지리가들은 뱀 혈은 코, 이마, 귀, 꼬리,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명당이라 함.

그 위에는 상아형(象牙形 : 코끼리가 어금니를 쭉 내밀고 코를 말아 올리고 있는 형상으로 

  부를 상징, 장수하는 동물, 따비 모양 : 돌을 고루는 농기구)형상이 있다.


*우연적 필연으로 관두들 서쪽 산너머 

 오동나무(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는 전설)와 관련된 오동정(대두서리) 마을이 있고, 

 대나무에 열매(봉황의 먹이)가 맺는다는 발음과 비슷한 대두서리에 

 대나무  열매가 열리어 있다.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참고 - 상두혈(象頭穴:코끼리 머리부분의 코나 이마부위)명당은 

  성품이 온화하며 지혜롭고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며 부귀도 함께 누립니다.


관두들 중심 부분


관두들 서쪽 언덕 위성사진 확대



 봉황이 둥지에 내려 앉는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봉소형(鳳巢形) 모습 그림

(날개밑 둥지처럼 둥굴게 감춘곳이 명당혈 자리. 부리, 눈, 날개, 꼬리 부분 등의 혈자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 봉과 용이 사이 좋은 형상의 봉용취회형(鳳聚會形) 모습 그림

 (봉황과 용이 머리를 맞대고 한 곳을 응시하는 모습, 코나 이마, 귀 부위가 진혈)


관두들 서쪽 언덕의 능선을 편화한 형국도

- 좌청룡이 여러겹 감싸고, 

 주산(현무봉)에서 뻗어 나온 백호자락이 뻗고 

 본신안산(本身案山)이 되어 길게 혈전에서 기봉(起峰)하고 있다. 

 안산이 혈장과 조산 사이에 놓인 탁자(卓子, 책상)와 같다.

 안산과 조산이 다정하면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 

 청수하고, 조밀하여 좋은 보국(保局)을 이루어 혈을 결지하고, 

 허(虛)하거나 산만하지 않아 

 생기가 흩어지지 않고 혈을 맺는다.


관두들 서쪽 언덕의 명당 형국도


관두들 서쪽 언덕의 은하(소용돌이 은하수)를 닮은 형국으로 중심 부분이 혈처이다.


관두들 서쪽 언덕의 가재를 닮은 형국


- 다리로 먹을 것을 긁어모으니 재물이 불어나는 것을 상징하고, 

  혈처는 게등이나 이마, 게의 앞발이 있는 안쪽


봉황의 여러가지 모습


관두들 서쪽 언덕의 국화꽃이 피어나는 형국 황국반개형(菊花滿形)


글자 닮은 형국

 - 心마음심(심장 모양)

   志뜻지, 

   走달릴주, 

   足발족, 

   也어조사야(출천문호) 등으로 보이는 글자 형국으로

   하나의 뜻을 마음에 두고 달리면 

   만족하는 이룸이 크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좋은 형국이다.

   야자(也字)의 산세는 두 번째 획(|)의 끝 부분이 혈처(穴處)이고 학자를 배출


용과 봉황 형국/알, 봉황 꼬리, 뱀, 상아 닮은 조산들의 형국


●  봉황이 큰 둥지를 짓는 봉작대소형(鳳作大巢形) 그림선(봉황이 오동나무에 판판한 둥지를 살피는 모습)

●  봉황과 용이 사이 좋은 봉용취회형(鳳龍聚會形) 그림선(봉황과 용이 머리를 맞대고 한 곳을 응시하는 모습)

●  용이 산에 들어와 숨는 듯한 형국 회룡은산형(回龍隱山形) 그림선, 극귀혈(極貴穴), 백의정승(白衣政承)이 태어난다

  용이 맥을 끌고 내려와서 되돌아 보는 형국

  (용세가 제 몸을 휘감아 제 꼬리를 돌아보는 형국, 용이 처음 떠났던 곳을 되돌아 오는 듯한 형국)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빈한한 집안에 자수성가하는 자식이 나오는 형국으로 효자충신이 나오는 길지이다.

* 관두들 초입 서쪽 1개 + 관두들 초입 동쪽 4개(마, 구름 모양)의 봉황의 알모양,

봉황의 꼬리(뱀 + 코끼리 어금니 상아) 등의 사격이 잘 발달하였다. 

조류의 결혈처는 벼슬이나 날개안쪽, 꼬리 부분이다.

알을 품는 닭은 다리나 눈 또는 귀가 혈처이다.

네발 짐승의 결혈처는 배, 코, 젖가슴 부분이다. 

와우형의 경우는 입이나 꼬리가 혈처, 

젖 부위가 혈처가 되는 경우는 송아지가 젖을 빠는 형국, 

뱀은 눈과 귀가 혈처이다.


능선과 물길로 보는 형국, 독서하는 신선, 반쯤 핀 모란 꽃, 음식이 가득한 접시 등의 형국


●  점선으로 능선(용)과 물길(득수)을 그려보니 산의 좌우를 싸고 있는 보국의 모습이 확연이 드러남

●  신선이 독서하는 형국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

 (선비가 책 읽는 지형으로 눈이 혈처, 앞산이 책상, 좌우 능선은 팔의 모습, 

  뒷산 봉우리는 머리 부분, 인체 유형에는 주로 명치, 배꼽, 단전, 이마, 코 등, 

  단좌형은 유, 복, 단전, 음부등에 결지사람의 모양이면 전부 혈처가 높게, 큰 인재와 부자)

●  접시에 음식이 가득한 형국(잎산은 접시, 뒷산 능선은 온갖 음식)

●  모란꽃이 반쯤 핀 형국 모란반개형(牧丹半開形)(만개형보다 좋다,결혈처는 화심 꽃의 중심)


- 학운소 명당은 

   구름 속에 학이 날개를 펴는 형국(形局)의 운학서시형(雲鶴舒翅形) 일반적으로 알려진 모습


- 관두들 앞산과 뒷산은 

   봉황이 둥지를 짓는 형국 봉작대소형(鳳作大巢形), 

   봉황이 앉은 둥지를 다듬는 형국 봉좌쇄소형(鳳坐刷巢形),

   봉황이 둥지에 내려 앉는 형국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이다.

   봉황과 용이 서로 사이 좋은 봉용화합형(鳳和合形)이다.


- 봉황의 명당은 둥지처럼 감추는 날개쪽지내에 있고, 

  소응(所應 어떤 기운이 일어날 수 있도록 처방하는 것)은 5인의 인물 또는 성인군자가 나는 좋은 터이다. 

우리 선조들은 옛부터 스스로 하늘의 손자라고 여겼으며 하늘을 숭상한 한민족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체로서 새를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영물로 인식하였다.

새들의 수장 봉황은 수컷 봉(鳯)과 암컷은 황(凰)을 함께 이르는 말인데 

용과 학이 낳았다는 상상의 새이다.

단혈산(丹穴山)에 살고 단혈은 조양(朝陽)의 골짜기를 말한다. 

조양을 곧 태양을 마주하는 길운을 상징 한다.

봉황을 단봉(丹鳯)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단혈에서 생장하기 때문이다.


단혈(丹穴)이란? 단사(丹砂)가 나는 구멍이나 구덩이. 

고대(古代) 중국(中國)에서 남방(南方)의 

태양(太陽)의 직하(直下,바로밑)로 여겨지고 있던 곳


봉황은 

붉은 빛이 많은 것을 봉(鳯)

푸른 빛이 많은 것을 鸞(난새)

노란 것을 鵷(원새,원추)

보랏빛을 鸑鷟(악작)

흰빛을 鷫鷞(숙상/홍곡鸿鹄 속칭 천아天鴉)이라 부른다.

다섯가지 덕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 

머리가 푸른 것은 인(仁)

목이 흰 것은 의(義)

등이 붉은 것은 예(禮)

가슴 분이 검은 것은 지(智)

다리 아래가 누런 것은 신(信)을 상징한다.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내려 앉지) 않고, 

천년에 한번 열린다는 대나무(죽실,조릿대) 열매만을 먹고, 

땅속에서 샘솟는 달고 좋은 물 예천(醴川)만을 마신다.


생김새는 전체적으로 꼬리가 긴 닭(부리)과 같고 

열가지 동물 기러기(앞부분/군신의 의를 지킴)

기린의 수컷(뒷모습,머리앞쪽/어진 성군), 

사슴(머리 뒷쪽)태양, 

황새(이마/결백과 장수), 

원앙, 제비(턱/천심을 전달/어둠을 몰아내고 밝음을 불러옴)

(목/풍년과 다산을 불러옴)

물고기(꽁지, 꼬리), 용(비늘)

거북(등,귀갑/재앙을 막고 앞일을 예견) 등의 장점을 

두루 갖추었고 크기는 1m이상 된다. 


잘 때는 눈을 뜨고 자며 언제나 무리지어 다닌다.하여 병권(兵權)을 상징한다.

오음(五音)의 묘음(妙音)을 내면서 울고, 

깃털 빛은 빨강, 파랑, 노랑, 흰색 등의 5색을 띠고 있다고 기록,  

몸의 각 부분에 다섯가지 의미와 우주 전체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5개의 알을 낳는다.

우리 선조들의 희망과 염원이 가득 담긴 

간절한 기도의 발로로 탄생한 멋진 전설적 영물

동물 최고의 상상 예술 작품으로 의미가 함축된 최고 권위 지위를 상징한다.

부부금술의 상징이며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태평성대에 훌륭한 지도자나 어질고 현명한 성군이 세상에 나타나거나

예고(豫告)할 때 봉황 부부가 등장한다고 한다. 


- 용 : 코나 이마, 귀 부위가 진혈이고 눈이나 뿔 입술이 되는 부분은 못쓰는

(살아 있는 용의 기혈을 파괴 집안이 멸망,사람이 죽는) 자리이다.

배꼽부분은 후손이 크게 발복 대혈로서 자손이 큰벼슬하고 재물을 쌓아 두고 모인다.

가슴 옆구리 부분에묘를 쓰면 아침에 장사지내고 저녘에 곡소리 나 금시패가지이다.

상상의 영수(靈獸)인 용의 존재는 많은 문명에서 발견된다.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거대한 뱀이나 도마뱀과 닮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ㆍ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몸에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에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매우 큰 눈과 긴 수염을 지니고 있는데 코와 입으로는 불이나 독을 내뿜으며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몸의 색깔은 녹색[綠], 붉은색[赤], 누런색[黃], 흰색[白], 검은색[黑] 등으로 나타난다. 

중국 위(魏)나라 때 장읍(張揖)이 지은 자전(字典)인 <광아(廣雅)>에는 

용이 아홉 가지 동물들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곧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 귀는 소[牛], 몸통은 뱀[蛇], 배는 큰 조개[蜃], 

비늘은 잉어[鯉], 발톱은 매[鷹], 주먹은 호랑이[虎]와 비슷하다고 되어 있다. 

또한 비늘은 81개이며, 소리는 구리쟁반[銅盤]을 울리는 소리와 같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구슬이 있으며, 목 아래에는 거꾸로 된 비늘[逆鱗]이 있다고 한다. 


용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날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박쥐와 비슷한 날개와 가시가 달린 꼬리를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한국에서도 용은 고대부터 풍운(風雲)의 조화를 다스리는 수신(水神)ㆍ해신(海神)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일찍부터 민간과 국가 차원에서 국가의 수호신이자 왕실의 조상신으로, 

그리고 농경을 보호하는 비의 신이자 풍파를 주재하는 바다의 신으로 

풍년(豊年)과 풍어(豊漁)를 기원하기 위해 숭배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인 551년 명산(名山)ㆍ대천(大川)의 용신(龍神)을 섬기는 팔관회(八關會)가 

국가 차원에서 처음 실시되었는데, 이러한 풍습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용(龍)에 관한 다양한 설화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용은 호국(護國)ㆍ호법(護法)의 존재일 뿐 아니라 불살계(不殺戒)를 깨치지 못했을 경우에는 

사람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독룡(毒龍)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바다와 강, 연못 등에 살며 사람의 모습이나 웅신(熊神) 등으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4세기 이후의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되는 사신도(四神圖)에서는 

용의 상징성에 대한 중국 문화의 영향이 확인된다.

 《훈몽자회(訓夢字會)》에는 용의 훈(訓)을 ‘미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용에 관한 고유어뿐 아니라 이무기에 관한 고유한 문화적 전통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뱀이 500년을 되면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물에서 500년을 지내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지역에 따라 이무기는 이시미, 영노, 꽝철이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 용에 관해 중국이나 불교의 영향과는 무관한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귀여리 마을 앞을 길게 감싸 주는 앞산(안산)의 모양은 

나무 위에 판판하고 안전한 큰 둥지를 틀어 만든 넓은 봉황의 둥지이며, 

마른 나무 가지에 해당된다. 


산맥이 일자로 쭉뻗어 사멸된 용이 생기혈을 죽이고

마른 가지로 둥지를 명확하게 한다. 

앞산은 관두들 서쪽 자락을 감싸고 마을 전체를 감싸는

편안하고 아담한 최고의 안산을 만든다.

학운소 뒤의 산들은 봉황이 꼬리를 오므리고 둥지를 엮는 형상이다. 

뒷산(관두들 주산, 현무)은 수려 단정하며 청명하고 아담하여

형세가 온중(穩重)하고 풍대(豊大)하니 

봉우리 앞 부분 쪽이 봉황의 부리, 눈, 머리에 속하여 

안동을 내려다 보며 멀리 명산들을 한 눈에 보는 위치에 있다.

중앙에 두개 능선은 날개와 다리, 

우측을 둥굴게 안으로 여러겹 주밀하게 중첩으로 감싼 능선(좌청룡)은 

봉황이 화려한 꼬리를 오므린 형상이다. 

우백호에 해당되는 산은 뒷산과 앞산이 둥굴게 연결해주는 모양으로 

전체를 감싸며 보국의 역할을 하여 장풍이 잘되고 기가 누설되지 않아 

안으로는 넓고 깊은 골자기를 형성하게 하여 생기가 흩어지지 않고 넘친다. 

앞산 건너편 앞 좌우로 둥근 알 모양(조산, 주작)의 산과 

관두들 동쪽(우측)은 봉황의 꼬리 모양의 산이 단정하게 있고,

앞산 끝자락은 동북에서 관두들 방향으로 흘러드는

물줄기 입수(入水)를 힘있게 판국(版國)을 가로 막아

좁은 수구(水口)를 형성하며 돌아 나간다. 

좁은 수구는 생기충만한 삶터가 되어 오랫동안 대물림할 수 있는 

생기보존 터이며 굳게 닫힌 수구는 중요하다. 

중심 택지의 터는 마을 이름처럼 넓고 평평하며 언덕이 잘 발달 되고 

야세 또한 아침에 일찍 해가 뜨고 늦게까지 해가 지지 않고 

밤에는 북쪽 하늘 방향에서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뜨고 

달빛과 별빛 또한 항상 환하게 비치고, 바람과 비가 차고 기후가 고르고 알맞다.

풍수가들이 지나갈 때 마다 감탄했다고 여러차례 들었던바 필자 또한 구서구석 분석해 본다.

또한 마을 택지에서 학가산과 상산 천등산이 한눈에 들어와 경치 또한 좋고 

산위의 전망은 이름난 여러 명산의 능선을 볼 수 있는 곳이라 더욱 느낌이 좋다.

봉의 부리 또는 벼슬 부분에 해당되는 곳에서 보면 

안산 너머 조산(안동 주변의 명산 청량산, 일월산, 갈라산, 팔공산, 주왕산 등)들로 가득차고 

조산들 아래 영양방향에서 오는 반변천 낙동강물이 

관두들 방향으로 래수(외래수)하여 득수하고 있다.


현재 철거한 의성김씨 이개파의 주손 큰 집(200년 넘음) 터가 

봉황모양으로 보면 봉황의 날개 안 다리 사이로 알을 품는 자리에 속한다.


*관두들 능선을 위성 사진으로 보는 다양한 모양의 형국


●  앞 뒷산 산의 중심 부는

心마음심(심장모양 - 사람의 감정과 관련 인격의 중심을 가진 소유자 배출)자와 

也어조사야(문장의 끝에 위치한다 하여 훌륭한 문장가, 학자를 배출. 혈穴 뒤에는 호乎자형의 사砂가 혈 앞에는 천天자형의 조안朝案이나 사격砂格을 요한다. 

두번째 획에 혈처이고 안산은 백호의 본신 자락에서 뻗어 나온다.)

선인독서형국(仙人讀書形局. 눈과 손에 혈처. 사업적 성공으로 부자가 되고 

세상에 종경 받는 인재 배출. 인재와 부자가 남. 옥책안玉冊安) 

신선이 책을 보고 있는 형국도 보인다.

(앞산의 긴 능선은 독서대, 뒷산을 둥굴게 감싼 양 능선은 양 팔을 벌려 오른팔을 독서대에 얹어 놓은 선인의 형상)


●  산의 전체를 아우르면

志뜻지(고매한 인품, 학식, 재질을 지닌 인물 배출)

走달릴주(? 인물 배출)

足발족(어느하나 부족함이나 모잠람 없는 재주를 가진 인물 배출. 정족鼎足 삼정승을 비유함) 등의 

다양한 한자 모양으로 보인다. 


특히 마음 심자(心)와 뜻지(志)자 모양은 써 놓은 듯 흡사하다.


●  길게 뻗는 앞산 능선은

선인(仙人:신선)의 지팡이(백성을 돌보는 지배자의 상징물 홀笏. 죽음과 삶을 손에 넣고 있는 의미. 

직관을 나타내는 에너지. 창조력의 불꽃, 상상 등과 관련 불의 성좌. 모험, 야망, 정열, 용기)로도 보이고 

금비녀 닮은 금채형(金釵形局. 금비녀 금쟁반 형국)

음식이 가득한 굽이 달린 접시(사람사이의 간격을 나타내는 척도. 백년회로. 인연) 같기도 하며

커다란 밥상 금쟁반 위로 옥구술이 굴러다니는 황금소반형의

금반형(金盤形局. 산해진미가 풍성하고 귀인들이 찾아와 부귀영화를 누릴 명당)은 

네개의 다리가 없어 금반형으로 볼 수 없다.


●  관두들 초입 우측 산은

구름,마(산우. 산약. 산에서 우연히 만났다. 산에서 몸을 보호하는 약) 네 덩이 닮은 모양이다.


●  관두들 동쪽 능선에 

상아(코끼리 어금니. 부와 권력을 의미), 뱀(지혜와 의술을 상징. 윤회를 상징. 생명력 불사를 상징. 

다산과 풍요의 상징. 사탄 마귀 상징. 토속싱앙 가택신 중 업신이라고하여 재복을 자져옴. 입과 머리에 혈처) 모양


모두 마을을 보호하여 바람을 막아 주며 다양한 모양의 상이 되여 좋은 형국을 만든다.


뒷산은 아래에서 보기에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뒷산 정상에 올라 보면

좌측 전면으로는 멀리 울퉁불퉁 청량산

청량산 우측으로 깔끔게 병치된 일월산

우측으로 흐르는 산맥 속에 선명하고 오뚝한 갈라산 봉우리 능선이 보이고

후면으로는 북북서로 겨울엔 봉우리에만 쌓인 눈이 영험함을 느끼게하고 

전면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안동의 진산 학가산(870m),

정북으로 마을 전체 이개리 주산인 상산(516) 쌍봉과 

이개리 좌청룡 응봉산(240m)이 긴 능선으로 남으로 뻗으며 

능선 뒤로 봉우리만 뒤로 오뚝 보이는 봉정사 뒷산 천등산(575m)이 있으며,

북서로는 상산에서 흐르는 능선 푯대산(250m)과 

학가산에서 흐르는 갈마령으로 가려진 뒤편에 보문산(643m)있고

서서남으로 상산에서 흐르는 이개리 우백호 매봉산(290m)이 가려 

하회마을과 새로운 경북도청의 뒷산 주산인 검무산(331m)이 숨어 있다.


맑은 날은 북북동쪽으로 봉수산(567m), 용두산(661m), 

투구봉(608m), 건지산(559m), 청량산(870m)과 

북동쪽 일월산(1,219m), 

청량산과 일월산 사이 뒤의 조산봉(857m), 왕모산(648m), 

통고산(1,067m), 일월산 우측 뒤의 검마산(1,017m)과 백암산(1,004m), 

동쪽으로 칠보산(810m), 포도산(748m), 

칠보산 앞에 겹친 와룡산(461m), 

포도산 앞에 겹친 아기산(589m), 

동남남쪽 갈라산(569m), 

동남쪽 주왕산(721m)과 팔각산(633m), 내연산(710m), 비학산(762m), 

갈라산 좌측 뒤 연점산(863m), 산지봉(890m)의 

그 앞에 겹쳐보이는 둔지산(402m), 기룡산(507m), 

임봉산(683m), 금학산(577m), 화부산(625m), 

우측 뒤 황학산(781m), 

황학산 뒤 면봉산(1,113m)과 보현산(1,124m), 

남쪽으로 의성 오토산(470m)과 화산(840m/연화봉800m), 

금성산(530m), 향로봉(326m), 팔공산(1,192m), 백자봉(368m), 

삼표당(443m) 등의 능선이 아득하게 파도처럼 펼쳐진다.


긴 산들의 너울 파도를 배경으로 내려 앉아 

아래로는 안동 소빰의 안동과학대학교 뒷산 대표산과 

옥동 등성이 건물와 좌측 마뜰(용상, 선어대)낙동강의 흐르는 물과 

그 사이로 안동의 강 남쪽 즐비한 아파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스쳐 가고 

겨울에는 양지 바르고 따뜻한 산 정상 능선 앞은 

바람 한 점 찾을 수 없이 온화하여 

겨울 뒷산을 오를 때면 

그곳에서 잠시 앉아 온기를을 즐기곤 하는 곳이다.

지대가 그리 높지 않으면서 발아래 안동을 품에 안는 듯한 전망과 

안동 주변의 높은 산들을 한 눈에 감상 할 수 있어 

벅찬 심장의 고동을 느끼도록 만족하는 곳이다. 

앞산이 낮으막이 가려주고 동쪽을 앞으로 두고 좌우측 산들이 

둥굴게 겹겹이 감싸주어 길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


목성수(혈앞을 횡으로 길게 지나가는 물)에 성질이 강직한 자손이 나고

수성수(굽이굽이 돌아 혈을 감싸고 들어오는 물)에 총명하고 수려함에 화목하고 집안에 재와 의식이 풍족하며 용진(龍眞)으로 과거에 쉽게 급제한다. 


* 관두들은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는데 

우측에는 동쪽의 길고 곧게 뻗은 진등 능선을 경계로 우에 농곡과 좌에 예수박골로 크게 나뉘어진다.

주택 좌향은 지형의 흐름상 서향 주택이 조화를 이루며 대문의 길한 위치는 남쪽 대문으로 건강과 재산이 모두 크게 발전한다. 

식구간에 화목하며 효자들이 나오게 된다. 

남동대문은 재산이 크게 일어나고 기운이 크게 빛난다.


관두들 좌측은 서쪽 갑골과 언덕능선으로 이루어져 주택 좌향은 지형의 흐름상 동향 주택이 조화를 이루는 

서사택(집터의 서쪽지역 위치)에 대문의 길한 위치는 해가 뜨기 시작하는 생기의 기운이 강한 

동북 방향(가장 강한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 방향이므로 넓고 바로 곧게 대문을 내기 보다 한번 굽어 나가며 

짧게 경사지고 좁은 듯 한 것이 좋으며 집 뒤에 느릅 나무를 심어 온갖 잡 귀신의 범접을 막아야 좋다)이면 

입신출세 건강 재산이 늘어나고 소년이 유명해지고 

북서이면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며 명예를 얻는다고 한다.


*관두들 좌측편(서쪽) 언덕에 택지 조성시 주의 : 

- 남향주택에 남동쪽 대문이면 집안 식구가 건강하며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하는 기운으로 가장 이상적인 주택이나 

택지 요건에서 가장 중요한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원칙이 깨진 뒤가 낮고 앞이 높아 보여 항시 불안한 곳이 되어 관두들 좌측편의 택지 조성은 동향주택에 적합하다.

- 동향주택이 마을 앞 논들이 있는 방향으로 지기가 취결되는 좌향이 된다.

  앞에 하천, 개울, 연못, 샘, 논 등 물이 있어야 산으로 부터 내려온 지기가 취결되고

  산의 음, 물의 양이 서로 음양교합 하여 산천생기가 모여 살기좋은 땅이 된다.

- 남향이라하여 앞에 산이 높으면 흉하다. 생기를 전달해주고 내려 올 수 있는 지맥(地脈)이 산을 따라 흐르므로 앞도 옆도 아닌 산이 뒤에 있어야 한다.

-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주택의 좌향(앞) 만들어 물의 기운을 받아 들이는 기능이 남향에서는 상실 될 수 있다.

- 특히 관두들 서쪽 산아래 남향주택은 골짜기를 바라봄으로 골 바람을 만나면 바람에 약한 생기가 흩어지고

  통풍(通風)에서 원할한 소통이되지 않아 바람이 거칠고 강하게 출입하면 모인 생기가 흩어져 사라지게 된다. 

- 기는 물을 만나 멈추고 물의 기운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므로 

이곳 남향에서는 물을 만나 올라오는 물의 기운을 얻지 못한다.

- 등 뒤에 산이 없어 허전하고 불안하며 버팀목 혹은 보호자 역할을 하는 뒷산(배산)이 우측에 있어 좌우 균형을 잃게 된다. 

- 우측 능선상(음택지에 적합)에 지으려고 산을 깎아 터를 만들면 배수진(전쟁에서 앞이 깊은 물이요 뒤가 적군이 몰려오는 막힌  형상)이 될 수 있고 

- 지형을 깎아내므로 자연에 순응하지 못해 천지의 이치에 맞지 않고 후손의 영위를 꿈꿀 수 없게 된다는 흉이 있다. 

- 깍아낸 집터는 그 부분만 평지이나 집앞 도로는 경사가 급한 곳이되어 물이 급하게 흘러 내려가

  지기가 모이지 못하고 소멸되고 수관재물(水官財物)이라 하여 물은 재산을 관장하는데

  물이 급하게 내려가면 재산도 역시 빠르게 빠져 나간다.

- 평평한 곳이 양택지가 되어야 하며 좌우 균형(좌향에서 좌측 또는 우측이 높낮이가 같은 형태)이 흐트러질 수 있다. 


- 토질은 비석비토(非石非土)의 생토(生)가 최고이다. 

  바위나 자갈 또는 왕모래 등 탈살(脫煞)이 덜 된 곳은 기가 억세고 혼탁하다.

  반면 푸서푸석하여 먼지나거나 질퍽한 땅은 생기가 없는 곳이다.

  돌 같은데 손으로 비비면 분가루처럼 미세하게 분해되는 입자가 고른 흙 

  홍황자윤(紅黃紫潤)한 오색토(五色土)가 생기가 뭉친 곳이다.

- 주변보다 높고 큰 집을 지으면 구설수에 휘말리어 불행을 자초하며 

옛말에 높은 집을 지으면 죽음에 가깝다고 하였다. 

  집터는 앞이 낮고 뒤가 높으면 진토라 하여 길하고 

  앞이 높고 뒤가 낮으면 초토라 하여 흉하다. 

  그래서 배산임수는 건강과 장수가 보장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 전고후저(앞이 높고 뒤가 낮은)는 항시 안정감이 없고 불안하여 

  지날수록 가산(家産)이 망하고 패절(敗絶) 한다. 

- 산 기슭의 경사진 집터를 잡는다면 대지를 깎아 평평하게 고르기보다 

  땅의 경사를 그대로 이용해야 한다. 

- 땅을 파헤치면 지기를 손상시켜 쓸모 없는 땅이 된다. 

  지기는 흙을 따라 흐르고, 흙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 산맥 또는 능선을 절개한 곳에 지은 집은 지맥이 지나는 곳으로 과룡처라 한다. 매우 흉하다.

- 좁은 집터에 큰집을 지으면 크게 흉한 것은 안전과 균형 잡힌 집을 말하고 조화와 질서를 말한다.


- 관두들 좌측편의 주택 남향은 골짜기의 맏 바람(낮에는 곡풍, 밤에는 산풍) 살풍을 피할 수 없으며 

  물과 바람이 충사(衝射)하므로 심한 즉 살상(殺傷)이 날 수 있다.

- 특히 여름엔 강한 햇빛으로 집안의 가구가 손상되고 음식이 빨리 상할 수 있고, 

  질병이나 급사 파산 등 변고를 초래 할 수 있다. 

- 양의 기운인 햇볕이 많이 들면 반사되는 빛까지 합치면 지나칠 정도로 양이되어 오히려 흉하다.

  그래서 남향(동사택)만을 선호하면 잘못된 배치가 될 수 있다. 

- 설사 북향이라도 햇빛만 잘 들면 된다. 

- 동향(서사택)이라도 집 앞이 탁 트여 있으면 양기를 충분히 받는다.

  앞이 높거나 너무 가깝게 있으면 오히려 응달이 되거나 산이나 높은 곳이 막아

  앞의 공간이 좁고 답답하여 양기를 충분히 받을 수 없다. 


- 땅을 깊게 파 암반위에 집을 지은 집은 기가 센 집이다. 

  지기가 쇠약한 터의 표현이다. 

- 따라서 비보 한다면 지표면 흙을 걷어내고 땅을 깊게 판 다음에 

  흙을 기 덩어리로 봄으로 땅 속에 석자 정도로 생토를 고르게 깐 다음 

  콘크리트 타설을 하고 골조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상처 입은 땅을 치료해 지덕을 발동시키는 비책이다.


*기타 택지 조성시 주의 : 

- 길지는 우선 양지(陽地) 바른 곳이다.

  인체는 생기(生氣)를 땅과 태양으로부터 받는데, 아침 햇빛은 이롭고 저녁 햇빛은 이롭지 않다.    

  그래서 동남향 집의 화초가 남서향 집의 화초보다 잘 자란다.

- 도로나 하천이 감싸는 듯한 형세 수룡환포(水龍環抱)는 매우 길한 터이다. 

  도로(道路)를 수룡(水龍)으로 보며, 물이 만나는 곳에 기(氣)가 모이듯 도로가 만나는 곳에 기(氣)가 모인다.

● 千山(천산)이 길 함은 하나의 水殺(수살)을 막을 수 없다. 즉

  산의 흉한 살보다 수살이 더욱 두렵고 무서워 우선 수살을 피해야 된다. 
  그만큼 물이 당장 위험하다는 뜻이며 자손에게 재앙이 미치는 산의 피해는 나중에 비보하거나 피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 산사태나 불에 타 죽는 사람은 없어도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아주 많은 이유도 그에 해당 된다.
- 九曲吉水(구곡길수/아홉번 굽이굽이 감돌고 감싸는 곳/정혈正穴)가 명당으로 유입하면 재상이 난다.
- 六谷九水(육곡구수/여러골짜기 물이 모여 합쳐 흘러 나가는 곳)가 모여서 聚會合襟(취회합금)이면 큰 부자가 난다 했다.
逆水一勺(역수일작)이면 가히 부자를 기약하니 이곳에 혈처를 찾아야 한다.
장구한 부귀를 원한다면 우선 길수가 현무의 뒤를 감고 도는 곳을 찾아야 된다는 뜻이다.
卯酉방에서 청정한 물을 얻으면 여자가 귀하고 子 午방에서 기세가 활발한 물을 얻으면 

   兵權(병권)을 쥔 장군이 난다는 뜻이다.

- 많은 자손을 얻으려면 長生方(장생방)에서 청정수를 얻어야 한다.

관두들 동쪽 언덕 농곡길 진등 능선, 노송숲 아래 우측 다랭이 논을 보며 걷고 싶은 길이다. 


파란 지붕 뒤에 마을의 좌청룡 응봉산은 토성사격(土星砂格)으로 거문토 사격이다.

산 정상이 일자(一字) 모양으로 평평한 것으로 산신(山身)에 지각(地脚)이 없는 거문(巨門) 토(土)와 

지각이 많은 녹존(祿存) 토(土)의 형태가 있다. 

거문 토 형태의 사격(砂格)은 귀(貴), 장수(長壽), 재물(財物)을 관장하고 

녹존 토성은 병권지상(兵權之象)으로 무(武)를 주로 관장한다.


관두들 동쪽 언덕 진등길 솔숲 능선


관두들 동쪽 언덕 가장곡 추원소 골짜기


관두들 서쪽 마을 입구, 초입 정자


관두들 서쪽 마을 초입 정자


관두들 서쪽 언덕 마을 좌측편 풍경


관두들 북북서쪽 안개 낀 날 학가산 방향


 관두들 앞산 능선 끝 자락 노송


 관두들 앞산 능선 끝 자락 노송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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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좌측편 골짜기 명당 전경과 농곡 다랭이


관두들 북북서쪽  학가산 정면


● 학가산은 거대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양백 사이에서 가장 우뚝하니 맹주 노릇을 하기 때문에 

예천, 영주, 봉화, 안동, 영양, 의성, 상주, 문경까지 빙돌아 가면서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하늘로 비상하는 학(학은 가장 높이 나는 새)

학가산(鶴駕山) : 두 갈래(영주에서 내려오는 내성천과 안동에서 내려오는 반변천 / 낙동강)의 물 사이에 있다.  

산세는 오관산(五冠山)과 삼각산과 흡사하나 다만 돌로 된 봉우리가 적다. 

아래에 풍산의 들이 있다. 

북부 사면(斜面)에서 내성천(乃城川)의 작은 지류들이 발원. 

남쪽 사면에는 안동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던 광흥사(廣興寺)가 있다.  

치마폭처럼 넓은 산자락과 머리에는 바위를 이고 있는 안동의 학가산은

산세가 신선이 학을 타고 노니는 모양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국사봉인데

정상에 서면 예천, 안동,영주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사봉 바로아래 능인 대사가 도를 딱던 불교 성지 능인굴이 마르지 않고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감로수를 제공 한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 왔을 때 쌓은 것이라는 학가산성이  남아 있다.


안동 쪽에서는 

*광흥사 - 천주마을 - 마당바위 - 신선바위 - 동학가산성 - 삼모봉 - 유선봉 - 국사봉(정상) - 

능인굴(불교성지) - 어풍대 - 서학가산성 - 상사바위 - 느르치 - 당재 - 복지봉 - 광흥사 코스

*광흥사 - 복지봉 - 당재 - 상사바위 - 서학가산성 - 국사봉(정상)

*광흥사 - 천주마을 - 마당바위 - 애련사 - 동학가산성 - 유선봉 - 국사봉(정상) 

*광흥사 - 천주마을 - 애련사 - 능인굴 - 국사봉(정상) 코스 등의 여러 길이 있다


예천 쪽에서는 산성리 산성마을 - 느르치 - 정상 코스가 있다  

정상에서 다시 예천 방면으로 하산하거나, 

정상 - 애련암 - 천주마을 - 광흥사 - 창풍으로  해서 안동으로 하산할 수 있다. 


*안동에서 자품리행 77번 버스이용 1일  4회 운행  

  안동 - 천주마을 2회(06:00-06:50/08:35-09:30) 

  안동 - 상백현(학가산 산행시 창풍 갈림길에서 하차) 2회(14:00-15:00/18:00-18:50)

*안동에서 석탑사(신전리)까지 신전리행 54번 버스 이용가능,1일 6회,   

*예천에서 산성마을까지 이동,1일 3회(산성리행 버스) 


학가산 정면


금체(금산, 金體, 금형산金形山, 투구봉, 노적봉 : 가마솥이나 바가지와 큰 종, 거북등 모양. 

달처럼 둥근모양을 엎어 놓은 형태. 사람이 서있는 것과 같은 솟은 모습, 벼 노적가리, 대표적 산 인왕산)

재물과 부와 관계되는 산형태, 기운이 맑으면 문신, 

기운이 탁하면 무신이 나온다 편안하고 힘이 넘침. 

주로 중간 부분에서 결혈이 많이 됨.

재물과 곡식을 쌓아 둔 모습과 같다하여 부봉사라고도 한다. 

(金)는 서쪽으로 계절은 가을, 색은 백색, 밝고 귀하며 

굴절하거나 흔들림이 없고 맑아 청백리 같은 인물이 태어날 형세이다.


학가산은 뒤에서 보는 토형산

(일자문성, 정상이 평탄, 결혈은 하층 평지돌처에 혈처가 된다. 

평평항 곳에서 불쑥 솟아 오른 곳에서 혈을 맺으면 명혈 된다는 것으로 불쏙 쏟아야 혈이 된다. 

산 정상이 단정방평 측면에서 보면 일자와 같으므로 큰 소가 누운 형상. 

큼직막한 기와집 형상. 초가지붕처럼 정상이 평평)과 같은 역할로 

크고 풍만할 수록 재물이 풍족하고 부귀가 크다. 

고급관리 배출 형세 


관두들 북쪽 상산 쌍봉


상산과  천등산(봉우리 끝부분)


**상산 쌍봉은 수형산(水形山), 우측에 천등산은 목형산(木形山) 

- 천마사 : 산의 모양이 하늘을 나는 용마(말 안장의 모습)와 흡사하다 하여 천마라 한다. 

  단정한 천마사가 정안에서 조대 하거나 귀인방 혹은 건방(乾方)과 오방(午方)에 솟았으면 속발 대귀 한다.

- 고축사 : 일명 展誥[전고]라 한다. 

  토성체의 일자문성 양쪽 끝에 화성체의  뾰족한 첨각[소뿔처럼 뾰족한 뿔]이 붙은 기이한 귀사이다.  

  이러한 고축사가 정안 또는 임관방위[포태법의 임관방을 말함]에 우뚝 서면 재산이나 부마가 기약 된다.

   때문에 고축사를 통칭 정승사(政丞砂)라 한다.

- 장하귀인사 : 수성체로 된 장막을 배경으로 그 아래에 귀인봉(貴人峰)이 솟은 것으로 정안(正案)이면 높은 벼슬이 기약된다.

- 장외귀인사 : 수성체로 된 장막뒤에 솟은 귀인봉(貴人峰)으로 정안(正案) 또는 귀인방에 솟으면

  귀현(존귀하고 벼슬이나 명성, 덕망 따위가 높음. 또는 그런 사람)이 귀약 된다.


●  목형산(木形山) : 산의 정상 뾰쪽한 봉오리가 하나로 이루어진 산, 삼각형산, 대표적산은 서울북악산, 

  학자 등 고귀한 인품의 인재 탄생 지세지만 재물에 약하다.

  목산이라고도 합니다. 산의 정상부가 붓의 끝부분같다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하고 첨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문을 숭상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아마 목형산이 있는 지역의 특징이 집터를 가까이 잡기에 부담스럽지는 않은데

농경지는 좁으니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을듯 합니다.

  그 좋은 풍경을 가까에서 보면서 시심도 일어나구요. 

  서울의 북악산이 목산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상산

- 상산 쌍봉 수려하고 단정하며, 청명하고 아담하며 한옥의 지붕 같이 아름답다. 

전설(상산 아래 깊은 우물에서 용마가 나 이개리에서 귀가 열리고, 명리에서 울고, 막감우에서 죽었다.)에 나온 용마는 

아마 쌍봉의 능선 모습이 안장과 닮아서 만들어졌을 것이라 예상한다.

수형산(水形山, 수산)은 물결 흘러가는 모습은 禮예, 물결치듯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산,

리더보다 예술가들이 나타날 만한 형상,청하면 문관, 탁하면 간사한 사람이 난다고 함,

평야지역의 전라도에 수산이 많음, 才재를 주관. 예재와 미모를 겸비한 후손 배출의 길상. 

결혈 지점은 산의 끝 지점에서 산의 기운이 뭉쳐져 혈이 된다.


 학가산과 우측에 상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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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무산(마을에서 보이지 않지만 안동에 올 경북 도청의 주산) 가는 길에 한 컷


이개리 위성 사진

- 사방이 성곽을 두른 듯 산으로 둘러 쌓이고

자락마다 오목하게 당판이 되어 있어 여러 소명당이 있는 마을이다.

- 다른 마을로 향하는 길이 모두 내려가야하는

다소 고지대에 위치한 특별한 지형이다.

- 붉은 색 선(위성사진 속 붉은 선)을 따라 산 능선이 형성되어

중심 내명당이 넓고 길죽하며 

마을 입구는 좌우 산줄기로 겹겹이 교쇄하여 가려주어

좁은 입구를 만들고 있다.

- 마을 상단 중심의 B 부분 우측 능선이 

소가 누은 형국(소가 누워 먹이를 되새김질하는 듯한 형국, 소의 먹이가 되는 풀 무덤 같이 생긴 산)

와우형(臥牛形)으로 와우실이다.

보통 뿔, 코, 꼬리, 젖, 배꼽(장수에게 적합한 혈자리)눈썹 사이 등의 부분이 혈자리이며 

누워서 먹으므로 인물보다 큰 부자(나라를 경영할 큰 인물)가 배출될 터이나 자손은 적다고 본다. 

명당을 너무 요란하게 꾸민다면 지기의 발동이 약해지며 늦어진다. 

외양간은 깨끗하고 소박하면 충분하다. 

만약 치장하면 소가 오히려 불만을 느껴 움츠리기 때문이다.

- 마을 전체는 밝은 달빛 아래 비단을 펼쳐 놓은 형세인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의 명당이다. 

입구는 닫힌 듯하나 그 속이 넓으니

기운이 양명해 이름을 날릴 귀인과 부자를 낼 터이다. 

- 산에 바위와 돌이 없어 살기가 없고

산들이 뾰족 솟아 있지 않고 두리둥실하여

떠가는 구름이 흐르는 물처럼 뻗어 하늘에 닿아 있는데 

흰구름이 둥실 떠다니니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산이라 할 수 있다.

- 상산 쌍봉을 주산으로 하고

좌청룡 응봉산 능선이 왼쪽을 감고

우백호 매봉산(명리 독점 앞산)이 마을 우측을 휘감아 돌며 

옥녀봉(바가지 모양의 조그마한 둥근 봉우리)으로 연결되어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넓고 평평한 언덕으로 되어 있다.

- 흙이 두텁게 덮여 있고 비옥해 일반인들이 살기에 좋다. 

땅의 기운이 강하고 양기 또한 왕성해 음풍농월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 마을의 안산은 교리의 목형산에 해당하는 대표산(大瓢山)이 될 듯하다. 

(木)은 수직상승(垂直上昇)하는 기운을 지녔다. 

목형산 중에서도 산의 정상부가 마치 붓의 끝처럼 뾰족한 것을 문필봉(文筆峰)이라 한다. 

목형산의 영향을 받으면 총명하고, 문필과 학문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된다.


봉정사 위성사진

-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으로 작명(큰 새 즉 봉황을 닮은 천등산과 지세), 교쇄명당 최상격 대부대귀이다. 

닫힌 와혈 藏口窩穴(장구와혈)로서 백호가 안산(본신안산)으로 조산이 보이지 않고 

청룡과 백호 안산이 겹겹이 에워 쌈, 절터는 봉황이 알을 품은 봉황포란형 형국으로 

산지가람 형태 계단형으로 자리잡은

가람(伽藍, 승가람마 僧伽籃摩의 줄임말로 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 배치(配置) 형태이다. 

절 좌우측 주위로 냇물이 흐르도록 하여 중생이 사는 곳과 절지역을 구분했다. 

또한 좌청룡 부분이 약하여 좌측면에 나무들로 비보되어 있다.


천주마을과 광흥사

- 천주마을은 학가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여럿 모여 중심이 되는 곳이 되어 거미줄을 친 형상이다.

 하늘거미가 앞산 복지봉과 뒷산 학가산에 거미줄을 치면 중앙이 되는 마을로

이 마을에 살면 식복은 저절로 해결된다고 한다.

형국이 마치 거미가 줄을 치고 사는 듯한 형국이라고 해서 천주라고 부른다.

- 광흥사는 학이 하늘 높이 날아 오르려는 것처럼 날개를 활짝 펼친 모양에 해당한다. 

이곳에다 절을 지으면 넓게 일어 난다고 하여 광흥사라 이름하였다. 

안동 제일의 사찰로 규묘가 컸다고 한다. 

좌청룡 우백호가 잘 발달하여 장풍을 하고

우백호가 안산이 되는 본신 안산으로 혈처는 젖가슴과 배 부위이다.

중심에 낮은 능선이 길게 뻗어 적당한 몸체가 발달하여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형국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의 길지이다. 

학가산은 금형체산(엎어 놓은 바가지 형국)에 속하나 바로 아래  광흥사에서 보면 

학가산의 불꽃이 타는 형태의 뾰족한 암반 바위 끝만 드러나

학가산에 숨은 화형산의 화기가 드러나 있다. 

하지만 뛰어난 통찰력과 예술적인 기질을 가진 인물이 날 좋은 형국이 함께 있다.

혈 앞 안산에 조 또는 고품(庫稟 창고 모양의 산)형의 

사격(사가 없으면 쥐가 숨을 장소가 없어서 매나 솔개에게 채이던가 또는 굶어 죽게 될 것으로 본다)이 

있어 재물이 모이고 자손을 번성하게 낳게 되는 형세이다.

학가산 좌측 아래 예천 산성리 마을은 상사바위를 중심으로 올려다 보면 

뾰족한 바위의 불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 화형산으로 화기가 충만한 곳이다.


● 해우소 자리가 명당이라고하나 사당 앞이나 절뒤에 묘를 쓰면 패가한다.

- 사람보다 기가 센 곳이다. 생기를 전달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

- 지기(정기)가 사람을 이기는 곳

- 생기보다 기가 센 곳

- 음기가 강한 곳(음침하고 찬기운이 감도는 곳)

- 양기가 강한 곳(눈부시고 더운기운이 감도는 곳)

- 기후차가 심한 곳 

- 터의 높낮이가 급한 곳(지도에서 등고선이 조밀한 곳)

- 산의 뒷쪽(가파른 등쪽/앞쪽은 인자한 덕을 지녔지만 사람을 내치는 냉정한 기)

- 장수하는 나무를 심으면 기가 세진다고 한다.

- 나무가 잘 자라지 않고 짐승들이 사나운 곳

- 여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 시끄러운 곳(기가 세지며 귀신이 모여든다)

- 방향으로는 정동, 정남, 정서, 정북쪽은 터가 센 곳

- 강력한 기가 작용해서 땅의 지기를 누루거나 상하게하는 곳

-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 들며 기를 밟아 주어 지기를 눌러야 하는 곳

- 지기를 누르는 방법으로는 시장처럼 사람들이 드나들며 밟아 주는 방법이 있다.

- 특히 사찰이나 신전, 재단, 성황당, 공동묘지, 전쟁터, 교회, 군부대, 흉가  등이 이에 속하며

오래 머무르는 것은 좋지 않다.

- 기가 센곳은 일반 사람이 있기에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이 심신의 안식을 위해 잠시 찾아 기를 충전하기에 적합한 곳

- 기수련하는 사람, 승려 등이 아니라면 좋지 않다.

- 기가 센 곳에 터를 누르기 위해 사찰 또는 석탑(압승/무거운 돌)을 세우기도 한다.

- 비보의 방법 : 약한 곳에 나무를 심고, 끊어진 곳에 산을 만들고, 센 곳에 절을 세우고, 지명 이름을 바꾸고,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연못을 파고, 상극이 되는 조형물을 세워 마주보게 하고, 

  단절된 산맥을 다시 잇고, 고여있는 물을 흘러가게 하여 생기를 되찾게 한다.

- 아무리 센 터라도 사람에 따라 좋은 땅이 될 수 있고, 센 기를 휘어잡지 못해 짓눌릴 수도 있다.

- 사찰이 있는 터는 무조건 명당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절터로서 명당이지 집터로서 명당은 아니다

   다시말하면 기가 센 땅이다. 

  명승이 배출된 곳은 더욱 그러하다, 명승에게 명당이지 보통 사람은 기에 짓눌릴 수 있다.

- 한여름에 손이 실릴 정도로 찬물이나오는 곳은 기운이 센 곳으로 가산을 허비하게 된다.

 (기가 적외선, 정전기, 자기, 이온류 등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설)


● 기가 약한 곳

- 모래 땅

- 병원

- 조용한 곳(도서관)

- 허한 곳

- 기의 소모가 큰 곳

- 우중충하고 검은 곳


●  부의 상징 금형산(금산, 금형체산) : 아주 귀한 상으로 부귀공명과 충정, 결실, 강인한 성격을 뜻함, 

만일 산세가 탁하여 빼어나지 못하면 도적이나 부랑자가 나올 수 있다.

엎어 놓은 큰종, 둥그스름한 반달모양의 가마솥의형상이라면 훌륭하다.

평평하면 길하고 구불구불하면 흉하다, 

산면이 풍부하고 평정하면 길하고 경사지면 흉하다, 

산두가 둥글고 원만하면 길하고 부서지고 깨져있으면 흉하다

산허리가 둥글고 풍요로우면 길하고 뾰족하면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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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충만하여 사람이 비옥하고

산이 맑아 사람이 고귀해지고

산이 돌아들어 사람들이 모여살고

산이 길면 사람이 용감해지고

산이 밝아 사람이 지혜로워지고

산이 순하고 다정해 사람이 효성스러워졌다.

산이 후덕하여 사람이 인자해졌다.

그래서 산이 사람을 만들었다.


산이 수척하면 사람도 굶주리고

산이 부서지면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 생긴다.

산이 달아나면 사람들도 떠나고

산이 짧으면 사람도 비굴해진다.

산이 음습하면 사람도 미련해지고

산이 배반하면 사람도 서로 속인다

산이 급하고 깎이면 사람이 편협되고

산이 날카로우면 사람이 사납고

그래서 산이 사람을 죽였다.




*** 봉황(鳳凰) : 상서롭고 고귀한 뜻을 지닌 상상의 새.
-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했던 상상의 새로 기린·거북·용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여겼다.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그 생김새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설문해자 說文解字≫에는 봉의 앞부분은 기러기, 뒤는 기린, 뱀의 목, 물고기의 꼬리, 황새의 이마, 
원앙새의 깃, 용의 무늬, 호랑이의 등, 제비의 턱, 닭의 부리를 가졌으며, 오색(五色)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악집도 樂汁圖≫에는 닭의 머리와 제비의 부리, 뱀의 목과 용의 몸, 기린의 날개와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동물로 봉황의 모양을 묘사하고 있다. 

≪주서 周書≫에는 봉의 형체가 닭과 비슷하고 뱀의 머리에 물고기의 꼬리를 가졌다고 하였다. 
이처럼 봉황의 모양은 한결같지 않다.

그러나 상서롭고 아름다운 상상의 새로 인식된 것만은 확실하다. 
봉황은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서 사해(四海)의 밖을 날아 곤륜산(崑崙山)을 지나 
지주(砥柱)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 깃을 씻고 저녁에 풍혈(風穴)에 자는데, 
이 새가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고 한다.

그래서 봉황은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천자가 거주하는 궁궐문에 봉황의 무늬를 장식하고 그 궁궐을 봉궐(鳳闕)이라고 했으며, 
천자가 타는 수레를 봉연(鳳輦)·봉여(鳳輿)·봉거(鳳車)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천자가 도읍한 장안(長安)을 봉성(鳳城)이라 하였고 궁중의 연못을 봉지(鳳池)라고 불렀다.

이처럼 봉황이 천자의 상징이 된 까닭은 봉황이 항상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 나타난다고 믿어 
천자 스스로가 성군(聖君)임을 표방한 데 연유한다. 

한유(韓愈)의 <송하견서 送何堅序>에서는 “내가 듣기로 새 중에 봉이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吾聞鳥有鳳者 恒出於有道之國).”라고 했다.

또, ≪순자 荀子≫ 애공편(哀公篇)에는 “옛날 왕의 정치가 삶을 사랑하고 죽임을 미워하면 
봉이 나무에 줄지어 나타난다(古之王者 其政好生惡殺 鳳在列樹).”라고 하였으며,

 ≪춘추감정부 春秋感精符≫에는 “왕이 위로 황천을 감동시키면 난봉이 이른다(王者上感皇天 則鸞鳳至).”라고 하였다.

≪죽서기년 竹書紀年≫에는 황제(皇帝) 57년 추칠월 경신에 봉황이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고, 

≪백호통 白虎通≫에는 “황제시절에 봉황이 동원(東園)에 머물러 해를 가리었으며 항상 죽실(竹實)을 먹고 오동(梧桐)에 깃들인다.”는 기록이 있다.
황제시절 뿐 아니라 요(堯)·순(舜)·주(周) 때에도 봉황이 나타나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중국 고대에는 성군(聖君)의 덕치(德治)를 증명하는 징조로 봉황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 나라 고대에는 봉황에 대한 신성관념이 중국처럼 강하지 않은 듯하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봉황에 대한 신성관념이 발견되지 않고, 
≪고려사≫ 악지(樂志) 당악조(唐樂條)에 악관이 노래하는 가사 중에 봉황이 등장한다.
<동풍보난사 東風報暖詞>에 ‘봉궐(鳳闕)’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오양선 五羊仙>에 ‘봉황내의(鳳凰來儀)’라는 말이 나온다.
<오양선>은 군왕을 송수하는 무곡(舞曲)으로서 당악(唐樂)의 영향을 받아 봉황이 성군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년환 萬年歡>·<감황은령 感皇恩令>·<화심동 花心動> 등의 노랫말에도 봉황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선적(仙的)인 분위기와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봉황은 고려조에 이미 중국음악의 전래와 함께 중국에서와 같은 의미로 인식되었다.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봉황은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는 의미로 노래나 춤에 쓰였다. 
조선 초기에 윤회(尹淮)가 개작하였다는<봉황음 鳳凰吟>은 송축가(頌祝歌)로서 조선의 문물제도를 찬미하고 왕가의 태평을 기원한 노래이다.

또한, ≪세종실록≫ 악보(樂譜)에 수록된 <봉래의 鳳來儀>는 궁중무용으로서 
조선조 궁중에서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추던 춤이었다.

이 무용은 당악과 향악을 섞어서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태평성세를 찬양하는 의미로 추어졌다. 
이처럼 조선조 궁중의 가무 명칭에 봉황이 들어간 것은 옛날 순(舜)임금이 태평지치를 이룩하고 ‘소소(簫韶)’라는 음악을 지어 
연주할 때 봉황이 와서 놀았다는 고사에 따라 군왕의 성덕을 찬양하는 의미로 쓰였음을 말해 준다.

또한, 봉황은 천자를 상징하는 새라는 점에서 조선왕실이 중국의 제실(帝室)과 대등하다는 의식을 보여주는 점이기도 하다.
봉황은 새 중의 으뜸으로서 고귀하고 상서로움을 나타낸다. 
그래서 봉황의 문양(文樣)이 건축·공예 등에 두루 쓰이었다. 

전각(殿閣)의 기둥 머리에는 ‘봉두(鳳頭)’라고 하는 봉황의 머리 모양을 조각한 꾸밈새가 쓰였고, 
공예에는 봉황문양을 장식한 장롱인 ‘봉장(鳳欌)’이 있다.

그밖에도 봉황은 여러 가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공주가 시집갈 때 예장(禮裝)으로 띠는 비단 띠에 금박으로 
봉황무늬를 새겨 ‘봉대(鳳帶)’라고 하였고, 비녀 머리에 봉을 새긴 것을 ‘봉잠(鳳簪)’이라고 하였다.

또한, 봉황의 날개처럼 대나무로 만든 악기인 ‘봉소(鳳簫)’가 있고, 봉황새의 꽁지 모양으로 만든 부채로서 ‘봉미선(鳳尾扇)’이 있다.
봉황은 여인들의 수(繡)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봉황을 수놓은 베개를 ‘봉침(鳳枕)’이라고 하는데,  
바늘을 조상하는 <조침문 弔針文>이라는 글에 “난봉과 공작을 수놓을 제”라는 구절이 있음을 보아 
봉황은 우리의 생활 속에 고귀한 것의 상징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봉황새는 자웅(雌雄)이 서로 의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지었다는 
<봉구황곡 鳳求凰曲>이 구애(求愛)의 악곡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봉황은 남녀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속담에 ‘봉 가는 데 황(凰)이 간다.’, ‘봉이 나매 황이 난다.’라는 말은 사랑하는 남녀관계나 천정연분을 의미한다.

고전소설 <이대봉전>은 태몽에 봉황 한쌍이 등장하여 남녀 주인공의 탄생을 예시하는데, 
봉의 꿈을 꾸고 탄생한 남주인공 이대봉과 황의 꿈을 꾸고 탄생한 여주인공 장애황의 결연담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봉황은 죽실(竹實:대나무 열매)을 먹고 살며 오동나무에 깃들인다.
이러한 봉황의 생태와 관련하여 <사랑가>에 “단산 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숲을 넘노는 듯”이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봉황은 지절(志節)이 굳고 품위를 지키는 새로 알려져 있다.
 ‘봉은 굶주려도 좁쌀은 쪼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그것을 말해 준다. 
봉황은 새 중에 으뜸으로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닭의 새끼 봉이 되랴.’,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 있다.’라는 속담에서 닭이 보통사람을 나타낸다면 봉은 뛰어난 인물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시조에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울밑에 벽오동 심어 봉황을 보렸더니/
봉황은 아니오고 날아드니 오작이로다/
동자야 저 오작 쫓지마라 봉황이 앉게.”라는 작품이 있다. 
설화에는 봉이 김선달의 일화로 알려진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김선달에게 닭을 봉이라고 속이는 닭장수가 있었다.

김선달은 짐짓 속는 체하고 그 닭을 사서 관가에 바치고 사실을 관장에게 말했다.
 닭 장수는 혼이 나고 김선달은 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우리 문학에 등장하는 봉황은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것의 표상임을 알 수 있다.

*** 용(dragon, 龍) : 동ㆍ서양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거대한 뱀을 닮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신성한 힘을 지닌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지지만 
기독교 문명에서는 악과 이교(異敎)를 상징하는 퇴치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 용의 형상 : 상상의 영수(靈獸)인 용의 존재는 많은 문명에서 발견된다.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거대한 뱀이나 도마뱀과 닮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ㆍ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몸에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에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매우 큰 눈과 긴 수염을 지니고 있는데 코와 입으로는 불이나 독을 내뿜으며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몸의 색깔은 녹색[綠], 붉은색[赤], 누런색[黃], 흰색[白], 검은색[黑] 등으로 나타난다. 
중국 위(魏)나라 때 장읍(張揖)이 지은 자전(字典)인 <광아(廣雅)>에는 용이 아홉 가지 동물들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곧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 귀는 소[牛], 몸통은 뱀[蛇], 
배는 큰 조개[蜃], 비늘은 잉어[鯉], 발톱은 매[鷹], 주먹은 호랑이[虎]와 비슷하다고 되어 있다. 
또한 비늘은 81개이며, 소리는 구리쟁반[銅盤]을 울리는 소리와 같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구슬이 있으며, 목 아래에는 거꾸로 된 비늘[逆鱗]이 있다고 한다. 
용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날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박쥐와 비슷한 날개와 가시가 달린 꼬리를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 용의 유래 : 용을 나타내는 한자 ‘용(龍)’은 일찍이 갑골문(甲骨文)에서도 발견되는데 
뿔과 큰 입, 수염을 지닌 머리와 뱀을 닮은 긴 몸의 형상을 본뜨고 있다. 
영어의 ‘드래곤(dragon)’이나 라틴어 ‘드라코(draco)’는 그리스어 ‘드라콘(δρακων)’에서 비롯되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커다란 뱀이나 도마뱀ㆍ악어ㆍ고래 등 바다나 호수ㆍ하천 등의 물속에서 생활하는 
큰 동물들을 뭉뚱그려서 드라콘이라고 불렀다.

- 용의 상징적 의미 : 상상의 동물인 용의 상징적 의미는 지역이나 문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거대한 뱀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이는 원시종교에서 부활과 재생의 힘을 지닌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로 숭배되던 뱀이 
신격화하여 형상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 (1) 고대 인도 : 인도 신화에서 거대한 뱀의 형상을 지닌 ‘나가(Naga)’는 
지하세계에서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용왕(龍王)으로 표현된다. 

《법화경(法華經)》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난타(難陁), 발난타(跋難陁), 사가라(娑伽羅), 화수길(和修吉), 
덕차가(德叉迦),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 마나사(摩那斯), 우발라(優癖) 등 팔대용왕(八大龍王)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왕은 강과 호수ㆍ바다를 지키는 물의 신으로 겨울에는 지하 깊은 곳에서 살다가 봄에는 하늘로 오른다. 
천기(天氣)를 다스리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용왕이 화가 나면 가뭄이 들고 그 화를 달래야만 비를 내려준다고 여겨졌다.

- (2) 중국 : 중국에서도 용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신이(神異)한 영수(靈獸)로 여겨졌다.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에서는 용을 기린[麟]ㆍ봉황[鳳]ㆍ거북[亀]과 함께 ‘사령(四霊)’의 하나로 꼽고 있으며,
 《주역(周易)》의 <문언전(文言傳)>에는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고 기록되어 있다. 
용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하나로 ‘진(辰)’으로 표현되는데, 십이지에서는 유일하게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의 고대 점성술에서는 용을 백호(白虎)ㆍ주작(朱雀)ㆍ현무(玄武)와 함께 
성좌(星座)를 나타내는 동물로 신성시하여 동쪽의 7가지 별자리인 칠수(七宿)를 청룡(靑龍)이라 하였다. 
용은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한 자연력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모든 동물들의 왕으로 여겨졌다. 
용은 농사에 영향을 미치는 비와 가뭄ㆍ홍수 등을 다스리는 존재로 숭배되어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용의 형상을 본떠 춤을 추면서 기우제를 지냈다.

- (3) 한국 : 한국에서도 용은 고대부터 풍운(風雲)의 조화를 다스리는 수신(水神)ㆍ해신(海神)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일찍부터 민간과 국가 차원에서 국가의 수호신이자 왕실의 조상신으로, 
그리고 농경을 보호하는 비의 신이자 풍파를 주재하는 바다의 신으로 
풍년(豊年)과 풍어(豊漁)를 기원하기 위해 숭배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인 551년 명산(名山)ㆍ대천(大川)의 용신(龍神)을 섬기는 
팔관회(八關會)가 국가 차원에서 처음 실시되었는데, 이러한 풍습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용(龍)에 관한 다양한 설화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용은 호국(護國)ㆍ호법(護法)의 존재일 뿐 아니라 불살계(不殺戒)를 깨치지 못했을 경우에는 
사람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독룡(毒龍)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바다와 강, 연못 등에 살며 사람의 모습이나 웅신(熊神) 등으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4세기 이후의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되는 사신도(四神圖)에서는 용의 상징성에 대한 
중국 문화의 영향이 확인된다. 
《훈몽자회(訓夢字會)》에는 용의 훈(訓)을 ‘미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용에 관한 고유어뿐 아니라 이무기에 관한 고유한 문화적 전통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뱀이 500년을 되면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물에서 500년을 지내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지역에 따라 이무기는 이시미, 영노, 꽝철이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 용에 관해 중국이나 불교의 영향과는 무관한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 (4) 이집트와 유럽 : 지중해 지역과 유럽 신화에서 용은 동아시아와는 달리 수신(水神)이나 해신(海神)으로서의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큰 뱀이 순환과 재생을 낳는 우주적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인간 세계와 대립되는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뱀의 형상을 닮은 히드라(Hydra)나 키마이라(Khimaera)와 같은 괴물의 존재가 상상되기도 했으며, 
뱀과 용도 죽음과 파괴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페니키아 신화에서 비롯된 레비아단(Leviathan)은 《구약성서》의
 <욥기>에서 뱀과 악어와 같은 형상으로 입과 코로 불과 연기를 내뿜는 거대한 바다 괴물로 묘사되어 있다. 
<창세기>에서도 나타나듯이 유대의 전통에서는 뱀은 인간을 유혹하는 죄악의 근원이자 간계가 깊은 동물로 인식되었는데,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에서도 용은 천사들과 전쟁을 벌이는 악마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기독교의 확산과 더불어 용은 신의 은총을 방해하는 악마와 이교(異敎)의 상징으로 여겨져 천사와 기사에게 퇴치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가 백마를 타고 
인간을 제물로 요구하는 용을 퇴치한 전설이 널리 유행하였다.
각 민족의 고유한 전승에서는 용의 모습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용은 지하세계에 살면서 보물을 수호하거나 인간에게 유익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용사에게 지혜와 능력을 전해주는 존재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기후를 다스리는 농경신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용은 기사와 성인(聖人) 이야기에 폭넓게 등장하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용의 상징적 의미는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 용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
한국ㆍ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용은 농업과 어업에 영향을 끼치는 기후의 변화와 풍운의 조화를 다스리는 존재로 인식되면서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한 힘과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나아가 용은 그러한 자연적 원리가 실현된 인간 사회의 정치적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용은 우주 만물의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면서 제왕(帝王)의 권력을 상징하는 동물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금을 나타내는 말에는 용(龍)이라는 글자가 쓰였는데, 
예컨대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임금이 앉는 자리는 용상(龍床), 임금이 타는 수레나 가마는 용여(龍輿)ㆍ용가(龍駕)라고 불렀다. 
임금이 입는 옷은 용포(龍袍), 임금의 지위는 용위(龍位)라고 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하고 건국 시조들을 찬양하기 위한 서사시를 지으면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고 불렀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稅難編)>에는 용의 목 밑에는 비늘이 거꾸로 나 있는 역린(逆鱗)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잘못 건드리면 용이 노하여 사람을 죽이게 된다고 하여 
임금의 분노를 비유적으로 ‘역린’이라고 표현하였다.
용 가운데에서도 중앙을 나타내는 황룡(黃龍)이 제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쓰였고, 
왕실의 건물이나 의복, 용품 등에는 황룡이 그려졌다. 
그런데 신분에 따라 발톱의 개수를 다르게 하기도 했는데, 
제왕은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五爪龍)을, 태자나 제후왕은 발톱이 네 개인 사조룡(四爪龍)을, 
세손(世孫)은 발톱이 세 개인 삼조룡(三爪龍)을 써서 구분하기도 했다. 
용을 그릴 때에도 오조룡은 왕실에서만 그릴 수 있었으며, 
민간에서는 사조룡이나 삼조룡만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 고종 때에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에는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七爪龍)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강화된 왕권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해석된다.
한편, 용이 동물의 왕으로 여겨지면서 뛰어난 사람이나 성취를 나타내는 데에도 용(龍)의 상징적 의미가 활용되었다. 
날랜 준마(駿馬)를 용구(龍駒)라고 부르며, 
입신출세하는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좋지 못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속담이 있으며,
어떤 사람의 용모나 처지가 좋아졌을 경우에 “용됐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용이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되어 용꿈을 꾸면 재수가 좋다는 믿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민화(民畵)에서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구름과 함께 표현하는 ‘운룡도(雲龍圖)’가 
많이 그려졌으며, 용꿈을 그림으로 표현한 ‘몽룡도(夢龍圖)’도 전해진다.
또한 용의 신통한 능력은 용이 지니고 있는 여의주(如意珠)에서 비롯되어, 
사람도 여의주를 얻으면 용처럼 온갖 신통력을 부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일이 뜻한 대로 잘되어 가는 것을 “여의주를 얻었다”는 것에 비유하여 나타내기도 한다.
민간에서 용은 물을 관장하는 수신이자 풍파와 물고기들을 다스리는 바다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마을마다 우물이나 샘에 용신이 거주한다고 여기고 용왕굿이나 용신제(龍神祭)를 지냈다. 
물이 풍부한 연못이나 우물은 용못[龍沼]이나 용우물[龍井]이라고 불렸으며, 
임신을 기원하며 음력 정월 보름에 새벽 일찍 남보다 먼저 우물의 물을 떠다 먹으려 하는 ‘용알뜨기’의 풍습도 있었다. 
그리고 겨울에 연못의 얼음이 깨지는 방향으로 다음해 농사를 점치는 ‘용경(龍耕)’의 풍습도 있었다. 
이처럼 농경사회에서 용은 생명과 풍요를 주재하는 자연신으로 숭배되었다.
고기잡이를 하는 어민이나 항해를 하는 뱃사람들은 바다 밑의 용궁에 사는 용왕이 물고기와 파도를 다스린다고 여겼다. 
그래서 용왕이 어민들에게는 특히 중요한 자연신으로 숭배되어 마을마다 정기적으로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용왕제를 지냈다. 
용왕은 해신(海神)이자 바람을 다스리는 풍신(風神)으로 여겨졌고 배가 난파하는 것은 용왕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또한 용왕이 사는 용궁에는 온갖 보물이 가득하다고 상상되어 용왕의 가족을 구해주어 복을 받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또한 바다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라고 해서 ‘용오름’이라고 불렀다.
풍수지리설에서도 용의 상징적 의미가 쓰였다. 
풍수지리설에서는 산의 줄기를 용이라고 했는데, 
지형에 따라 용이 길룡(吉龍)ㆍ흉룡(凶龍)ㆍ생룡(生龍)ㆍ사룡(死龍)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형과 산세를 잘 살펴서 흉룡(凶龍)과 사룡(死龍)을 피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수신(水神)인 용은 건축물의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기와의 무늬나 
용마루의 용두(龍頭) 등으로 표현되어 방화신(防火神)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용이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전투의 수호자로 여겨져 일찍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방패 등에 용의 문양이 쓰였다. 
북유럽의 바이킹도 방패와 뱃머리에 용의 머리를 새겨 넣었다. 
오늘날까지도 용은 왕실 등의 문장(紋章) 등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영국의 웨일즈에는 켈트족의 수호신인 적룡(赤龍)이 백룡(白龍)을 물리친 전설이 전해지며, 
날개가 달린 적룡(赤龍)은 오늘날까지도 웨일즈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