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의성 사촌마을 만취당을 찾아서

오토산 2017. 5. 22. 21:36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p://blog.daum.net/uh512/10510

 

의성 사촌마을 만취당을 찾아서

 

 

둘이 만나 한가정을 이루는 부부의 날이자 햇볓이 풍부해 만물이 생장하는 小滿

5월21일 도산서원 거경대학에서 버스 2대를 나누어 타고 의성지역(사촌.산운)으로

 체험수련을 떠나 첫번째로 사촌마을 만취당에서 안동김씨 도평의공파의

 유래설명과 특강이 있었다.

 

사촌마을 역사는 정확히 알수없으나 신라시대 고운 崔致遠선생의 장인 羅千業이

살았다고 전해져 신라중엽부터 형성되었음으로 추측되고 안동김씨가 정착한 것은 

충렬공 金方慶장군의 5대손 감목관 金子瞻공이 1392년 안동 회곡에서 이곳으로

이거하여 입향조가 되었고 중국의 沙眞村을 본따 사촌이라 하였고 아들과 손자가

대를 이어 문과급제 하였으며 증손자 송은 金光粹는 연산조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버리고 萬年松을 심고 학문과 후진양성에 정진하면서 조선조 문과 12,

  무과 1, 사마 32, 도산별과 1명을 배출하고 명문가와 혼인하는 반촌이 되었다.

 

都評議公古廬는 '도평의파종택' '사촌 안동김씨종택', '만취당종택'이라 불리며 

사촌분파조 도평의공 金九鼎(?~1389)는 경순왕의 후예로 도평의지인을 지냈고

 중시조인 김방경의 현손으로 입향조 김자첨의 아버지이라 한다 

晩翠堂은 1582~4년 송은공의 증손 만취당 김사원(1539~1601 퇴계문인)이

 지은 종택의 강당으로 사촌문중의 상징물이며 임진왜란 이전 건물로 증조부가

사랑하던 만년송과 만년송정사를 흠모하여 당호를 만취당으로 편액하고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이며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기장

 오래된 민간건물로 수차례 전란을 거치며 불타지 않았고 한번도 해체복원하지

않고 원형보존된 건축물로 지금은 문중의 강학과 집회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萬年松은 송은 김광수선생이 심은 향나무로 높이 8m, 수관측 25m로 한그루지만

선조들이 뜰안에 심어온 정원수 식재의 흐름과 향나무 생태연구 자료로 가치있다.

 

만취당 강당에서 김희윤 만취당종손이 집안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을 하시었고 

김창회 전 의성문화원장님은 지역의 성씨별 분포와 사촌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시고 '敬勝怠則吉하고 怠勝敬則滅하니라(공경하는 마음이 나태한 마음을

이기면 길하고 나태한 마음이 공경하는 마음을 이기면 망한다)'는 강의를

하시어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특강이 끝나고 우리는 만취당을 나와 만년송과 사촌마을을 구경하며

 천사 김종덕 선생의 유자정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특강을 마치시며 聽於無聲하고 視於無形이란 말을 남기셨다. 

소리없는 것을 듣고 형태없는 것을 본다는 말로

역사의 소리, 양심의 소리, 천지신명의 꾸짖는 소리,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는  소리가 없고

사람의 마음, 좌중의 분위기, 공기와 산소, 바람은 형태가 없으니

마음으로 느끼고 눈으로 감지하면서 살라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