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지교 담여수, 소인지교 감략례"(莊子)
["군자지교 담여수, 소인지교 감략례"(장자)].
"군자의 사귐은 담수(맹물)와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과 같다"는 똣이다.
저는 전혀 군자도 못 되면서 싱거운 내 성격을 위의 고사성어로 달래며 삽니다.
어려서 선친께 배운 서당개 3년 풍월 읊 듯 흉내내며 살다보니, 보통 맹물 생수보다
더 맛도 멋도 영양도 없는 증유수처럼 살아버렀네요.
생수는 진짜 몸에 좋은 미생물과 미네랄이라도 듬뿍 들어 있다는데.
내 남은 생애라도 생수되어 살고 싶소이다.
내 브로그에 쓴 글(일기)이지만 공 유하고 싶네요.
귀엽게 봐 주세요. 스미마셍!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즉 군자의 사귐은 맑은 담수 같아서 아기지기한 재미가 없지만,
맛없는 맹물이 변치 않고 몸에도 가장 좋은 것처림,
군자의 사귐이 실은 가장 변함 없고 좋은 것이다.
군자와 달리 소인의 사귐은 단술과 같은데,
달콤한 닷술이 변질되기 쉽고 몸에 가장 해롭 듯이,
소인의 사귐도 변하기 쉽고 해로운 일이 많이 생긴다.
다시 말하면, 소인배는 감정과 이해타산으로 사귀므로
인간적인 감정이 오고 가고, 이익을 주고 받고 하여 확끈하다.
아기자기 재미도 있다. 그러니까 감정과 이해관계로
문제도 많이 생기고, 변하여 원수가 되기도 쉽다.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이런 교훈을 선친으로부터
배우고 자라났기 때문에 이 만큼이라도 군자비슷하게
덤덤하게 살아 왔던 것이다.
친한 친구도 없고, 미워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점잖거나 어질거나 덕망과 학식이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군자가 아니다.
또한, 중국 춘추시대의 관중과 포숙이처럼 서로
이해와 신뢰가 깊은 우정이 뛰어나지 못한다.
관중과 포숙은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까지 생긴 우정의 사표가 아닌가.
그렇다고, 옛날 송도의 화담 서경덕처럼,
황진이같은 미모와 예능에 뛰어난 여성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만큼 남성적인 매력과 문예에 뛰어나지도 못하고,
선비의 금도를 굳게 지킬만큼 꿋꿋한 지조도 갖추지 못해서,
송도3절이라는 칭송을 받던 서경덕처럼 멋진 미담도 못 남겼다.
그렇다고 억울한 귀양살이 중에도 가족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만큼 아내와 자녀들에게 자상하고 애틋한
남편과 아비의 도리를 다한 정약용(다산)처럼 애틋하지도 못하다.
이런 서경덕과 정약용은 맑은 맹물이니까, 담수이기는 하나,
위와 같이 높은 가치와 애절한 인간미가 함유돼 있는 淡水, 生水다.
이게 몸에 가장 유익한 건 만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마저 없는 증유수 같은 진짜 맹물, 담수다.
이건 정말 생수같은 맛도 없다. 그러니까 정말 아무 영양가도 없다.
무색 무취 무미한 맹물이다.
그러나 이게 화학실험용으로 가장 귀하게 쓰임받지 않을까.
어떤 색, 어떤 남새, 어떤 원소도 들어 있지 않으니까,
어떤 색소, 냄새, 원소도 증유수에 잘 녹아들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이가 내가 자기를 받아들여 융화되려고 할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가장 경계심을 가지고, 어떤 것과도 결합하지 말고,
순수한 증유수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배타적요,
독선적이어서 모두에게 원망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인생 다 살고 보니, 내가 잘 살았는지 의문이다.
오직 주님. 맡겨주신 사명감에만 도취돼 외골수로 달려왔다.
어쩐지 공허하고 외롭다.
군자가 아닐 바엔 차라리 자상한 소인배처럼 살기라도 할 걸, 중도 속도 아니다.
성인 군자가 못 될 바엔 차라리 보통 사람 속인이라도 될 걸 그랬나?
나실인으로 태어났으니 그럴 수도 없나 보다.
나뿐만 아니라 역사 이래 모든 뜻있는 인사들, 구도자들이 다 그랬을 것이다.
천하의 성철 스님도 임종을 앞두고
"내 죄가 수미산 같다"고 고백하지 않있는가?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탄식하지 않있는가?
그러나 바울은 곧 이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5 상).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새로운 구원을 찬미하지 않았는가?
자기 수양 공로로가 아니라, 전혀 차원이 다른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다행히 나도 바울처럼 전혀 차원이 다른 복음을 받아 구원받아. 감사하다.
인간은 자기 수양과 노력으로 거룩해지는 게 아니라,
차조주 하나님의 선택과, 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이면서 죄없는 사람으로 태어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여 그의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도를 통해 구원받았으니 천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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