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성주 세종대왕자태실을 찾아서

오토산 2017. 9. 22. 10:24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햅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796

 

 


성주 세종대왕자태실을 찾아서

 

 

 

한개마을을 떠나 세종대왕자태실을 찾았는데 종전에 없었던 태실문화관에

도착하여 태의 관리와 태실의 입지등 현황을 설명듣고 태실을 찾아갔다.

 

성주는 생명의 공간으로 국내최대의 세종대왕자태실지가 월항면신촌리에 있고

단종이 세자가 되면서 가천면 회죽리로 옮겼고 태종의 태실이 용암면 대봉리에

있어 3곳의 태실이 있는 생명의 땅이고

활기넘치는 삶의 터전 500년 역사의 성산이씨집성촌(한개마을)에서

전통문화와 유교적풍습이 전해오고 있으며

평온의 안식처인 성산에 가야시대 고분군이 보존, 현재까지 321기가 확인되어

 정비 복원중에 있어 生에서 死까지의 풍습 볼수 있는 곳이라 한다.

 

태실문화관에서 胎는 태반과 탯줄로 태아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생체조직으로 예로부터 생명의 기원으로 다루었고

藏胎文化신라시대 김유신의 태 충북 진천 대명산 묻은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왕과 후계자(태자)의 태실만 조성되었고

조선시대왕자와 공주로 확대하고 태장경에 일러 독립된 봉우리로 명당을 찾아

엄격한 의식과 절차로 좋은날과 장소를 정하여 태를 묻는 풍습 있었고

 

묘지는 음택으로 오석의 비를 세우나 태실은 양택으로 오석비를 세우지 않으며

태실의 관리를 지방관이나 사찰에서 맡아 관리하여 왔고 세종왕자태실은

신석사에서 관리하였 하며 일제강점기 태실을 훼손하고 부지를 매각하였으나

세종대왕자태실은 1928년 태실매각시 월항면장이 책임관리할것을 확약하여

유지되었고 해방후 정부에 기부채납하였다고 하며

단종태실은 우리나라 사람에 의하여 훼손된 최초로 기록되고 있으며

태실문화관에서 왼새끼로 걸여둔 금줄, 삼신상, 짚불에 태우는 태 등 옛모습들과

장태문화의 여러면을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볼수있었다.

 

세종대왕자태실세종대왕의 아들 8대군과 10군, 세손(단종)의 태실등 19기로

1438년(세종20)~1442년까지 세워진 당초 20기가 있었으나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죽은 금성대군,한남군,영풍군,화의군,안평대군의 태와 장태지를

 1457년(세조3) 훼손된것을 1975년 정비하면서 복원하였고

둘레석은 원래 없었으나 안전을 위하여 설치하였다고 하며

 천원지바아상에 의하여 상부는 둥글고 기단은 네모지게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세종대왈자태실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성주지역 답사를 마치고

상세한 해설을 하여주신분들과 국학진흥원관계자님들께 감사드릭고

함께 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안동으로 돌아왔다.

 

세상사 한마디

태실은 반듯하고 우뚝솟아 위로 공중을 받치는듯 하여야 吉地이고

 높고 고요한곳을 가려서 태를 묻으면 수명이 길고 지혜가 있다 하였고

삼신은 아이를 점지해주고 출산후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돌봐주는 신으로

왕가에서 서민들에 이르기 까지 출산에 앞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