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성주 한개마을에서 진사댁,교리댁을 찾아서

오토산 2017. 9. 20. 23:07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791



성주 한개마을에서 진사댁,교리댁 찾아서

 

 


오후 답사로 월항면대산리 한개마을을 찾았더니 마을입구의 들판에 고개숙인 벼들은 

가을추수를 기다리고 있었고  붉은티를 입은 해설사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개마을은 .마을건너편으로 이천과 소금배가 다닐 정도로 강폭이 넓고 깊었던

백천이 흘러 크다는 '한' 개울이나 나루를 뜻하는 '개' 합하여 '한개'로 불렀고

영취산 자락 40~70m의 남서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背山臨水, 煎低後高 형국으로

어느집이나 햇볕을 받을수 있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탁구왕 이탁구와 어머니가 살았다는 집을지나 진사댁앞 공간은 광대거리

예전에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을 얻으면 마을잔치를 벌이던 장소 광대들이

밧줄을 메었던 바위는 마을정비 과정에서 깨어지고 남은 부분만

이곳을 지키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는 33명의 급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진사댁은 1798년 이문상이 지은것으로 추정되며 안주인이 안동 예안출신

진성이씨여서 예안댁으로 불리다가 집주인이 1894년 조선왕조 마지막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면서 진사댁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기와집인 안채와 초가집인

 사랑채, 새사랑채가 있었고 사랑채는 수리중에 있었으나 일제시대 짚공출로 짚을

 구하기 어려워 기와지붕으로 이었던것을 근래에 초가지붕으로 환원하였다 하며

안채마루에는 우물천정과 신주를 모시던 감실이 있었고

대추와 고추를 말리는 모습도 볼수 있었다.


광대거리 북쪽의 해저댁은 한국인들이 징용을 당하여  중국인들이 설계하여

중국식일본식건축구조 혼재하는 건물이라 하며   그 옆에 있는

교리댁은 1766년(영조36)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등을 지낸 이석구가 지었고

현손인 이귀상이 홍문관교리를 역임하면서 교리댁으로 불리어졌으며

건물의 배치가 태백산맥 일대의 'ㅁ'자형과 남부지방의 '-'자형을 썪어 놓은

튼'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하며 담장이 없는 사당건물뒷편에 있었고

마당에는 응와선생이 제주부사 시절에 귤나무 세그루를 가져다 세집에 심었는데

두집에서는 죽고 이집에만 살아있는데 탱자나무로 탱자가 열려있었다.

' 탱자나무에 귤나무를 접을 붙여 키웠는데 옮겨 심으니 기후가 달라 접을 붙였던

귤나무는 죽고  탱자나무만 컸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재미있는 설명을 하였다.

광대거리에서 달골(月谷)은 달을 보는 동네, 달과 가까운 달동네, 높은지역의 동네를

 표현하였다는 설명과 교리댁에서 경사면을 이용하여 지어진 주택의 배치와

탱자나무의 재미있는 설명을 듣고 인근에 있는 응와종택으로 갔다.

세상사 한마디

맹수는 깊은산이 있어야 살고

지렁이는 흙이 있어야 살수 있으며

나무는 썪은 흙이 있어야 뿌리를 깊이 내린다.

오늘도 만남의 인연으로 서로 도우는 하루를~~

우물천정!!

신주를 모시던 감실!!

광대놀이가 열렸던 광대거리를 바위만 지키고 있네요~~

당초 샤드배치에 놀란이 일었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