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김삿갓의 글풀이

오토산 2019. 1. 23. 08:50


 

 

 김삿갓의 글풀이

 

김삿갓은 산길을 진종일 걸어오다가 해거름에 어떤 마을에 당도하니

고래등같은 기와집 마당에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떡을 치고 한편에서는 부침개를 부치고.

김삿갓은 부침개 냄새를 맡자 새삼스러이 허기가 느껴져 옆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큰 잔치가 있기에 이렇게도 법석거리오?"


  

마을 사람들은 김삿갓을 나무라듯 대답했다.

"당신은 내일이 오 진사 댁 진갑 날이란 것을 모르오.

이번 진갑 날에는 본관 사또 님을 모시기 위해서

 돼지 다섯 마리와 황소 한 마리를 잡았다오."

  

옆에 있는 사람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이 사람아! 사또께서 내일 오실지 안 오실지 몰라서

오 진사 어른은 지금 똥줄이 타고 계시다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오 진사는 며칠 전 사또에게 사람을 보내 이번 진갑 잔치에

 꼭 왕림해 주십사는 서한을 보냈는데 사또는 즉석에서 답장을 써 주었다.

 

그런데 답장의 내용이 온다는 것인지 안 온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쩔쩔매고 있다 한다.

 만약 사또가 온다면 오진사가 동구 밖에 까지 마중 나갈 준비도 해야 되고

사또에게 드릴 큰 잔칫상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딱한 사정이다.

 

김삿갓은 은근히 흥미가 동해서 오 진사에게 가서 정중히 여쭈었다.

"지나가던 과객이올시다.

댁에서 사또의 편지로 무척 심려 중에 계시다고 들었기에

 소생이 한번 풀어 볼까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똥줄이 타고 있던 오 진사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김삿갓을 사랑방에 정중하게 모셨다.

 넓은 사랑방 안에는 사또의 편지를 읽어 주려고

 모여온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열 명이나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선 술이나 한잔 주시오." 하고 김삿갓이 한마디 하였다.

 

오진사가 손수 주전자를 들고 와서 정중하게 한잔 따른다.

앉아 있던 선비들은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가 풀지 못하는 사또의 편지를 너 같은 게 감히 어떻게 풀 수 있다고

 술을 덥석덥석 받아 마시느냐고 아니꼽게 여기는 눈치다.

 

사또의 편지를 보니 한지로 반절 넓이의 큰 지면에 커다란 글씨로

 

來 不 往


 來 不 往

이라는 여섯 글자만이 적혀 있을 뿐이 아닌가.

  

김삿갓은 너무도 간단한 데 놀랐으며 눈앞이 아찔해 옴을 느꼈다.

그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전연 알 수가 없었다.

 

"음...... 매우 기기괴괴한 문장인걸!"

 

김삿갓은 우선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를 갖기 위해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중얼거려 보았다.

방안에서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 진사는 초조해서 다급하게 물어 보았다 

"선비! 사또께서 오신다는 겁니까?

 안 오신다는 겁니까?"

 

"음.....

사또 어른하고 진사 어른하고는 매우 두터우신 사인가 보구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장난스러운 편지는 보내지 않았을 터인데......"

 

오 진사는 만면에 웃음을 피우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깝다 뿐이겠소이까.

어려서부터 동문수학을 하면서 별의별 장난을 다해온 사이랍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또의 편지는 틀림없이 참석하겠다는

사연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친구지간에 초청을 받고 참석을 못하면 한마디쯤 사과의 말이 있어야 옳은 일인데

 그런 빛은 전연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사또께서는 진갑잔치에 틀림없이 참석하겠다고 했으니 영접할 준비를 서두르시죠."

하고 김삿갓은 선언했다.


  

오 진사는 그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며 물어본다.

"어떻게 풀이했는데 그런 해답이 나오게 됩니까?"

 

김삿갓이 자신만만하게 단언을 내리자 옆에 있던 선비들은

공술만 얻어먹기가 미안했던지 아니면 열등감을 느낀 탓인지 제각기 공박한다.

 

"귀공은 그 문장을 어떻게 해석했기에 그런 단언을 내리시오?"

옛날에 80객 노인이 나이 어린 처녀와 정을 통하여 아들을 하나 낳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임종이 가까워 오자 가족들에게 '八十生男非吾子' 라는

유서를 한 장 내 보였다.

 

유족들은 그 여자에게 유산을 나눠주지 않으려고

<80에 생남했으므로 그 아이는 내 아들이 아니다.> 라고 해석했고,

 아기의 어머니는 유산을 나눠 받기 위해

<80에 생남했은들 어찌 내 아들이 아니오.> 라고 해석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한문이란 그처럼 토를 달기에 따라서 해석이 뒤바뀌는 경우가 얼마든지 많다.


 

<앗! 바로 이런 뜻이로구나.> 하고

김삿갓은 마침내 정답을 알아내게 되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싱긋이 웃었다.

 

오 진사는 답답한 심정을 견딜 수가 없는지 간청을 한다.

"여보시오. 선비!

나는 지금 똥줄이 타다 못해 이제는 간이 타오를 지경이오.

 편지 사연을 알고 계시거든 애를 태우지 말고 빨리 설명을 해주시오."

 

"하하하, 이 편지는 결코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來不, 往>과 <來, 不往>이라고 토를 달아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설명하면 <오지 마라고 해도 가겠는데,

하물며 오라고 하는데 어찌 가지 않겠느냐?>

하는 소리올시다."

  

김삿갓의 설명을 듣고 나자 좌중에는 별안간 폭소가 터졌다.

 

"과연 듣고 보니 선생의 해석은 귀신과 같으시오이다.

선생 덕분에 만사가 시원스럽게 풀려서 내가 이제야 살아나게 되었소이다.

여봐라, 지금 우리 사랑에는 귀한 선비 님이 와 계시니

 술상을 새로이 푸짐하게 차려 내오도록 하여라."

 

옆에 있던 선비들도 저마다 감탄을 마지 못한다.

이리하여 김삿갓은 사또의 편지를 풀어준 덕택에 술과 음식을 배불리 얻어먹었고

그 날 밤에는 오 진사 댁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편히 지낼 수가 있었다.

 

다음 날,

사또의 행차가 가까워 온다는 전갈이 있자,

오 진사는 직접 마중을 나가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김삿갓은 개밥에 도토리 노릇을 하고 싶지 않았다

. 조반을 한 술 얻어먹고 나서

아무도 모르게 오 진사 댁에서 나와,

구름처럼 바람처럼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걸음 구름 따라 숲 속에 들어서니 

솔바람 냇물소리 옷깃을 씻어주네

뜬세상 사람들 누가 나를 알아주랴

오로지 산새만이 내 마음 아는구나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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