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오지탄금형의 명당 원촌마을(이동수)

오토산 2019. 2. 19. 07:21

조용헌의 주유천하 (103)오지탄금형(五指彈琴形)의 명당

입력 : 2019-02-18 00:00 

 

유교 전통 깊게 밴 안동 예안 퇴계 후손 집성촌 원촌마을 풍수적으로 오지탄금형 명당 

도산구곡 가운데 6·7곡이 마을 감아 돌아 거문고에 비유 이육사 등 훌륭한 인물 배출

  

명당에서는 거의 인물이 배출된다.

 필자가 전국의 산천을 30년 넘게 답사해본 결론이다.

 경북 안동쪽. 태백산 줄기가 내려온 지점이다.

태백산 줄기가 내려오면서 그 억센 기운을 완화시켜 완만하게 산세를 형성한 지점이

예안, 안동지역이다.


여기에 명당이 많다.

 산세가 그리 높고 억세지 않으면서도 산봉우리 모양들이 좋고,

 적당하게 낙동강 상류가 감도는 곳이다.

 더군다나 이 지역은 오지에 가깝다.

 고려말에 한반도를 제집 드나들듯 노략질했던 왜구들도

이 지역에는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동해안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고,

서남해안에서 진입해 첩첩 산중의 고갯길을 넘어 들어가기도 어려웠다.

너무 깊숙한 지점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을 좋아했던 문사들은 이 지역을 선호했다.

논밭이 적어서 비록 먹고살기에는 궁핍한 지역이지만, 평화롭게 학문을 익히고

독선기신(獨善其身)의 수양을 하기에는 좋았던 것이다.

조선조 500년 동안 ‘유교의 먹물’이 아주 깊게 배어 있는 특수한 지역이다.

 다른 지역은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먹물이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이 지역은 골짜기와 동네마다 유교의 먹물이 남아 있다.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에 살아 남은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 같기도 하다.

 

나는 묵향(墨香)이 그리워지면 여기로 간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대 돈이 좋아도 때로는 묵향을 맡아야 사람 사는 것 같아서다.

퇴계학파의 본령인 예안(禮安).

안동에서도 이 예안지역에 퇴계 학맥의 직계 혈연들이 주로 포진해 있다.

안동시 도산면(옛 예안군 의동면) 원천리의 원촌(遠村)마을이 그렇다.

퇴계의 후손인 진성이씨(眞城李氏)들의 집성촌이다.

도산서원 하고도 가깝다.

이 원촌마을의 풍수적 형국이 오지탄금형(五指彈琴形)이다.

 ‘다섯손가락으로 거문고를 튕기는 형국’에 해당한다.

이름도 참 낭만적이다.

어떻게 마을의 전체적인 형국을 다섯손가락이 튕기는 거문고에 비유할 생각을 했을까.

 

태백산에서 내려오던 지맥이 어느 정도 노기(怒氣)를 풀고 건지산을 이뤘다.

 노기를 풀어야 명당이 된다.

 땅의 거친 기운이 순화된다는 뜻이다.

 건지산에서 내려온 지맥이 이 동네에 와서 다섯손가락처럼 형국을 만들었다.

 마치 왼손의 다섯손가락이 땅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그 다섯손가락 앞으로는 낙동강 상류가 아름답게 감아 돌아 흘러간다.

도산구곡(陶山九曲) 가운데 6곡과 7곡이 이 원촌마을 앞을 감아 돌며 흘러가는 것이다.

6곡 천사곡(川沙曲)과 7곡 단사곡(丹砂曲)이다.

 

이 6·7곡의 흘러가는 강물이 다섯손가락 앞을 감아 돌아 흘러가므로

 그 모습을 거문고에 비유했다.

6곡인 천사곡은 흘러가는 물의 낙차가 크다.

낙차가 크니 물 내려가는 소리가 동네에서도 잘 들린다.

그 물소리, 비오는 날 여름밤에는 동네 사랑채에 누워 있어도

 이 천사곡의 물소리가 귓전에 울렸을 것이다.


그 물소리는 자연의 거문고소리 아니었겠는가!

물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한 맺힌 마음, 분노심, 좌절감을 다스려주는 것도 이 물소리다.

물소리는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명상적 효과가 있다.

 인생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낙담한 사람이

이런 물소리가 들리는 정자나 민박집에서 한 3일만 머무르면

큰 위로를 받을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물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다.

 

이 오지탄금의 명당에서는 다섯개의 손가락 끝지점에서 각기 훌륭한 인물이 태어났다.

 엄지손가락에 해당하는 지점에선 저항시인 이육사(본명 李源祿)가 태어났다.

 이육사는 일제강점기 때 열일곱번이나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 ‘청포도’의 섬세한 심성을 가진 문사가 어떻게 그리 험난한 감옥생활을 감내했을까.

퇴계 학맥의 먹물이 뼛속까지 깊이 박힌 인물이 바로 저항시인 이육사가 아닌가 싶다.

 현재는 엄지손가락부분에 이육사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집게손가락 끝에서는 대사간을 지낸 이만유(李晩由)가 났다.

가운뎃손가락에서는 이 마을 입향조이자 원대처사(遠臺處士)로 불리웠던 이구가 나왔다. 형조참판을 지낸 이구운(李龜雲)도 태어난 곳이 여기다.

 넷째손가락에선 형조판서 이효순(李孝淳),

새끼손가락에선 치암(恥巖) 이만현(李晩鉉)이 나왔다.

도산구곡의 6곡과 7곡 물이 감아 도는 ‘오지탄금’의 명당에서

 각 손가락마다 인물이 배출된 것이다.

 한국의 인물은 절대로 지세(地勢)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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