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30)
* 비장의 술 秋露白
(우리 집에는 남 모르게 비장해 놓은 추로백(秋露白)이란 술이 있는데,
그 김삿갓이란 사람에게 그 술맛을 한번 보여주면 얼마나 놀랄까...)
수안댁은 몇 해 전에 어떤 고승으로부터 명주(銘酒) 담그는 비법을 배워 가지고 ,
추로백이라는 술을 한 항아리 담가 놓은 것이 있었다.
양조법을 배우다가 시험삼아 한번 담가 본 것으로서 ,
돈을 받고 팔기 위해 담가 놓은 술은 아니었다.
그러나 삿갓이라는 사람이 술맛을 그렇게나 잘 알고 있기에,
그 사람에게는 추로백의 맛을 꼭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수안댁은 며칠을 두고 망설이다가 ,
어느 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술 한병을 들고 조조를 일부러 찾아왔다.
"며칠 전에 우리 집에 들렀던 삿갓이라는 분에게 이 술맛을 보게 해 주세요.
이 술은 "추로백" 이라고 하는데 ,
그 양반에게 이 술맛을 한번 자랑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리하여 조조가 문제의 술병을 들고 지금 김삿갓을 찾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조는 , "수안댁이 이렇게 좋은 술을 보낸 것을 보니,
자네를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인데, 이번을 기회로 수안댁과 잘 사귀어서
두 사람이 함께 지내면 어떻겠나 ? " 하고 말을 하였다.
"예끼 이 사람아 !
내가 결혼을 못해 환장한 사람인줄 아는가 ? "
사실 김삿갓은 처자식이 엄연히 있는 몸이어서
새장가를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알 턱 없는 조조는
두 사람을 어떡하든지 결합시켜 주고 싶어했다.
"자네가 돈이 없어 결혼을 겁내는 모양인데,
그러나 조금도 걱정을말게, 수안댁이 돈은 먹고 지낼만큼 벌어 놓았으니
자네가 한 푼도 벌지 않아도 될 것이야."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던간에
나는 결혼 할 형편이 안되니 그 문제는 이제 그만하게 ! "
"자네도 우리들 처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살게 될 것 아닌가.
수안댁은 그만하면 인물 좋겠다,
마음씨도 곱겠다, 살림살이 걱정도 없겠다,
술장수라고 덮어놓고 싫어할 것은 없지 않은가 ? "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수안댁이 술장사를 하기 때문에 , 결혼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그 점만은 오해하지 말아 주게."
"그러면 자네는
언제까지나 홀아비로 늙어 죽을 생각이란 말인가 ? "
"나는 자네들에게 말을 안 했다 뿐이지,
홀아비는 아닐세. 영월에는 처자식이 버젓하게 있는걸."
김삿갓은 마침내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백해 버렸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음날 조조는 친구들과 그 문제로 상의했는데,
친구들은 하나같이 ,
"그 친구는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
여간해서는 장가를 가려고 하지 않을걸세,
그러니 장가를 보내려면 우리들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것 같네."
"삿갓도 삿갓이지만,
수안댁의 말도 들어 봐야 할 게 아닌가 ? "
"그건 그래 !
모르는 과부라면 한밤중에 보쌈을 해 올 수도 있지만,
수안댁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우선 수안댁의 마음을 넌즈시 떠보기로 하세."
친구들은 암암리에 그 문제를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친구들은 술을 마시자고 하면서 김삿갓을 취향정으로 끌고 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사람을 결합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취향정 문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게 수안댁, 어디 갔는가 ?
이 친구가 자네 집 술맛이 하도 좋다고 하기에,
오늘은 일부러 이 친구를 모시고왔네."
수안댁은 무심코 나오다가,
일행중에 김삿갓이 끼어 있음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놀란다.
"어머 !
삿갓 어른도 오셨네요."
김삿갓은 스스럼없이 마루로 오르며,
"일전에는 술에 취해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해 미안하게 됐네.
참, 자네가 보내 준 술은 조조와 함께 잘 마셨네.
어쩌면 술맛이 그렇게도 좋게 빚었는가 ?
고맙네.."
그러자 수안댁이 크게 기뻐하며,
"제가 술장사 20년에 술맛 좋다는 칭찬을 들어 보기가 처음이어서,
무척 기쁘옵니다."
그러자 조조가 너스레를 치고 나오는데,
"이 사람아 !
수안댁이 우리한테는 나쁜 술만 먹이고,
자네한테만 좋은 술을 먹이니까 술맛이 좋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자 수안댁이,
"마을 양반들은 아무리 좋은 술을 대접해도 칭찬해 줄 줄을 모르니까,
화가 동해 그랬지 뭐예요."
"옳 ..아 !
이제야 자네 마음을 알겠네 .
좋은 술은 아껴 두었다가,
사랑하는 낭군님에게만 대접하고 싶어 그랬단 말이지 ? "
그 바람에 좌중에는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김삿갓도 덩달아 웃으며,
"아닌게 아니라, 일전에 자네가 보내 준 술맛은 정말로 좋았네.
그런데 술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 "
"그 술은 추로백이라는 술이었습니다."
"추로백.... ?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걸 !
그 술은 마셔보니 혀를 콕 쏘는 맛이 있는데다,
향기가 그윽한 점이 더욱 좋던데,
그 술은 어떻게 빚은 술인가 ? "
그러자 옆에 있는 다른 친구가 한 마디 한다,
"이 사람아 !
우리는 술을 마시러 왔지.
술 빚는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은 아닐쎄.
그런 애기라면 이따가 단둘이 이불 속에서 하고 ,
우선 술이나 빨리 가져오게 ! "
"어마 !
아무리 농담이라도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 사람아 !
우리들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을 하고 있는거야.
이 사람이 자네하고 하룻밤 같이 지내고 싶다고 하기에,
우리들이 이 사람을 일부러 데리고 온 거야.
그런줄 알고 , 어서 들레술이나 가져오게 ! "
수안댁은 대답을 못 하고 , 얼굴을 붉히며 부랴부랴 술상을 차리러 달려나간다.
수안댁이 부엌으로 나가 버리자,
친구들이 김삿갓에게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한다.
"여보게 삿갓 !
수안댁이 자네가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
지금까지는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길길이 뛰던 수안댁이 오늘,
자네 앞에서는 새색시처럼 얌전해졌구먼 ...."
"오랫동안 혼자 살아오다가 맘에드는 짝을 만났으니 그렇겠지,
그나저나 수안댁이 자네가 얼마나 좋았으면 추로백이라는 술까지 보내줬단 말인가 ? "
"수안댁의 심정을 알고도 남음이 있지.
젊은 나이에 20 년이 되도록 독수공방으로 살아오다가 ,
이제야 마음에 드는 사내를 만난 셈이거든 !"
친구들이 한마디씩 씨부려대는 바람에 김삿갓은 어이가 없었다.
"허허허.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이 친구들은 앞서 김칫국을 마시고 있구먼 ..."
그러자 조조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
김삿갓을 나무라는데,
"자네가 수안댁의 마음을 믿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자네 앞에서 수안댁의 내심을 직접 물어 봐 주면 될 게 아닌가."
그때 수안댁이 술상을 들고 들어와 , 술을 손수 한잔씩 따라준다.
"안주가 벤벤치 못해 죄송해요.
어서 한 잔씩 드세요."
그러자 조조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수안댁에게 따지듯이 묻는다.
"이 술을 들기 전에,
수안댁에게 한 가지 꼭 물어 볼 말이 있네."
"제게 무슨 말씀을 물어 보시겠다는거예요 ? "
"우리가 무슨 말을 묻든간에 자네는 솔직하게 대답해 주어야 하네.
그런 약속이 있기 전엔 물어 보지도 않을테야."
"무슨 애기인데 대단스럽게 나오시니까 겁이나네요."
수안댁은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김삿갓을 건너다 보았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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