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장씨(安東 張氏) 시조 장정필(張貞弼)은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워 삼중대광보사벽상공신 태사에 오르고
고창군에 봉해졌다.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고려 때 만든 성본으로, 시조를 달리하는
장금용(張金用)계와 장계(張桂)계, 장계임(張繼任)계가 있다.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했다.
시조 장계(張桂)는 고려 충렬왕 때 진현전직제학(進賢殿直提學)을 거쳐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이르렀다.
시조 장계임(張繼任)은 고려 충렬왕 때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역임하고,
증 삼중대광(贈三重大匡),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춘추관사(春秋舘事)를 제수
받았다.
-*목천 장씨(木川 張氏) 시조 장빈(張彬)은 고려 때 목천군(木川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던 당시, 백제 유민들이 순응하지 않고 백제 재건운동을 벌이자 왕건이
이 지방민에게 우(牛; 소), 상(象; 코끼리), 돈(豚; 돼지), 장(獐; 노루) 등의 성을
주었는데 후손들이 뒷날 우(于), 상(尙), 돈(頓), 장(張)씨로
성씨를 바꾸었다고 한다. .
-*결성 장씨(結城 張氏) 시조 장갑(張甲)은 고려 때 호장으로 그의 증손 장하(張夏)가
고려 말기 한성판윤을 지내고 결성군에 봉해졌다. . .
-*단양 장씨(丹陽 張氏) 시조 장순익(張順翼)은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덕수 장씨(德水 張氏) 시조 장순룡(張舜龍)은 본래 위구르계 사람으로 고려 충렬왕때 고려에 귀화하여 첨의참리(僉議參理),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을 지내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졌다.
-*태원 장씨(太元 張氏) 시조 장문한(張文翰)은 조선 명종 21년(1566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냈다.
-*절강 장씨(浙江 張氏) 시조 장해빈(張海濱)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丁酉再亂) 때 명나라 유격장군 오유충(吳惟忠)의 휘하 병사로 조선에 왔다가
울산의 증성(甑城) 싸움에서 유탄을 맞아 귀국하지 못하고 군위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한다.
-*장(章)씨는 . 본관은 거창(居昌) 단본이다.본관은 아산 단본이다
거창 장씨(居昌 章氏)-의 시조 장종행(章宗行)은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 예문관대제학 겸 춘추관사를 지냈다.
-*장(蔣)씨는 원래 중국 성씨로 장은 주공의 셋째 아들 주백령의 속지인데,
그대로 성으로 삼았다 한다. 장서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금자광록대부
신경위 대장군으로 있을 때 금나라의 공격을 받아 패하게 되자 배를 타고
우리나라로 건너와 고려 예종 때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에 표착했다고 한다
-*장(莊)씨는 . 본관은 금천, 장연 2본이다.
금천 장씨(衿川 莊氏)의 시조 장보(莊甫)는 고려 명종 때 무신으로
병부원외랑을 지내다가 거제현감으로 좌천되어 후에 귀양가서 졸하였다고 한다.
1세조 장숙(莊俶)은 조선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지냈다.
1882년(고종 19년) 문과에 급제한 장석황(莊錫滉)이 『국조방목(國朝榜目)』에
기록되어 있으나 본관은 전주(全州), 거주지는 평양(平壤)으로 되어 있다.
출처 :안고17 원문보기▶ 글쓴이 : 조기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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