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고향

鄭씨, 程씨, 丁씨의 본관

오토산 2019. 12. 24. 22:37



**정(鄭)씨는_오늘날 계통이 자세히 전하는 본으로는 동래(東萊)·경주(慶州)·연일(延日)·

          진양(晉陽)·하동(河東)·초계(草溪)·나주(羅州)·영일(迎日)·청주(淸州)·

          해주(海州)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씨는 서산 정씨(瑞山鄭氏)나 낭야 정씨(琅捓鄭氏)와 같이

          중국에서 온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라 6촌의 하나인 자산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伯虎)를 공통된 시조(始祖)각주1) 로 하고 있다.

          정씨는 뒷날 그의 5세손인 동충(東沖)이 유리왕으로부터 사성(賜姓)받은 것이다           그후 선대의 세거지(世居地)각주2) 나 봉군(封君)각주3) 된 인연을 좇아

          관향(貫鄕)각주4) 을 달리하며 분파해간 것이 120여 본관에 이르게 되었다.

 

**정(程)씨는 -하남 정씨(河南程氏)의 시조 정사조(程思祖)는 공민왕비인 원나라

           노국공주가 고려에 입국할 때 고려에 들어와 고려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

           (殿中侍御史)를 지내고 공민왕 원년에 추성보리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

           (推誠輔理功臣 壁上三韓 三重大匡)으로 한산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정(丁)씨는 -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하는 단일 혈족이라는 것이 통념이다.

          정덕성은 중국 당(唐)나라 사람으로서 대상(大相:또는 문헌에 따라 大丞相)을

         지냈으며 853년(신라 문성왕 15) 우리나라 서남부의 압해도(押海島)라는 섬에

         유배되었다가 해배된 뒤에도 돌아가지 않고 정착함으로써 우리나라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한다.

         정덕성이 지냈다는 대상 또는 대승상의 벼슬을 당의 관제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당에서 대신을 외지로 귀양보냈다는 사실 등의 신빙성에 대한 이견은 이미

         정덕성의 후손이며 실학의 집대성자 정약용(丁若鏞)으로부터 제기되었으나

         정덕성은 모든 정씨의 시조로서 받들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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