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44)
* 가짜 암행어사 김삿갓의 명판결.
저희 수안 고을에서는 수 일 전에 산적의 두목놈을 체포했사온데
그 자의 자백에 의하면, 귀 고을에 살고 있는 "박용택"이란 자가,
산적의 일당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적을 일망 타진 하기 위해서는 박용택이란 자를 응당 취조해 보아야 하겠사오니,
황주 수령께서는 그 점을 깊이 양해하시와, 백용택을 체포해 올 수 있도록 ,
특별 배려를 하여 주시옵소서.
수안 고을 군수 백창수 올림.
박용택을 난데없는 "산적"으로 몰아 붙인 것은 ,
그 자가 워낙 지능범으로 판단 되기에 엉뚱한 올가미를 씌워 가지고
범죄 사실을 자기 입으로 실토하게 하려는 김삿갓의
깊은 계교가 숨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사 협조문을 받은 황주 고을 사또는 산적을 잡아 가고 싶다는데 ,
허락을 아니 해줄 턱이 없었다.
그리하여 수안에서 파견된 형사 포졸은 박용택을 쉽게 체포하는 동시에 ,
김삿갓의 당부대로 가택 수색도 철저하게 하였다.
가택 수색을 해보니 박용택의 집에서는 현금 1천냥과 금가락지 두 개가 나왔다.
형사 포졸이 박용택을 끌고 올 때 ,
현금과 패물도 장물 (臟物)로 압수해 왔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김삿갓은 조사관으로 변장하여 ,
압수해 온 장물을 검사해 보고 박용택을 문초하기 시작했다.
"네 놈은 역시 산적의 일당임이 틀림없구나 !
이 돈과 패물은 양민에게 강탈해 온 장물이 틀림없으렷다 !"
박용택은 "산적"이라는 말을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소인더러 산적이라니 ,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을 하시옵니까 ? "
"이놈아 ! 능청은 그만 떨고 , 사실대로 말하거라.
우리는 지금 산적의 두목을 체포해 왔는데 ,
그 놈의 자백에 의하면 , 네 놈은 산적놈들의 장물 아비 라는 것이다.
산적 두목놈이 분명히 그렇게 말을 하였는데,
너는 그래도 아니라고 우기겠느냐 ! "
박용택은 산적의 누명을 쓰게 된 사실을 알고 ,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산적으로 몰리는 날에는 목숨이 남아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한동안 궁리를 하더니 문득 머리를 들며 말한다.
"산적의 두목이 소인을 자기의 부하라고 말했다면,
그 두목놈과 소인을 대질 시켜 주시옵소서.
그러면 모든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 아니옵니까 ? "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인지라,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소리였다.
김삿갓은,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두목놈과 대질을 시켜 주겠다.
그러나 너희 집에서 이미 많은 장물이 나왔지 않느냐.
그것들은 네 놈이 산적으로, 남의 물건을 강탈한 증거품이다.
이와같이 많은 증거품이 나왔는데,
네 놈은 그래도 산적이 아니라고 발 뺌 하려느냐 ! "하며 ,
박용택이 범죄 사실을 자기 입으로 털어놓게 하려고 자꾸만 산적으로 몰아대고 있었다.
박용택은 어이가 없는지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못한다.
"이놈아 ! 왜 대답을 못하느냐.
네 놈은 역시 산적이 틀림없으렷다 ? "
박용택이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소인의 집에서 패물과 돈이 나왔다고는 하오나 ,
그것을 가지고 소인을 산적으로 몰아 버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옵니까 ? "
"네 놈이 산적이 아니라면 이런 패물과 많은 돈이 어디서 나왔겠느냐 ? "
"소인이 가지고 있는 패물과 돈은 모두 출처가 분명한 것 이옵니다.
돈과 패물의 출처를 아신다면,
소인을 산적이라고 생각지 않으시게 될 것입니다. "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박용택이 자기 발로 함정에 빠져드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치미를 떼고 이렇게 말했다.
"허기는 출처가 분명하다면 남에게 빼앗아 온 물건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너는 너희 집에서 나온 패물과 돈의 출처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단 말이냐 ? "
박용택은 그제야 살아날 길을 발견한 듯 ,
얼굴에 기쁜 빛을 띠며 말한다.
"소인이 가지고 있는 패물의 출처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어르신네께서 물으시는 대로, 하나하나 출처를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묻는대로 하나하나 명백히 대답해 보거라.
만약 추호라도 거짓이 있으면 결단코 용서치 않으리로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소인이 거짓말을 했다가는 산적으로 몰려 목숨이 날아갈 판인데,
어찌 거짓 말씀을 아뢸 수 있으오리까 ?"
"음 ...
단단히 다짐을 했으렷다 ! "
김삿갓은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아 놓고, 금가락지 두 개를 박용택의 눈앞에 들이 밀며,
"여기 금가락지 두 개가 있는데 ,
이것의 출처를 소상히 아뢰어라 ! " 하며 물어 보았다.
박용택은 자신만만한 어조로 거침없이 대답했다.
"두 개의 금가락지는 모두 어머니의 회갑 때 ,
선물로 받은 물건 이옵니다.
일곱 돈짜리 금가락지는 며느리의 친정 사돈 댁에서 보내준 것이옵고,
닷 돈짜리 금가락지는 시집간 딸년이
할머니에게 회갑 기념으로 갖다 준 선물이옵니다."
"음 ...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들을 이 자리에 불러다가 다시 물어 보아도
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겠느냐."
"네,
사돈 어른과 나의 딸년을 직접 불러 물어 보신다면 더욱 확실하게 될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데 부디 그렇게 해 주시옵소서."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금가락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캐묻지 않겠다.
그건 그렇다 치고,
천 냥이라는 거금이 나왔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온 돈이냐 ? "
금가락지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김삿갓이 알고 싶은 것은 돈 천 냥의 출처였다.
돈 이야기가 나오자,
박용택은 일순간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얼른 대답을 하지 못 한다.
김삿갓은 이때다 싶어 날카롭게 추궁했다.
"금가락지의 출처는 분명 한데 ,
돈 천 냥은 어디서 생긴 것이냐 ?
이 돈은 산적질로 벌어들인 돈이 분명한게로구나 ! "
"아, 아니옵니다.
그런게 아니옵니다."
"그런게 아니라면 이런 거금은 어디서 생겨난 돈이란 말이냐 ! "
"그 돈은 .... 친
구에게 빛을 주었다가 돌려 받은 돈이옵니다."
박용택은 산적으로 몰릴 것에 겁이나서 마침내 실토를 해버렸다.
그러나 김삿갓의 추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친구에게 빚을 주었다가 돌려 받은 것이라면
그 친구의 이름은 뭐라고 하느냐 ? "
이미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 ,
박용택은 김삿갓의 추궁에 할 수 없이 대답했다.
"빚을 얻어 갔던 친구는 양상문이라 하옵니다." 하고 모기 소리로 대답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박용택에게 벼락 같은 호통을 쳤다.
"뭐야 ?
그러면 차용 증서를 미끼로 양상문이란 친구에게 돈을 두 번씩이나
받아 먹으려는 날강도 같은 놈은 바로 네 놈이었단 말이냐 ? "
박용택은 감추어 두었던 사실이 드러나자,
몸을 벌벌 떨며 대답을 못한다.
김삿갓은 박용택의 범죄 행각을 밝혀 놓고 나니,
매우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를 배반한 네 놈은 산적보다더 더 무서운 놈이구나.
너는 바른대로 이실직고를 하여, 죄 값을 달게 받아야 할것 이다 ! "
백일하에 지은 죄가 드러나자 박용택은 몸을 떨다가,
별안간 땅에 넙죽 엎드리며 눈물로 호소한다.
"나으리 !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나쁜 짓을 안 하겠사오니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놈아 !
용서를 빌려거든 차용 증서부터 내놓아야 할 게 아니냐 ! "
박용택은 호주머니에서 양상문이 써 준 차용 증서를 내놓으며 다시 한번 호소한다
"나으리 !
돈에 눈이 어두워 친구를 배반했던 소인의 죄를 한 번만 용서해 주옵소서."
차용 증서를 받아 보니,
그것은 양상문이 써 준 천 냥짜리 차용 증서임이 분명 하였다.
김삿갓은 차용 증서를 형리에게 건네 주며 당부를 하였다.
"이 차용 증서를 양상문이라는 사람을 찾아 내어 돌려주도록 하시오.
그리고 사또 어른께도 취조한 전말을 소상하게 품고하여
박용택에게는 되도록 관대한 처분을 내리도록 말씀 드리시오."
"어르신께서 직접 품고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오.
이 사건은 이미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므로 ,
나는 갈 길이 바빠 사또께 인사도 여쭙지 못하고 이대로 떠나야 하겠소.
사또전에 그 말씀도 아울러 품고해 주시오."
김삿갓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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