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양상문을 만난 김삿갓

오토산 2019. 12. 31. 08:22

●방랑시인 김삿갓 02-(45)

* 떠도는 구름 ,흘러가는 물.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푸른 산 뿐이지만 ,

산 위에는 하얀 구름이 한가롭게 떠돌고,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천천히 음미하던 김삿갓,

 (물은 흘러도 앞을 다투지 않고 , 구름은 떠 있어도 서로 뒤지려고 하건만,

 어째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웬놈의 말썽이 그렇게도 많을까.)

 

 수안 고을에서 만난 ,

 양상문과 박용택 사이에 벌어진 계쟁(係爭)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났다.

 

욕심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다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

김삿갓은 풀밭에 네 활개를 쭉펴고 누워,

욕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산과 구름, 골짜기를

지나는 물소리의 자연 그대로를 즐기고 있었다.

 

 그대로 누운채로 자연의 빛과 소리를 즐기던 김삿갓,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석양에 노을이 아름답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으 흠 ! " ...

 

기지개를 잔뜩 킨 김삿갓, 자리에서 일어나 도포 자락을 툴툴 털어내고,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해가 더 저물기 전에 이제는 잠자리를 구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노라니,

문득 저 멀리 아득한 산 위에서 누군가 부리나케 이쪽으로 달려 내려오며 ,

 연실 큰 소리로 외쳐댄다.

 

 "여보시오,

삿갓 쓰신 어르신네 !

나 좀 보십시다 ! " ...

 

"누가 나를 부를까 ? "

김삿갓은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보았다.

 

 

 

이윽고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사람을 보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양상문이었다.

김삿갓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아니,

노형이 여기까지 웬일이시오 ? "

 

 그러자 양상문은 죽은 아버지를 만난 듯 , 

김삿갓의 두 손을 힘차게 움켜 잡는다.

 

"은인을 만나 뵙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며 달려왔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 말을 듣고 보니 알겠소이다.

노형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이 먼데 까지 나를 쫒아오셨구려?"

 

 "선생은 무슨 말씀을 ....

패가망신하게 된 저를 살려 주신 선생님을 뵙는데,

 멀고 가깝고가 어디 있사옵니까 ? "

 

 "누구는 친구를 속여먹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노형은 나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셔서 여간 고맙지 않소이다 ...

래 , 문제의 차용 증서는 돌려 받으셨소이까 ? "

 

 "아까 전에 동헌에 불려 들어가 사또 어른으로부터 차용 증서를 돌려 받고 나서,

 곧장 선생의 뒤를 쫒아오는 길이옵니다.

 만약 선생이 도와 주지 않으셨다면,

저희 집은 완전히 망해 버렸을 것이옵니다."

그러면서 양상문은 허리춤에서 돈 꾸러미를 꺼내면서 다시 말한다.

 

"사람이 은혜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선생 덕분에 천 냥이라는 돈을 번 셈이니,

 이것은 몇 푼 안되지만, 노자에 보태 쓰시옵소서."

 

양상문의 성의는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기까지 나를 따라와 주신 성의만으로도 보답은 충분합니다.

고마운 일이지만 이 돈은 못 받겠소이다.

노형은 천 냥이나 벌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생긴 돈은 한푼도 없지 않소이까 ? "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은혜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 "

 

"이 돈을 받으면 나는 박용택이 보다도 더 나쁜 놈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워낙, 돈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냥 넣어 두시구려."

 

 "그러시다면 저의 성의를 생각하셔서 절반만이라도 ..... "

 

"절반이 아니라 ,

한푼도 받을 수가 없어요."

 

 

"너무 그러시면 제가 성의를 무시당하는 것 같아

오히려 섭섭하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남의 성의를 너무 완강하게 거절 하는 것도 오히려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이렇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노형의 성의를 생각해,

정표로 엽전 한 닢만 받기로 합시다."

 

그러면서 양상문이 내민 엽전 꾸러미에서

상평통보(常平通寶) 한 닢을 받아 들고 나머지는 도로 돌려주었다.

그러자 양상문은 아쉬워 하면서 이렇게 말을한다.

 

"날도 저물었으니.

오늘밤은 우리 집에 가셔서 주무시면 어떻겠습니까 ? "

김삿갓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씀은 고맙소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 떠나온 길을 되돌아 갈 생각은 없소이다.

내 걱정은 말고, 노형이나 너무 늦기 전에 댁으로 돌아가시구려."

 

 "저는 조금 늦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선생은 오늘밤을 어디서 보내려고 그러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 근방에는 인가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가가 없으면 어디쯤에나 있는 토굴이라도 하나 찾아 보지요."

 

"옛 ?

토굴에서 주무시겠다고요 ? "

 

 양상문은 놀라더니 이내 무슨 생각이 나는지 ,

손뼉을 마주치며 말을 한다.

 

"아 참 !

좋은 곳이 생각납니다.

여기서 오리쯤 산속으로 들어가면 움막 같은 친구 집이 있습니다.

 

제가 모시고 갈테니,

선생은 오늘밤 저와 함께 그 집에서 주무시도록 하십시다."

 

 어떤 방법이라도 김삿갓으로 부터 받은 은혜를 갚지 못해

애타는 태도가 간절한 양상문 이었다.

 

 "그러시다면 , 노형의 성의를 고맙게 받고 ,

그 집에 가서 신세를 지기로 하겠습니다."

 

기뻐하는 양상문과 함께 산속으로 얼마간 들어가니,

과연 움막 같은 집이 하나 있었다.

 

40 가깝게 보이는 그 곳 주인의 이름은 오지환(吳志煥)이라 하는데 ,

산속에서 숯을 구워 팔며, 혼자 살아 간다는 것이었다.

지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마음이 어찌나 착한지 ,

김삿갓과 양상문을 백년지기 처럼 맞아 주었다.

 

 "여보게 지환이 !

밤중에 찾아와서 미안하네, 저녁을 지을 쌀은 있는가 ? "

양상문이 그렇게 물어 보자, 그는 웃으며 대답한다.

 

 "쌀은 없지만 ,

감자는 넉넉하게 있습니다그려."

 

"나에게 돈이 있으니 ,

어디서 쌀을 좀 구해 올 수 없을까 ? "

 

 "아따 , 형님도 !

감자면 됐지, 꼭 쌀을 먹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소."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와서 그러네."

 

 "이러나저러나 쌀을 구할 수가 있어야 말이죠.

상문 형님 말씀대로 귀한 손님이라면 오늘밤은 감자로 때우고 ,

내일 아침에는 토끼 불고기를 대접해 드립시다그려."

 

 "토끼는 쉽게 잡을 수 있는가 ? "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토끼 굴에 가면 토끼는 얼마든지 잡아 올 수 있어요."

 

 이윽고 세 사람은 삶은 감자 한 소쿠리를 방 한복판에 놓고

 저녁 대신으로 먹기 시작하였다.

 

반찬이라곤 김치 한가지 뿐이었지만 ,

김치와 감자의 맛의 조화가 기가막혀서 , 혀까지 목구멍으로 넘어 갈 지경이었다.

워낙 시장했던 탓도 있었지만 , 어떤 산해진미 보다도 맛이 좋았다.

 

"감자 맛과 김치 맛이 어쩌면 이렇게도 기가 막히지요 ?"

김삿갓이 이렇게 말하자 ,

 

지환은 싱그레 웃음을 지으며,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손님은 어지간히 시장하셨던게로군요.

그렇지 않아도 감자와 김치는 얼마든지 있으니,

양껏 잡수세요."

 

 

그러면서 눈 깜빡할 사이에 감자 한 알을 먹어치우며, "

"진수성찬이란 것이 별게 아닙니다.

일을 열심히 하고 나면 세상에 진수성찬이 아닌 것이 없더라고요."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본인은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김삿갓은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느낌이 들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매 끼니를 진수성찬으로 먹으면서도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음식투정을 하기가 일쑤다. 입이 사치스럽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

 그 사람들은 일은 없고 , 입만 살았다고 보아야 할것 이다.

 

(음 ..음식 맛이 좋고 나쁜 것은 요리의 재료와 솜씨에 달린 것이 아니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로구나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