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43)
* 박용택 체포조 출발시켰다.
그러나 동헌 정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장은 김삿갓의 행색을 훝어보더니 ,
대뜸 코웃음을 친다.
"이 미친놈아 !
한양에서 내려 왔다고 하면 누가 겁을 낼 줄 아는냐 !
사또님이 누구라고 감히 뵙겠다는 것이냐.
경을 치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행색이 허술한 것을 보고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김삿갓은 약간은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후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는 큰소리를 쳐볼밖에 없었다.
"자네들이 내가 누구란 것을 모르는 모양일쎄,
나는 하옥 대감의 특별 분부를 받들고 내려온 사람일쎄.
사또에게 그 말씀만 전해 주게나.
그러면 사또께서 반갑게 만나 주실 걸세."
아무리 문지기 사령이라도 하옥 대감이라는 말만 들으면 몸을 떨게 되리라
생각되어 하옥 대감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도깨비는 부작(符作)도 모르다"고 하던가,
문지기들은 하옥 대감을 알기조차 못했는지,
"이 미친놈아 !
하옥 대감이 뭐 말라 죽은 귀신이냐,
미친 소리 한 번 더하게 되면 주릿대를 안길 것이다." 하며,
방망이를 들어 보였다.
김삿갓은 난처했다.
그렇다고 사내 대장부가 한번 뽑은 칼을 거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네들이 하옥 대감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
하옥 대감으로 말할것 같으면 ,
자네 윗전인 사또 따위는 마음대로 내고 들이는 이나라의 영의정이시라네.
그런분의 명령을 받고 찾아온 나에게 사또를 못 만나게 한다는 것은
자네들이 경을 칠 일이 될 것이야."
이렇게 문지기와 승강이를 하는 와중에 마침 ,
누군가 문안에서 나오다가 문지기를 보고 소리를 지른다
"여봐라 !
무슨 일인데 소란을 피우느냐 ! "
"아전 어른 !
이 자가 한양에서 내려왔다고 말하면서 다짜고짜 사또 어른을 뵙겠다고하여 ,
쫒아내려 소란이 일었습니다."
아전은 "한양에서 내려왔다"는 말을 심상치 않게 들었는지,
김삿갓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한양에서 내려오신 분이 무슨 일로 사또 어른을 뵙자고 하셨습니까 ? " 하며
제법 정중히 물었다.
김삿갓은 흩어진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나는 하옥 대감의 분부를 받들고 관서 지방을 살피는중에
사또를 잠시 만나려고 찾아온 길이오."
아전은 하옥 대감이라는 말을 듣더니
기절초풍을 하듯이 놀란다.
"옛 ?
하옥 대감의 분부를 받들고 관서 지방을 살피러..오신 ,
어른이시라고요 ?
그러면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사또께 얼른 아뢰겠습니다."
아전이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 들어가더니 ,
잠시후에 사또가 정복을 입고 ,
헐레벌떡 달려나와 김삿갓에게 허리를 정중히 굽혀 보이며 말한다.
"하옥 대감의 분부를 받자옵고 관서 지방을 살피러 가시는 길에
저희 고을을 찾아 주셨다니,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없사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그러면서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령 두 놈을 돌아 보며,
"너희는 이런 귀한분을 어찌 소란스럽게 맞았느냐 !
고연 것들 같으니." 하며
노여움을 보이자 사령 두 놈이 모가지를 어깨에 집어 넣으며 말한다.
"소인들이 미처 알아뵙지 못하였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사또는 앞장을 서서 ,
김삿갓을 정중히 내당으로 안내했다.
차린 행색이나 말투로 미루어 ,
사또는 김삿갓이 틀림없는 암행어사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내당으로 가는 길에,
"소관은 하옥 대감으로 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는 몸이옵니다.
하옥 대감께서는 기체 후일향 만강하옵는지요 ? " 하면서 ,
자신이 하옥 대감의 후원을 받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리고 이어서 ,
"어르신네께서는 대강 짐작하시겠지만 ,
소관은 하옥 대감을 30여 년 동안이나 측근에서 모셔 오다가,
얼마 전에 이곳 수령으로 내려온 몸이옵니다."
암행어사는 본색을 숨기기 위해 의례 변장을 하고 다니는 것이 상례인지라,
사또는 김삿갓의 행색이 남루한 것도 일부러 암행어사임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삿갓은 관명을 사칭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굳이 변명을 하기에는 이미 , 때를 놓쳤다.
사또가 자신을 암행어사로 짐작하고 예우를 하는데 ,
구태여 진실을 말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겸언쩍은 마음에 얼른 화제를 바꾸어 말을했다.
"내가 어제 오늘 이 고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민원을 살 만한 사기 사건이 있던데 ,
사또는 그 사건을 알고 계신지요 ? "
사또는 그 말을 듣고 펄쩍 뛸 듯이 놀란다.
"저희 고을처럼 태평스러운 고을이 없사온데,
사기 사건이 있다니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 "
그러자 김삿갓은 양상문과 박용택 사이에 얽혀 있는 사건을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또는 그 말을 듣고 나더니 ,
고개를 끄떡이며 말한다.
"그 일이라면 소관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박용택이라는 자는 저희 고을이 아닌 황주 고을 백성이라서 ,
소관이 마음대로 체포해 올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양상문이란 자는 돈을 갚았다고는 하지만 ,
영수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놈의 말도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하며
군색한 변명을 한다.
"돈만 돌려 주고 차용 증서를 돌려 받지 않은 것은,
양상문이 박용택이라는 친구를 그만큼 믿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소이까.
그런데 박용택이란 자는 돈을 받아 놓고도
돌려 주지 않은 차용 증서를 미끼로 돈을 또 받아 내려고
공갈 협박을 하고 있다니,
그런 악독한 놈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이까 ? "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러나 양상문이라는 자는 돈을 돌려 주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지만 ,
박용택이란 자는 돈을 돌려 받지 않은 증거로 차용 증서를 가지고 있으니 ,
소관이 판단하기로는 양상문의 증거가 부족하여 시비를 가리기가 난처한 지경 입니다."
"물론 시비를 가리는데 증거물이 반드시 필요 하겠지요.
그러나 지능이 발달한 범죄자 일수록 증거물을 잘 이용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한 사람은 친구를 믿었기에 빛을 갚아 주고도 차용 증서를 돌려 받지 않았는데 ,
저쪽 놈은 돌려 주지 않은 차용 증서를 핑게로 돈을 또 받아 내려고 한다면 ,
어느편이 나쁜 놈인가는 자명한 일이 아니오니까 ? "
"지당한 말씀이시옵니다.
그러나 박용택이란 놈은 저의 관내에 사는 놈이 아니기 때문에 ...."ㅣ
사건이 워낙 까다로운 내용이라 ,
사또는 시비를 가리기에 자신이 없는 태도였다.
김삿갓은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흐지부지 사건이 되어 양상문이 다시 돈을 갚아야 되는 사태에
이를것 같은 생각이 들자,
사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이 사건만은 사또를 대신하여 내가 취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
만약 사또께서 허락을 해주시면 , 공정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소이다."
사또는 워낙 자신이 없던 일 있었던지라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어르신께서 직접 다루어 주신다면 소관으로서는
그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희 고을의 명예를 위해 부디 명판결을 내려 주시옵소서."하면서 ,
김삿갓을 암행어사로 알고 연방 굽신거린다.
김삿갓은 사건을 직접 다루게 되자 ,
여러가지로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사또라도 자기 고을이 아닌 ,
남의 고을 백성을 함부로 잡아다가 취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남의 고을의 백성이라도 범죄 사실이 확실한 경우에는 해당 고을의
사또에게 범죄 사실을 알려 주어서 체포해 올 수는 있었다.
김삿갓은 그런 실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날 중으로 황주 고을에 두 명의 형사 포졸을 보내면서 백창수 사또의 이름으로
황주 고을 사또 앞으로 다음과 같은 수사 협조전을 보냈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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