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주인 노파에게 시 한수를 배운 김삿갓

오토산 2020. 2. 1. 09:34

●방랑시인 김삿갓 02-(76)

* 兩頰無一齒, 能食一船薑 (양협무일치, 능식일선강)

 

"하하하,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더니, 노형은 기생 외도로 신선놀음을 하셨구려."

김삿갓이 한바탕 웃고 있는데, 주인 노파가 술을 들고 들어오며,

"처음 만난 양반끼리 무슨 재미있는 일이 많아 그렇게도 웃고 계시우."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주인 노파를 옆에 주저앉히며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주모 !

옹진서 왔다는 이 양반 말 좀 들어 보시오.

이 양반은 어떤 기생한테 소금 한 배를 몽땅 털리고도 , 후회를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기생은 소금 한 배를 송두리째 삼켜 먹고도

 <짜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하더라니, 웃을밖에 없지 않소 ? "

 

그러나 주인 노파는 별로 우습지도 않은지, 예사롭게 대답한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기생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많다오.

 지난 가을에는 전라도에서 생강 장수가 생강 한 배를 싣고 와서 큰 돈을 벌어선

 어떤 기생한테 몽땅 빼앗겨 버렸다는 거예요.

그 기생은 생강 한 배를 몽땅 삼켜 먹은 셈이지요."

 

김삿갓은 크게 웃으며,

"이 양반이 좋아하던 기생은 소금 한 배를 먹고도 <짜다>는 말 한마디도 안 했다는데,

 그 기생은 생강 한 배를 집어삼키고 <재채기> 한번도 안 한 게 아니오 ?"하고

너스레를 치자, 주인 노파가 다시 말한다.

 

"남자들은 코 밑에 있는 입으로만 먹는 줄 알지만,

기생들은 논이든 밭이든 소금이든 생강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입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모양이구려 ? 안그래요 ? 호호호...".

주인 노파의 말 받아 넘기는 재주가 보통은 아니었다.

 

"평양 기생들에게는 뭐든지 먹어치우는 특별한 입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옹진 양반은 소금 한 배를 몽땅 빼앗겼고,

 전라도에서 온 생강 장수는 생강 한 배를 몽땅 빼앗겼다니,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겠소."

 

"자기가 좋아서 저지른 일 인데 억울하기는 뭐가 억울하겠어요.

 허기는 생강 장수는 생강 한 배를 몽땅 빼앗긴 것이 어지간히 억울했던지,

 어느 날 기생의 옥문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시를 한 수 읊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오."

 

김삿갓은 생강 장수가 기생의 옥문을 들여다보며 시를 지었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할머니는 그 시가 어떤 시였는지 아시오 ?"

 

"알고말고요. 평양 사람들치고

 그 시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갔시오."

 

"그렇다면 그 시를 좀 적어 보여주시려오 ?" 

"그럽시다그려."

주인 노파는 즉석에서 종이에 시 한 수를 적어 보였다.

 

원간사마목<遠看​似馬目>           멀리서 보면 말 눈깔 같고

 근시여농창<近視如膿瘡> 가까이 보면 진무른 부스럼 같도다

 양협무일치<兩頰無一齒>       두 볼에는 이가 하나도 없건만

 능식일선강<能食一船薑>  생강 한 배를 널름 삼켜 먹었구나.

...

 

김삿갓은 그 시를 읽어 보고 배를 움켜잡고 웃으며 감탄했다.

"나는 시를 수없이 읽어 보았지만,

이렇게도 실감나는 시를 읽어보기는 처음이오."

 

그러자 주인 노파도 웃으며 받아넘긴다.

"그럴밖에 없잖아요 ? 

 남자들은 <옥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다가,

시까지 그럴 듯하게 읊어 놓았으니 감격스러울밖에 없겠지요."

 

주인 노파는 말솜씨가 능란할 뿐만 아니라, 글도 제법 유식해 보인다.

어디로 보나 평양 기생 퇴물이 틀림없어 보였다.

 

...계속 2-77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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