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죽향과 대동강에서 이별한 김삿갓

오토산 2020. 2. 14. 07:59

●방랑시인 김삿갓 02-(89)

* 이별과 눈물의 대동강.

 

김삿갓은 죽향을 무리하게 가까이 할 생각은 없었다.

 시와 마음이 통하면 그만이지,

 나이 어린 풋내기들처럼 구태여 살을 섞어야 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김삿갓은 비록, 죽향과 살을 섞지는 않았지만,

 바라만 보아도 서로간에 마음이 통하고 보니,

그날부터 두 사람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기에 김삿갓은 죽향에게 농담삼아,

"우리들은 마치 홀아비와 과부가 한집에 모여 살고 있는 것만 같네그려."

하고 말했더니, 죽향은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렇게 받아넘기는 것이었다.

 

"옛날 시에"

 화소성미청<花笑聲未聽>꽃은 웃어도 웃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요,

 조제누난간<鳥啼淚難看>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볼 수 없다

 이라는 말이 있지 아니하옵니까.


삿갓 선생만은

소첩의 심정을 충분히 알아 주시리라고 믿고 있사옵니다."

진실로 변죽을 두두리면 복판이 울리는 멋진 대답이었다.

 

김삿갓은 죽향이 고향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준비를 하는 중에

 때때로 이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사흘만에 ,죽향의 고향 출발의 날이 밝아왔다.

마음이 통하는 사모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짧은 사흘이었다.

 

김삿갓은 배낭을 먼저 짊어지고 나서며 ,죽향에게 말한다.

"자네를 대동강 나루터까지 전송하고 나서,

나도 관서 지방으로 떠나기로 하겠네."

 

그러자 죽향은 도리질을 하면서 말한다.

"아니옵니다. 선생을 전송해 드리고, 저는 나중에 떠나겠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여자고, 나는 사내 대장부가 아닌가.

자네를 전송하기 전에는 나는 발길이 무거워 떠날 수가 없네."

 

두 사람은 서로 전송하겠다고 승강이를 하다가,결국은 죽향이 먼저 떠나게 되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대동강변에 있는 나루터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죽향은 나룻배에 오를 생각은 안 하고 ,

김삿갓의 얼굴만 눈물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배에 오르게나 ! "

 죽향은 그래도 배에 오르지 않고,

김삿갓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 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시 한 수를 읊는다.

...

 

대동강상별정인<大同江上別情人>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양유천사미계인<楊柳千絲未繫人>       천만 올의 실버들도 잡아매지 못하오

 함누안간함누안<含淚眼看含淚眼>   눈물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

 단장인대단장인<斷腸人對斷腸人>      님도 애가 타는가 나도 애가 끊기오.

... 그야말로 애 간장이 녹아나는 시였다.

 

거기에 대해 김삿갓도 한마디 응수가 없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눈앞에 펼쳐진 대동강 풍경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

 

취금난희대심부<翠禽暖戱對沈浮>        푸른 새는 강물에서 정답게 노닐고

 청경란산야미수<晴景欄珊也未收>    난간에서 바라보니 풍경은 아름답건만

 인원만수산북입<人遠漫愁山北立>        님 보내는 시름은 북쪽 산에 어리고

 노장유견수동류<路長惟見水東流>   멀리 떠나가는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네


 수양다재앵제역<垂陽多在鶯啼驛>   꾀꼴새는 버드나무숲에서 울어 쌓는데

 방초무변객의루<芳草無邊客倚樓>     나는 다락에 기대 풀밭만 바라보노라

 초창송군자애반<초창送君自崖返>     그대를 보내고 나 혼자 언덕에 남으면

 나감낙월하정주<那堪落月下汀洲>      달이 질 때 설움을 무엇으로 달래랴.

...

 

죽향은 김삿갓이 읊는 이별의 시를 듣고,

옷소매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없이 흐느낀다.

아직까지 잠자리조차 같이해 본 일이 없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서로 미치면, 모든 것이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지금 대동강가에서 이별을 앞에 두고, 가는 사람은 죽향이요,

보내는 사람은 김삿갓이었다.

죽향과 김삿갓은 좀처럼 헤어질 줄을 몰랐다.

 

"배가 떠날 모양이니, 어서 배에 오르게."

김삿갓이 배에 오르기를 재촉하자, 죽향은 눈물을 씹어 삼키며,

 "선생은 이제부터 어디로 가시옵니까 ?" 하고 울성으로 묻는다.

 

"나는 원래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몸,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기가 어려울 걸세."

 

죽향은 그 말을 듣자, 설움이 북받쳐 올라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이별의 시를 이렇게 읊는 것이었다.

...

 

去去平安去 <거거평안거>       부디 평안히 가시옵소서

 長長萬里多 <장장만리다>        끝없이 머나먼 만리길을

 江天無月夜 <강천무월야>      하늘에 달이 없는 밤이면

 孤叫雁聲何 <고규안성하>   외기러기 슬피 울으오리다 

...

죽향은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조그만 돈주머니 하나를

 김삿갓의 배낭 속에 쑤셔 넣어 주며,

"이것은 몇 푼 안 되지만, 술값으로 보태 쓰시옵소서."

 

마지막으로 그 말 한마디를 남기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나룻배에 뛰어올라,

 숫제 외면을 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눈물이 앞을 가려 김삿갓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죽향아 ! 부디 잘 가거라 !

오늘의 우리들의 이별은 처음이자 마지막 이별이 될 것이다.)

마음 속으로 그렇게 뇌까리며 발길을 돌리는 김삿갓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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