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 (111)
*김삿갓이 해석하는 약속의 함정.
"아니 !
맡겨 두었던 돈을 돌려 달라고 하는 말이 어째서 말이 안 된다는 말씀이오 ?"
"우리들은 노형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구려 ! "
돈을 돌려 줄 필요가 없다는 김삿갓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돈을 맡아 두었으면,
주인에게 돌려 줘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런가.
그러나 김삿갓은 정색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순천댁은 그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협박과 공갈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김삿갓의 말을 점점 이해할 수가 없어, 서
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향장 노인이 거두절미하고, 김삿갓에게 이렇게 캐 물었다.
"아니 그럼 ,
노형은 돈을 물어 주지않고도 그놈들의 행패를 능히 막아낼 수 있다는 말씀이오 ? "
"노인장과 마을 사람들이 그자들의 행패를 막아 달라고 하시면,
제가 지금이라도 주막으로 가서 그자들의 행패를 막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 일시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러면 우리들이 노형을 모시고 갈 테니,
노형이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 주시오.
순천댁이 그자들에게 참혹하게 당하고 있는 꼴이
너무도 측은해 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이리하여 김삿갓은 한밤중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주막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도착해 본 주막의 풍경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세 명의 젊은 장사꾼들은 순천댁을 방 한복판에 밧줄로 꽁꽁 묶어 놓은 채로,
"네 년이 우리들의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 "
하고 고함을 질러 대며 무시무시한 엄포를 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삿갓은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세 명의 장삿꾼에게 벼락 같이 호통을 질렀다.
"이 사람들아 ! 이 여인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못살게 구는가 ! "
그리고 여인의 결박을 손수 풀어 주면서,
장사꾼들을 다시 이렇게 나무라 주었다.
"만약 이 여인에게 죄가 있거든 나에게 말해 보게 ! "
장사꾼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가 추상같은 호통을 치는 바람에,
처음에는 기가 푹 꺾였다.
호통 소리가 하도 요란스러워, 동헌에서 사또가 출두한 줄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의 차림새가 관원이 아닌 것이 확실해 보이자,
장사꾼들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대관절 당신은 누구요 ?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남의 싸움에 들이닥쳐,
감 놔라 대추 놔라 지랄발광이오 ?" 하고 금방이라도 덤벼들 기세를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펼쳐진 상황에서는 자칫 ,
세 놈의 젊은 장사꾼을 섣불리 다루다가는
김삿갓이 무슨 봉변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험학안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삿갓은 더욱 호기롭게 세 명의 장사꾼을 향해 너털 웃음을 웃어 보였다.
"허허허,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까,
주먹으로 해보자는 말인가 ?
그러나 자네들이 이 마을에서 억지로 주먹을 함부로 휘두르려다가는
마을 사람들 손에 뼈도 추리지 못하게 될 걸세.
" 김삿갓이 엄포를 놓자,
병풍처럼 둘러서 있던 마을 사람들은 저희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소근거렸다.
"이 판국에도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걸 보니,
저 양반은 혹시 암행어사가 아닌가 ?"
"그러게나 말야,
암행어사는 언제든지 저 양반처럼 거지꼴로 변장을 하고 다닌다면서 ? "
"그래, 그래 !
암행어사가 틀림없어."
그렇게 소근거리는 소리가 김삿갓의 귀에까지 들려 올 정도였으니,
장사꾼들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장사꾼들은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 받더니
별안간 풀이 죽어 버리며,
"우리가 저 여인에게 맡겨 놓은 돈을
저 여인이 엉뚱한 사람에게 주어 버렸다는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맡겨 두었던 돈을 변상하라고 하는 것이
뭐가 나쁘다는 말입니까 ?" 하고 이번에는 말로만 대드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이때다 싶어, 장사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마을 노인들로부터 사건의 내용을 자세하게 들었네.
자네들은 저 여인에게 돈을 맡기면서,
네 사람이 함께 찾으러 오기 전에는
누구한테도 그 돈을 내 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 "
그러자 셋 중의 한 사람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 여인과 분명하게 그런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저 여인은 우리들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도망간 친구에게 돈을 몽땅 내 주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약속을 어긴 저 여인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말할수 밖에 없지 않아요 ? "누가 들어도 지당한 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순천댁을 도와 주려고 함께 달려왔지만,
감히 입을 떼지 못하는 것은, 장사꾼들의
주장이 너무도 정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김삿갓이 장사꾼들에게 조리있게 따지고 들자 ,
마을 사람들은 하나씩 고개를 끄덕이며 김삿갓의 다음 말을 침을 삼키며 듣고 있었다.
"자네들 말을 듣고 보니,
네 사람이 함께 와야만 돈을 찾아갈 수가 있겠는데,
지금은 세 사람만이,
맡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처음 약속과 엄연히 다른 것이니
돈을 내어 줄수 없는 일이 아닌가 ? "
그러자 장사꾼들은 김삿갓의 말을 듣고 날카롭게 반격을 가해 온다.
"저 여인이 사기꾼에게 자기 맘대로 돈을 내주었으니까,
모든 책임은 저 여인이 져야 할 게 아니냔 말이오,
우리가 맡겨 둔 돈을 돌려 달라는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이요 ? "
김삿갓은 다시 한번 장사꾼들에게 말했다.
"저 여인이 사기꾼에게 속은 것은 자네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일쎄,
약속대로 라면 자네들이 맡겨 놓은 돈은
네 사람이 반드시 함께 와야만 내 줄수 있는 돈일세.
그런데 지금처럼 세 사람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약속이 틀리지 않느냔 말야.
일단 약속을 했으면 약속은 어디까지나 지켜야 하는 법이네.
돈을 돌려 주지 않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세.
네 사람이 함께 오기만 하면 돈은 언제든내 주겠네.
만약 그렇지 않고 자네들처럼
한 사람씩 뿔뿔이 찾아왔을 때에도 돈을 내 줘야 한다면,
저 여인은 여러 사람에게 돈을 몇 번이고 갚아 줘야 할 게 아닌가 ? "
김삿갓이 반론을 이같이 교묘하게 전개하자 ,
마을 사람들은 그제서야 김삿갓의 이론과 주장이 정당함을 알고 크게 기뻐하였다.
장사꾼들도 김삿갓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맛만 쩝쩝 다시고 있었다.
김삿갓이 다시 말했다.
"자네들이 돈을 꼭 찾아가고 싶거든, 지금이라도 도망간 친구를 붙잡아 가지고,
네 사람이 함께 오도록 하게.
그렇게만 해 준다면 약속대로 돈을 즉석에서 돌려 주도록 하겠네."
...계속 112회로~~~
<sns에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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