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02-(123)
*인풍루(仁風樓)에서..
다음날 , 아침을 얻어 먹은 김삿갓은 인풍루(仁風樓)를 구경하려고
훈장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였다.
그러자 훈장은 가여운 시선으로 김삿갓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무슨 목적을 가지고 생소한 지방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고 있는가 ?"
"어떤 목적이 있어 그러는 것은 아니고,
명산대천을 두루 구경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죠."
"예끼 이사람아 !
못난 소리 그만 하게.
명산대천을 아무리 많이 구경한들 , 거기서 돈이 나오는가, 계집이 나오는가 ? "
훈장은 그렇게 말하며 코웃음을 치고 나서, 다시 말을 하는데,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강계에는 기생이 많기로 소문난 고장일세.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자네도 돈 많은 기생이나 하나 꼬셔 가지고 엄동설한을 따듯하게 보내도록 하게.
그리고 자네 옷 주제가 그게 뭔가.
옷 주제가 그래 가지고는 얼어죽기가 십상일 걸세."
훈장은 동정하는 뜻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이겠지만,
그 말투는 협잡배와 다를바 없는 말투였다.
김삿갓은 자기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
돈 많은 기생을 꼬시려면 우선 내가 돈이 많아야 할 게 아니겠소 ?
그러나 내가 어디, 돈이 있어야 말이죠."
"예끼, 이 사람아 !
못난 소리 그만 하게 !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줄 아는가 ?"
"그렇다면 ,돈 도 없이 기생을 꼬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 "
훈장이 어떤 수법으로 마누라를 꼬였을까 싶어,
김삿갓은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어 보았다.
그러자 , 훈장은 김삿갓의 등을 툭툭 쳐보이며 말했다.
"자네는 그 방면에는 아주 숙맥인 모양이니, 내가 그 방법을 가르쳐 줌세.
여자라는 동물은 워낙 연약한 동물이라,
무슨 수단을 써서든지 한번 깔아뭉개 버리면 되는 법이네.
지기상재(地氣上齋)하고 천기하강 (天氣下降)하여 음양상마(陰陽相摩)하면
천지상탕(天地相蕩)하는 법인데,
돈이 무슨 필요란 말인가 ?
그러기 위해서는 뿌리가 튼튼해야 하네.
자네는 물론 뿌리가 튼튼하겠지 ?
하하하...."
훈장은 이렇게 떠들면서 한바탕 웃어 쌓고 나서,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이라, 계집은 어디 가나 있으니,
이번 겨울에는 좋은 계집을 꼭 하나 후려잡도록 하게." 하고 말을 끊었다.
김삿갓은 인풍루 구경을 하면서도,
자신은 훈장과 같은 식으로 살아갈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남녀가 서로 , 금실이 화합하지 않으면 동물들의 육욕(肉慾)과
무슨 차이가 날 것인가 싶었던 것이다.
이윽고 김삿갓은 인풍루에 도착하였다.
인풍루는 평양의 연광정 (緣光亭),성천(成川)의 강선루(降仙樓),
안주(安州)의 백상루(百祥樓), 영변(靈邊)의 약산동대(藥山東臺),
의주(義州)의 통군정(統軍亭), 만포(滿浦)에 세검정(洗劍亭),
선천(宣川)의 동림(東林) 폭포와 함께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다.
김삿갓은 연광정도 보았고, 백상루도 보았다.
그리고 약산동대도 보았다.
그러나 인풍루는 앞서 보았던 연광정과 백상루와는 또다른 모습이었다.
인풍루는 독로강과 북천(北川)이 합수(合水)하는 천인절벽 위에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하고도 수려한 누각이었다.
인풍루 난간에서 눈앞을 굽어 보니, 저 멀리 절벽 아래 푸른 강물이 굽이치며
흘러가는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강 건너 넓은 들판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은
유별나게 보였다.
"강 건너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저 산의 이름은 뭐하고 합니까 ? "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저 산의 이름은 독산(禿山) 이지요.
이 지방사람들은 중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중머리산>이라고 부릅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독산을 바라보며,
"모든 산들은 서로 연봉(連峯)을 이루고 있는데,
저 산 하나만은 어째서 홀로 떨어져 있을까 ? "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옆사람이 듣고 대답을 하는데,
"저 산은 본래 강계에 있던 산이 아니고,
위원(渭源) 고을에서 학이 등에 짊어지고 날아오다가,
저곳에 떨어뜨려 놓은 산이라오.
그러니까 언제나 외로운 산일수 밖에 없지요."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학이 위원에서 산을 짊어지고 오다뇨 ? 그게 무슨 소리요 ? "
"강계의 진산(鎭山)인 남산에는 옛날부터 학이 많이 살아오고 있지요.
그런데 학들이 위원에 있던 저 산이 무척 탐이 났던지,
어느날 학이 저 산을 등에 짊어지고 날아오더라는 거예요.
때마침 독로강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들이 그 광경을 보고
너무도 놀란 나머지 크게 소리를 지르자,
학은 저 산을 남산까지 가져가지 못하고, 들판에 떨어뜨려 버리고 말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 산은 들판위에 외롭게 서 있게 된 것 이라오."
어느 지방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전설의 한 토막이었다.
"위원에서 가져오다가 떨어뜨린 산인지는 몰라도,
강 건너 들판에 저 산 하나 우뚝 솟아 있음으로 해서
인풍루의 조망이 더한층 아름답게 되었소."
김삿갓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락에 걸려있는 현판시를 읽어 보았다.
<한 줄기 비바람 강 위로 지나가니 >
<모든 산 푸른빛이 허공에 그득하다 >
<안개 낀 모래밭엔 백로가 졸고 있고>
<어스름 물결 위엔 쏘가리 떼 뛰노네.>
<다락은 높아 하늘에 솟았건만>
<삼 년 묵은 이 내 시름 풀 길이 없네>
<가슴에 품은 큰 뜻은 한이 없으니>
<귀양살이 괴로움 술로나 달래 보리.>
...계속 124회로 ~~~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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