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45)
◎ 금부처
눈발이 펄펄 휘날리는 경상도 안동 땅에 꾀죄죄한 낯선 선비 한사람이
보따리 하나를 안고 나타나 천석꾼 부자 조참봉 댁을 찾아갔다.
조참봉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린 젊은 선비는 목이 멘 목소리로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소인은 옹천 사는 허정이라 하옵니다.
연로하신 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관가에 끌려가시더니
말도 안되는 이런저런 죄목을 덮어쓰고 덜컥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엄동설한에 옥중에 계신 아버님 생각을 하면…”
효자 선비는 설움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닭똥같은 눈물만 흘렸다.
눈물을 닦은 선비는 하던 말을 이어갔다.
“이방이 찾아와 500냥만 내면 풀어주겠다는 귀띔을 주건만 그 거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젊은 선비는 가지고 온 보따리를 풀었다.
높이가 한자쯤 되는 휘황찬란한 금부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의 25대 선조께서 고려 법흥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이 금부처는 저희 집의 가보로,
가문의 자랑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이걸 담보로 500냥만 빌려주시면
정월 그믐까지 이자 100냥을 붙여 꼭 갚겠습니다.”
젊은 선비는 조참봉이 선뜻 내놓은 500냥을 안고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부터 조참봉은 친구며 이웃 닥치는 대로 불러 금부처를 자랑하는 게 하루 일이 되었다.
“그 가난한 선비가 두달만에 무슨 수로 600냥을 구할까.
이 금부처는 모르긴 몰라도 9할은 자네 것이 되었네.”
금부처를 보고 감탄한 친구의 말에 조참봉은 껄껄 웃었다.
어느 날 서당에서 돌아온 손자 녀석이 조참봉의 간을 떨어뜨렸다.
“할아버지, 고려왕조에서는 법흥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금부처는 순금덩어리가 아니고 납덩어리에 도금한 거예요.
이걸 보세요."
조참봉은 집사를 옹천 땅으로 보내 허정을 찾아 데려오라 했지만 헛걸음이 되었다.
사기꾼이 자기 사는 곳을 곧이곧대로 얘기했을 리 만무하다.
조참봉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게 되었다.
손자 녀석이 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할아버지, 걱정하실 것 없어요.
금부처가 가짜라는 걸 입 밖에 내지 마세요.”
새벽녘에 손자 녀석이 밧줄로 제 할아버지를 포박하고 자신도 포박한 후 조참봉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하인들이 몰려왔다.
“네 이놈들 간밤에 도둑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안동 부자 조참봉이 담보로 잡아둔 금부처를 도둑맞았다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천리만리 퍼져나갔다.
한몫 잡아 풍기에서 첩살림을 차려놓고
빈들거리던 사기꾼 귀에도 그 소문은 들어갔다.
‘"잡고 있던 담보물건을 잃어버렸다.
이건 부르는 게 값이렷다! 5
천냥, 아니야 만냥은 받아내야지."
사기꾼은 600냥을 만들어 정월 그믐이 되기도 전에 안동 땅으로 조참봉을 찾아갔다.
소문대로 조참봉은 드러누워 있었다.
“여기 이자 100냥을 붙여서 600냥을 갖고 왔습니다.
제 금부처를 돌려주시지요.”
조참봉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 일을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만 도둑을 맞고 말았습니다.”
젊은 선비가 방방 뛰었다.
“뭐라구?
당장 사또 앞으로 가자구!”
조참봉이 일어나
“여봐라, 이 선비가 사또 앞으로 가자신다.
그 가짜 금부처를 갖고 오너라.”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사기꾼을 포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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