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안동민속촌에 있는 애련정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0. 12. 11. 00:37

안동민속촌에 있는 애련정을 댜녀와서

 

 

 

대설을 넘긴지 이틀 12월 9일 오후

안동민속촌 애움터마을에서 안동문화관광단지로 가는 길 우측편에 위치하고

1516년 송재 이우 선생이 안동부사 시절에 세운 애련정(愛蓮亭)을 다녀왔다.

애련정을 돌아보고 내려오면서

살얼음이 얼은 연못에 비춰진 호연정의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애련정(愛蓮亭)은 안동부에 속해 있던 정자로 향토지인 '영가지지'에는

애련당(愛蓮堂)으로 기록을 하면서 '객사 망호루 북쪽에 있으며

당은 옛날 연못가운데 있었으며 부사인 농암 이현보가 중건하였다'고 적고 있다.

현재건물은 송재종택의 외당(外堂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있었던 것을

2004년 현위치로 옮겨 세웠다.

 

송재(松齋) 이우(李堣 1469~1517) 선생은 진성이씨 시조 이석(李碩)의 6세손으로

아버지 노송정 이계양과 어머니 영양김씨 사이에서 노송정종택에서 태어나서

남다른 자질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19세(1487)에 이시민의 따님이자 대사헌 이승직의 손녀에게 장가 들었고

24세(1492) 생원시에 합격하고 30세(1498) 문중에서 처음으로 문과급제를 하였다.

 

무오사화가 일어나던 무오년(1498) 권지정자를 시작으로 예문관 검열, 예문관 대교,

예문관 봉교, 성균 전적, 사간원 정언, 이조좌랑, 사간원 헌납, 동부승지 등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격으면서 내외직을 두루 역임을 하다가

41세(1509) 호조참판, 42세 형조참판, 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43세(1511)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으며 44세 노모봉양을 위하여 해직을 청하고

예안 옛집으로 돌아와 영해부사와 김해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경서와 사서(史書)를 연구하고 자질(子姪)들을 가르치며 시를 읊조리며 지냈다.

 

47세(1515) 안동부사에 제수되었고 48세 가선(嘉善)의 품계를 받았으며

49세(1517) 11월 8일 병을 앓다가 관아에서 돌아가시어

예안현 온계리 수곡에 자리한 선영에 장사를 지냈다.

 

송재선생은 퇴계의 어린시절 학문에 영향을 끼치신 숙부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2018년 10월 5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송재 이우 서세 500주년기념 학술대회'와

2020년 발간된 '송재 이우의 삶과 학문' 학술지를 통하여 송재선생의 걸어오신

바른길과 훌륭하신 삶이 다시 조명되고 있으며

 관등행록과 귀전록에 수록된 264수의 시(詩)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많은 지원과 연구를 하여주신 안동시장님과 한국국학진흥원장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선조의 유업을 기리기 위하여 애쓰신 이경락 진성이씨대종회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송재선생의 유덕을 기리며 보람있는 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