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167) 제19장 백사자11회~15회
백사자 11회
“야웅 야웅-”
고양이는 이해한다는 듯이 부드러운 소리를 좀 길게 낸다.
반금련은 넋두리를 하듯 계속 지껄인다.
“관가 녀석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내가 아이를 못 낳기 때문만은 아니라구.
물론 그런 질투 탓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너무 외로워서 그러는 거야.
네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구.
나는 사람이고, 너는 짐승이잖아.
사람은 사람하고 사랑해야 진짜 기분이 좋은 거라구. 알겠어?
그런데 관가란 녀석이 나한테서 서문경이를 빼앗아 갔지 뭐야.
넌 그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 그렇지?”
“야웅-”
“무슨 소린가 하면 말이야. 관가를 낳은 뒤로는 서문경이가
노상 아들이 귀엽고 좋아서 그곳에만 가있다 그거야.
그러니까 횡재 만난 것은 이병아지.
서문경이의 마누라는 이제 이병아 하나밖에 없는 셈이라니까.
나한테는 한 달에 한 번도 자러 올똥말똥 하다구.
너도 잘 알잖아.
다른 부인들한테는 보나마나 더 안 갈 거야.
모두 생과부가 되고만 셈이지. 분해서 죽겠지 뭐야.
그러니 관가란 녀석이 밉지 않겠어?
죽어 없어지기를 아마도 모두가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을 거라구”
지금까지 서서 듣고 있던 고양이가 반금련의 다리 곁으로 다시 바짝 다가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앉는다.
반금련은 한손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넋두리를 잇는다.
“아까 관가가 틀림없이 감기가 들었을 거라구.
추워서 새파랗게 질리며 우는 거 너도 봤잖아.
감기가 낫지 않고, 폐렴으로 번져서 이번에 깨끗이 뒈져 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히히히 히히히... 백사자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응?”
“야웅 야웅-”
“너도 좋다 그거지, 맞지?”
“야웅-”
반금련이 고양이를 데리고 살짝 신이 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이렇게 저주에 찬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을 때,
관가는 유모의 품안에서 칭얼거리며 젖을 빨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여의는 잠이 든 관가를 침상의 포대기 속에 눕히고,
자기는 의자를 침상 곁으로 갖다놓고 앉아서 아기의 자는 모습을
이따금 힐끗힐끗 지켜보며 뜨개질을 시작했다.
잠시 후, 무당집에 축원을 드리러 갔던 이병아가 수춘이와 함께 돌아왔다.
내실로 들어선 이병아는 대뜸,
“관가의 얼굴이 왜 저렇지?” 하고 묻는다.
백사자 12회
“왜 어떤데요?” 여의가 되묻는다.
“얼굴빛이 이상하잖아. 열이 있는 것 같은데...”
이병아는 다가가 한손으로 관가의 이마를 가만히 짚어 본다.
손바닥이 이마에 닿자 관가는 자면서도 깜짝 놀라 듯 바르르 떤다.
그리고 곧 칭얼거리면서 잠을 깬다.
눈을 뜬 관가는 제 이마를 짚어보고 있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응 아아응-” 하고
그만 냅다 울음을 터뜨린다.
“보라구, 열이 있잖아”
“그래요?”
여의가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서서 이번에는 자기가 관가의 이마를 짚어 본다.
“글쎄요. 좀 열이 있는 것 같네요”
“좀이 아니라구. 꽤 있다니까”
그러면서 이병아는 포대기를 살짝 들추고 아기의 진홍색 담옷 속으로 한손을 가만히 넣어 본다.
몸뚱이에 손이 닿자 관가는 놀라 냅다 몸을 꿈틀거리며 더욱 악을 쓰듯 운다.
“어머나, 배에는 열이 많이 있다니까. 어떻게 된 일이지? 감기가 든 모양인데...”
그제야 여의는 도리가 없는 듯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저... 반금련 마님이 안고 밖엘 나갔지 뭐예요”
“뭐? 반금련 마님이?”
“예”
“어떻게 된 일인데?”
이병아는 약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의는 자초지종을 늘어놓는다.
얘기를 듣고 난 이병아는 몹시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앞으로는 절대로 관가를 혼자 내버려두지 말라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알겠지?”
“예, 마님 명심하겠습니다”
“감기가 든 게 틀림없으니 어서 가서 의생을 불러 오라구”
“예”
여의가 의생을 부르러 얼른 방에서 나가자,
이병아는 나들이옷을 벗으며,
“반금련 고것이 틀림없이 일부러 그런 거라구.
감기가 들도록... 고년...” 하고 중얼거린다.
밤이 꽤 이슥해서 술이 거나해 가지고 돌아온 서문경은
침상에 누워 앓고 있는 관가를 보자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놀란다.
“아니, 우리 관가가 왜 이러지?
여보, 어떻게 된 일이야? 응? 어서 말해 보라구”
백사자 13회
“감기죠 뭐”
“오늘 아침에 내가 등청할 때까지도 아무렇지도 않던 아이가 별안간 감기라니...”
감기야 뭐 미리 알려주고 시작하나요.
해질 무렵부터 조금씩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약을 썼어?”
“물론이죠”
“열이 대단한 것 같은데...”
서문경이 취중이면서도 조심스레 한손으로 관가의 이마를 짚어 본다.
“아이구 이거 불덩어리 아냐. 잘못하면 이거 큰일 나겠는데...”
“의생이 그러는데 오늘밤에는 열이 좀 심하겠지만 약을 썼으니
자고나면 많이 가라앉을 거라고...”
“음...”
서서 내려다보고 있던 서문경은 의자를 가져다가 침상 가까이에 놓고 앉아서
여전히 근심스런 표정으로 관가를 지켜본다.
이병아도 의자를 끌어다가 앉는다.
잠시 방안에 침묵이 흐르고 관가가 자면서 앓는 소리만이 갸날프면서도 숨가쁘다.
이병아는 반금련이 관가를 바깥에 안고 나갔다는 말을 끝내 입 밖에 내질 않는다.
속이 깊은 그녀인지라 공연히 또 집안을 시끄럽게 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말을 해서 서문경이 반금련을 꾸짖게 될 것 같으면
그렇잖아도 질투심이 유달리 짙은 그녀가 가만히 있질 않고,
어떻게든지 앙갚음을 할 것 같아 두려웠다.
관가를 위해서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라 싶은 것이었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한다.
“여보, 요즘 당신 반금련 형님한테 한번도 자러 안가셨죠?
종종 자러 가주세요”
"별안간 왜 그런 소리는?“
서문경이 멀뚱히 바라본다.
“당신이 나한테서만 주무시니까 미안하지 뭐예요”
“허허허...
그럼 하필 왜 반금련이한테만 가라는 거야?”
“그 형님이 샘이 제일 많으니까요”
“허허허...”
“안 그래요? 하하하...”
비로소 이병아의 입에서도 웃음이 나온다.
이튿날 아침 관가는 열이 좀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이마를 짚어보면 뜨거웠다.
이병아는 관가를 안고 앉아서 여의에게 이른다.
“가서 의생한테 또 좀 와보라고 해”
“예”
여의가 방을 나가려고 하는데,
수춘이가 약사발을 들고 들어온다.
백사자 14회
관가가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오월랑이 찾아온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오월랑은 이병아가 안고 있는 관가를 내려다보며 걱정스러운 듯이 묻는다.
“아니, 여보게, 어쩌다가 아기를 이렇게...”
“어제 내가 어디 좀 갔다왔더니 글쎄 아이에게 열이 있지 뭐예요.
간밤에는 열이 아주 심하더니 이제 많이 내린 셈이라구요.
조금 전에 의생이 또 왔다갔는데, 차차 괜찮을 거라면서 방을 덥게 하라는군요”
“그렇지, 감기에는 땀을 내는 게 제일이니까”
“약을 먹고 땀을 좀 흘렸다구요”
“하기야 아이가 자랄려면 감기도 들고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그럼요. 곧 괜찮을 거예요”
역시 정실답게 진정으로 위로해 주는 게 이병아는 코허리가 찡하도록 고맙다.
꼭 친언니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반금련이 관가를 안고 추운 바깥으로 나갔다는 말이
곧 입 밖으로 나오려한다. 그러나 그녀는 용케 참아낸다.
오월랑이 다녀가자,
이교아와 손설아가 찾아왔고, 그다음에 맹옥루가 혼자서 왔다갔다.
그러나 반금련은 날이 저물도록 끝내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병아는 속으로,
“그럴거야. 그년” 하고
못마땅해 하면서, 어제 추운 바깥에 관가를 안고 나간 게
틀림없이 고의였을 거라고 단정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찾아와 보지도 않는가 말이다.
관가가 아프다는 것을 모를 리가 만무할 터인데...
이병아는 괘씸하면서도 한편 두려운 생각이 자꾸 고개를 쳐든다.
앞으로 관가를 별탈없이 잘 키우려면 반금련을 늘 경계하고,
아니꼽지만 겉으로는 그녀의 비위를 맞춰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밤 이병아는 서문경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밤엔 당신 반금련 형님한테 가서 주무세요. 예?”
“관가가 아픈데 내가 여기 있어야지”
“인제 많이 좋아졌으니 걱정 마시구요.
어젯밤보다는 훨씬 열이 내렸고, 아침보다도 많이 좋아졌다구요”
“왜 자꾸 나를 반금련이한테 쫓을려고 그러지?
이상한데... 내가 싫어진 모양이지?”
“호호호... 어젯밤에 말했잖아요. 미안해서 그렇다고...”
“글쎄, 왜 갑자기 미안해졌느냐 그거야. 지금까진 그런 소릴 안하더니...”
“갑자기 아니라, 지금까지도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구요.
샘 많은 그 형님이 두렵지 뭐예요”
백사자 15회
“뭐? 두렵다구? 그게 무슨 소리야?”
서문경은 귀가 번쩍 뜨이는 듯 약간 긴장이 되며 묻는다.
이병아는 속으로 아차 싶으며 애써 예사롭게 말한다.
“강짜를 부릴까 싶어서요.
속에 질투가 쌓이고 쌓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누구한테 강짜를 부린단 말이야?”
“글쎄요,
그건 난들 어떻게 알아요. 나한테 부릴지, 당신한테 부릴지, 혹은...”
“혹은 또 누구한테?”
“아니예요. 모르겠어요. 내가 공연히 너무 신경을 쓰나봐요”
“무슨 일이 있었어?”
“아니요.
무슨 일이 있긴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음- 알았다구”
“오늘밤 거기 가서 주무시는 거죠?”
“그러지”
서문경은 밤이 꽤 이슥해질 때까지 관가의 곁에 있다가 하품이 나오자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며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반금련한테 자러 갔다.
반금련의 거실에 들어선 서문경은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거실의 불은 꺼지고, 침실 쪽에는 불이 켜져 있어서 문짝 위아래 공간으로
불빛이 비쳐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침실에서 고양이 울어대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낑낑 앓는 것 같은 괴이한 울음 소리였다.
고양이 소리에 섞여 반금련의 야릇한 신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서문경은 야 이것 봐라,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어험!” 헛기침을 내뱉었다.
반금련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후닥닥 정신없이 뛰어 일어난다.
고양이도,
“야웅-”
몹시 당황한 듯 얼른 침상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어디로 숨을까 싶은 듯 눈알을 굴렁거리다가
재빨리 침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버린다.
서문경이 침실의 문짝을 왈칵 열어젖히며 들어서자,
반금련은 얼굴에 금세 얄얄한 웃음을 떠올리며 아양을 떨 듯이 말한다.
“어머나 당신, 오셨군요.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어서 이리 앉으세요”
의자를 가져다가 놓아준다.
그러나 서문경은 앉을 생각을 안하고, 반금련을 노려보며 내뱉는다.
“아니, 당신 지금 뭘 하고 있었어?”
“뭘 하다니요? 잠을 자려던 참이에요”
“뭐라구? 내가 다 들었다구. 어서 말해. 뭘 했어?”
“호호호...
당신도 참,
도대체 뭘 들었다는 거예요?”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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