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사랑방야화
(37)부부지간, 왠수지간
강원도 정선땅,
첩첩산중을 헤매던 사냥꾼이 풀숲에서 몸을 낮추는 짐승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럴 수가!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은 짐승이 아니라 약초 캐던 노인이었다.
사냥꾼은 노인의 시체를 정성껏 염해서 용바위 바로 아래 양지바른 곳에 묻고 나서
목마를 때 마시려고 차고 다니던 표주박의 막걸리를 따라놓고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소나무에 목을 매고 죽으려 했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늦장가를 들어 얻은 외아들 삼봉이와 아내 모습에 그만 올가미를 벗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숨만 푹푹 쉬자 부인이 캐물었다.
사냥꾼은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날이 새면 관가에 가서 자백해야겠다고 했다.
살인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형을 당하는 시절이라 부인이 펄쩍 뛰었다.
“여보,
하늘 아래 그걸 아는 건 우리 세식구뿐이잖아요.
당신 없이 우린 어떻게 살라고…”
이튿날 아침,
늦게 일어난 사냥꾼 부인이 개밥을 주려고 누렁이를 찾자
끝내 보이지 않았지만 이 판국에 개 없어진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세월은 흘러 3년이 지났다.
그때 그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15세 삼봉이는 아버지를 도와
사냥감을 몰고 아버지는 목을 지키다가 활시위를 당겨 보는 족족 잡아 광 속엔 산짐승 모피가 가득했다.
모피철 늦가을이 되면 모피를 팔아 한몫 잡을 참이다.
그러던 어느날,
사냥꾼 부자는 3일 동안 사냥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광 속의 모피를 몽땅 털어 부인이 집을 나간 것이다.
사냥꾼 부자는 몇날 며칠 수소문 끝에 부인의 행방을 알아냈다.
모피수집상과 눈이 맞아 정선 읍내에 새살림을 차린 것이다.
사냥꾼 부자가 그 집을 찾아가
“네 이년,
당장 동헌으로 가자.”
부인은 배시시 웃으며
“사또 앞으로 가자,
이 말씀이군요. 갑시다.”
부인이 꼿꼿하게 대들자 사냥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3년 전 그 일이 떠오른 것이다. 동헌으로 가는 길에 삼봉이가 몰래 아버지 귀에 속삭였다.
“아버님 사또 앞에 가거든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세요.
저만 믿으시고!”
그들은 사또 앞에 섰다.
부인이 앙칼지게 말했다.
“이 살인자하고 살 수 없어 제 발로 집을 나왔습니다.”
사냥꾼이
“나는 짐승 잡는 사냥꾼이지 사람 잡는 망나니가 아닙니다.”
사또가 육방관속을 거느리고 사냥꾼 부인을 앞세워 용바위로 올라갔다.
포졸들이 땅을 파자 뼈가 나왔다.
이방이
“사또 나리 이것은 사람 뼈가 아니라 네발 달린 짐승 뼈이옵니다.”
사또가 고함쳤다.
“여봐라 저년을 당장 옥에 가두고 간부도 잡아넣으렸다.”
호롱불 아래 사냥꾼과 아들 삼봉이가 마주 앉았다.
“어떻게 된 셈이냐?”
사냥꾼이 물었다.
“그날 밤,
아버지 어머니께서 잠드신 후 몰래 용바위로 올라가 시체를 파내어 멀리 뒷산에 묻고
따라온 우리 집 개를 잡아 그 자리에 묻었습니다.
부부지간은 촌수가 없습니다,
촌수도 없을 만큼 가까울 수도 있고 촌수도 없을 만큼 남남일 수도 있습니다.
<sns에서>
'시링빙야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대 불 빛 (0) | 2021.05.09 |
---|---|
초등학생 호통 (0) | 2021.05.09 |
오월이 오면 생각나는 이름 어머니 (0) | 2021.05.08 |
어버이 마음 (0) | 2021.05.08 |
아차비아 하우자재(我且非我 何憂子財) (0) | 2021.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