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묘자리에 얽힌 송사

오토산 2022. 1. 21. 08:19

김삿갓 22 -

묘자리에 얽힌 송사

저는 바람처럼 거침없고,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인생을 살고 있지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김삿갓은 정색을하고 물었다.

"주막에 주모도 없고 심부름 하는 머슴도 없는 모양인데

무슨 곡절이라도 있습니까?"

"곡절은 무슨 곡절이 있겠습니까.

그저 세상만사 모두가 귀찮아 잠시 문을 닫은 것 뿐입니다."

"그래요 ?"

그러나 김삿갓은 어딘지 석연치 않은 기미를 느꼈다.

그는 묵묵히 밥을 모두 먹었다.

" 잘 먹었습니다."
여인은 무슨 말을 할듯 하다가 단념한듯 상을 들고 나가려 한다.

"잠깐만 ! "
김삿갓은 여인을 불러 세웠다.

"제가 보기에 부인에게는 필시 절박한 일이 있으신듯 한데.

말씀 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여인은 상을 다시 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걸 어떻게 아셔요."

"부인의 얼굴에 그렇게 씌여 있습니다."

"제 얼굴에요 ?"

"그렇습니다.

바깥 양반도 안계신 모양인데 소생이 해드릴수 있다면

오늘 밥값으로라도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각별히 바쁜 몸도 아니니까요."
여인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니 ,

관상을 보실줄 아세요 ? "

"허허 ,

관상을 볼줄 안다기 보다 어려서 부터 주역과 역서를 읽어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의 삶을 조금 들여다 볼줄 알지요."
김삿갓은 여인이 자신의 말에 흥미를 느끼자 이렇게 말했다.

"맞았어요.

저는 이년전에 혼자가 되었지요.

오늘은 큰집에 제사가 있어 집안 식구들은 모두

그쪽으로 보내고 지금은 저 혼자 있지요.

그리고..."
여인은 한숨을 쉬면서 말끝을 흐렸다.

"복잡한 일이 있으신 모양인데 말씀을 해주십시요.

대단히 어려운 일이 있으신것 같은데."

여인은 삿갓의 말을 듣고 잠시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예사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뵙는 분에게 집안의 사정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꺼려졌는데

저의 긴박한 사정을 짐작하고 계신듯 하여 의논차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안에 복잡한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산송(山訟)이 한 건 있습니다."

"산송이라면

묘자리에 얽힌 송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 "

"예,

이년전 춘삼월에 어느 고명한 지관 한 분이 우리집에 묵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제 남편은 병석에 누워 오늘 내일 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였지요.

그래서 저희 남편을 위해 좋은자리 하나를 보아 달라고

그 지관에게 청을 하였습니다.
지관은 우리집에 열흘경 머물면서

이 근방 산야를 두루 살펴보고 마침내 한 자리를 택해 주더군요.
여기서 이십리쯤 북쪽으로 가면 갈매봉이란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 중턱 남향 자리였지요.

그때 지관에게는 쌀 열섬을 사례로 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난 후 한달쯤 지난후에

남편은 세상을 떠났어요. 물론 그 명당자리로 장례를 모셨지요."

"그렇다면 일이 잘된 것이 아닙니까 ? "
김삿갓은 흥미를 느끼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거기까지는 일이 잘 되었지요.

정말 명당자리 덕분인지 주막에 장사가 부쩍 잘 되지 않겠어요 .

애초부터 주모를 따로 두고 하는 장사였지만

장사가 잘 되어 남편 죽은 시름을 잊고 지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난 가을 부터 장사가 잘 되지 않는거예요.

대신 저 위에 주막이 잘 된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하지만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장사란 잘 될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니까요.

한데 지난 여름 어느날 밤,

꿈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여보,

내집 울타리에 침법한 자가 있어 도무지 잠을 잘수 없다'며

말을 하는 것이에요.

그 꿈을 깨고나서 하도 이상해 남편 산소를 찾아가 보았지요.
그런데 가보니 이게 웬일이래요 ! "
여인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