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단천(端川)에서 만난 선비 崔白浩

오토산 2022. 1. 25. 08:06

김삿갓 45 -
[단천(端川)에서 만난 선비 崔白浩]

​김삿갓은 吉州를 향해 걸었다.

여러날이 걸려 이름만 그럴듯이 좋은 길주땅에 당도하게 되었다.

​길주는 옛날부터 과객을 절대로 재우지 않기로 有名한 곳이다.

계절은 北上 할수록 마냥 아름다웠지만,

인심은 북상할 수록 북풍한설 몰아치듯이 쌀살해져 가기만 하였고,
어느 집을 찾아가도 문을 닫고 본 척도 하지 않는데는 기가 막혔다.

​마침 그는 許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기어코 날이 저물어 하룻밤 유숙을 원했지만 영 헛수고였다.
​아무리 과객을 꺼리는 인심이라 해도,

열 집에 한 집 쯤 재워줄 만도 한데,

이렇게 고약한 동네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과연 과객의 지옥이로구나​...! "
김삿갓은 하도 인심이 야박해서 화풀이 시를 한수 읊어 보았다.

​吉州吉州 不吉州 (길주길주 불길주)
'이름만 길주길주하나 吉한 고을은 아니고'
​許可許可 不許可(허가허가 불허가)
'姓만 許가했지 過客은 許可하지 않는구나'

​김삿갓은 사흘밤을 吉州에서 보내며,

남의 집 처마 밑이나 빈 헛간에서 밤을 새우는 고생을 하였다.

이렇게 지긋지긋한 길주를 벗어나 고생 끝에 明川에 도착한 김삿갓,

이곳은 좀 나으려니 했더니...!

​이곳 또한 이름만 허울좋게 明川이지, 인심 사납기는 길주에 못지 않았다.

​'원래 명천은 명태의 원 고장이다.'

명태란 이름도 명천사는 太서방이 처음 잡은 고기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명태가 썩어 버릴 정도로 많이 잡힌다는 명천땅이지만

김삿갓은 그 북어 꽁지 하나 얻어 먹지도 못하고 고생만 했다.

​"허허,

이곳도 길주 뺨치는 곳이로다."

김삿갓은 두만강 까지 찾아 가보려던 애초의 계획을 접고,

명천땅을 비웃는 글을 한 수 읊은 뒤 부지런히 다시 남하하기 시작했다.

​明川明川 不明川 (명천명천 불명천)
'명천 명천이라고 부르지만, 사람들은 현명치 아니하고'
魚佃魚佃 食無魚 (어전어전 식무어)
'어전어전 자랑하지만, 밥상에는 북어 꽁지 하나 없구나..!'

​다시 길주를 거쳐 端川 땅으로 향하니 완연한 여름 날씨였다.
단천은 그나마 비교적 인심이 후한 고장이었다

書堂도 그랬고 民家도 그랬지만 웬만하면 술도 한잔 대접할 줄 아는 고을이었다.

​김삿갓은 어느날 단천의 유명한 南大川 물가로 나갔다.

玉같이 맑은 물이 얕은 川을 흐르는데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못한 삿갓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래,

내 저 맑고 시원한 물에 들어가 목욕이나 한번 하자....!)

​김삿갓은 나무숲이 우거진 곳에 가서 옷을 훌훌 벗고,

목욕도 하고 입었던 옷도 대충 빨아서 아쉬움에 널고,

마르는 동안 몸을 씻었다.

​옷을 말리고 있는 동안 김삿갓은 모처럼 흥이 돋았다.

몸도 마음도 남대천 물속처럼 맑고 개운하였다.

자연히 그의 입에서는 詩 한수가 읊조려졌다.

​춘수만사택 하운다기봉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봄물은 사택에 가득하고,
여름 구름은 기봉이 많기도 하여라...!'

​일봉이봉 삼사봉 오봉육봉 칠팔봉
(一峰二峰 三四峰 五峰六峰 七八峰)

​수유경작 천만봉  구만장천 도시봉
(須臾更作 千萬峰 九萬長天 都是峰)
​'잠깐사이 천만봉 구만장천 모두 구름봉'

 

​김삿갓은 모래사장에 팔을 베고누워 이같이 흥얼거렸다.
​그러자 숲속에서 어떤 중년선비 한사람이 부채질을 하며 나오더니,

 

"허.! 과객양반 실례하오.

혹시 댁이 김삿갓이라는 분 아니시오?" 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생면부지의 사람이 자기를 알아 보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함경도 땅에 퍼진 自身의 이름을 어느덧 알아 듣고,

묻는 말 같기에 일편 반갑기도 하였다.

​"네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제 이름을..!"

​"하하하,

역시 그분이군요.

어제 우리 마을 어느 書堂에 들리신 적이 있지요?
그 서당에 갔더니 삿갓을 쓰신 과객 한분이 다녀가셨다고 해서...!"

​"그래 

일부러 저를 만나러 나오셨소?"

​"그건 아니지만

나도 등물이나 할까하고 남대천에 나왔더니

어디서 시를 읊는 소리도 들리고,

삿갓도 옆에 있기에 혹시나 싶어 물었던 것이외다."

​"그러셨군요...!"

​김삿갓은 그저 그렇게 인사치례의 말을 건네고 말았지만,

中年의 선비는 自己를 소개하였다.

 

​"나는 이마을에 사는 '崔白浩'라고 합니다.

선생의 聲價는 익히 들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셨는지..!"
​김삿갓은 자기를 詩聖으로 칭하는 이유가 여간 궁금하지 않았다.

​"허어,

제가 얼마전에 外家인 안변에 다녀왔더니,

그곳 사또님 자제를 가르쳐 급제를 시켰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더구나 안변에 내노라하는 양반들을 詩로써 옴쭉달싹 못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

어떠한 奇聖인지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참,

무족지언 천리행(無足之言 千里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이라더니 별것도 아닌 일이 우습게 퍼졌군요."

​"허..!

이렇게 大 詩人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과분하신 말씀 송구 합니다...!"

​이렇게 하여 김삿갓과 최백호는 남대천에서 서로 알게 되었고,
​최백호의 人品도 學問을 배워 준수한 선비의 풍모를 갖춘터라,
​김삿갓은 오랫만에 '선비다운 선비'를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러니 같은 풍류객끼리 서로 글 얘기가 없을 수 없었다.

​"최선생이 한 수 들려 주시오...!"
​김삿갓이 먼저 백호의 詩를 한수 청했다.

​"저 보다도 김선생님이 詩人이시니 먼저 한 수 들려 주십시오.

그 다음에 제가 하리다."

​"그럼 韻을 최선생께서 부르시지요."

​"흐를 '流'로 하지요." 
최백호가 운을 띄웠다.

​"허허, 강가니까,

어울리는 좋은 운자를 주셨습니다."

​"하하,

김선생은 제 마음에 드는 말씀만 하십니다."

​山始劍氣 衝天立 (산시검기 충천위)
水學兵聲 動地流 (수학병성 동지류)
'산은 칼의 기상으로 하늘을 찌를듯 서있고'
'물은 병정의 소리를 내며 땅을 울리고 흐른다...!'

​"호..! 과연,

삿갓선생의 기상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최백호는 진정으로 감탄하였다...
​김삿갓은 자신의 시를 알아 보아주는 최백호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이번에는 선생 차례요."

"운은?"

"돌아올 廻 !"
​최백호는 잠시 詩想에 잠기더니 글을 하나 내어 놓았다.

​山欲渡江 江口立 (산욕도강 강구립)
水將穿石 石頭廻 (수장천석 석두회)
'산은 강을 건너려고 강 어귀에 서 있고'
'물은 돌을 뚫으려고 돌머리를 돌고 있네'

​"허허..!

내 詩보다 더욱 좋습니다."
김삿갓은 감탄했다.

​"웬걸요..!

김선생님 시에 비하면 졸작이지요."

최백호는 겸손하기만 했다.

​"헌데 최선생,

실례되지만 첫구에 바랄 欲자를 아니 不자로 바꾸고,

둘쨋구의 장수 將자를 어려울 難자로 바꾸면 어떨까요 ?

그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
山不渡江 江口立 水難穿石 石頭廻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해 강 어귀에 서있고...! '
'물은 돌을 뚫기가 어려워 돌머리를 돌아가네...! '

​"듣고보니,

더 운치가 좋아졌습니다.

역시 대가다운 詩人이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