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44 -
[色酒家 주모의 八字 고치기]
"그나저나,
어쩌다 주모는 돈밖에 모르는 여자가 되었나?"
주모의 내기 항복을 받아낸 김삿갓,
화제를 바꿔 주모에게 물었다.
그러자 주모는 갑자기 우울한 얼굴이 되며 신세한탄을 한다.
"나도 處女 時節에는
남들처럼 꿈도 많고, 사랑도 얼마든지 잘 알 수 있는 여자였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사내놈들에게 하도 많이 속아서, 惡女가 되고 말았어요."
"사내놈들에게 얼마나 속았기에
악녀가 되었다는 말인가..."
"내가 사내놈들에게 속은 이야기는 말도 마세요.
한두번 속았다면 말도 안하겠어요.
자그마치 사내놈들에게 여섯 번이나 속았으니 악녀가 될 수 밖에 없지 뭐예요...!"
"사내들한테 속은 事情이 매우 애석한데 이왕이면,
그얘기를 들려 줄 수 없을까?"
주모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좋아요.
이런 이야기는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 결심을 했었지만,
손님에게는 특별히 얘기할께요."
그리고 주모는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모의 이름은 '최순실', 함흥 변두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열 다섯되는 해에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고영태'라는
총각과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다.
그러나 고영태는 순실이에게 임신을 시켜 놓고
어디론가 멀리 도망을 가버리고 말았다.
순실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열 달 만에 딸을 낳았으나 그 아기는 세상에 나온지 스무 하루만에 죽고 말았다.
두번째 결혼한 남자는 광산촌에 뜨네기 광부였는데
그 사내도 결혼 반 년만에 살림살이를 몽땅 팔아 가지고
남의 집 유부녀를 데리고 도망쳐 버렸다.
사태가 이쯤 되고보니
순실은 어쩔 수 없이 함흥으로 들어와 술집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생활 10년동안 네번이나 사내들에게 情을 주었다가,
그때 마다 돈도 사랑도 잃어 버리고 결국은 알거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나는 사내마다 모두가 도둑놈이었으니,
돈 밖에 믿을게 뭐가 있겠어요...!"
주모의 말을 듣고 나니,
그 신세가 무척 처량했다.
김삿갓은 껄껄 웃으며 농의 말을 던졌다.
"만나는 사내마다 도망치는 것을 보니,
주모의 玉門이 港口型 옥문인가 보군 그래...!"
주모는 김삿갓의 말뜻을 얼른 알아 차리지 못하고 물었다.
"항구형 옥문?
그게 무슨 소리예요?"
김삿갓은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묘자리에도
金鷄抱卵型이니,
飛龍昇天型이니 하는, 형국이 있듯이
여자들의 옥문에도 항구형이라는 것이 있거든,
이렇게 항구형 옥문을 가진 여자에게는 사내들이 가까이 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조리 달아나 버리는 법이거든...!"
김삿갓은 장난삼아 되는대로 말을 하였다.
그러나 주모의 표정은 자못 심각해졌다.
"항구형 옥문을 가진 여자에게는
사내들이 오래 붙어 있지 못한다는 말씀이예요...?"
"아무렴..!
항구라는 곳은 모든 배가 잠깐 들려서 짐을 싣기만 하고 떠나는 곳이 아니던가?
그래서 주모가 좋아했던 사내들이 한결같이 살림살이를 걷어 가지고 달아 났던 것이지.
그러니 주모의 옥문은 보나마나 항구형 옥문이 틀림 없을 것이야."
김삿갓은 애초에 농담으로 시작을 했지만,
주모가 바싹 다가서며 관심을 보이자, 이제는 농담이었다는 사실을 말 할수 없어,
농담을 진담처럼 포장해서 말을 하였다.
주모는 김삿갓의 말을 듣더니
수긍이 되는 점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쉰다.
"손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나는 한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할 八字라는 말씀이에요?"
김삿갓은 웃으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게.
아무리 항구형 여자라 해도 잘 살아 갈 수 있는 方法이 있으니까...!"
그러자 주모의 눈이 반짝 빛나며 얼굴에 생기가 '좌르르' 돌아왔다.
그리고 얼른, 김삿갓의 빈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면서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잘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이란 어떤 방법인가요 ?" 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주모가 따라놓은 술 한잔을 쭈욱 들이키고 웃으며 말한다.
"내가 그 비법을 알려 줄테니 잘 듣고 그대로 하라구,
항구라는 곳은 배가 들어와서 짐을 싣고 떠나기도 하지만,
짐을 가득 싣고와 짐을 부리기도 하거든,
주모는 지금까지 짐을 싣고 떠날 빈 털털이 배만 사랑을 해왔으니,
결국은 재산을 모두 털리게 된것이야.
하지만 이제부터는 가난뱅이를 사랑하지 말고,
돈 많은 영감님을 상대하라구, 돈 많은 영감님과 정분이 나면,
그 영감님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조리 주모에게 아낌없이 부려놓게 될게아닌가?
그런 방법을 쓰면, 머지않아 주모는 부잣집 마나님으로 출세 할 수 있을게야 !"
주모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듣고보니 과연 그렇겠네요!
손님은 어쩌면 그렇게 아는 것도 많으세요...!"
"항구형 옥문을 가진 여자는 돈 없는 사내를 상대하면 손해만 볼 것이니,
앞으로는 꼭 돈 많은 영감님을 상대하라구.
오늘만 해도 나같이 돈 없는 나그네를 상대하는 통에 술값을 손해 보지 않았는가?"
마침 그때,
밖에서 점잖은 목소리로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삿갓이 방문을 반쯤 열고 내다보니,
의관을 젊잖게 차린 나이 육십쯤 보이는 노인 하나가 사립문 밖에 서 있었는데,
한 눈에 보아도 돈 푼 깨나 있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김삿갓은 이 기회에 꽁무니를 빼려고
자리에서 일어날 자세를 보이며 주모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이것 보라구!
지금 문 밖에 내가 말했던 돈 많아 보이는 영감님이 찾아오셨어.
나는 뒷 문으로 슬며시 나갈 터이니,
내 말대로 돈 많아 보이는, 저 영감님을 잡으라구...!"
주모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면서,
"돈 많은 영감님 이라고요?
문 밖에 찾아 온 영감님이 돈이 많은 분인지 어떻게 아세요...?"
"아따,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도 어두워서야 무슨 장사를 해먹겠나.
지금 문 밖에 서 있는 영감님은 짐을 잔뜩 싣고,
항구로 찾아온 배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러니까 주모는 빨리 융숭한 영접을 하여 저 노인이 싣고 온 짐을 주모에게
몽땅 부려 놓도록, 영감님 오장 육부를 모조리 녹여내리란 말이야.
항구형 옥문을 가진 여자는 돈 많은 사람을 상대 하여야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그만큼 알려주었는데, 아직도 못 알아 들었단 말인가?"
그제서야 김삿갓의 의도를 알아차린 주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님한테 좋은 말씀을 너무도 많이 들었는데,
아무 대접도 못하고 이대로 헤어지면 어떡해요."
"나 같은 가난뱅이를 가까이 해보았자 손해날 것밖에 없다니까 그러네.
나는 뒷 문으로 도망 갈 것이니 저 손님 속히 맞아드려요."
김삿갓은 그 말을 끝으로 부랴부랴 뒷문으로 빠져 나와 버렸다.
주모는 단단히 결심한바 있는지, 밖으로 달려나가 노인 손님을 맞아 들이며,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십시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밤 꿈자리가 좋기에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실줄 알고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늙은 손님도 젊은 색시가
아양을 떠는 것이 싫지 않은지 호쾌하게 웃는다.
"허허허..!
꿈자리가 좋아 나를 기다려 주었다니,
말만 들어도 기쁘기 그지없네 그려,
방안에는 다른 손님은 없는가?"
"아이 참,
방안에 있기는 누가 있겠어요.
어젯밤에는 점잖은 어른을 만나는 꿈을 꾸었기에,
오늘은 아침부터 영감님같이 점잖은 어른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은걸요...!"
김삿갓은 뒷문 밖에서 거기까지 엿듣고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자기 갈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술을 공짜로 얻어 먹으려고
'항구형 옥문'이니 어쩌니 하고 수작을 부리게 되었지만,
그런 엉터리 말에 깜빡 속아준 주모는 앞으로는
돈 많은 영감님만 골라가며 상대하게 될 것 이니
형편도 분명,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이러니,
오늘, 김삿갓이 얻어먹은 공짜술 몇 잔 값은 충분히 갚아준 것이 되지 않았던가?
이렇게 생각한 김삿갓은 빙그레 웃으며, 흔쾌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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