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돌팔이 의원 집에서 보내는 기막힌 하룻 밤(하)"

오토산 2022. 1. 31. 07:45

김삿갓 72 -
[돌팔이 의원 집에서 보내는 기막힌 하룻 밤(하)"]

여인은,

"약을 먹지 않고도 뱃속에 애기를 떼어 버릴 방도가 있기는 있사옵니까?" 하고

다시 물어본다.
그러자 제생당 의원은 자신 만만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약을 쓰지 않고도 애기를 떼어 버릴 비방이 있지!

그런 비방은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를 걸세."

"의원님!

그렇다면 저한테만은 그 비방을 꼭 좀 알려주시옵소서."

"자네는 약 값을 낼 형편도 못 된다니까,
내가 싫든 좋든 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김삿갓도 그 비방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어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잔뜩 기울이고 있었다.
만약 제생당 의원이 남이 모르고 있는 그런 비방을 알고 있다면,

그야말로 이곳 제생당 의원이야 말로 천하의 명의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제생당 의원이 임신부에게 다시 말한다.

"그러면 자네한테만 특별히 그 비방을 쓰기로 하겠네.

지금 자네는 임신한 지 몇 달째 되는가?"
임신부가 대답하는데

 

"석 달전에 경도가 있고 나서 그쳤으니,

달 수로 치면 석 달째 되는 셈이옵니다."

"석 달이라...

그러면 묻겠는데 요즘 소변은 하루에 몇 번이나 보는가?"

"임신을 한 탓인지 소변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럴테지. 하루에 몇 번이나 보는가?"

"일일이 헤아려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하루에 열 번 정도는 되지 않는가 싶사옵니다."

"그럼 됐네.

약을 쓰지 않고도 애기를 간단히 떼어 버릴 수 있는 비결을

말해 줄테니 꼭 그대로 하게."

"의원님!

그런 좋은 방법이 정말 있사옵니까?"

"있구 말구!

아주 간단한 방법이네.
오늘부터 열흘 동안 소변을 일체 누지 말도록 하게.

그러면 뱃속의 아기가 아직 헤엄을 칠 줄 모를 테니까,

물에 빠져서 절로 죽어 나오게 될 걸세."

옆방에서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옅듣고 있던 김삿갓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소리를 내지않고 대굴대굴 굴렀다.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김삿갓은 설마하니 제생당 늙은이가

그와 같은  엉터리 비방을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임신부는 자신에게는 그 말이 엉터리로 들리지 않았던지

"의윈님!

소변을 참는 데도 한도가 있지 어떻게 열흘 씩이나,

참고견디옵니까?" 하며

심각한 어조로 반문한다.
제생당 의원의 대답은 또 한번 걸작이었다.

"열흘을 못 참겠거든 닷새 동안 만이라도 참아 보게나.

뱃속의 애기가 아직 활동력이 미약해

닷새 동안만 오줌을 참아도 효력이 나타날지 모르네."
어디까지나 자신만만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소변을 닷새 동안만 참아내면

애기가 정말 떨어지게 됩니까?"

"물론이지.

늙은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내 말을 철썩같이 믿고 어서 집에 돌아가 그렇게 해보게."

제생당 의원은

이렇게 뱃속에 아이를 떼는 방법을 설명하고 임신부를 밀어내다시피 쫒아냈다.

그리고 옆방으로 옮겨 오더니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음...

내가 오늘은 진땀 뺐는걸."

김삿갓은 제생당 노인의 얼굴을 마주 대하자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이 사람아!

웃기는 왜 웃는가? 허파에 바람이 들었는가?"

"의원님!

오줌을 닷새간 참고 견디면 뱃속의 아기가 절로 떨어져 나온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김삿갓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물어 보았다.
그러나 제생당 의원의 얼굴은 어디까지나 태연스러웠다.

"자네는

내가 환자에게 들려준 말을 죄다 들은 모양일세그려?"

"그렇습니다.

사람이 과연 오줌을 닷새 동안이나 참고 견딜 수 있을까요?"

김삿갓은 이 돌팔이 의원을

단단히 혼내 주려고 엄숙한 표정으로 따지고 물었다.
그러자 제생당 의원은 김삿갓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혀를 차며 말을 하는데,

"자네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내가 자네에게 먼저 하나 물어보세.

자네는 사람이 닷새 동안이나 오줌을 참을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순간,

김삿갓은 虛를 찔린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기로

닷새 동안이나 오줌을 참을 수는 없겠지요."
제생당 노인은 그 대답을 듣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자네도 잘 알고 있구만 그래.

그 처럼 잘 알고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나에게 물어 보는가?"

김삿갓은 농락을 당하는 것만 같아

울화가 "욱"하고 치밀었다.

"선생은 조금 전에 찾아왔던 여인에게

오줌을 닷새 동안만 참으면 애기가 절로 떨어져 나올 테니,

닷새 동안만 참아 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소?
환자에게 불가능한 처방을 알려 준다는 것은 혹세 무민(惑世誣民)이 아닙니까?"
김삿갓은 홧김에 혹세 무민이라는 말까지 들고 나왔다.

"혹세 무민?

하하하..."
제생당 노인은 별안간 소리를 크게 내어 웃으며,

"자네는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런 어리석은 소리만 하는가?

나는 의원의 본분으로서 뱃속의 생명을 죽게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럼에도 그 여인은 자꾸만 낙태를 시켜 달라고 끈질기게 졸라대지 않던가?

 

그래 할 수 없이 결코 가능하지 않은 단서를 달아,

뱃속의 생명도 살리고 무식한 여인도 쫒아 보내려고

그럴듯한 허툰 수작을 부린것 뿐인데,

그런 내막도 모르고 나더러 혹세 무민을 저지르고 있다고?

이사람이 보기보단 어리숙한 사람이네! 하하하."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삿갓은 "아차!" 싶었다.
제생당 의원은 여인을 쫓아 버리려고 지금까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해 왔는데

그런 사정도 모르고 자신이 핏대를 올려가며 나선 일이 무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의원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제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그렇다고 사과 까지 할 건 없네.

많은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거든,

멀쩡한 건강체이면서도 아프다고 꾀병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아픈 곳도 많은데 돈과 가족을 걱정 하느라고
아프지 않은척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의원이란

사람은 병자의 병을 고쳐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자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꿰뚫어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다뤄 나가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해!

  그래서 조금전 처럼 환자를 잘 다루는 일도

 의술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김삿갓은 돌팔이 의원인 줄만 알았던

제생당 노인의 입에서 그와 같은 명언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의자의야(醫者意也)라는 말이 있다.
의술은 환자에 따라 方文을 달리 하는 오묘한 이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고 보면 제생당의원 이야 말 로 진정한 명의가 아니던가?
이렇게 생각이 된 김삿갓, 고개를 수그려 제생당 노인에게 경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