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가을 바람 속에 지는 별

오토산 2022. 4. 23. 08:52

삼국지(三國志) .. (395)
가을 바람 속에 지는 별

동오의 회군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아 쓰러진 공명은

반나절이나 지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깨어난 공명은 얼굴이 핼쓱하고 눈빛은 처량하다.

공명은 자신을 둘러싸고

근심 가득하게 바라보는 장수들의 눈을 일일이 돌아보며,

 

"아무래도 내가 오래 살 것 같지 않소."하고,

기운 없이 말한다.

그날 밤 공명은 아픈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천문(天文)을 살핀다.
하늘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공명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장막 안으로 들어가서 강유를 불렀다.

 

"승상, 조석(朝夕)으로는 날이 찬데
밖에 나갔다 오셨습니까?"

공명이 밤산책을 했다는 보초병의 말을 듣고 들어온 강유가

공명에게 걱정의 말을 한다.

 

"백약(伯約: 강유의 字),
내가 나가서 천문을 살펴보니

정말로 내 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삼태성(三太星)을 살펴보니 객성(客星)이 갑절이나 밝고,

주성(主星)은 비록 빛은 있으나 밝기가 어둡구나.
하늘의 형상이 이러하니, 내 명도 오래지 않아 끝날 것이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 승상께서는 하늘에 빌어 천상을 바꿔 놓으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강유의 말에 공명은 한숨을 쉬고 말을 잇는다.

 

"그래. 내가 그대 말대로

기양지법(祈禳之法: 액운을 막는 기원을 올리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이 어떤지 모르겠구나....."
강유는 눈빛을 빛내며,

 

"그러면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제가 승상의 기도를 돕겠습니다."하고,

공명에게 말한다.
강유의 말에 공명도 조금은 힘을 얻은 듯 했다.

 

"그렇다면 갑사(甲士) 마흔네 명에게 검은 옷을 입히고

검은 깃발을 들게 한 후에 장막 밖을 지키도록 해라.
나는 장막 안에서 북두칠성께 기도를 올리겠다.

 

만약 7일 안에 주등(主燈)이 꺼지지 않으면
내 목숨은 열두 해 연장될 것이다.
하지만 기도 중에 등잔이 꺼지면 나는 곧 죽을 것이니

쓸데없는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도록 해라.
기도에 필요한 물품들은 두 명의 동자에게만 나르게 하라."

 

때는 8월 한가위였다.
강유는 공명의 명으로 기도를 올릴 준비를 마쳤다.

 

그날따라 밤하늘의 은하수는 유난히 반짝이고,

밤이슬은 구슬처럼 맑게 맺혔다.

 

바람은 고요하여 깃발이 펄럭이지 않았고,

조두(刁斗: 낮에는 솥으로, 밤에는 두드려서 소리를 내어 경계하는데 씀)소리도 없어

적막한 밤이었다.

 

강유가 마흔네 명의 갑사들과 장막 밖을 지키는 동안 공명은 기도를 시작하였다.
제단에 향기로운 꽃과 제물을 차려놓고, 바닥에는 일곱 개의 큰 등을 놓고

그 둘레에 마흔아홉 개의 작은 등을 놓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공명의 목숨을 상징하는 주등(主燈)을 세워 놓았다.

공명이 제단에 절을 하고 축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제갈양이 난세(難世)에 태어나 전야(田野)에 파묻혀 조용히 늙으려 하였습니다.

허나, 소열황제(昭烈皇帝: 유비)로부터 삼고초려의 은혜를 입고,

탁고(託孤)의 중임(重任)을 받았기에 이날에 이르도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나라를 훔친 역적을 몰아내려고 힘써왔습니다.
하오나 뜻밖에도 장성(將星)은 떨어지려고 하고,

제 명도 끝나려 합니다.

 

그리하여 삼가 글을 올려 푸른 하늘에 고하나이다.
엎드려 비옵건대, 하늘에 자비로움을 구하오니

부디 신의 수명을 늘리시어 위로는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구원하게 하여 한나라의 제사를 길이 받들게 해주옵소서.

 

이는 단지 제 목숨을 부지하고자 망령되이 비는 것이 아니옵고

진실로 간절한 정성을 담아 비는 것이오니, 하늘이여, 
부디 굽어살피소서.
 
공명은 밤마다 새벽까지 이렇게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아침이면 아픈 몸으로도 장수들과 군기(軍機)를 의논하며 쉬지 않았다.
피를 토하면서도 밤낮으로 할 일을 모두 해내고마는 공명의 모습에

장졸들은 감탄하면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사마의는 굳게 지키기만 하라는
위주 조예의 명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어느날 밤 사마의가 하후패(夏侯霸)와 진중(陣中)을 순찰하던 중이었다.
사마의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니, 맑게 개어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였다.
하후패와 나란히 걷던 사마의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이게 웬일이냐!"
사마의의 갑작스러운 말에 하후패는 놀라서,

 

"각하!

왜 그러십니까?"하며,

사마의를 바라보았다.
사마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끝으로는 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저것 보아라.
장성이 자리를 옮기고 그 빛도 예전 같지 않다. 허허!
틀림없이 공명이 머지 않아 죽을 것이다.

 

군사 천 명을 줄테니

오장원으로 나가 그쪽의 동정을 살펴 보아라.
촉군이 싸우러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분명 공명이 병들어 누워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내가 틈을 타서 그들을 치겠다.

 

하지만 촉군이 싸우자고 덤비거든 공명의 병이 중하지 않다는 뜻일테니

그때는 싸우지 말고 그냥 돌아와라."하고,

하후패에게 즉시 명을 내린다.

 

사마의는 하후패를 보내고 뒷짐을 지고

하늘을 계속 바라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드디어!

드디어 끝이 보이는군!'

공명이 기도를 올린지 엿새째였다.

그때까지 공명의 목숨과 같은 주등은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몸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게 고되었지만 타오르는 주등을 보며

공명은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 하루만 더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기도하면

열두 해를 더 얻을 것이다.'하고,

생각하며 머리를 풀고 칼을 들고

답강보두(踏罡步斗: 북두칠성 별자리 모양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기도하는 것)에

몰두한다.

 

이때,

멀리 진중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강유가 알아보려고 장막을 나서는데, 위연이 들이닥친다.

"위군이 옵니다!
승상! 위군이 오고 있습니다!"

 

공명이 제를 올리고 있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지 위연은

허둥대며 공명의 장막에 급하게 뛰어든다.
그러다 그만 발을 잘못 디뎌 지금까지 잘 지켜온 주등이 한순간에 꺼지고 만다.

"앗!"
주등이 꺼지는 순간,

공명은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아.....!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구나......!
빌어서 될 것이 아니다......"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위연은 그제야 자기가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땅에 엎드려 절을 한다.

"황공하옵니다."

 

위연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황공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분을 이기지 못한 강유는 당장에 칼을 뽑아 위연을 베려고 한다.

 

"백약, 그만 두어라.
이것은 내 명이 여기까지인 것이지,
문장(文長: 위연의 字)의 잘못이 아니다."

 

공명은 황망한 표정으로 위연에게 칼을 들이대는 강유를 만류한다.
강유는 분노에 차서 칼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칼을 거둔다.
이 일로 공명은 심신에 큰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공명은 침상에 누워서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위연을 부른다.

 

"사마의가 내가 병이 난 것을 알고 정탐하러 사람을 보낸 것이니,

그대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나가서 맞서 싸우라."

 

공명의 명을 받은 위연이 군사를 이끌고 사마의의 군대에 맞서러 나갔다.
하후패의 군사들은 위연이 맞공격을 해오자 그대로 군사를 돌려 달아났다.
촉군이 대적해오면 싸우지 말고 그냥 돌아오라는 사마의의 명에 따른 것이었다.
공명은 위연에게 전보다 더 삼엄하게 본채를 지키도록 명하였다.
위연이 자리를 뜨고 공명은 강유를 불러 가까이 앉도록 했다.

 

"하늘의 뜻이 나와 같지 않아 난 곧 죽을 것이다.
내가 충성으로 한실을 다시 일으키려 했으나

그대도 알다시피 상황이 이러하다.

 

내가 죽기 전에 평생에 배운 바를

누군가에게 전달해야겠기에 그대를 부른 것이다.
내가 스물네 편의 책을 적어 놓았다.

 

거기에는 여덟 가지 힘써 행할 일[팔무(八務)],

일곱 가지 경계할 일[칠계(七戒)],
여섯 가지 두려워할 일[육공(六恐)],
다섯 가지 겁낼 일[오구(五懼)]이 적혀 있다.

 

여러 장수들을 둘러 보았으나,

그대만이 그 책을 받을만하다고 여겨 그대에게 남기는 것이니

소홀히 다루지 말라."

"승상.....
나라에 충성하여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연노(連弩)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아직 실전에서 한번도 써본 일이 없다.
연노는 내가 고안한 쇠뇌인데 화살 길이는 여덟 치고

고 쇠뇌 한 벌이 한꺼번에 열 개의 살을 쏠 수 있다.
도본(圖本)을 그려 놓았으니 그것을 보고 그대로 만들어 사용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강유는 눈물을 흘리며 공명에게 절을 한다.

 

"우리나라는 지세(地勢)가 대부분 험해서

크게 걱정할 것이 없지만 음평(陰平) 땅만은 각별히 챙기기 바란다.
그곳도 험준하기는 하지만 잘 대처하지 않으면 잃기 쉬우니 부디 조심해야 한다."

공명은 강유에게 거듭 당부의 말을 한다.
이어 마대를 불러 은밀히 무언가를 지시한다. 
마대가 물러나고 이어 양의가 불려왔다.
공명은 양의를 침상 가까이 불러서 금낭(錦囊) 하나를 건넨다.

 

"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연이 배신을 할 것이다.
그때 이 주머니를 열어봐라.
그럼 알게 될 것이다."

공명이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서

사후(死後)의 일을 하나씩 일렀다.
기력을 소모한 탓인지 말을 마치고 또 정신을 잃어

그날 밤이 깊어서야 의식을 찾았다. 

 

정신이 들자 황제에게

자신이 살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것을 깨닫고
즉시 표문을 작성하여 성도로 올려 보냈다.

공명이 올린 표문은 빠르게 후주에게 도착했다.
공명의 여섯 번째 기산 출정을 직접 배웅하며 후주가 염려하였던,

공명과의 영원한 이별이 현실로 점차 다가오자 후주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후주는 마음을 다잡고

즉시 상서 이복(尙書 李福)을 불러 공명을 문병하면서

자세한 뒷일을 들어 오도록 분부하였다.
후주의 명에 따라 이복은 황급히 오장원을 찾아

공명에게 문안하고 후주의 염려를 전달하였다.
이복의 말을 들으며 공명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치지 않는 눈물을 그대로 두고 이복에게 말한다.

 

"내 명이 다하여 선제의 뜻을 마저 펴지 못하게 되었소.
나라의 큰 일을 내가 그르치게 되었으니

이것은 실로 내가 천하에 죄를 짓는 것과 다름이 없소.
내가 죽더라도 공들은 충성을 다하여 주군을 보좌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시오.

있는 제도를 함부로 고치지 말고,

내가 쓰던 사람들을 경솔하게 내쫓지 말고 꾸준히 쓰시오.
병법은 강유에게 이미 전해두었으니,
그가 나의 뜻을 이어 나라를 위해 애쓸 것이오.

지금 내 몸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니

곧 표문을 써서 황제께 올리겠소."

 

공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표문을 적어 이복에게 전달했다.
이복은 공명의 표문을 들고 성도로 떠났다.

"바깥을 한 번 둘러보고 싶구나....."

 

공명은 거의 들릴 듯 말듯 한 소리로 말한다.
이제는 낮에도 살결에 닿는 공기가 선선한 것이

계절의 시계가 완연한 가을로 가고 있었다.

 

찬 바람이 공명의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생(生)이 얼마 남지 않은 공명의 청(請)인지라

여럿이 공명을 부축하여 수레에 몸을 싣도록 도왔다.
공명은 본채를 나서서 각 영채들을 두루 둘러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제 다시는 싸움터에 나가 역적을 토벌할 수 없겠구나...! 
너르고 푸른 하늘이시여, 왜 인명은 이리도 짧단 말입니까!"하고,

긴 탄식을 한다.

 

가을 찬 바람을 쐰 탓인지

공명의 병세는 이때를 기점으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공명이 양의를 불러놓고 말한다.

 

"마대, 왕평, 요화, 장의, 장익, 오의 같은 이들은

충의지사(忠義之士)니, 모두 믿어도 된다.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보냈고 쌓은 전공도 많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맡겨도 될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도 모든 일은 그전에 하던대로 처리하라.
또 이번에 군사를 물릴 때에는 급해서는 안 된다.
천천히 진행하도록 하라.

 

내가 여러 말을 말하지 않아도 그대는

지략이 뛰어나니 알아서 잘 하리라 믿는다.
강유는 용맹하고 지혜로우니 그에게 후방을 맡기면

쫓아오는 적을 막기 수월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승상."

 

양의는 눈물을 흘리며 공명에게 절을 한다. 
양의에게 할 말을 마친 공명은 침상에 기대 앉아

천자께 마지막으로 올릴 표문을 작성한다.

죽고 사는 것에는

정해진 이치가 있어서 모두가 겪어야 하는 일이며,
누구라도 정해진 수명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하니,
죽음을 지척에 두고 폐하께 마지막 남은 충성을 다하기 위해 붓을 듭니다.
신(臣) 양(亮)은 천성이 어리석고 옹졸한 데도

나라가 어려운 때에 크신 명에 따라 병부(兵符)를 맡아

중한 소임을 행하였습니다.

 

군사를 일으켜 북쪽의 역적들을 몰아내려 하였으나,

미처 공을 이루기도 전에 몸 속 깊은 병으로 목숨이 아침 저녁에 걸려
폐하를 끝까지 모시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한 맺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엎드려 비옵건대,

폐하께서는 마음을 맑게 하시고, 욕심을 줄이시고,

몸가짐을 검소하게 하시고, 백성을 사랑하며,

선황의 뜻을 받들어 효도를 다하시고,  은혜를 천하에 베푸소서.

 

 

숨은 인재를 찾아 내고, 어질고 현명한 선비를 아끼시며,

간사한 무리는 물리치셔서 풍속을 두텁게 하소서.
성도에 있는 신의 집에는 뽕나무 팔 백 그루와 밭이 쉰 고랑 있어서

자식들이 먹고 살기에는 넉넉할 것이옵니다.

 

신이 조정 밖의 일로 따로 나와 있는 동안은
이 한 몸에 필요한 것이 모두 나라에서 나오니

따로 살림을 늘리지 않았사옵니다.

 

신이 죽는 날에도 안으로는 남는 베 한 조각 없게 하고

밖으로는 몇푼의 재물도 없게 하여

폐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자 하옵니다. 

 

 표문을 모두 작성한 공명은

다시 양의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내가 죽어도 발상(發喪)을 하지 말라.
대신 큰 상자를 하나 만들어

 

그 안에 나를 앉힌 후에,

쌀 일곱 알을 내 입 안에 넣고,

다리 밑에는 등잔 하나를 밝혀 두어라.
군사들은 평상시처럼 행동하고,
절대 소리내어 곡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시킨대로 하면

내 음혼(陰魂)이 일어나 장성(將星)을 잡고 있을 것이니

당분간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마의는 장성이 떨어지지 않음을 의심하고 놀랄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군사들은 뒤쪽 영채부터 차례로 천천히 회군하면 된다.
이리하였는데도 사마의가 쫓아오면 즉시 진을 펼치고 내 깃발을 세워라.

 

내가 전에 내 모습을 닮은 목상(木像)을 깎아두었으니,

사륜거에 그 목상을 얹고 전에 했던 것처럼

장수들로 하여금 적진으로 밀고 나가게 하라.
그걸 보면 반드시 사마의는 놀라 달아날 것이다."

 

"분부하신대로 행하겠습니다."

양의는 공명의 당부에 눈물을 쏟으며 대답하였다.

그날 밤 공명은 또 부축을 받으며

장막 밖으로 나가 하늘의 별을 바라다 본다.

 

한동안 북두성을 바라보다가,

그 중 한 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한다.

 

"저것이 나의 별 장성(將星)이다."

 

곁에 있던 장수들이 공명의 손 끝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 보니

과연 장성은 그 빛이 흐릿하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흔들리고 있다.
별을 바라보며 장수들은 별의 애처로운 모양이 곧 공명과 같아 눈물을 훔친다. 
공명은 칼을 꺼내들고 장성을 겨누며 무언가를 읊는다.
그리고 급히 장막으로 돌아가더니,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장수들은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와중에

성도로 가던 이복이 다시 돌아왔다.
이복은 급히 공명의 침상 앞으로 뛰어가더니,

 

"내가 나라의 큰 일을 그르쳤구나!
천자의 명을....."하며,

소리쳤다.

 

이복이 공명의 곁을 지키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명은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려

이복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힘겹게 희미한 미소를 띄며,

 

"난 공이 돌아올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소.

잊고 간 것이 있지 않소?"하고,

말을 건넨다.

이복은 공명이 눈 뜬 것에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르며,

 

"저는 천자의 명으로

승상께서 돌아가신 후에

누구에게 중임(重任)을 맡기면 좋을지 여쭤보러 온 것이었는데,

이전에 경황이 없어 찬찬히 여쭙지를 못하고 돌아갔습니다."하고,

말한다.

 

"그런 줄 알았소.
내 생각에는 장공염(蔣公琰: 장완의 字)이 가장 적임자요."
공명의 대답에 이복은 또 묻는다.

 

"공염의 뒤는 누가 좋겠습니까?"

 

"비문위(費文偉: 비위의 字)가 이으면 될 것이오."
공명이 말을 마치자 이복은 같은 질문을 또 한다.

 

"문위 다음으로는 누가 적합하겠습니까?"

 

"......"

더 이상 공명의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장막 안이 정적에 싸인다.
장막 안의 모든 장수들이

공명의 곁으로 가서 확인하니 공명의 숨은 끊어져 있었다.
때는 건흥 12년(234년) 8월 23일, 공명의 나의 54세였다.

후에 두공부(杜工部: 두보)는 시를 지어

                                                        공명의 죽음을 애도했다.

 


                                  長星昨夜墜前營   간밤에 별 하나 길게 군영 앞에 지더니
                                  訃報先生此日傾   오늘에 공명 선생이 돌아가신 소식을 듣네
                                  虎帳不聞施號令   위엄 서린 장막에서 호령소리 들리지 아니하니
                                  麟臺惟顯著勳名   누가 다시 기린대에 공과 이름을 드러낼 수 있을까
                                  空餘門下三千客   문하의 삼천 객은 헛되이 남았고
                                  辜負胸中十萬兵   가슴 속의 10만 대군도 저버렸도다
                                  好看綠陰淸晝裏   풀잎이 푸르러 보기에 좋고 날도 맑건만
                                  於今無復雅歌聲   이제는 다시 그 노래 들을 길 없네
 
                                                          백낙천(白樂天: 백거이) 또한

                                                            공명을 위한 노래를 지었다.

                                  先生晦跡臥山林   선생은 자취 감추어 산림에 누웠으나  
                                  三顧那逢聖主尋   어진 주인 세 번이나 찾아오셨네
                                  魚到南陽方得水   물고기 남양에 이르러 비소로 물을 얻고
                                  龍飛天漢便爲霖   용이 하늘 밖을 날아 장맛비를 내렸다
                                  託孤旣盡殷勤禮   주인은 어린 자식 당부 예절 다하고
                                  報國還傾忠義心   신하는 나라의 은혜에 보답코자 충의지심 기울였네
                                  前後出師遺表在   앞 뒤의 출사표 이제껏 남아 있어
                                  令人一覽淚沾襟   읽는 이는 눈물로 옷깃 적시네

촉의 장수교위(長水校尉)를 지낸 요립(廖立)은

스스로의 재주가 공명에 이른다고 자부하며

늘상 제 직위가 낮은 것을 불평하며 공명을 원망했다.

 

이에 공명은 그의 벼슬을 거두어

문산(汶山) 땅으로 귀양을 보낸 일이 있었는데,

요립은 공명이 죽었다는 소식에 눈물로 한탄한다.

 

"공명이 죽었으니 이제 누가 나를 다시 써주겠는가!
나는 평민 신세를 면치 못하겠구나!"

후주에게 거짓 상소를 올린 죄로

공명에게 벌을 받아 귀양 간 이엄(李嚴)도

공명의 부음에 목놓아 울었다.

 

공명이 죄를 씻을 기회를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명이 세상을 떠났으니 다시 조정에 나갈 일이 아득해진 것이다.
슬픔에 병을 얻은 이엄은 끝내 죽고 말았다.

훗날 원미지(元微之: 원진)도

  노래를 지어 공명을 기렸다.

        撥亂扶危主   난세를 바로잡고 위태로운 주인을 붙들어
       慇懃受託孤   어린 주인 맡기는 명을 예로써 받았도다
  英才過管樂   빛나는 재주는 관중, 악의보다 낫고
            妙策勝孫吳   교묘한 계책은 손자와 오자를 능가하도다

凜凜出師表   늠름하구나 저 출사

堂堂八陣圖   당당하구나 팔진도
                            如公存盛德   공과 같은 온전하고 거룩한 덕을 지닌 이
                     應歎古今無   예와 지금 다시 없음을 탄식하노라

396회에서~~~

'삼국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명이 떠나고 그 후 1  (0) 2022.04.25
사마의, 공명에게 쫓기다  (0) 2022.04.24
굳게 지키는 사마의  (0) 2022.04.22
하늘에 달린 일  (0) 2022.04.21
동오(東吳)의 움직임, 공명의 비계(祕計)  (0) 2022.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