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94)
굳게 지키는 사마의
뜻밖의 행운 덕택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사마의는
다시 방어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곽회가 사마의에게 찾아와서 아뢴다.
"제가 염탐해보니,
공명이 군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는 조짐이 보였습니다.
군사를 거느리고 순시를 자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마의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을 꺼낸다.
"만약 공명이 무공산(武功山)으로 이동하여
동쪽에 자리를 잡으면 우리에게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위수 남쪽으로 나아가 서쪽 오장원(五丈原)에 자리를 잡으면
우리는 마음을 놓아도 된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공명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하도록 지시했다.
얼마 후, 정탐 갔던 자가 돌아와서 보고한다.
"공명이 오장원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마의는 무릎을 치며,
"허허허!
모두가 우리 대위(大魏) 황제의 큰 복이다!
공명이 스스로 망하는 길로 들어섰으니
이제 지켜볼 일만 남았구나.
모든 장수들은 싸울 생각은 말고 더욱 굳게 지키기만 하라!"하고,
기뻐했다.
공명은 오장원으로 옮기고도 사마의를 싸움터로 나오게 하기 위해
계속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마의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공명은 생각 끝에 최후의 수단을 써보기로 했다.
직접 쓴 서신과 함께 선물을 사자(使者)를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공명은 사마의에게 갈 사자에게 서신과 선물 상자를 건네며,
"사마의가 이 선물을 받으면
당장 뛰쳐 나올 것이다."하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사자는
공명의 서신과 선물을 들고 사마의의 영채로 찾아갔다.
공명의 사자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사마의는,
'나를 끌어내려고 군사들을 차례로 보내서
밖에서 갖가지 욕을 퍼붓더니 이젠 아주 적극적으로 들이대는군.'하고,
생각하며 사자를 들어오게 하였다.
"승상께서 대도독께 서신과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사자가 서신과 선물을 사마의 앞에 내려 놓는다.
사마의는 상자를 한 번 힐끗 보고, 서신을 먼저 펼쳐 본다.
중달 그대는 위군의 대장이 되어 중원의 군사를 통솔하고 있거늘,
나와서 자웅을 겨룰 생각은 않고 토굴에 틀어박혀 칼과 화살을 피하려고만 하는가?
그대의 용맹과 지휘력을 흠모해 온 나로서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그토록 몸을 사리는 것은 사내의 자세가 아니지.
지금 그대의 모양새가 아녀자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특별히 그대에게 어울릴 법한 아녀자의 옷과 족두리를 선물로 보내니,
출병하지 않을 것이라면 두 번 절하고 기꺼이 이 선물을 받게. 혹,
아직 사내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남아 있다면
이 글에 대한 답으로 기일을 정하고 싸움에 응하도록 하게.
굴욕적인 편지였다.
하지만 사마의의 표정은 평상시와 다를 것이 없다.
화가 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평온하다.
사마의는 촉의 사자를 쓱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물 상자를 연다.
과연 서신에 적힌대로 아녀자의 옷과 족두리가 잘 포개져 담겨 있다.
주변에 서 있던 장수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사마의의 평온한 표정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마의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공명이 보낸 옷을 상자에서 꺼내어 몸에 걸쳐보기까지 한다.
"흐흐흐흐... 하하하하!
공명이 나더러 아녀자라고 하는구나."
사마의의 말에 장수들은 비로소 사태를 파악했다.
일제히 칼을 빼들고 칼 끝을 공명의 사자에게로 겨눈다.
"그만들 하게."
사마의는 조용히 장수들을 제지한다.
그리고 사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승상께 선물은 잘 받았다고 일러라.
난 아주 편안히 잘 지내고 있는데,
승상께서는 요새 침식이 어떠하신가?"하고,
오히려 공명의 안부를 묻는다.
사자는 사마의의 물음에,
"요즘 승상께서는
새벽 일찍 일어나시고 늦게 주무십니다.
그리고 군율에 엄하시어
곤장 20대가 넘는 형벌은 모두 친히 처결하십니다.
진지는 적게 잡수셔서 하루 세 끼니에 밥을
한 그릇 남짓 잡수실까 말까 합니다."하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어허,
하는 일이 많은데
식사를 그리 부실하게 하면 어찌하려고..."
사마의는 공명을 걱정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실은 속으로,
'공명의 명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군.
격무에 시달리면서 밥을 그처럼 적게 먹으면 어떻게 버티겠는가.'하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여겼다.
사마의에게 서신과 선물을 전달한 사자가 오장원으로 돌아와
공명에게 사마의와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
"사마의는 보내신 서신과 선물을 받고도
화내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승상의 침식은 어떠신지 안부를 묻기까지 했습니다."
사자의 말을 듣고 공명은,
"사마의가 나를 잘 알고 있구나...!"하고,
탄식하며 혼자 생각하기를,
'사마의를 불러내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내 상황만 사마의에게 알리는 꼴이 되었군.'하고,
서신과 선물을 보낸 것을 후회하기까지 한다.
공명의 곁에 있던 주부 양옹(主簿 楊顒)이
탄식하는 공명을 보더니 말을 꺼낸다.
"승상,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해보게나."
"사람에게는 각자의 직분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내종은 밖에 나가 밭을 가는 것이 직분이고,
여자 종은 집안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직분이고,
닭은 새벽을 알리고, 개는 집을 지키는 것이 각자의 직분이옵니다.
집주인은
다만 유유자적하며
차려주는 음식이나 맛있게 먹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집주인이 나서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자 하면 몸이 고단하고
정신이 어지러워 끝내는 아무 것도 이루기 어려울 것입니다.
주인의 지혜가 비복(婢僕)들만 못해서 이겠습니까?
주인은 주인의 도가 따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이르길, 앉아서 도를 논하는 사람은 삼공(三公)이요,
일어나 행하는 사람은 사대부(士大夫)라 했습니다.
옛적에 병길(丙吉)은 소가 기침하는 것은 걱정하면서도
길가에 쓰러져 죽은 사람은 그냥 지나쳤고,
1 진평은 자기가 쌓아둔 곡식과 돈의 수량을 몰라서
'그런 일은 맡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만 말했다고 합니다.
2 그런데 지금 승상께서는 세세한 일까지 모두 신경을 쓰시느라
한시도 편히 쉬시는 때가 없으니 어찌 건강을 해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양옹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양옹의 말을 듣고 생각이 많아진 공명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선제의 당부를 떠올리면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면 나같이 마음을 다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
이제라도 편히 쉬는 시간을 자주 갖도록 해보겠다."
하지만 이미 공명의 건강은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사마의가 공명으로부터 아녀자의 옷을 선물 받았다는 소문은
위군 진영 곳곳으로 삽시간(霎時間)에 퍼졌다.
위의 장수들은 대도독이
공명에게 모욕을 받았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그런 치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사마의에게 화가 났다.
그리하여 장수들이 사마의를 찾아와서 말한다.
"대도독이 당하신 일은
입에 올리기도 싫을 정도로 치욕적입니다.
당장 군사를 일으켜서 촉군을 쳐야 마땅합니다!"
장수들의 강력한 요청에도 사마의는 평소와 다른 기색이 없다.
그리고
"내가 공명의 선물이 반가워서 가만히 있는 것이겠나?
나도 분한 것을 참고 있는 중이다.
천자께서 친히 조서를 내리셔서 지키기만 하고 싸우지는 말라하셨는데
내가 어찌 나의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서 가벼이 나가 싸울 수가 있겠나."하고,
천자의 조서를 핑계 삼는다.
하지만 장수들의 울분(鬱憤)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에 사마의는,
"정 그렇다면 내가 황제께 표문을 올려 보겠다.
황제 폐하의 윤허(允許)가 내려지면
그때 싸우러 나가자."하고,
제안한다.
모든 장수들이 사마의의 제안에 입을 모아 동의했다.
사마의는 바로 표문을 써서 합비에 있는 위주 조예에게 보냈다.
"사마의가 표문을 올렸다 하였느냐?"
위주 조예는 사마의가 올렸다는 표문을 펼쳐 보았다.
신이 재주는 가벼운데 책임이 무거운 까닭에
폐하께서는 일전에 밝은 가르침을 내리시어
저희들에게 굳게 지키고 나가서 싸우지는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갈양이 신에게 아녀자의 옷과 족두리를 보내와
신을 아녀자와 같다고 농락하니 치욕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신은 폐하께 아뢴 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조정의 은혜를 갚음과 동시에
우리 삼군(三軍)의 치욕을 씻을까 합니다.
격분을 참을 수 없어서 감히 폐하께 이렇게 아룁니다.
조예는 모여 있는 여러 관료들에게
표문을 돌려보게 한 후에 말한다.
"사마 도독이 지금까지 방위에만 힘쓰다
갑자기 나가서 싸우겠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공명에게 받은 모욕 때문일까?"
조예의 의문에 위위 신비(衛尉 辛毗)가 의견을 낸다.
"아마도 사마 도독은 싸울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제갈양이 준 모욕 때문에 장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 통에
마지못해 표문을 올렸을 것입니다.
폐하의 뜻을 앞세우면
장수들을 달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신비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 듯하였다.
조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비로 하여금
사마의에게 어명을 직접 전달하라고 분부를 내렸다.
신비는 조예가 내린 신절(信節)을 받아 사마의가 있는 위북 진채로 향했다.
"어명이다!
앞으로 감히 다시 출전(出戰)을 입에 올리는 자가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칙명(勅命)을 거역한 죄로 엄하게 다스릴 것이니라!"
신비는 모든 장수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명을 전달하였다.
황제의 칙명까지 다시 내려 왔으니,
장수들은 더 이상 싸우러 나가자는 말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사마의는 나가서 싸워서는 안 된다는 황제의 명을 널리 소문 내라고 지시하였다.
소문을 내라는 것은 물론 공명의 귀에 들어가게 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마의가 의도한대로 위주 조예가
출정을 금지했다는 소문은 오장원까지 전해졌다.
공명은 소문을 듣자마자 사마의의 지략에 또 다시 감탄하며,
"역시 사마의의 지략은 대단하다.
삼군을 안정시키기 위한 계책을 썼군."하고,
말한다.
곁에서 공명의 이야기를 듣던 강유가 묻는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마의는 전혀 싸울 마음이 없으면서
황제에게 싸우러 가겠다는 표문을 올렸다.
이것은 장졸들에게 싸울 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겠지.
'장수가 밖에 나가 있으면 임금의 명령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옛말이 있지.
그런데 천 리나 떨어져 있는 장수가
굳이 임금에게 싸움을 허락해달라고 청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사마의가 칙명을 핑계로 군대의 화를 가라앉히려는 속셈이고,
이렇게 내 귀에까지 들리게 만든 것은
우리의 군심을 해이하게 만들려는 속셈일 것이다."
사마의의 수를 파악한 공명에게 장수들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
돌연 성도(成都)에서 비위(費褘)가 공명을 찾아 왔다.
황제를 옆에서 보좌하는 비위가 찾아오자 공명은 덜컥 걱정이 앞선다.
"기별도 없이.....
무슨 일이오?"
비위를 맞이하는 공명의 목소리에도 불안이 드러난다.
비위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동오(東吾)와 위(魏)의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전에 오왕(吳王: 손권)이 승상께 약속한대로 동오군이 출격하였는데,
그 이후의 소식입니다.
위주(魏主)는 대군을 이끌고 합비로 가고,
만총, 전예, 유소 셋에게 군사를 주어
세 갈래로 진격하는 동오군을 막게 했습니다.
만총이 계책을 써서 전투 초반부터
동오 제갈근이 이끄는 진영의 군량과 마초, 무기들을
모두 태워버렸고, 오군의 인마(人馬)는 병까지 들어
싸움이 동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게다가 육손이 오왕과 약속하여 위군을 앞뒤에서 협공하기로 하였는데,
그 사실을 적은 표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심부름꾼이 위군에게 사로잡혀
기밀이 누설되는 바람에 오군은 아무 소득도 없이
그대로 회군하고 말았습니다."
"뭐...뭐라.....?"
공명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소식이었다.
위가 동오와의 싸움으로 정신을 다른 곳에 둔 사이에
중원을 도모해보려는 공명의 계획이 모조리 무위(無爲)로 돌아간 것이다.
사마의를 불러내는 것도,
동오와 손잡고 중원을 치려는 것도 모두 공명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비위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은 공명은
한참 한숨을 거듭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승상!"
놀란 장수들이 모두 쓰러진 공명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공명을 부축하여 자리에 눕혔다.
공명의 나빠진 건강과 밝지만은 않은 국가의 미래에
촉장수들의 한숨도 깊어지는 날이었다.
1. 서한의 승상 병길이 길에 쓰러져 죽은 사람을 보고는 아무 말이 없다가
소가 헐떡이는 것을 보고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누가 이유를 묻자,
"날이 덥지 않은데 소가 헐떡이니 천시(天時)가 잘못되어
농사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되어 그렇다.
이는 승상이 해야 할 일이다."라고
대답한 고사
2. 서한의 승상 진평이 황제가
전국에서 판결한 안건과 거두어들인 곡식의 양을 묻자,
"그런 것은 주관하는 관원에게 물으십시오.
승상의 일은 신하들을 통솔하는 것이지
그런 일에 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한 고사
395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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