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書九이야기
정조 때 정승을 지낸 이서구가 만년에 은퇴하여 향리에
물러나 있을 때의 일이다. 그가 허름한 베잠방이 차림으
로 냇가에서 낙시를 하고 있는데, 경망한 선비 하나가 시
내를 건너려다가
"여보 늙은이! 나를 좀 업어서 건네게." 하였다.
"그러지요" 늙은이가 대답하였다.
젊은이가 늙은이 등에 엎혀 시내를 건너면서 보니 늙은
이가 당상관이나 할 수 있는 옥관자를 하고 있지 않은가.
시골의 무식한 늙은이인줄 알았다가 큰일을 치르게 생겼
다. 시내 건너편에 닿자 경망한 선비는 조금 전의 서슬은
간데없이 납작 꿇어앉아 이마를 땅에 찧으며 두 손이 발
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그러자 이 늙은이는 시 한 수를 읊어주고는 다시 건너
가 모른 척 낚시질을 하였다. 그 시에
"吾看世ㅅ
是非在ㅁ
歸家修ㄹ
不然點ㄷ" 이라 하였다.
"내가 세상의 시옷을 보니
시비가 미음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을 찍으리라."
도데체 무슨 뜻인가? 시옷은 人이요,미음은 口이다.
리을은 己이고 디귿에 점을 찍으면 망할 亡자가 된다.
이렇게 풀고 다시 해석하면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시비가 입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몸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
라는 뜻이 된다.
경망한 선비를 훈계한 내용을 한글을 섞어서 지은 글이다.
* 이 서구. 조선 후기 4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척재. 강산(薑山). 본관은 전주(全州).
1769년(영조 45) 박지원(朴趾源)을 만나 문장을 배우고,
74년 정시(庭試)에서 뽑혀 순탄한 벼슬살이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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