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원재 유교문화 해설(159)
【퇴계선생의 도산잡영】
도산잡영(陶山雜詠)은 퇴계선생이 만년에 도산서당을 짓고 당실(堂室)의 명칭과 주변자연을 읊은 시로서
7언절구가 18수이고 5언절구가 26절이다. 서당에서 보이는 곳이지만 이미 주인이 있는 곳을 추가한
5언 절구 4수를 더하여 총 48수이다.
퇴계는 기존의 계상서당이 좁고 한적하여 새로이 마땅한 서당 터를 구하고자 애쓰던 중에
산 넘어 마음에 드는 터를 구하여 너무나도 가쁘고 흡족한 마음에 지은 시가 두수이다.
○ 尋改卜書堂得地於陶山南 有感而作 二首/서당을 고쳐 지을 땅을 찾아 도산 남쪽에서 얻고 느낌이 있어 읊으니 두 수이다
1)風雨溪堂不庇牀/풍우계당불비상/ 계상서당에 비바람 부니 침상조차 가려 주지 못하여
卜遷求勝徧林岡/복천구승편림강/ 거처를 옮기려고 좋은곳 찾아 숲과 언덕을 누볐네.
那知百歲藏修地/나지백세장수지/ 어찌 알았으랴 백년토록 마음 두고 학문 닦을 땅이
只在平生採釣傍/지재평생채조방/ 바로 평소에 나무하고 고기 낚던 곳 곁에 있을 줄이야.
花笑向人情不淺/화소향인정불천/ 꽃은 사람을 보고 웃는데 정의(情誼)가 얕지 않고
鳥鳴求友意偏長/조명구우의편장/ 새는 벗 구하면서 지저귀는데 뜻 오로지 심장하다네.
誓移三徑1)來棲息/서이삼경래서식/ 세 갈래 오솔길 옮겨 와서 거처하고자 다짐하였더니
樂處何人共襲芳/낙처하인공습방/ 즐거운 곳 누구와 함께 향기 맡으리?
*1 삼경(三徑):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三徑就荒 松菊猶存(삼경취황 송국유존)"의 구가 있다. 서한시대 '장후(蔣詡)'가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 두릉으로 돌아와 문은 가시덤불로 막고 출입을 안 했는데 집 안에 송.국.죽(松.菊.竹)세 갈래 오솔길을 만들어 놓고 오직 구중과 양중이라는 두 친구하고만 놀았다고 하는 고사로 은자들의 집과 뜰(家園)을 말한다.
2)陶丘南畔白雲深/도구남반백운심/ 도산의 언덕 남쪽 경계에 흰 구름 깊은데
一道蒙泉出艮岑/일도몽천출간잠/ 한 줄기 몽천 동북쪽 언덕에서 흘러나오네
晚日彩禽浮水渚/만일채금부수저/ 해질녘에 고운 새는 모래톱 위에 떠있고,
春風瑤草滿巖林/춘풍요초만암림/ 봄바람에 아름다운 풀은 봉우리와 숲에 가득하네
自生感慨幽棲地/자생감개유서처/ 그윽이 깃들어 사는 곳에 감개 절로 생겨나네
眞愜盤桓暮境心/진협반환모경심/ 늘그막 서성였던 마음이 정말 뜻에 만족하네,
萬化窮探吾豈敢/만화궁탐오기감/ 만 가지 변화 끝까지 탐색함 내 어찌 감히 하리오?
願將編簡誦遺音/원장편간송유음/ 원컨대 책 들고서 성현이 남긴 글이나 외우고자 하네 《退溪先生文集卷之二》
○ 도산잡영/도산의 여러가지 사물을 시로 읊다/ 18절
1절, 陶山書堂/도산서당
大舜親陶樂且安/대순친도락차안/ 순 임금은 친히 질그릇 빚으며 즐겁고 또한 마음 편하고
淵明躬稼亦歡顔/연명궁가역환안/ 도연명은 몸소 농사지으며 얼굴 또한 기뻤다네.
聖賢心事吾何得/성현심사오하득/ 성현의 그 심사를 내 어찌 알겠는가 마는
白首歸來試考槃2)/백수귀래시고반/ 늘그막에 돌아와 은거하며 즐거움을 맛보리라.
*2 고반(考槃): 현자가 은거하는 집이나 여유로운 즐거움을 말한다.
2절 巖栖軒/암서헌 *도산서당의 마루
曾氏稱顔實若虛/증씨칭안실약허/ 증자는 안연에게 알차면서 빈듯하라 하였고
屛山引發晦翁初)/병산인발회옹초/ 병산 유자휘는 비로소 주자를 감발케 했네.
暮年窺得巖栖意3)/모년규득암서의/ 늘그막에야 암서의 뜻 엿보아 깨달으니
博約淵氷恐自疎/박약연빙공자소/ 박약,연빙공부 소홀히 할까 스스로 두렵구나.
*3 암서(巖栖): 주자(朱熹) 16세 때에 스승인 병산 유자휘가 '원회(元晦')라는 자(字)를 지어 주면서 "있어도 없는 듯, 찼어도 빈 듯하라” 고 한 데 대해 주자는“自信久未能巖棲冀微效/능하지 못함을 자신한지 오래거니 산속에 거처하며 은미한 효험 바라네"라고 하였다.
3절. 玩樂齋4)/완락재 *도산서당의 방
主敬還須集義功/주경환수집의공/ 지경을 주로 하되 집의 공부도 함께 해야 하니
非忘非助漸融通/비망비조점융통/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않으면 점차 융통해지리라.
恰臻太極濂溪妙/흡진태극렴계묘/ 흡사 주렴계의 태극도설의 오묘한 이치를 알게 되면
始信千年此樂同/시신천년차락동/ 이 즐거움 천년을 가도 같음을 비로소 알리라
*4 완락(玩樂) : 주자 《명당실기》 “合乎周子太極之論 然後又知天下之理幽明鉅細遠近淺深 無不貫乎一者樂而玩之 固足以終吾身而不厭 又何暇夫外慕哉/ 주렴계의 태극론에 합함이 있는 연후에 또 천하의 이치가 유명,거세,원근,천심이 하나로 관통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을 알아서 즐기고 완상하면서 족히 내가 종신토록 싫어함이 없게 할것이니 또 어찌 다른 생각을 할 여가가 있으리오”에서 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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