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원재 유교문화 해설 (167)
【가정 이곡의 조당고문(弔黨錮文)】
“간신배에 화를 당한 선비들을 슬퍼하다”
○ 어느 나라던 치란(治亂)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
어진 군주와 훌륭한 신하들이 나라를 잘 이끌어 태평한 세상을 누리는 치세(治世)가 있는가 하면,
간신배들이 국정을 농단하게 되면 세상이 어지럽고 재난이 일어나서 백성들이 고난을 겪는 난세(亂世)가 있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있는 시국이 소인배가 부정선거로 입법권을 독점하여 불법 탄핵으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대통령을 탄핵 구속하는 전대미문의 총성없는 내란을 일으켜 좌우 파당(派黨)이 목숨을 건 싸움으로
나라가 위란에 처해 있다.
○ 1900년전 후한(後漢,166) 말기 내시들이 서로 결속하여 당파를 만들어 권력을 잡고
부정 부패를 일삼아 국정을 농단하는 판국이 되었다.
이때 내시들은 환제(桓帝)를 부추겨 자신들을 공격하던 청류당(淸流黨)의 이응(李膺)등
2백 여명의 사대부들을 구금한 사건을 1차 당고지화(黨錮之禍)라 하고,
환제가 죽고난 다음 영제(靈帝)가 즉위하자(168년) 두태후(竇太后)의 아버지인 청렴한 선비 두무(竇武)가 실권을 잡았다.
두무는 당인의 금고를 해제하고 청류당에 속한 사람들을 등용함과 동시에
그들과 결탁하여 십상시(十常侍)를 일소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전에 계획이 누설되어 도리어 환관의 반격을 받아 두무는 자살하고,
이응(李膺) 등의 당인은 또다시 붙잡혀 사형, 유배, 금고(禁錮)등 700여명이 화를 입은 사건을 2차 당고지화라 하며,
이로부터 사대부 세력이 궁중의 환관 세력들과 싸우다가 패배할 경우 나라가 망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두 차례의 당고지화로 청류당의 사대부들은 탄압을 받아 완전 해체되었으며,
그후 환관이 국정을 전제하게 되었다.
2차에 걸친 당고의 화는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필적하는 중국의 선비집단의 탄압으로,
유교국가를 표방하는 후한 왕조로서는 참으로 자살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마침내 내우외환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한나라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선비들의 탄압 사건을 당고지옥(黨錮之獄) 또는 당고지금(黨錮之禁)이라고 하는데
고려말 가정(稼亭) 이곡(李穀)은 고려말 나라의 혼란함을 우려하여 난세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한 바램으로
당고지변으로 억울하게 죽은 선비들을 슬퍼하는 글이 조당고문(弔黨錮文)이다.
● 조 당고문(弔黨錮文) 이곡(李穀)
문을 닫아 걸고 글을 읽어도 오히려 옛사람을 논하나니,
이는 시절을 못 만난 사람이 하는 것이라.
옛 선비들이 말하기를, “옛날의 일을 조상하며 옛날의 역사를 위해 우노라." 하였으니,
나는 ‘당고전’에 대해 느낀 바 있어 글을 지어 이를 조상하노라,(杜門讀書 尙論古人 此不遇時者之所爲也 先儒有云
弔古泣舊史 余於黨錮傳 有感焉 爲文以弔之)
致君澤民兮 君子所期/ 임금께 충성하고 백성에게 은택을 베푸는 것이, 이는 군자가 기약하는 바이라
藏器於身兮 動必以時/ 능력을 몸에 감춤이여, 움직임에는 반드시 때를 가다릴 것이라.
嗟彼黨人兮 使余歔欷/ 아! 저 당인(黨人)들이여, 나로 하여금 흐느끼게 하노라,
昔恭顯之得志兮 構炎正之中微/ 옛날 홍공(弘恭), 석현(石顯)*1의 뜻을 얻음이여, 한(漢)나라의 정치를
중도에서 쇠퇴하게 하였노라.
自古憸人之柄用兮 不誤國者幾希/ 옛부터 간사한 사람이 정권을 잡음이여, 나라를 그르치지 않음이 거의 없었노라.
苟讒說之殄行兮 雖聖智而低眉/ 참언이 성행하여 착한사람 해침이여, 비록 성인이라도 잠시 머리를 숙여야 하였는가.
嗟群賢之不量其力兮 將口舌以是非/ 아! 현사(賢士)들이 그 힘을 헤아리지 못했음이여,
서로 비방하며 시비를 일으켰노라.
四海之橫流兮 思側手以障之/ 사해(四海)가 마구 흐름이여, 한 손으로 막으려 했노라.
大厦之將傾兮 非弱枝之所支/ 큰 건물이 기울려 함이여, 약한 가지로는 지탱할 수 없었노라.
吞舟制於螻蟻兮, 蝘蜓欺彼蛟螭蚂/ 배를 삼킨 큰 고기가 하찮은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놀림이여,
작은 도마뱀이 저 큰 용을 깔보노라.
荆棘變爲蘭藎兮, 嫫母妬其西施/ 가시나무가 향초로 변함이여, 모모(嫫母)가 서시(西施)를 투기하노라.
天地易位兮, 否泰相推/ 하늘과 땅이 자리를 바꿈이여, 불운과 행운이 서로 밀치노라.
望之昔死兮, 漢業以衰/ 소망지(蕭望之)*2가 옛날에 죽음이여, 한(漢)나라가 쇠퇴하였노라.
陳蕃今亡兮, 不去何爲/ 진번(陳蕃)*3이 지금 화를 당함이여, 떠나지 아니하고 어찌 하리요.
用晦而明兮, 保身之機/ 어두움으로 밝음을 추구함이여, 몸을 보호하는 기틀이라.
君厨俊及兮,標榜者誰/ 삼군(三軍), 팔주(八廚), 팔준(八俊)*4)이라 함이여, 구분하여 표방하는 자가 누구냐.
李杜之齊名兮, 范母之不疑/ 이응(李膺), 두밀(杜密)*5)과 함께 이름날 것이여, 범방(范滂)*6)의 어머니는 의심하지 않았노라.
皇甫之恥兮, 小黠大癡/ 황보규(皇甫規)*7)의 부끄러움이여 조금 똑똑하였으나 크게 어리석음이라
林宗言遜兮, 申屠見幾/ 곽임종(郭林宗)*8의 말이 겸손함이여, 신도반(申屠蟠)*9)은 기미를 보았노라.
全身遠害兮, 亂世之師/ 그리하여 몸을 보전하고 멀리 피함이여, 난세의 스승이라.
蘭以香而自焚, 珠潜淵而莫知/ 난초가 향기를 발산하여 자신을 불태움이여, 못에 잠긴 진주는 아무도 모르노라.
黨人之不辰兮, 亦天命之所宜/ 당인(黨人)이 때를 못 만남이여, 이것 또한 천명(天命)의 마땅함인가.
*1) 홍공.석현/효원제(孝元帝)는 몸이 건강하지 못해 환관인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에게 정사를 위임하자
이들의 국정 농단을 막지 못하고 황제의 권위를 잃었다.
*2) 소망지/한나라의 덕망 높은 노신(老臣)으로 간신 석현에게 배척 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 진번/중국 후한 말의 정치인으로 청류당의 이응 일파를 변호하다가 참언을 받아 면직당하고
2차 당고지변 당시 두무(竇武)를 도왔다가 처형당했다.
*4) 삼군.팔준/당고지변으로 화를 당한 선비집단 청류당(淸流黨)의 도덕적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희생자들의 순위등급을 매겨 삼군(三君), 팔준(八俊), 팔고(八顧), 팔급(八及), 팔주(八廚) 등으로 나누었다.
*5) 이응.두밀/ 당고지변으로 화를 당한 선비 팔준(八俊)의 한사람이다.
*6) 범방/ 2차 당고지변으로 구금시에 범방의 어머니는 이응, 두밀과 함께 이름을 나란히 하여
영광스럽다고 하였으며 그후 주살된 팔고(八顧)의 한사람이다.
*7) 황보규/ 당고의 화로 당인들이 체포될 때 황보규는 그 당인 대상에서 제외되어 부끄럽게 여겼다.
*8) 곽임종/곽임종(郭林宗)은 집이 가난한 선비로 부모를 잘 섬긴 효자로 이름나서
지방 말직의 관원을 삼으려 하자, 한탄하기를, "대장부가 어찌 미관(微官)으로 하찮은 녹을 받겠는가.”하였다.
*9) 신도반/당고지화가 일어나자 산속에 은둔하며 동탁의 초빙을 뿌리치고 절조를 지켜 천수를 누렸다.
● 이곡(李穀,1298~1351)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 초명은 운백(芸白).
한산이씨 시조인 이윤경(李允卿)의 6대손으로 찬성사 이자성(李自成)의 아들이며,
목은 이색(李穡)의 아버지이다.
그는 1317년(충숙왕 4) 거자과(擧子科)에 합격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332년 일찍이 원나라에서 문명을 떨쳤다.
원나라의 조정에 고려로부터 동녀를 징발하지 말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는 중소지주 출신의 신흥사대부로,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음으로써
고려에서의 관직생활도 순탄하였다.
그는 유학의 이념으로써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대결하였다.
그러나 쇠망의 양상을 보인 고려 귀족정권에서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그의 여러 편의 시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는 1334년 본국으로부터 학교를 진흥시키라는 조서를 받고 귀국하여
가선대부 시전의부령직보문각(嘉善大夫試典儀副令直寶文閣)이 제수되었다.
이듬해에 다시 원나라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귀국하여 밀직부사, 정당문학(政堂文學),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었다.
이제현(李齊賢) 등과 함께 민지(閔漬)가 편찬한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증수하고
충렬, 충선, 충숙왕 3조(三朝)의 실록을 편수하였다.
공민왕의 옹립을 주장하였으므로 충정왕이 즉위하자 신변에 불안을 느껴 관동지방으로 주유(周遊)하였다.
1350년 원나라로부터 봉의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낭중을 제수 받았고, 사후에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다.
『동문선』에는 100여 편에 가까운 이곡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죽부인전(竹夫人傳)」은 가전체문학으로 대나무를 의인화하였다.
그밖에 많은 시편들은 고려 말기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구체적인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산의 문헌서원(文獻書院), 영해의 단산서원(丹山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가정집』 4책 20권이 전한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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