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來不似春"- 이 文句의 由來
중국의 역대 4대 美人이라면 '西施', '王昭君'. '초선', '楊貴妃를 칭하는데, 이중 왕소군(王昭君)에 대한 당나라 시인 동백규의 詩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절세미인 왕소군에 얽힌 얘기는 이러하다. |
漢나라 元帝 때.
서북방 흉노족의 선우에게 볼모로 후궁을 한 명을
간택하여 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元帝는 후궁 중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을 보내기로 하고
궁중화가인 모연수(毛延壽)에게 후궁들의 초상화을
그리도록 하였는바,
뭇 후궁들은 서로 오랑케 왕의 첩으로 간택될까 두려워
궁중화가인 모연수에게 서로 이쁘게 그려달라 請하며
금은보화를 뇌물로 바쳤으나
王昭君은 美人으로서의 自信感때문인지,
청렴 때문인지, 황제에 대한 신뢰 때문인지,
가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손을 쓰지 않아
모연수에 의해 제일 추녀로 그려지고
결국에는 王昭君이 간택되어 볼모로 가게 되었다.
왕소군이 떠나던 날 元帝가 王昭君을 보니
絶世美人바, 이미 결정된 일을 어찌할 수 없어
보내고 난 뒤 궁중화가 모연수를 참형에 처했다.
그녀의 본명은 명확치 않은데,
황제가 안타깝고 가련한 마음에 그녀에게
소군(昭君)이라는 벼슬 칭호를 내려,
그 이후로 왕소군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그녀의 별명은 낙안(落雁)인데,
그녀의 악기 타는 솜씨가 하도 뛰어나 흉노로 갈 때
자신의 처지를 악기(거문고/가야금/중국악기?)로 타자
날아가던 기러기떼들이 노랫가락에 빠져서
그만 날개짓하는 것을 잊고서는 떨어졌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녀의 애칭을 낙안이라 불렀다고 한다.
후세 당나라의 시인 동백규가 왕소군의 처지를 읊은
시 한 구절을 소개하면,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엔 봄이 와도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로구나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
자연히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것은,
이를 날씬하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네.
(한 원제를 사모하고 그리워하여 병이 되어 야위워졌다는)
'春來不似春'에는
이런 가슴 아프고도 애틋한 사연이 숨어 있다고 한다.
해마다 봄이면 의래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두 구절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춘래불사춘'이요
또 하나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이다.
헌데 이 두 구절의 원조를 보면
모두 본래의 뜻에서 약간 비껴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춘래불사춘"의 원래의 의미는 봄이 왔지만
만물이 변한 것이 하나 없어
전혀 봄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즉 "여긴 봄이라고 하는데 전혀 봄 같지가 않네" 하는 의미이다.
헌데 이것이 봄이 왔으되 내 마음엔 봄이 오지 아니하고 있다는
그런 뜻으로 요즘엔 쓰이고 있다.
이 말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에서 나오는 말인데
중국에서는 세간에 회자되지 않았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겪은 시대상황과
국민정서에 들어맞았음인지
"춘래불사춘"이 의례히 봄이면 들리는 말이 되어버렸다. |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도 사실은 비슷하다.
영국의 시인 엘리어트의 황무지라는 장편 서사시의 제1장
"死者의 매장"의 첫 구절이다.
전쟁 후 인간의 도덕, 존엄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잠들어버린 망각의 死者의 무덤을
봄이 되어 일깨우고 황무지를 다시 바라 봐야하는
심경을 읊은 것인데,
흔히 세간에는 봄에 대한 연심의 상념 처럼 사용되고 있다.
재미없는 서론이 참으로 길었다.
어쨋거나 지금 세인들에게 사용되면
현재는 맞는 표현일 것이니
그것이 무에 그리 중요할 것인가? |
昭君怨(소군원)의 원망,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오랑케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왔어도 봄이 온 것이 아닐레라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자연스레 허리띠가 느슨해 지는 것은
-일부러 날씬해지려 살 뺀 것이 아닌데...
= 동방규 =
왕소군은 한 원제의 궁녀로 있다가
내시장 모연수의 간계로 초상화가 잘못 그려지는 바람에
흉노에게 시집가게 되었지만
먼 이역만리 땅에서도 한궁을 그리워하였기에
높이 기림을 받게 된,
날아가는 기러기가 그 미모에 눈이 돌아
떨어지게 했다는 낙안미인으로
중국 4대 미녀에 끼어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 소군에 대하여 썼는지 아마 그녀의 인기는
그 당시 지성인들사이에서 대단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당나라때 무측천의 총애를 받았던
동방규도 다섯수의 소원군을 남겼는데,
그 첫 수에 바로 "춘래불사춘"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이다.
그녀의 묘는 내몽고 자치구에 있는데
옛 시인들의 글에 의하면 그 지역은 풀이 나지 않지만
오직 그녀의 묘에만 푸른풀이 난다고 하여
청총(靑塚-푸른무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 "호화호특"이라는 의미도
"푸른마을쯤"으로 해석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춘래불사춘의 원조를 찾아 보았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우리네 식의 봄이 왔는데
봄을 느끼지 못하는 진정한 의미의
춘래불사춘을 찾아 보자. |
春望 (봄 시름)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 나라가 부서졌어도 산과 강은 변합없어
城春草木深 (성춘초목심)
- 성 안의 풀과 나무엔 봄 색이 깊어지는데
感時花 賤淚 (감시화천루)
-시절을 애상히 여기니 꽃조차 눈물 흘리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먼 이별이 한되어 새들조차 마음 놀라네
烽火連三月(봉화련삼월)
-전쟁 봉화 석 달 때 계속 올라가니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가족들의 편지는 천만금보다 더 귀하다.
白頭搔更短(백두요갱단)
-흰머리를 긁으니 자꾸 짧아져서
渾欲不勝簪(혼욕부승장)
-이제는 비녀조차 꼽을 수가 없구나.
- 두 보 -
고전 교과서에도 실렸으리만치 이 시는 너무 유명해서
이 시는 중국 학생들을 위한
시 공부책에서도 본 기억이 난다.
그만큼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명시라는 의미일 것이다.
성이 깨져 부서나가고 온통 전화의 불기둥이 남아 있는데
봄이랍시고 도성에는 꽃과 풀이 파릇 거리고 있었다.
가족들은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알 수 없고
어디에 큰 싸움이 일어나
마을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뿐...
서신조차 오갈 수 없는 기막힌 시절이다.
그러니 봄은 왔으되
시인 두보의 가슴엔 봄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꽃을 보니 꽃조차도 눈물을 짓는 것 같고
날아가는 새를 보니 새도 죽음의 이별에 놀라서
가슴 떨며 날아가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정말 이쯤 되면 완벽한 춘래불사춘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
백발이 되어 버린 머리 시름에 자꾸 쥐어 뜯다 보니
이제는 비녀조차 꼽기 어렵게 되었다는 구절은
만고의 명문으로 전해 내려온다.
우리에게는 안록산의 난이라고 알려져
그저 역사책의 한 문구를 장식할지 모르나
장장 9년에 걸처 중국을 초토화시킨 최고의 킬링필드였다.
이런 전란의 한 가운데 서서
온몸으로 맞은 이가 바로 두보였으니
어찌 그가 평온하겠는가?
그래서 그의 시에는
온통 전란의 슬픔과 애환을 읊은 시들이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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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至
舍南舍北皆春水(사남사북개춘수)
但见群鸥日日来(단견군구일일래)
花径不曾缘客扫(화경부증연객소)
蓬门今始为君开(봉문금시위군개)
盘飧市远无兼味(반손시원무겸미)
樽酒家贫只旧醅(준주가빈지구매)
肯与邻翁相对饮(긍여인옹상대음)
隔篱呼取尽馀杯(격리호취진여배)
손님이 오셔서..
집의 남과 북은 온통 봄 물결로 가득 찼어도
보이는건 날마다 떼 지어 날아오는 갈매기들 뿐이다.
떨어진 꽃으로 덮인 길은 쓸어 본 일도 없는데
오늘은 그대를 위해 쓸고 사랍문도 활짝 열어 놨소.
저자거리 워낙 멀다보니 상차림이 조촐하고
가난한 살림살이 술도 먹다 남은 술뿐이지만
옆집 노인과도 더불어 마셔도 괜찮으시다니
울타리 너머로 불러서 남은 술 같이 한다.
두보는 늘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지내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런 두보에게 평생 고달픈 떠돌이 생활 가운데
그나마 비교적 평온했던 시절이 있엇으니
그 당시 성도의 시장을 맡고 있었던 엄무의 후원으로
성도부근에 초당을 짓고 전원 은거생활을 하던 때였다.
위의 시는 그때 지은 시로
어느 봄날 그 곳 지방 현령인 최명부가 두보를 찾아와서
손님맞이의 정경을 그린 시인데
그의 소박한 성품과 기질이 참으로 멋지게 드러나고 있다.
길손들의 발길도 닿지 않는 곳이라 그냥 자연처럼 살고 있는데,
자신을 찾아온다니 오는 길목에 사립문도 활짝 열고 맞으며,
비록 어려운 살림이라
새로 담궈둔 술단지도 없고 안주거리도 변변치 않지만
옆집 노인네 사람 좋고 술 좋아하니
함께 불러 마십시다 하는 말이다.
엊그제 영동지방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니
겨울날씨가 되어 다시 제법 쌀쌀해진것 같다.
봄이 다가오면서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일것이다.
허나 이 꽃샘추위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으로
이젠 정말 봄이 오고 있다는 확실한
봄의 전령사가 아니었던가?
해마다 꽃샘추위가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오곤 했으니...
그래... 오는 봄을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춘래불사춘이어도 봄은 봄이니까...
2) 날씨가 일상적인 겨울추위보다 더 춥다보니...
문득, 춘래불사춘이라는 단어를 떠 오르게 합니다.
2. 天若改常(천약개상)이면 不風卽雨(불풍즉우)요,
人若改常(인약개상)이면 不病卽死(불병즉사)라!
1) 이 말의 뜻은...
“하늘이 만약 상도(常道)를 어긋나면,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고,
사람이 만약 상도를 벗어나면, 병이나거나 죽게 된다.“는 뜻으로
2) 저 같은 경우는...
주변(?)을 더 살펴 보거나, 나름대로 근신(勤愼)하게 되는데...
○ 저 같은 경우는...
무엇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거나...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것인가?하고...
주변을 더 살펴 보게 되지만...
○ 때로는, 저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을 때는...
나름대로 행동을 삼가는등 방콕(방에 콕 박히는 것)하게 되죠!
3. 그냥, 새 봄이 오기 전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기를!!!
1) 입춘(立春)인데...
2) 날씨는 상식에서 벗어나 너무 춥기에...
3) 무슨 일이 크게 잘못 되어가고 있다!거나...
무엇이 크게 잘못 되어서...천재지변등...
그러한 일들의 발생을 미리 경계(?)하는 것이 아닌...
4) 그냥, 새로운 봄(春)이 오기 전의...
5)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출처] 단순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기를 바라며...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개벽>(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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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우수경칩 지나 새봄이 왔건만 아직 춘풍화류 호시절 아니로다
好事多不好世上事(호사다불호세상사)
-좋은 세상같은데 세상이 다 좋은것같지는 않고
樂積不似樂(락적불사락)
-즐거움은 많은것 같은데 즐거운것 같지 않고
富積不似富(부적불사부)
-부유해진것같은데 부유스런것 같지 않고
好時節不似好時節(호시절불사호시절)
-좋은시절 같은데 좋은것 같지않고
漸赤作不安世事(점적작불안세사)
-점점 불그레져서 세상이 불안하구나
今四月十一日 決定世上春(금사월십일일 결정세상춘)
-이번 사월 십일일은 이땅의 이 봄이 결정되는 날이니
此世知覺人 決定此世春(차세지각인 결정차세춘)
-이세상의 지각있는 사람들아! 이세상의 봄을 결정하노라
= 此 項 自 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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