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찾아서

의성 죽포 이필곤 의병장 순국기념비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6. 4. 3. 09:26

의성 죽포 이필곤 의병장 순국기념비를 다녀와서

 

2020년 코로나로 연기(3. 12예정)되었던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4월 2일

선조님의 유덕을 기리면서 동강서당을 돌아보고 나서 마을남쪽으로 이동하여

국가보훈부지정 보훈시설인 죽포 이필곤의병대장의 순국기념비를 돌아보았다.

 

사곡면 오상리1리는 오동(梧洞), 오촌(梧村)으로도 불리며

야트마한 산자락에 남향으로 자라한 마을은 진성이씨의 집성촌으로

마을앞으로 남대천이 흐르고 강건너 넓은 들판에는 봄에는 마늘농사,

가을에는 벼농사가 지어지며 멀리 오토산과 금성산이 보이는 곳으로 

마을앞으로 지나는 도로에는 노란 산수유꽃이 심겨져 있으며

마을입구에는 산수유마을로 가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죽포(竹浦) 이필곤(李苾坤 1864~1907)의병대장은

천품이 호장하고 체력이 강대하여 누구나 기대하는 바가 컸다고 전하며

병신년(1886) 일본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자 비분강개하여

향리 청장년들에게 통문을 돌려 창의(倡義)를 주창한 후 의성의병에 가담하여

중군역으로 금성전투에서 패하자 잔병들을 수합하여 자진 통솔책임을 맡아

춘산 사미와 옥산 황산에서 일병과 교전하여 많은 일병(日兵)을 무찔렀으나

 

왕명으로 해산명령이 내려져 왕명을 거역할 수가 없어 자숙하고 있던 중

1907년 7월 30일 일본수비대가 엄습하여 피체되어 안동으로 송치한 후

8월 6일 수비대장이 뜻을 굽히면 방면하겠다는 감언이설로 회유를 하였으나

장군은 <이놈들아 항복할 내가 의병대장 노릇을 하겠는가?>라고 호통을 쳤고

수비대장이 총으로 장군의 입을 쏘아 턱이 떨어지자 두손으로 턱을 받치고서

끝까지 호통을치자 일본경찰이 쏘는 세발의 총을 맞고 운명하셨다고 전하며

1977년 건국훈장이 추서되고 장군이 사시던 향리에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순국기념비 주변에는 귀농하신분으로 보이는 현대식 주택도 보였으며

지난해 재배한 콩이 아직 추수를 못한채 서 있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였으며

인근에는 포크레인으로 집터를 조성하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기념비(義兵大將竹浦李苾坤殉國紀念碑)를 돌아보며

의병장님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다시 새기면서

신감리와 소감리을 지나 옥산을 거쳐 길안으로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