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학(南冥學)의 정수(精髓), <천군전(天君傳)> |
또 겨울이 왔고, 연말의 시국은 매서운 한파만큼이나 살벌하다. 세상은 복잡해지고 지식인들은 공교(工巧)해져, 웬만한 전문 지식 없이는 연일 신문 방송에 오르는 말과 사건들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정파나 지역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하고 무감각해져 있는 듯하다. 사이비 정치인, 지식인들은 몸과 마음을 풀어놓은 채 한갓 방종할 뿐이면서 스스로 세상을 다 아는 통달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자신도 모를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안으로는 눈, 귀, 입을 잘 지켜 마음을 맑히고 밖으로는 불의(不義)를 단호히 물리쳐서 자기 내면과 세상을 명징(明澄)하게 보고자 했던 남명학(南冥學)의 정신이 우리에게 주는 깨우침은 크다. 남명(南冥)의 <신명사도(神明舍圖)>와 함께 남명학의 정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저술은 남명의 제자인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의 <천군전(天君傳)>이다. <신명사도(神明舍圖)>의 이치를 얘기로 풀이한 이 글에는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本性)을 경건히 지켜서 참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남명학의 맑고 올곧은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
곤륜산 아래 광활한 대지 위에 나라가 있었으니, 유인씨(有人氏)라고 한다. 그 영토는 원로산(圓顱山)으로부터 교지(交趾)에 이른다. 영토는 다른 나라보다 크지 않지만 예의(禮義)를 숭상하여 제후들의 존경을 받아 실로 중국의 맹주가 되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잘 수행하였는데, 그 임금은 건원제(乾元帝)의 아들이었다. 건원제 태초(太初) 원년에 조명(詔命)을 내리기를 “짐이 높은 상제(上帝)의 자리에 있으니 정사가 너무도 많아서 홀로 다 관장할 수 없다. 짐을 도와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짐이 하계(下界)의 군주들 중에서 각별히 총애하여 모든 군주들의 모범이 되게 하리라.” 하니, 모든 신하들이 말하기를 “아드님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태사(太史)에게 명하여 임명장을 쓰게 했는데, 그 내용에 “사람이 사는 나라들이 저 먼 하계에 있는데 수없이 많고 일정한 군주가 없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가서 땅 위에 정사를 베풀라. 너는 네 형제들과 함께 저 수많은 사람들을 잘 다스려 나의 왕실을 도우라. 네게 인의(仁義)의 집과 예지(禮智)의 보옥과 헌원씨(軒轅氏)의 구슬1)과 수후(隋侯)의 옥2)을 나눠주고 왕실의 진귀한 보배들을 모두 줄 터이니, 가서 공경히 일하여 짐의 명을 잘 수행하라. 네가 임금답지 못하면 너의 팔, 다리, 심장도 모두 너의 원수가 되어 안의 간사한 자들과 밖의 사나운 적들이 틈을 엿보고 공격하여 네 나라의 우환이 될 것이다. 너는 이 점을 경계하여 유념하고 조심하라. 성벽을 높이고 해자(垓子)를 깊이 파고 겹겹의 성문을 닫고 빈틈없이 순찰하여 조금도 경비에 소홀하지 말라. 오호라! 공경하는 마음이 이기면 길상(吉祥)하고 태만한 마음이 이기면 멸망하는 법이니, 부디 태만하지 말아서 하늘이 내린 임금의 복록을 길이 이어가도록 하라.” 하였다. 그리고 정월 갑인일(甲寅日)에 상제가 태사를 시켜 유인씨 나라의 강역(疆域)을 정해주고 아들을 임금으로 책봉하니, 나라의 백성들이 그를 높여서 천군(天君)이라 하였다. 천군의 초명은 리(理)였는데 유인씨 나라의 임금이 된 뒤에 심(心)이라 이름을 고치고 도읍을 흉해(胸海)에 두었다. 원년에 천군이 신명전(神明殿)에서 조회를 받고 겹겹의 성문을 활짝 열게 하면서 말하기를 “훤하게 틔워서 가려짐이 없기를 바로 나의 마음과 같도록 하라.” 하고 이어 태재(太宰)인 경(敬)에게 명하여 “너는 강자(腔子) 속에 머물러 나의 궁중과 관서(官署)들을 엄숙하고 청렴하게 하라.” 하고, 백규(百揆)인 의(義)에게 명하여 “너는 태재를 도와 모든 정무(政務)를 순리적으로 처리하여 모든 생각을 막힘없이 넓게 하라.” 하였다. 이에 두 재상이 한마음으로 일하여 정사가 잘 되니, 모든 관원들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감히 제 일에 소홀하지 못하였다. 태재가 말하기를 “아, 유념하소서! 상제께서 임명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마음에 의심을 두지 마소서. 임금님께서 어디에 계시든 신(神)의 눈은 매우 밝아서 모든 행동을 곁에 있는 듯이 환히 봅니다. 하늘에 계신 상제를 우러러 대하고 계시니, 낳아주신 부모님을 욕되게 하지 마소서.” 하고, 백규가 말하기를 “아, 경계하소서! 이 모든 정사가 임금님 한 분에게 달려 있으니, 인재를 잘못 써서 관원들이 직무를 그르치도록 하지 마소서. 하늘의 일을 임금님께서 대행하고 계십니다.” 하였다. 천군이 말하기를 “그대들의 말이 옳다. 두 분의 도움이 없으면 나는 임금 노릇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찮은 나의 일신이 대부(大夫)들의 보필을 받고 있으니, 대부들은 나를 버리지 말라.” 하니, 신하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두 분 대신을 버리지 않으시면 신들이 감히 충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임금님께서 두 분 대신을 버리시면 비록 임금님을 바르게 보필하고 싶어도 아첨하는 소인들을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천군이 깊이 받아들였다. 이로부터 두 재상이 충성을 다해 일할 수 있어서 신하들이 크게 화합하고 나라 안이 크게 다스려져 마침내 상제의 명을 받아서 사해 안을 모두 통치하고 우주 밖까지 포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릇 천지 안에 있는 만여 개 나라들이 모두 유인씨에 귀속되어 남쪽으로 천근(天根)3)에 이르고 북쪽으로 월굴(月窟)4)에 이르기까지 교화를 받지 않는 나라가 없고 나라가 강성해져서 상제의 왕실에 짝할 수 있게 된 것은 두 재상의 힘이었다. 그런데 천군은 은밀히 다니기를 퍽 좋아하여 무시로 궁궐을 출입하니, 신하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였고 태재가 늘 그렇게 하지 말라고 충간(忠諫)하였다. 천군의 만년에 간사한 신하인 공자(公子) 해(懈)와 공손(公孫) 오(傲) 등이 실권을 잡고서 태재 경을 쫓아내니, 백규는 자리에 편안히 있지 못하고 떠났다. 천군이 이에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광활한 우주 저편까지 치달리며 위로 날아 하늘에 오르기도 하고 아래로 내려가 깊은 물속에 가라앉기도 하니, 대궐의 정전(正殿)이 오래도록 비고 모든 법도가 느슨히 풀어졌다. 은해(銀海)5) 지방의 요망한 도적 화독(華督)6) 등이 맨 먼저 세 관문을 어지럽히자 도적들이 사방에서 벌떼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천군은 먼 외지에 나가 있어 나라에 방비가 없던 터라 도적들이 흉해를 습격하여 창칼에 피를 묻히지도 않고 도성에 들어갔다. 천군의 군사들은 영대(靈臺) 아래에서 참패하여 장군 강(剛)7)이 죽고 도적의 괴수인 유척(柳跖)8)이 스스로 임금이 되어 방촌대(方寸臺)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궁궐은 오염되고 정원은 황량해졌으며 고약한 누린내를 풍기는 자들이 단전(丹田)에 가득하고 옥연(玉淵)에 들끓었다. 천군이 나라를 잃고 나자 귀족 출신 신하들은 따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오직 공자(公子) 양(良)만이 곁에 보필하면서 등용되지 못해도 차마 천군을 버리고 떠나지 못했다. 그가 기초(祈招)9)라는 시를 지어서 천군을 일깨우자 천군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즉시 되돌아 와서는 흩어진 군사들을 불러 모았다. 태재 경이 행재(行在)에 가니, 다시 복위(復位)시켰다. 이에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힘을 다해 적을 무찌른 지 10년 만에 천군이 다시 각자(殼子) 속으로 들어갔다. 대장군 극기(克己)10)가 사물기(四勿旂)11)를 세우고서 선봉이 되고 공자 지(志)12)는 군사들을 통솔하여 원수(元帥)가 되었다. 대장군의 외로운 군대가 깊이 진격하여 생사로두(生死路頭)에서 적을 만났다. 대장군이 밥을 지어먹는 솥을 깨고 머물러 쉬는 막사를 불사르라 명하여 결사적으로 싸울 뜻을 보여 백 차례나 혈전을 벌인 끝에 적군이 대패하였다. 천군이 다시 돌아와 신명전에 앉으니, 백규 의도 와서 태재와 안팎을 나누어 다스렸다. 태재가 천군에게 권하여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쓰고 요해(要害)를 장악하게 하였다. 적들이 자주 변방을 침범했지만 대장군이 무서운 기세로 성들을 순시하니, 적들이 모두 퇴각하고 감히 정면으로 덤비지 못했다. 대장군이 추격하여 적들을 모두 베어 죽이고 진격하여 적의 소굴을 뒤엎어 건원제가 하사한 영토를 모두 회복하고 군사가 돌아와 대궐에서 승전을 보고하였다. 이로부터 세 궁궐이 평안하고 사방 들판이 조용하여 금구(金甌)13)와 같은 천리 강토가 맑고 깨끗해 아무런 흠이 없었다. 천군은 가만히 앉아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니, 태재는 안에서 천군의 덕을 보필하여 모든 정사의 근본인 임금의 마음을 맑게 하고 백규는 밖에 생기는 일들을 수응(酬應)하여 하나의 근본인 마음의 작용을 펼쳐 나갔다. 이렇게 저마다 자기 직책을 공경히 수행하니 나라가 태평하였다. 천군은 재위한 지 백년 만에 육룡(六龍)14)을 타고 상제의 궁정(宮庭)으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았다.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내가 보건대 천군이 임금 노릇을 잘한 것은 태재 경의 보좌 덕분이다. 나라가 잘 다스려진 것은 경을 재상으로 삼았기 때문이고 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경을 떠나보냈기 때문이며, 천군이 나라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경을 재상의 자리에 도로 앉혔기 때문이다. 천군이 상제를 짝할 수 있었던 것도 경 때문이고 만방을 통솔할 수 있었던 것도 경 때문이었으니, 첫째도 경이요 둘째도 경이다. 오호라! 한 재상을 얻으면 흥성하고 한 재상을 잃으면 패망하니, 임금이 누구를 재상으로 삼을지 신중히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1) 헌원씨(軒轅氏)의 구슬 : 헌원씨는 전설 상의 고대 제왕인 황제(黃帝)의 이름이다. 황제가 적수(赤水) 북쪽에서 노닐다가 돌아오는 길에 현주(玄珠)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도 찾지 못했는데 상망(象罔)이 찾아냈다고 한다. 《莊子 天地》 상망은 무심(無心)을 비유한 것이고, 현주는 도(道)의 본체를 비유한 것이다 2) 수후(隋侯)의 옥 : 명월주(明月珠) 또는 야광주(夜光珠)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밝은 지혜를 비유한다. 《회남자(淮南子)》 <남명훈(覽冥訓)>에 “수후의 구슬과 화씨(和氏)의 구슬을 얻는 자는 부유해지고 잃는 자는 가난해진다.” 하였다. 그 주(注)에 “수후는 한(漢) 나라 동쪽에 있는 나라의 희성(姬姓)을 가진 제후이다. 수후가 배가 갈라진 큰 뱀을 보고 약을 붙여 치료해 주었는데, 후에 그 뱀이 강물 속에서 큰 구슬을 물고 나와 보답하였다.” 하였다. 3) 천근(天根) : 사람의 발뒤꿈치를 뜻하는 말이다. 4) 월굴(月窟) : 사람의 정수리를 뜻하는 말이다. 5) 은해(銀海) : 도가(道家)나 의술(醫術)에서 사람의 눈동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6) 화독(華督) : 춘추시대 송(宋)나라 태재(太宰)로 공보가(孔父嘉)의 아내를 길에서 보고 미색에 반해 공보가를 죽이고서 그 여자를 차지했다. 《春秋左傳 桓公 2년》 여기서는 미색을 탐내는 음탕한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7) 장군 강(剛) : 욕심에 굽히지 않는 굳센 마음을 비유했다. 공자가 “나는 강한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吾未見剛者]”라고 하니, 혹자가 “신정(申棖)입니다.” 하였다. 공자가 다시 “신정은 욕심이 많으니, 어찌 강하다고 할 수 있으리오.[棖也慾 焉得剛]” 하였다. 《論語 公冶長》 8) 유척(柳跖) : 춘추시대의 큰 도적인 도척(盜跖)의 성이 유(柳)이고 이름이 척(跖)이다. 도적이라 하여 도척이라 부른 것이다. 도척은 9000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천하를 제 마음대로 다니면서 남의 우마(牛馬)를 빼앗고, 남의 부녀(婦女)를 강탈하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친척도 부모 형제도 모르고 선조(先祖)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고 하였다. 《莊子 盜跖》 여기서는 포악한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9) 기초(祈招) : 일시(逸詩)의 편명이다.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팔준마(八駿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천하를 두루 다니니, 신하 모보(謀父)란 사람이 이 시를 지어 만류하였다 한다. 《左傳 昭公 12年》 10) 극기(克己) : 자기 사욕을 이기는 것을 비유하였다.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가 “자기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실천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 하였다. 11) 안연이 인(仁)을 실천하는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하였다. 《論語 顔淵》 勿 자에 대해 주자(朱子)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물(勿) 자는 깃발과 같다.’ 했으니, 이 깃발을 한번 휘두르면 삼군(三軍)이 모두 물러난다. 공부가 단지 이 물(勿) 자에 있으니, 비례(非禮)가 오는 것을 보았다 하면 곧바로 막아내고 곧바로 이겨내야 한다.” 하였다. 12) 공자 지(志) : 맹자가 사람의 뜻을 비유한 것이다. 맹자가 지(志)를 장수에 비기고 사람의 기(氣)를 군졸에 비겼다. 《孟子 公孫丑 上》 13) 금구(金甌):금으로 만든 사발로 흠이 없고 견고한 강토(疆土)를 비유한 말이다. 양 무제(梁武帝)가 일찍 일어나 무덕각(武德閣)에 이르러 혼잣말로 “나의 국토는 오히려 금구와 같아 하나의 상처나 흠도 없다.”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南史 62권 朱异列傳》 14) 육룡(六龍) : 여섯 마리 용으로,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육효(六爻)를 가리킨다. 건괘 <단전(彖傳)>에 “때로 육룡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時乘六龍以御天]” 하였는데, 이는 원래 성인(聖人)이 나와 세상을 다스림을 비유한 것이다. |
[有國於崑崙之下磅礴之上, 號曰有人氏. 其地自圓顱山至交趾, 土不過同, 而以禮義爲諸侯所宗, 實王夏盟, 以熙帝載; 其君則乾元帝之子也. 乾元帝太初元年, 詔曰: “朕居巍巍之上, 萬機寔繁, 無以獨運; 有能佐朕以治, 朕將寵之下土, 式是百辟.” 僉曰: “胤子可.” 乃命太史作策, 命其詞曰: “唯玆萬國, 逖在下地, 林林緫緫, 靡有定主. 肆予命汝, 自服于中土; 汝尙同爾兄弟, 撫玆戎醜, 以贊我帝室. 分汝以仁義之室 ․ 禮智之琛, 軒轅氏之珠 ․ 隋侯之璧 ․ 王府珍藏, 咸錫予之, 往欽哉, 無荒墜朕命. 汝如不君, 惟爾股肱心膂, 皆汝仇敵, 內姦外寇, 投間抵隙, 爲汝邦患; 汝其戒此, 念之敬之. 高城深池, 重門擊拆, 罔有小忽; 陳兵巡警, 明法詰盜, 罔有小忽. 嗚呼! 敬勝則吉, 怠勝則滅, 無怠無荒, 永綏天祿.” 元月甲寅, 帝使太史, 命疆有人之國, 封胤子焉; 國人尊之, 號曰天君. 天君初名理, 旣封於人, 更名曰心, 都胸海. 元年, 天君受朝于神明殿, 命洞開重門曰: “軒豁無蔽, 正如我心.” 爰命太宰敬曰: “汝宅腔子裏, 肅淸我宮府.” 命百揆義曰: “汝協于太宰, 順應萬務, 以熙百志.” 於是, 二相同心, 政成事合, 百官有司, 整整肅肅, 無敢荒厥官. 太宰曰: “吁, 念哉! 上帝寔命, 無貳爾心. 爾在屋漏, 神目孔昭, 出入起居, 及爾出王. 對越在天, 無忝爾所生.” 百揆曰: “吁, 戒哉! 惟玆庶績, 在汝一人, 無或曠于庶官. 君其代于天工.” 君曰: “兪! 靡二子之助, 我無以爲君. 予一人眇躬, 辱在大夫; 大夫無棄我.” 皆稽首曰: “君若不棄二臣, 臣敢不爲用? 君如棄之, 雖欲匡輔, 其於群小何?” 君深納焉. 由是, 二相得盡其忠, 群臣大和, 國內大治, 遂承帝命, 統攝四海之內, 包括宇宙之外, 凡命於兩儀之間萬餘國, 皆有人氏之屬; 南至于天根, 北至于月窟, 無有化外之邦, 國家强盛, 克配帝室者, 二相之力也. 君頗好微行, 出入無時, 群臣莫知其鄕, 太宰每諫止之. 末年, 佞臣公子懈公孫傲等用事, 逐太宰敬, 百揆不安位而去. 君於是乘八駿馬, 馳騖八荒之外, 或陞而天飛, 或降而淵淪, 法宮久空, 百度縱弛, 銀海路妖賊華督等, 首亂三關, 群盜蜂起. 君巡遊在外, 國無備禦, 賊襲胸海, 不血刃而入其郭; 我師敗績于靈臺之下, 將軍剛死之. 賊酋柳跖自立爲君, 入居方寸臺; 宮闕汚穢, 池殿荒涼, 腥膻醜種, 瀰漫丹田, 薰蒸玉淵. 天君旣失國, 故家遺臣, 無一從者, 惟公子良尙周旋其間, 雖不見庸, 不忍棄去, 乃作祈招之詩, 以警其君. 君惻然省悟, 卽命整駕回轡, 收召散卒, 太宰敬詣行在, 使復其位. 於是, 百姓雲集, 克期恢復十年, 天君復入殼子裏. 大將軍克己建四勿旂爲前鋒, 公子志統大衆爲元帥, 大將軍孤軍深入, 遇賊于生死路頭, 命破釜甑, 燒廬舍, 視士卒必死, 血戰百合, 賊衆大潰. 君正位于神明殿, 百揆義亦來, 與太宰分治內外. 太宰勸上堅壁淸野, 控制要害. 賊黨數犯邊, 大將軍厲氣巡城, 賊皆却走, 莫敢當其鋒. 將軍追擊盡斬之, 進兵覆其巢穴, 盡復乾元帝所賜之地界, 師還告捷于丹墀. 自是三宮淸晏, 四野寧謐, 金甌千里, 瑩凈無痕. 天君拱己垂衣而治, 太宰輔君德以淸萬化之本; 百揆應事變以宣一本之用, 各恭其職, 國家無事. 上在位一百年, 乘六龍朝帝庭不還. 太史公曰: “予觀天君之爲君也, 其賴太宰敬之輔乎! 其治也以相敬, 其亂也以去敬, 其還也以復敬, 其配上帝也以敬, 其統萬邦也以敬; 一則太宰, 二則太宰. 嗚呼! 得一相而興, 失一相而亡, 人君可不愼所相與!”] |
▶ 남명 조식의 신명사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