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남후면 유래

오토산 2012. 5. 16. 02:28

 

 

 

 

 

 

 

연 혁

  • 남후면은 안동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조선시대에는 안동부의 남쪽에 있다하여 부남(府南)이라 칭하다가 숙종때 남선과 남후 두 면(面)으로 갈라졌다.
  •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면제도가 생겨서 남후면이라 칭하였다.
  • 법정리는 10개리였으나 1983년애 수상리와 수하리가 안동시 강남동에 편입되고 풍산읍 단호리가 남후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변경으로 현재의 안동시 남후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9개 리에 33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특성

  • 도심과 인접한 개발잠재력이 풍부한 전원농촌이며 중앙고속도로 ·구안국도·중앙선이 통과하는 산업기반의 요충지이고 자연경 관이 수려한 무릉·암산유원지와 구리측백나무 자생지로서 낙동 강 미천변의 비옥한 토질로 양질의 농산물 주산지이다

 

 

남례문 광경

 

개곡리(皆谷)

이 마을은 고려말에 사복재(思復齋) 권정(權定) 선생이 접거(接居)하였으므로 접실이라 하며 안동 김씨와 밀양 박씨의 동성 마을이다. 이 마을은 골마와 덕마로 나누는데 별신굿이나 동채싸움을 할 때는 골마와 덕마로 나누어서 겨룬다. 예부터 맛 좋은 무가 생산되어 왕께 진상했다고 한다. 영조께서 접실 무가 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하에게 그 무를 구해 오라 했더니, 신하는 안동 접실까지 가지 않고 동대문 시장에서 구해 왕에게 바쳤다. 왕께서 접실 무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장물에 담가 보니 보통 무와 같으므로(접실 무는 장물에 담그면 무 전체가 간장을 빨아 들임) 즉석에서 처형하였다고 한다. 접실 마을 앞 밭 전체가 무를 재배해도 다 그런 것이 아니고 2, 3필지가 그러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검암리

이 마을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야리를 병합하여 검암리라 한다 이 마을은 400여 년 전에 순천 김씨가 개척하였고 마을 뒤에 검은 바위가 있어서 검바우라 했으며 이곳은 선비들이 모여서 소일하던 곳이기도 하다. 특산물로는 무와 배추이고, 맛이 좋아서 옛날 임금님께 진상하였다고 전한다.

 

고상리

이 마을은 본래 남후면 지역으로 고일 위쪽이 되므로 웃고일 또는 상고곡, 상고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납시리, 중방리, 흠실 등을 병합하여 고상리라 한다.

고하리(古下里)

이 마을은 고일 아래쪽에 있다고 아랫고일, 하고곡, 하고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갈곡, 신기, 덕곡, 죽리를 병합하여 고하리라 한다.

광음리

이곳은 넓고 큰 바위가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어 광암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광음이 되었다 한다. 예부터 광음 열두 동네라고 하는 말은 자연마을이 많다는 뜻이고, 광음리는 중앙선 철도와 미천(眉川) 및 5번 국도를 함께 접하고 있는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리, 암산, 신기, 장성배기, 원당곡, 한곡 등을 합하여 광음리라 한다.

단호리

이 지역은 본래 서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현과 오미를 병합하여 단호리라 하여 풍산읍에 있었으나 지금은 남후면이다.

 

낙동강생태학습관 전경

무릉리

이곳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트골, 중산, 몽곡, 묵느므를 병합하여 무릉리라 한다. 이곳은 면소재지로서 학교, 면사무소, 지서 등이 있다.


 

도립노인병원, 안동 유리한방병원 전경

 

 

 

 

 

 

 

(암산유원지얼음축제 광경) 

 

 


 자암산 등산로

 

상아리

원래 아틈실(阿谷)은 상아리와 하아리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위쪽에 있다 하여 웃아틈실이라 하고, 아랫쪽에 있다고 해서 아래아틈실이라 부르고 있다.

하아리

아틈실(阿谷) 아래쪽에 위치한 하아리 전체를 아래아틈실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은 작은 마을을 통틀어 일컫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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