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유독 소금과 관련된 지명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찾게되는 찰즈부르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역시 오늘 찾는 비엘리츠카 소금광산도
역대 왕조의 제일가는 보물이었다.
국가재정의 1/3 이 소금에서 얻어지는걸 보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짐작이 된다.
회색의 금이라 일컷는 소금은
180만년전 자연에서 만들어진 경이로움으로
이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은
5000 년이 넘게 존재해 온것을
11 세기에 알게되었다 한다.
바다였던 이곳이 물이 증발되고
소금만 남고 다시 암염이 되기까지
약 1 만 5 천년이 걸렸다 한다.
역시 이렇게 오랜세월동안
오랜 아픔을 견디어 내어야만
이런 보물이 되는 모양이다.
어제 우리는 하루종일 하늘도 울고
또 오슈비엥침 (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면서
마음으로 많이도 지옥세계를 겪으며 울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신기한 보물을 보면서
지하 천국을 돌아보고 있다.
마침 티없이 맑은 표정과 웃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유치원 아이들을 제일 먼저 만나고서
어제의 아픈 기억을 깨끗이 지울수 있었다.
아이들중 유난히 부끄럼을 타는 아이를 쫒아다니며
스넵사진을 찍어보려는데 하~ 이 아이도
도통 예쁜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도록 해 주지 않는다.
고개를 포옥 숙이고 고개를 왼고개로 꼬는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는 < 제 이쁜건 알아가지고 > 하면서 웃었다.
이곳 현지 가이드가 참 인심좋게 생겼고
한두 마디의 한국말도 곁들여서
아주 인상좋게 안내해 주고 있다.
처음 378 개의 나무계단을 걸어내려가느라
힘도 들고 신기하기도 해서 웃고 있는데
가끔 함께 사진도 찍어주며 안내해 주는것 때문에
우리는 지루한걸 잊었다.
64 m 1 단계를 도착하고 다시 약 3 km 걸어
28 개의 방으로 이동하고 다시 9 단계까지
모두 다 연결된걸 합하면 200 km 넘는다 한다.
우리는 3 단계까지 135 m를 둘러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손쉽게 올라왔다.
우리는 폴란드에 와서
이곳을 보고는 폴란드 모든걸 본것모양
폴란드 갔다 왔다고 자랑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많은 동굴을 보고
그것도 소금이 아닐까 착각할것 같다.
관광소재가 어떠한 것이든
보고 감동받는건 우리들의 몫이겠다.
줄곧 나는 수백년동안
이 소금광산 동굴에서 평생을 일했던
숱한 사람들의 흔적을 보려고
천정의 소금끼 도 쓰다듬어 보고
바닥의 소금길을 발로 문질러 보며
그대 나 느끼고 있어 ?
그러나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참고가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
가장 유명한 방문자였던 코페르니쿠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1493년 크라카우에서 공부를 했던 코페르니쿠스는 소금광산으로 여행을 했다.
1973년 전세계가 위대한 천문학자의 탄생 500주년 기념을 할 때
비알리츠카 광부 들이 초라하고 오래된 방에 4.5m의 소금기둥으로
둥근 지구를 손에든 코페르니쿠스 조각을 세웠다.
1967년 광산에서 가장 오래된 전설인 킹가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조각으로 만들었다.
13세기 사람인 킹가 공주는 헝가리 왕 베라4세의 딸이다.
공주가 크라카우 공작인 블레 슬라우(볼레 슬라프)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을 때
그녀는 지참금으로 분할 받은 땅 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하길 “폴란드는
부유하고 평화스러운 나라이지만 소금이 없습니다.
헝가리는 소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자 벨라4세는
지참 항목에 ‘마라무레’라는 소금광산을 포함 시켰다.
특수한 능력이 있는 킹가는 마라무레 광산에 가서 주문을 외우며
자신의 약혼 반지를 광산 구덩이 속에 던졌다.
그 후에 크라카우에 근처에 이르자 이상한 느낌이 와서
일행에게 구덩이를 깊이 파라고 명하자
수십 개의 소금 덩어리가 나왔다. 그리고 그 속에 공주의 반지가 발견 되었다.
좀더 깊이 파자 값으로 칠 수 없는 수많은 소금들이 나왔는데,
그 것은 폴란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이었다.
이 이후로 킹가 공주는 소금광산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높이 20m, 공간은 12,800입방 미터나 된다.
아름다운 통나무 열주가 들보를 지탱해 주고 있다.
이 열주들은 대칭적인 배열하며 위로 올라가 천장을 떠 받치고 있다.
입구 왼쪽부분의 넓은 공간이 있는 쪽엔
길고 넓은 통나무 열주를 세워 암벽을 지탱해주고 있다.
통나무 벽이 있는 곳엔 두 개의 그림 판 같은 크리스탈 소금 판이 있으며
그 곳엔 옛날 광부들의 노래가 적혀 있다.
첫 소절 끝은 광부들의 인사인 “God bless! (신의 영광을)”이 새겨 있다.
이 것은 작업하는데 신의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그 것은 광산 운영자와 선임자들이 광산 속에선
광부들에게 헬멧을 벗고 경의를 표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을 의미한다.
반대편 벽에는 두 개의 다른 기념판이 있는데
거기엔 6백년 전 광부들과 크라카우 야기엘로 대학교와의 관계를 기록해 놓았다.
카시미르 대왕이 대학교를 창립 했을 때
교수들과 학장들의 급료를 이 소금광산 세금으로 지불 했다.
두 조각상은 열심히 일했던 광부와 목수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기에 역사적인 소금광산이
지금 까지 남아 있게 된 것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
최후의 만찬 조각상
‘최후의 만찬’은 최고의 걸작으로
‘안톤 비로데크’가 1935년에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면 매우 단순하다.
이 조각의 두께는 20cm밖에 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보면
전체의 아름다운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광산 기술학교를 졸업한 “이그나시 마르코브스키”라는
"토마스 마르코브스키"의 손자는 소금광산에 총책임자로
10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으로 1978년 비알리츠카 소금 광산이 UNESCO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이곳을 결혼식 장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음악 연주회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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