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문어와 홍어(우받세/지평)

오토산 2014. 1.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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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비슷한 문어와 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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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두고 경북 안동에 갔다가

시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문어를 보고 놀랐다.

그랬다가 시장 상인에게서

 “안동과 영주 등

경북 내륙 지방이 문어의 최대 소비처”라는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바닷가에서 먼 경북 내륙 지방에서

왜 문어를 즐겨 먹게 됐을까?

무엇보다 문어가

다른 해산물처럼 쉽게 상하지 않는다는

덕목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은 문어를 찐 다음

등짐으로 울진·영덕 등 동해안 항구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안동과 영주로 가져다 팔았다.

험한 산들을 넘는 데 성공한 문어는

그 이름 덕분에 더욱 인기를 끌게 된다.

 

안동과 영주는

선비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지역이다.

 문어는 선비들이 숭상하던

‘문(文)’이란 글자가 이름에 들어있다.

검은 먹물을 몸속에 품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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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가 인기를 얻게 되자

온갖 의미와 상징성이 부여됐다.

‘문어의 빨판이 과거에 철컥 붙으라는 의미다’

‘문어가 팔족(八足), 즉 다리가 여덟인 것은

부계·모계·처가·진외가·외외가 등 팔족(八族)을 상징한다’

 

‘깊은 바다의 바위틈에 몸을 낮춰 사는 것은

수졸(守拙)하며 살아가는 선비의 표상이다’...

‘뼈대 없는 집안 자손인 문어는

뼈 있는 멸치에게 절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서

문어는 이 지역의 잔치나 상가에서 빠지지 않으며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차례상이나 생일잔치·제사에

얼마나 크고 좋은 문어를 내놓느냐에 따라서

가문의 재력과 명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경상도에 문어가 있다면

전라도에는 홍어가 있다.

 

문어와 홍어는 서로 매우 달라 보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문어가

영남 지역의 잔칫상에서 빠지지 않는 것처럼

홍어 역시

호남에서는 최고로 귀한 대접을 받는 생선이다.

 

얼마나 좋은 홍어가 나오느냐에 따라

잔치의 품격과 수준이 치솟기도 하고 추락하기도 한다.

아무리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내도

홍어가 없으면 “차린 게 없다”는 소릴 듣는다.

 

 

문어와 홍어

둘 다 쉽게 상하지 않아 즐겨 먹게 됐다.

홍어는 깊은 바다에 산다.

거기서 생존하려면

염도 높은 바닷물에 체내의 수분을 빼앗기지 않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요소이다.

 

홍어가 죽으면

요소가 다른 물질로 분해되는데,

그중 하나가 암모니아다.

암모니아는 잡균의 번식을 막아주고,

덕분에 홍어는 죽어서도 부패가 더딘 것이다.

 

문어와 홍어 요리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문어숙회와 삭힌 홍어는

내륙에서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어를 삶아 얇게 썰어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문어숙회는

문어의 최대 소비지인

안동이나 영주에 가야 맛볼 수 있다.

울진 등 해안 지역에서는

싱싱한 문어를 삶아서 바로 먹는다.

반면

경북 내륙에선 삶은 문어를 냉장고 등 서늘한 곳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숙성시켜 먹는다.

 

대단찮아 보이는 이 숙성이

큰 맛 차이를 낸다.

삶아서 바로 먹었을 때는 부드럽고 촉촉하기만 하지만,

숙성시키면 물이 빠지면서

육질이 한층 쫄깃해지면서

더욱 깊고 복잡 미묘한 감칠맛을 품게 된다.

 

막 삶은 문어가 잘 버무린 겉절이라면,

숙성시킨 문어숙회는

제대로 익은 김장김치 정도의 차이랄까.

처음부터 일부러 숙성시켰다기보단

삶은 문어가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동안

자연 숙성됐고 요리 과정의 하나로 정착된 듯하다.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는

홍어를 삭혀 먹는 생선으로 알지만,

전라도에 가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회로 먹는다.

반면 목포에서는

홍어를 살짝 삭혀서 먹는다.

목포에서 영산강을 따라 올라가면 도착하는 나주에선

 ‘징하게’ 삭힌 홍어를 비로소 만나게 된다.

이런 차이는

예전부터 그랬던 듯하다.

 

흑산도 유배 당시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茲山魚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홍어를 썩혀 먹는 것을 좋아하니,

지방에 따라 음식을 먹는 기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홍어 삭힘 정도의 차이가 생겨난 원인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 말 왜구들이

흑산도 일대 섬들을 노략질하는 일이 잦았다.

정부에서는 피해를 막으려고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했다.

흑산도 주민들이 육지로 이주한 곳이 나주 영산포였다.

지금은 댐으로 강 입구가 막혀있지만

옛날에는

돛단배로 열흘에서 보름이면 흑산도를 출발해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가 영산포에 닿았다.

흑산도 사람들은

항해 기간 먹을거리로 홍어를 실었던 모양이다.

 

냉장 시설이 없던 당시로선

홍어가 긴 항해 동안 그나마 덜 상해서 먹을만한 생선이었다.

상온에서 열흘이면

홍어가 자연 발효되기에 알맞은 시간이었고,

그렇게 해서

삭힌 홍어가 나오게 됐다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문어와 홍어는

부패가 더디다는 장점 덕분에

내륙 지방에서도 사랑받게 됐다.

운반 과정에서 자연히 또는 우연히 숙성된 것이

각각의 가장 독특한 식감을 지니게 됐다.

 

그러면서

문어숙회는

경북 내륙의 유교·선비 문화와 그 식감을,

 

삭힌 홍어는

전라도의 ‘개미’(깊은 맛, 감칠맛을 뜻하는 전라도 표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언뜻 달라 보이지만

먹거리와 사람들이 먹고사는 모습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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