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광산김씨 군자리(외내마을)

오토산 2015. 10. 10. 10:41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하세요

http://blog.daum.net/uh512/8610

 

광산김씨 군자리(외내마을)

 

 

낙동강 상류 구예안 오천리는 광산김씨가 19대 500여년 동안 뿌리내린 동족마을

1976년 안동댐건설로 인해 현재의 군자리로 집단 이주했으며 군자리는 한강 정구

선생이 "오천의 한 마을은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한데서 유래했고  이건시

누상공방(樓上空房)에서 쏟아져 나온 分財文記,戶口單子,婚書,敎旨,訴誌,明文,

名賢書簡,奴婢文書,完文등 2000여점의 고문서와 희귀자료 유물들은 학계와

세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신라왕실 후예 광산김씨는 전라도 광산(광주) 토성으로 외내 입향조 농수 김효로가

연산군때 아들 운암 연(緣)과 탁청정 유(綏)의 자손들이 번창해 영남선비 가문으로

문호를 구축해 烏川七君子(후조당金富弼,읍청정金富儀,산남金富仁,양정당金富信,

설월당金富倫,일휴당琴應夾,면진재琴應壎)가 김효로의 친.외손에서 배출되어

퇴계선생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였다.

 

후조당 종택에는 입향조 金孝盧와 증손 근시재 金垓의 부조위 사당을 모신 종택

후조당은 손자 김부필의 호로 논어의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추운겨울이 되어야

송백의 시들지 아니함을 안다)의 뜻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곧은 절의와 지조를

변치 않는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말이다.

예안 입향조 농수 김효로(1454~1534)는 풍천 도양에 살다가 오천에 정착하여

예안파입향조가 되었고 현재 입향조의 20대 희중 종손이 이어오고 있다.

 

탁청정 종택은 입향조 둘째아들 김유가 1541년 세운건물로 조선중기 소실되어

중건하였으며 종택에 딸린 별당채 정자로 낙성당시 초대된 퇴게는 강건너에서

정자 모양을 보고 "선비의 집이 너무 호사스럽다"고 하여 오르기를 꺼렸다 하며

탁청정은 공자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하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하는것이다"와 굴원의 어부사에 "청량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청량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는다"라는 말에서 선비는 세속의 흐름에

편승하는것이 아니라 언제나 말고 깨끗한 선비정신을 기리고자한 뜻이라 한다.

 

설월당 종택에서 전해오는 철학이 담긴 음식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 있고 

수운잡방이란 이름은 주역의 수괘(需卦)에서 의의를 취하여 지었는데 水天需卦의

'수(需)라는것은 음식의 道이다'라 하였고 수괘는 구름(水)이 하늘(天)위에 떠있고

아직 비를 내리지 못하는 형상으로 나아가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는 뜻이 담기고

'구름이 하늘위에 있는 형상이 기다리라는것이니 군자가 이를 보고 먹고 마시고

잔치를 벌려 즐기는것이다'라고 한데서 자연이 비를 내려 만물을 생육시키듯이

군자가 먹고 마시며 연회를 빌려 즐기는 음식이란 군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것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군자리를 돌아보고 군자고와(君子古窩)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수운잡방

요리가 전해진 곳이라서인지 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던 사장님이 서빙을

하여서인지 음식이 맛 있었고 식당을 그만두신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식사 후 강당에서 김방식 관장님은 부친과 형님이 아루어 놓으신 터전에서

체험객들을 맞이하며 안동을 홍보할수있어 보람이 있다고 하시었으며

우리들에게 친절한 안내를 하여주신 관장님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주신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경전독송을 한 후 예안향교로 향했다.

 

세상사 한마디

수운잡방(需雲雜方)은 탁청정 김유의 셋째아들 설월당 종택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한문 필사본의 음식조리서로

탁청정의 부인 순천김씨의 조리비법을 구술에 의하여

탁청정 김유가 필사한것으로 추정되며

수운잡방이란 의미는 음식이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는것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을 지키며 인간의 도리를 다하여 군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먹고 마시는것이라는 깊은 철학이 담겨있는 요리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