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문화

대관령 주막집여인과 선비 이율곡(갈지)

오토산 2016. 7. 3. 20:22

 

 

◆ 대관령 주막집 여인의 유혹[선비율곡과 그의 부인 신사임당] http://blog.daum.net/4445464748495051/15856994

















6월이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 밤나무 꽃(율곡리)

 

대관령 주막집 여인의 유혹

 

6월은 녹음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밤꽃의 계절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교외로 조금만 나가면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배를 주렸던 지도자가 유실수를 독려하는 정책 때문에

우리나라 산야에는 유난히 밤나무가 많습니다.

 

6월 초부터 피는 밤꽃 향기는 특이한 냄새를 풍깁니다.

별로 향기롭지 못한 이 냄새를 남자의 정액 냄새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는 이 냄새를 '양향(陽香)'이라 하여 밤꽃이 필 무렵이면

부녀자들은 외출을 삼갔고 돌싱은 더욱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였습니다.

 

서양에서도 밤꽃 향기는 남자의 향기에 비유되었습니다.

평소 새침하던 여인도 밤나무 숲을 함께 산책하면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아마도 남성적인 밤꽃 향기에 취해서 그렇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섹슈얼리티를 간직하고 있는 밤꽃 향기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옛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대관령 표지석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당신은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큰 인물이 될 것 입니다.

나는 친정에서 그림 공부나 하며 서방님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기다릴테니

한양에 올라가서 공부 하시도록 하세요.”

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한양으로 공부하러간 선비가 있었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아내와 떨어져 공부에 전념하던 선비는

꽃같이 예쁜 부인이 보고 싶어 아내와의 10년 약속을 깨고 처가집을 찾아가는 길.

강원도 평창의 한 주막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뻥뻥 뚫려

서울에서 한나절도 못되는 두어 시간 거리이지만

그때 그 시절 강릉을 오가는 나그네는 횡계에서 하룻밤을 묵고 대관령을 넘어야 했다.

 

한양에서부터 몇날 며칠을 걸어 바댕이(八堂), 두물머리, 양근, 횡성, 대화를 거쳐

횡계까지 왔으니 노독이 쌓여 곤한 잠에 떨어진 밤.

주막집 울타리의 댓잎이 스산한 가을바람에 사각거리고

짝 잃은 귀뚜라미 애달프게 울어애는 밤.

교교한 달빛이 스며드는 야심한 밤에 주안상을 받쳐 들고

섬돌위에 신발 벗는 소리와 함께 장지문을 여는 여인이 있었다.

 

대관령 옛길 표지석

 

게 누구냐?”

주막집 아낙 이옵니다

 

달빛에 비치는 여인을 바라보니 틀림없는 주막집 여인이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주막을 찾아들었을 때

수려한 인물에 여염집 여인 같은 단아한 자태가

이런 시골구석 주막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구나 하고

눈여겨 봤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인고?”

선비님의 인품이 하도 고고하여 약주 한 잔 올리려고 하옵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는 자세가 범상치 않다.

아무래도 여인의 자태에서 양반집 규수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었지만

오른쪽으로 여민 말기의 폼새로 보아 처녀는 아닌 듯 싶고

비록 치마로 하체를 감쌌지만 들이쉰 숨을 아래로 내려 음기(陰氣)를 모은 뒤

더 깊은 아래로 흘려 내리는 훈련을 한 걸음걸이로 보아

여염집 아낙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허허허, 네 뜻이 그러하다면 술을 따르거라.”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털웃음을 웃고 있지만

선비의 얼굴은 호기심과 긴장이 교차되고 있었다.

 

다소곳이 절을 올린 아낙이 살포시 일어나

교방 탁자 넘어 구석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거문고를 가져왔다.

그 옆에 걸려있던 선비의 의관(衣冠)이 백색 도포에 남색 띠인 것으로 보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청색 도포에 자색(紫色) 띠를 추구하는 선비임을 알 수 있었다.

 

옛 주막터 자리에 그려져 있는 주막그림

 

섬섬옥수(纖纖玉手).

여인의 오른손이 술대를 쥐고 허공을 가르니 거문고가 울어댄다.

슬기둥 당당~ 둥둥 딩탕당~~

 

가야금이 여성적이라면 거문고는 남성적이다.

가야금이 해양적이라면 거문고는 대륙적이다

가야금이 신라스럽다면 거문고는 고구려스럽다.

 

마초의 부드러움일까.

부드러움 속의 깡일까?

꺾고 휘몰아치는 음색이 사나이 가슴을 뛰게 한다.

한 잔이라도 걸치고 나면 완전 ?음이다.

해서, 옛날 기방(妓房)엔 필수품이었다.

분단 된 이후엔 가야금이 빛을 봤지만 옛날에는 찬밥이었다.

때문에 남성들에게 묘한 매력을 풍기는 악기다.

 

고치에서 비단을 뽑아내듯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향(音響)이 가야금이라면

밤나무로 받침대를 하고 오동나무로 울림통을 한 거문고는

남녀가 교접할 때 들려오는 교성(嬌聲)처럼 잦아들다 솟구쳐 오르고

솟구치다 잦아드는 음색(音色)이 황홀하고 열락(悅樂)적이다.

거기에 고수(鼓手)의 북소리라도 받쳐주면 음양(陰陽)의 조화가 환상이다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 잔 받으시오.

공자님을 어제 뵌 듯, 맹자님을 오늘 뵌 듯

고금이치 통달하신 도학군자 선비님께 정을 담아 바치오니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붉은 입술에 흰 이와 윤기 흐르는 귀밑머리에 복숭아 빛 얼굴.

이러한 여인을 단순호치(丹脣皓齒)와 녹빈홍안(綠?紅顔)이라 했던가?

색기어린 여인이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권주가와 함께 잔을 채웠다.

 

색기(色氣).

혹자는 추하고 천박하다고 경멸하지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본능에 충실한 표현일 수 있다.

질시의 눈으로 쳐다보는 그자가 위선자일 수 있다.

새끼의 어원을 추적하면 금방 알 수 있는데 말이다.

 

개가 암내를 내면 혈을 흘리고

고양이는 소리를 지르며, 말은 거기를 벌렁거리며 애액을 쏟아낸다.

종족을 보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다.

 

 

인류가 침팬지처럼 손등을 짚고 네발로 기어 다닐 때

남컷은 여컷의 궁둥이에서 풍기는 냄새와 이상 징후로 발정기를 감지했다.

헌데, 직립 보행하면서 눈높이가 달라졌다.

예전의 방식으로는 감을 잡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멸종이다.

진화의 속성이다.

 

종족보존 본능과 모성 본능이 내재되어 있는 여컷들이 급해졌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털을 털어내고 피부를 드러냈다.

젖가슴을 남컷의 눈높이에 맞췄다.

새끼를 튼튼하게 길러낼 식량창고를 들이댄 것이다.

 

여컷의 전략은 주효했다.

남컷의 시선집중에 성공한 것이다.

붙어 있을데가 따로있지, 소 돼지처럼 아랫배에 붙어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디지털시대.

신인류 20대 남성들에게 물었다.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어디에 시선이 가느냐고?

답은 얼굴도 아니고 몸매도 아니며 다리도 아니었다.

유전자는 살아있고 그 시대 여컷들이 영악했다는 방증이다.

 

과학이라는 개념이 없던 그 시절.

직립 보행하는 인간의 황금 시각(視覺)90도가 아니라

78.75도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기가 찰 노릇이다.

이건, 과학 이전의 본능적인 문제다.

 

동물은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에 호기심을 나타낸다.

인류멸종 위기극복의 최대 공로자는 왕성한 호르몬 분비로 가슴을 부풀린 여컷이다.

헌데, 남컷의 그것은 서지 않으면 시선을 끌지 못한다.

때문에 여컷은 분위기로 하고 남컷은 몸으로 한다.

 

진화중인 침팬지. 가슴털부터 없어지기 시작하고 인간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종() 불문 멸종이다.

그날이 오면 체온이 오르고 피부에 윤기가 흐르며 가슴이 벌렁거리고

예민한 사람은 거기가 씰룩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색의 기운이다.

 

 

대관령.

구비구비 아흔아홉 구비 험한 고개이다 보니 샛길로 빠졌다.

네비는 없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본길로 접어들어야겠다.

 

주막에 과객이 들어오면 등용을 의미하는 잉어 그림이 그려진 주병에 물고기가 찰랑거리는 선까지 술을 담아 내놓았다.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주모의 갸륵한 마음이다. 이러한 주병이 진품명품에 나온다면 1억 이상 평가받을 것이다. 15~16세기 당시대 사용됐던 물고기무늬병(중박소장)

  

부드러운 여인의 손에 들려있던 호리병에서 흘러나온 송화주가

선비의 입을 통하여 몸속에 흐르자

짜르르~ 술기운이 전해져 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가 아닌 '?두께' 라고 이게 무슨 횡잰가?

 

야심한 밤에 술과 여자라.

회가 동하지만 신분이 뚜렷하지 않은 여인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선비의 도리이거늘 경계할 수밖에...

-그 옛날에도 꽃뱀이 있었다.

 

대관령에 있는 옛날 주막터 표지

 

그래, 무슨 사연이라도 있느냐?

선비님과 하룻밤 가연 맺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가연(佳緣).

요셋말로 표현하면 같이 자자는 것이고

더 노골적으로 해석하면 ?스를 하자는 것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스를 해달라는 것이다.

 

핫팬티에 토플리스 디지털녀도 아니고 480년 전 조선 중종시대.

아녀자가 야심한 밤에 남정네 방에 들어와 배꼽을 맞추자고 하니

선비가 놀라 자빠질 일.

 

밤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달빛은 교교한 이 야심한 밤에 여인이 스스로 찾아들어와

겨드랑이가 깊이 파인 도련의 연분홍 항라 저고리를 벗으며

모란 무늬가 은은한 갑사 치마끈을 풀며 품속으로 파고들어오니

아무리 선비의 체통이 군자의 뜻을 ?는다 해도 갈등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귀밑머리에서 흘러내린 어깨선이 상아를 깍아 내린듯  아름답다.

지게문 사이로 새 들어오는 달빛에 여인의 우유빛 속살이 눈부시다.

촉촉이 젖은 그 여인의 검은 눈망울은 그 무엇을 간절히 갈구하고 있었다  

 

아직은 다 벗어 내리지 않았지만

치마 말기 속에 반쯤 드러난 젖무덤이 터질 듯이 솟아있다.

호리병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술을 따를 때에는 봉긋한 젖무덤이 선비의 팔굽을 스쳤다.

 

바람이 분다.

향탁에선 연향(戀香)이 타오르고

문틈사이로 흘러들어온 바람에 지촉등불이 살랑거린다.

흔들리는 불빛에 드러난 여인의 얼굴은 불그스레 물들어 있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거치른 숨소리가 점점 더 가빠온다.

촉촉이 젖어있는 여인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만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분꽃씨 같은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눈물에 떠있는 한조각 편주(片舟)처럼

흰자위에 두둥실 떠있다.

 

물방앗간(봉평)

 

! ! !

구름에 달 가듯이 달에 구름 가듯이

밤하늘에 흐르는 달그림자를 보고 놀랐는가?

동구 밖 물방앗간에 몰래 숨어 들어가는 아랫마을 돌쇠와

작년에 서방을 여윈 과부댁을 보고 컹컹대는가?

이때 아랫마을 개 짖는 소리가 적막을 깨고 들려왔다.

 

여인이 나비 등잔불을 껐다.

밤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또다시 적막이 흘렀다.

 

여자를 품에 안아본 것이 언제였던가?

7년 전 한양으로 공부하러 떠나올 때

어른들과 아랫것들 시선 때문에 문밖까지 배웅도 못하고

사랑채 문간을 부여잡고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던 부인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아서라, 선비의 도리가 아니느니라.”

선비 가슴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선비님 너무 하시옵니다. ~~~”

봉긋한 젖망울 까지 풀어헤쳤던 여인이

저고리 옷고름을 여미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게문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달빛이

여인의 어께위에 푸르게 부서지며 흘러내린다.

댓잎 스치던 밤바람이 일렁이며 툭 하고 밤송이 구르는 소리가 들리건만

여인의 어깨위에 일렁이던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도 난감할 수밖에... 

 

 

주안상을 물리고 지필묵을 들여라

뒤돌아 나가는 여인의 뒤태가 가히 뇌살적이다.

애플 힙.

그때라고 왜 없었겠는가.

지금이야 휘트니스에서 만들어지지만 그땐 자연산이었다.

 

선비의 목젖이 탄다.

타는 목마름인가?

목이 마르니까 타는가?

다잡은 고기를 놓친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마위에 올라온 고기를 돌려보냈으니 얼마나 아숩겠는가.

 

추사 김정희가 썼던 붓과 벼루(중앙박물관 소장)

 

여인이 주안상을 치우고

붓과 벼루와 청자빛이 영롱한 연적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종이는 왜 가져오지 않았느냐?"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선비를 바라보던 여인이 

갑사 치마끈을 풀어 선비 앞에 펼쳐놓았다.

 

창백한 손이 먹을 잡았다.

눈가에 맺힌 이슬이 벼루에 떨어졌다.

흐느낌을 감추려는 듯 여인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선비가 붓을 들어 먹물을 찍자 방을 나서는 여인의 뒷모습이 처연하기까지 했다.

 

배롱나무. 그 당시 심었을것으로 추측되는 배롱나무가 강릉 오죽헌에 있.

 

鏡花水月(경화수월)

거울에 비친 꽃이요 수면위에 떠있는 달이로다

'처음처럼'의 전신 '경월'소주가 괜히 나온 브랜드가 아니다.

 

이튿날.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내려간 휘호를 치마에 남겨두고

동창이 밝을 무렵 주막집을 나선 선비는 대관령을 넘어 해질 무렵에 처가집에 도착했다.

얼마 만에 찾은 처갓집인가?

7년 전 떠나올 때 마당에 심은 배롱나무가 몰라보게 자랐지만

아내의 모습은 새색시 그대로 고운 모습이었다.

 

1(한달)을 처가 집에 머무르며 쌓였던 회포도 풀고

아내와의 운우(雲雨)의 정을 나눈 선비는 과거시험 때문에

다시 처가집을 떠나 한양 길을 나섰다.

대관령 굽이굽이 휘돌아 고갯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면서

주막집 그 여인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 이었다.

다른 주막에서 묵을 수도 있지만 횡계 그 주막에서 다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대관령 고갯길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옛길. 대나무 숲길이 선비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길을 통해서 신사임당도 영마루를 넘었으며 율곡 이이(李耳)도 대관령을 넘었다. 강릉에서

어나 열네 살 고운 나이에 경기도 광주로 시집간 허난설헌도 이 길을 통과했다. 송도삼절(松都三絶)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황진이도 인생의 허무를 느껴 관서팔경과 지달산을 유람하고 관동팔경을

섭렵한 다음에 단양팔경을 구경하기 위하여 이 길을 지나갔.

 

지나가는 길손에게 당돌하게도 그러한 청을 들인 게 무슨 연유이더냐?”

주안상을 마주 놓고 그 여인에게 물었다.

 

비록 배운 것은 없어 주막을 열어 먹고사는 무지렁이 이오나 사람을 많이 보아온 탓에

지나는 과객의 기색을 살필 줄 아옵니다.”

기색(氣色)이라...? 그래, 내 기색이 어떴드냐?”

그날 선비님의 안색에 서기(瑞氣)가 서린 것을 보고 귀한 자식 하나 얻어 볼까 하는 마음에 아녀자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리하였습니다.”

오호, 그랬었구나. 그렇다면 오늘밤에 이루지 못한 운우의 정을 풀어보자꾸나

 

이래서 남자는 도둑놈이라 하는가?

처가집에서 싫컷 아내와 배맛사지를 하고 나선 사람이

줄 때는 안 먹고 이제 먹자하니 이런 고얀 일이 있는고.

 

지금은 아니되옵니다.”

"왜 그러느냐?"

"그때는 선비님의 안색에 서기가 넘쳐났으나 지금은 그 서기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오라

이미 부인의 몸에 귀한 아드님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미천한 계집이 몸만 더럽힐까 하옵니다."

 

여인은 싸늘했다.

헤벌래 하고 기다리던 선비도 정신이 바짝 들며 싸하게 퍼지던 술기운도 싹 깨는 것 이었다 

 

그 아이는 사내아이로서 인시(寅時)에 태어날 것이며 일곱 살 되던 해에 호환(虎患)이 두렵사옵니다.”

 

다소곳이 치마폭에 무릎을 접은 여인의 입에서 예사롭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이게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무기(誣欺)인가?

하늘의 뜻을 전하는 천기누설(天氣漏泄)인가?

이제야 정신을 바짝 차린 선비는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과하고 호환(虎患)을 막을 방도를 물었다.

 

"그래, 호환을 면할 방도가 무엇인지 말해 보거라?"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으면 그 화()를 면할 것이외다.

"천 그루라 했느냐?"

"네 그렇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천그루라야 합니다."

"괘이하구나."

"더 이상 묻지 마십시요."

"궁금하구나." 

"더 알려고 하면 다치십니다."

"알았다. 더 이상 묻지 않겠다." 

"아이가 일곱 살 되던 해 낯모르는 스님이 찾아와 아이를 보자 하거든

절대 보여주지 말고 밤나무를 보여 주소서"

 

호환(虎患)이 무엇이더냐?

호랑이에 물려가는 것이다.

, 어른을 막론하고 호환을 당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공포 바로 그 자체다. 특히, 선비 집안에서는 치욕으로 생각했다.

조상 모시는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을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속설(俗說)이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호랭이 물어갈 놈이라는 욕설이 있겠는가.

 

한양에 도착한 선비는

밤나무를 심으라는 그 여인의 말이 머리를 맴돌아 공부가 되지 않았다.

 

밤나무가 무엇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밤나무는 죽어서 신주(神主)가 되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신성(神聖)한 나무이기에

밤나무를 심는 것은 덕()을 쌓는 것이다.

 

과거 공부하던 선비는 고향 파주에 되돌아가

친정(강릉)에서 사내아이를 낳아 3살까지 기른 후 시댁에 와있던 아내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고 고향집에 천 그루의 밤나무를 정성들여 심었다.

 

굴갓

 

아이가 일곱 살 되던 어느 날.

갈포 장삼에 굴갓을 쓴 노() 스님이 마을에 들어왔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열반산에서 왔습니다.”

"열받아서 산에서 오셨다구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알흠다운 산입지요.”

금강산 말씀이십니까?”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은 알아도 열반산은 모르고 계셨다니 유감입니다.”

"그러시다면 스님! 지달산은 어디입니까?"

"지랄산이요?"

"지달산 말씀입니다."

"산은 산이고 지달은 지달이지요."

"에이, 그런 말씀이 어디있어요? 비긴것 입니다."

"비기다니요. 눙쳐본 것이지요."

"하하하하"

"허허허허"

호탕하고 유쾌한 웃음이 메아리쳤다.

 

"건 그렇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 고을에 나라의 재목이 될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소이다.”

재목이요?”

그렇소이다.”

스님이 아이들을 살폈다.

헌데, 눈동자가 예사롭지 않았다.

고양이과에서 풍기는 살기가 풍겼다.

 

내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불길한 예감이 든 선비가 소리쳤다.

 

하늘의 명을 거역하려느냐?”

"거역인지 아닌지는 밤나무를 세어본 후에 논합시다."

진노한 노()스님이 하얗게 흘러내린 수염을 쓰다듬으며 밤나무 숲으로 향했다.

 

하나, , .

세어가던 밤나무 숫자가 999에서 멈췄다.

순간, 선비의 심장이 멎는듯했다.

소를 매놨던 밤나무 한 그루가 그만 말라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였다

 

나도 밤나무...”

소리치며 나서는 나무가 있었다.

도토리 나무였다.

그 순간, 죽어가던 나무를 뽑아든 선비가 스님을 향하여 내리쳤다.

 

커겅!”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지른 노()스님이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에는 털 한 웅큼이 남아 있었다.

호랑이 털이었다.

 

이렇게 호환(虎患)을 면한 아이가

조선의 천재 율곡(栗谷) 이이(李耳)이며

선비는 율곡의 아버지 감찰공 이원수(李元秀)이고

지아비를 출세시키기 위하여 별거를 자청한 여인은

우리의 영원한 현모양처의 표상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선비와 그의 부인 신사임당 합장묘. 경기도 파주 자운서원에 있다

 

율곡이 자란 파주에는 나도 밤나무가 있었다는데 율곡을 살려냈다 하여 활인수(活人樹)라 하고 그 나무가 있던 고개를 율목치(栗木峙) 또는 밤나무 재라 부르며 동네이름도 율목리(栗木里)불렀다는 전설이 전하여 내려오고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었고 파주시청 문화관광과 문화재 담당관은 파평면 율곡리(栗谷里)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