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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 계신분(우받세/지평)

오토산 2016. 11. 20. 03:24

 

 

나타나 계신분

 

  6시간 20분 대장편 영화 >나사렛 예수<:Jesus Of Nazareth (Full Movie) 1977 & 영화 이해를 돕기 위한 4복음서 내용 장별 비교

 

시적인 천재성을 가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은
1977년 371분짜리 3부작

[나사렛 예수] 를 4년여의 노력끝에 완성했다.


아직까지 만들어진 '예수전'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분류된다.


그가 캐스팅한 예수역의 '로버트 파웰' 은

영국 시골극장의 무명 배우였다.

 

<영화여행 '나사렛 예수' 14 - 첫 복음 선포에 날아 온 돌>


제피렐리는

카메라 렌즈로 파웰의 눈을 드려다 보고

그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파웰의 눈은 맑고 아름답고 투명한 눈이었다.


마리아역을 맡은

'올리비아 핫세' 의 탁월한 연기도

우리는 잊지 못한다.
그때

그녀는 결별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영화 [나사렛 예수] 의 마지막 부분,
가룟유다와 예수를 넘겨받는

거래를 주도했던 가야바쪽의 유대인 '제라' 는
예수가 부활한후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빈 무덤에 직접 가 본다.


무덤이

비어 있는것을 확인한 '제라'는

참담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제 시작이군.'


명석한 유대인 '제라' 는

자기들의 치밀한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영화] 나사렛 예수 6부


무덤이 봉인되고

그 입구를 큰 돌로 막았을때,
예수의 실패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끝난것이다.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의 용기로

그의

시신이 십자가에 달려

훼손되지 않은것 만도 다행이었다.
(우리가 아는것과는 달리

로마는

십자가의 시신을 내리지 않았으며

날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

십자가 처형은

가장 무거운 사형방법이었다.)

산헤드린의 사악한 세력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고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나지 않은것에 안도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나사렛 청년때문에

골치아픈 일은

일어나지 않을것으로 단정하고 안심했다.

 

본디오빌라도의 명령 -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


그러나

사실은 그게 시작이었다.
죽은 사람은 잊혀진다.
잊혀져야 정말 죽는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처형된,

분명히

무덤에 묻힌 그 예수를 봤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단지

소문 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어야 하는것인데

날이 갈수록

그를 봤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숨어있던

그의 제자들이 나서서

'형태' 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사태의 발전이었다.

초대교회의 기록된 증언중

가장

구체적인 것이 바울의 설명이다.

 

사도 바울 (6)


'그리스도 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사도에게 나타나셨읍니다.


또 한번에

오백명이 넘는

교우들 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있읍니다.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모든 사도들 에게도 나타나셨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읍니다.'

고전 15:5-8 공동.


이 본문에서 주목할것은,
부활하신 예수를

새벽에 조우했던 여인들의 이야기와

혼란스러운 상황설명이 삭제된 점이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나는 내가 전해받은

가장 중요한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읍니다.' 라는

대목이 있다.


즉,

바울은 이미 초대교회에서 정형화된,

고정된

백문을 인용하고 있는것이다.

 

2013.03.31 - 부활신앙의 확신이 없으면


이미

부활신앙의 고백은

사도중심으로 서술되는 전승이 확립된 것이며

바울은

그것을 다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것이다.


말하자면

게바로 부터 바울까지의 병열적 나열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중요한 최초의 증인이 될수있는

여인들은 삭제되고

대신

게바가 선두에 등장한 것이다.

다음은,
'나타나셨다'

단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단순과거 수동태인

옵데,-opthe-appear 는,
보는자의 경험에 촛점을 두기보다는

나타내 보이는 분의

주체적 의지를 부각시키는 단어다.


따라서

부활경험을 현현 경험에 참여한 자들의

주관적 경험으로만 축소 시킬수가 없다.
오히려

'계시적 현현' 쪽에 무게가 더 실리는 단어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느꼈으며

어떤 체험을 했는가.


가장 중요한 증언은

바울 스스로가

자기 체험으로 말하고있다.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읍니다.'
이 고백은,


말할것도 없이

사도행전 9장에 상세하게 기록된 것으로

다마스커스로 가던중

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조우한 체험적 사건이다.

 

<영화여행 '나사렛 예수' 13 - 예수와 요한, 두 사내의 만남>


바울은

주의 음성을 들었고

그분과 말을 나누었다.


바울은

하늘로 부터의 강열한 빛에 의해

땅에 엎어졌으며 실명하게 된다.
바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음성' 은 들었지만

눈으로 본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활하신 예수가

바울에게 나타나신 '방법' 이 그러했으며

이는

옵데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시

에베소에서 써 보낸것으로

주후 53-55 년 어간에 기록됐다.


여기에 비해

로마에서 기록된 베드로전서는

주후 64년경에 기록된 책이다.


10년의 경과는

특히

초대교회에서의 '교리적 정리' 를 위해서는

중요한 기간이 될 수 있으며
베드로전서 3:18절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 께서는

몸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읍니다.' -공동.


sarki-flesh 로는 죽었지만

pnumati-spirit 으로는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He was put to death in the body

but made alive by the spirit.-TNIV.
몸은 보이지만 영은 보이지 않는다.
바울이 조우한 분이 그분이다.

 

그림으로 보는 말씀 묵상- 예수님의 탄생, 고난, 죽음, 부활, 승천까지


바울은 그분이

그렇게 자기에게 '나타나셨다' 고 했는데

그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주께서는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말씀까지 주고받으셨다.


그 놀라운 체험은

사울이 바울이 되게하고

순교하기까지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바울에 의해

비로서 '기독교' 가 탄생되었다.

지금의 우리들은

예배를 드릴때 성경말씀을 봉독한후,
'살아계신 말씀' 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감동하고 놀라운 은혜를 받는다.
죽은 글에는

그런 능력이 없다.


'살아계신 말씀' 이라고 하는가.
살아계신분이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말씀' 이라고 하는가.
그분이

우리중에 나타나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게바와 바울에게 나타나셨던

그분은

지금도 우리앞에 나타나 계신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그분을 '영접' 한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죽으자는 영접되지 않는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기준으로 서술하면 단지 '역사' 가 된다.


그러나

신앙의 눈과 마음으로 읽으면

그 사건은

어제 일어났던 현실이 되고
오늘

그리스도와 조우하는 현장이 된다.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누리십시당~~ㅎㅎ


'부활' 을

물리적인 '기적' 으로만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 마음은 이해할수 있지만
위험한 일이다.


자칫

전혀 다른것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씀 하시는 대로

바울에게 나타나셨던 주께서는

지금 우리들 에게도

그대로
나타나 계신 분이다.


그분이

우리들의 '주님' 이시다.

 

by/yo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