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구미 인동의 여헌기념관을 찾아서

오토산 2017. 9. 3. 23:30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750

 

 

구미 인동의 여헌기념관을 찾아서

 

 

2017.9.2.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아카데미 제9기 회원들이 하반기 첫 현장탐방으로

구미지역의 여헌기년관, 단계 하위지선생 유허비, 금오서원, 송당정사, 채미정을

찾으면서 첫 답사지로 여헌기념관을 찾았다.

구미에서는 고향이 북후이신 강삼구 구미시문화해설사님이 안내를 하신다.

 

旅軒記念館은 동락서원과 인동장씨 남산파 종회에서 부지를 기증하였고

국비3,도비7,시비8,자부담5억의 재원으로 건립했고 여헌연구회 장태환이사장이

초대~3대를 거쳐 10여년간 역임하면서 많은 난관을 해결하여 2013.9. 개관했고

영상실에서 사무국장님의 영상안내를  듣고 1.2층 전시관을 구경하였다.

 

旅軒 張顯光(1554.1.22~1637.9.7)선생은 인동현 인의방(현 구미시 인동동)에서

시조 張金用이 고려초에 정착한 인동에서 15세손 장우(남산파 시조)의 5세손으로

태어나 18세 우주사업 요체가 담긴 宇宙要括을 지어 학문적 지향 목표 정하고

임진왜란(39세)으로 인동이 초토화되어 15년간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고

 44세때 여헌이라 자호하고 여헌설을 지어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우주 사이의

나그네이며 나그네로서 지켜야할 도리가 있음 밝혔다. 

 

53세에 옛터(募遠堂)안착하였고 55세에 대표저술인 易學圖說 찬술시작하고

 69세에 經緯說을 지었으며 71세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임금의 자문에 응하였고

73세에 임금에게 建極說 진술하고 74세 정묘호란시 상도호소사의병규합,

75세 晩學要會, 77세 易卦總說, 78세 宇宙說, 79세 太極說을 지었으며

80세 대궐에 벼락이 떨어지자 求言교지 恐懼修省의 도를 아뢰었고

81세 圖書發揮 저술, 84세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왕이 항복하자 입암으로 은거해

二鐵銘座壁題省을 짓는 등 마지막까지 저술을 하였다.

 

조선중기 성리학자이며 과학사상가로서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여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하여 도덕정치의 구현을 강조하였으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를 아우르는 철학자로 평가 받고 있다.

 

우리는 여헌기념관을 관람하고 나서 선산에 있는 단계 하위지선생 유허비를

답사하기 위해 선산으로 출발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여헌선생이 임종시에 시질(侍疾)하는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吾儒의 학문은 마음에 근본하여 몸에서 닦아가는 것이다

물뿌리고 비질하여 응대하는것으로 부터 천명(天命)을 아는것에 이르기까지

格物致知로부터 공손함을 돈독하게 하여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데 이르기까지

 

그 사이 節目은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한것을 십분 꼭 도리에 맞게 할수있는것에 지나지 않으니

그 것으로 부터 더 나아가는것에 다른 특별한 법은 없다

 

제군들은 늙은이가 있지 않다고 해서 소홀히 여기지 말고

내가 죽음에 임하여 한말을 체행(體行)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