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병곡 송천마을 송천세려를 찾아서

오토산 2017. 11. 29. 00:17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971

 

 

거경대학에서 병곡 송천마을 송천세려를 찾아서

 

 

도해단을 떠나서 조선초기 梁씨, 張씨가 살았으나 조선중엽까지 無名의 驛村으로 

數戶의 객주집과 여행자 휴식소가 있던 '기러기기 알을 품는형국(雌雁抱卵形)의 

奇妙한 지세를 발견한 權得與선생이 인조연간에 역촌을 새터(연평리)로 옮기고

 구릉에 솔을 심고 前有百利川하고 後有萬枝蒼松이라 읊으며 松川이라 洞名하고 

自號 松川子하였다는 병곡면 송천에 위치한 안동권씨 송천세려를 찾아갔다.

 

松川世廬는 조선 숙종때 문신 송천자선생이 영해 관어대에 이거해  오면서

아들 七友亭 權大臨이 1700년대 살립집으로 지은 '日'자형 서향건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대문채및 방앗간으로 대문채를 들어서면 좁은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 정침이  있었다.

 

松川子 權得與(11636~1716)선생은 臺隱선생 둘째아들로 관어대에서 출생했고

8세에 글을 지어 어른들을 감탄케 하였고 士林에서 宗匠으로 추대하였으며 

1682년에 司馬하고 1693년 行誼로 경릉참봉에 천거된후 호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송천에 독오헌(獨娛軒)을 건립하고 士友와 詩書를 강론하고 후학을 訓育하였으며

제방을 보수하고 송천보를 만들어 수백정의 비옥한 평야를 조성하여

농경문화 발전에 공헌하였고 일곱 아들중 세아들이 대과에 급제하였으며

부사가 내임하여 '형제가 재능이 함께 뛰어난 경우는 세상에 흔히 있으나

양친이 모두 살아계신데 삼형제가 급제하는 경우는 古今京鄕에 드문 영광이라

하였다고 전하며 유고로 득오집 2권이 전한다고 하며

송천정사는 영해 3.1.의거의 발원지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송천자선생의 11세손 권오기(성균관대 퇴직)님이 문중에 대한 설명를 하시며

장서각에 보관중이던 많은 책판은 분실되었고 일부 책판은 국학진흥원에

 기탁하하였다고 설명하시었고  종손은 영남대학교에 근무하신다는 설명을

들으며 설명을 하여주신분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는 괴시리 영양남씨 집성촌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여 왔던것은 힘이세어서도 아니고

몸이 날렵해서도 아니며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소설을 쓰고 신문기사도 쓰고 바둑을 두고 있으며

 앞으로 7년이내 70%의 직업이 없어져 컴퓨터가 행한다고 한다.

 인간이 로버트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 때가 오지 않을지 ???